허세창단편소설

[단편소설]모기

허세창 2025. 2. 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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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모기

 

지은이  허세창

 

문짝, 천장, 벽 그 어디에서도 녀석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거실 쪽으로 나간 것일까. 그럴 확률은 매우 적다. 그 작은 몸뚱이로 그런 궁리까지 유출 해 낼 정도의 골머리를 가졌다고는 도저히 생각이 들지 않는다. 녀석은 분명히 방구석의 어딘가에 교묘하게 붙어 앉은 채로 입맛을 쫙쫙 다셔가며 먹이감(?)의 동태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별 수 없이 다시 전등의 여닫개를 내리고는 조용히 침대위에 누운 채로 실팍한 여름 이불을 턱 밑까지 바짝 치켜 올린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서 양 어깨 참에다 곱다라니 위치시킨다.

침묵과 적막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있다. 그렇게 얼마의 촌각이 더 흘러갔을까. 마침내 다시 희미하게 감지되어 오는 소리. 먹빛의 저 어둠을 뚫고 은밀히 자신의 먹이 감 쪽으로 접근 해 오고 있는 날개 짓 소리. 그래 어서 오너라.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절대로 너를 곱다라니 되돌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면 번개보다도 빠르게, 총알보다도 더 신속히 손바닥 신공을 발휘 해 주어야 할 터.

위 이이잉! 파바박!

이렇게 또 오늘밤의 첫 결투가 끝이 났다. 매번 그렇듯 결투 그 자체는 결코 시간이 길게 이어지는 법이 없다. 마치, 황야에 선 총잡이들의 결투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결판이 나고 만다. 문제는 녀석의 생사 여부다. 아, 물론 전등의 여닫개를 다시 켜고 곧바로 확인을 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방정맞은 처신부터가 애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마치, 노회한 승부사처럼 되어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 여러모로 모양새도 좋고, 번거로움 역시 덜어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녀석이 아직 명줄이 붙어 있다고 할지언정, 꽤나 놀랐다거나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리라는 그 점만큼은 아주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 또 계속 흐르고 있다. 녀석의 날개 짓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혹시나 오늘의 첫 결투에서 완전하게 명줄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먹이 감의 번개 같은 손속에 하릴없이 압살을 당한 채로 그 먹이 감의 베갯머리 맡에다 제 처참한 몰골을 하릴없이 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난번의 그 녀석이 또 떠올라온다. 무려 일주일 여를 질기도록 버텨오다가 결국 내 베개 머리맡에다 압살당한 제 몸뚱이를 고즈넉하게 뉘어버리고 만 녀석. 비록, 적이긴 했지만, 그 장렬한 죽음을 기려준다는 의미로 베고니아 화분 속 흙 안에다가 고이 장사까지 지내주었다.

그나저나 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힘이 나와 매번 그런 놀라운 투쟁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먹이공급원의 철저한 방어 기제 작동으로 인하여 수일동안이나 피 한 방울 빨아먹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그런 전투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물론, 욕실이나 주방 등에서 수분을 피 대신으로 섭취 해 가며 힘겹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수분 섭취만으로도 그렇게 장시간동안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 같으면 단 하루만 굶어도 맥이 딱 풀려서 걸음조차도 제대로 옮겨놓지 못할 텐데 말이다.

슬슬 또 졸음이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녀석의 날개 짓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전등을 환히 밝히고서 녀석의 동정을 직접 확인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슬슬 피어오른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그런 수고를 굳이 자처할 필요는 없다. 녀석이 아직도 용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면 당연히 다시 공격을 가해 올 것이고, 또 기왕에 명줄이 달아나 버린 상태라고 한다면 그대로 종료상황이 되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등을 훤히 밝히고서 베개 머리맡 내지는 침대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은 이렇게 늘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가로막곤 하는 것이다.

좀 체로 녀석의 주검을 발견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녀석은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내가 모르는 다른 장소에서 진작 영면에 들어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긴 하지만 말이다.

기왕에 달아나 버린 잠을 핑계 하고서 안방의 불을 소등 한 채, 거실 쪽으로 슬슬 걸음을 옮겨 가본다. 그리고는 거실 천장에 매달린 등들을 있는 대로 죄다 밝힌다. 그리고서는 주류 진열장 속의 홍주 한 병을 꺼내 들고서 병의 마개를 급히 열고는 목 넘이로 슬슬 흘려 넣기 시작한다. 칼끝과도 같은 주정 40도의 독기가 내장 속을 찌르르 하니 비틀고 든다.

거실 천정과 사방의 벽, 전등의 갓, 바보상자와 전축 언저리, 그리고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나무 받침대, 심지어 불빛이 채 닿지 않는 사각지대의 저 건너까지도 불콰해진 시선을 계속 내 쏘고 있다. 하지만 녀석의 흔적은 종내 발견할 수가 없다. 어둠을 선호하는 녀석이니만큼 어쩌면 안방의 음침한 어느 구석인가에 그대로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안에 단 하나 존재하는 먹이 공급원이 하시라도 빨리 수면에 들기만을 학수고대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네 바람대로 고분고분하게 응해 줄 내가 아니지.

이런 것은 또 어떨까. 이참에 녀석의 민첩한 동작을 둔감 시켜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 해 본다고 하는 생각. 주정 기운을 계속 흡수하다 보면, 먹이감의 혈액 속에 그 기운이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 설사 녀석이 먹이감의 피를 맛좋게 빨아 먹는다 해도, 녀석 역시 동시에 만취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상상. 바로 그 순간을 이용하여 녀석을 손쉽게 때려잡을 수 있다면. 흐흐흐! 우스운 생각이긴 하지만, 가능성 자체는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다. 실험 해 본 사람도 없지 않은가.

중력파의 파동에 휩싸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실 천장이 마구 일렁거리고 있다. 사방의 벽이 오방색 팽이 모양으로 줄달음쳐 맴돌고 있다. 손아귀 속 술병의 내용물은 진작 바닥이 다 드러나 버린 지 오래고. 주정 기운 그득한 몸뚱이가 거실 한 가운데 선 채로 끝도 없이 흐느적거리고 있다.

눈꺼풀이 천 근 만 근 바윗덩이와도 같은 무게감으로 연신 지구의 중심 쪽을 향하여 쳐져 내린다. 그 와중에도 희미하게 귓가로 감지되어 오는 소리. 바로 녀석의 날개 짓 소리다. 녀석은 그렇게 여보란 듯 당당히 목숨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을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래, 어서 이리로 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많이 기다리고 있었지. 어서 이리로 와서 맛좋은 피를 실컷 한번 빨아 보지 않으련? 배가 터져 나가도록 말이야. 흐흐흐! 그러면 마치, 기분이 날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좋아질 거야. 그렇게 세상사 모든 걱정과 근심일랑은 말끔하게 지워 버리려무나. 

이 것 보게, 아 어서 오라니까 왜 오지 않는 거야. 자네답지 않게 무얼 그리 망설이고 있나. 혹시, 눈치라도 채 버렸나 자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자네처럼 영악스러운 녀석이 이토록 질 낮은 꼼수 따위를 진작에 파악 못했을 리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또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이러면 되겠군. 옷을 죄다 훌훌 벗어부치고서 긴 안락의자 위에다 네 활개를 활짝 펼쳐 놓는 거야. 마치 날 잡아 잡수 하는 것처럼 말이지. 흐흐흐! 그렇게까지 해 주었는데도 자네가 더 이상의 인내력을 발휘 할 수 있을까. 태초로부터 이어져 온 생명체로서의 근본적 욕구를 자네라고 해서 끝까지 거역 할 수는 없을 테지.

그런데 정작 이 놈의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팔 다리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짐승의 털가죽을 벗겨내듯 몸뚱이로부터 천 가죽이란 천 가죽은 모조리 분리 해 낸 뒤, 녀석의 코앞에다 어서 잡수 하고 바짝 들이 대 주어야만 할 터인데. 그렇게 해 주어야만 녀석이 환장이라도 한 듯 달려들어 주정기운 진득하니 뒤섞인 맛 좋은 이 핏물을 게걸스럽게 쭉쭉 빨아 먹을 수가 있을 터인데. 아아, 미치겠구나.

눈가죽이 쇠구슬이라도 매달아 놓은 양 자꾸만 아래로 처져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잠귀신의 유혹에 굴복 해 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온다. 아아! 더 이상은 녀석의 공세를 버텨 낼 자신이 없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옷을 모두 훌훌 벗어부치고 잠들어야 하는데. 아아!

거대한 기계 조립품 같은 모기 형상을 닮은 녀석이 투명한 날개를 느릿느릿 펄렁거리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못한 붉으죽죽한 내 몸뚱이를 마구 짓눌러온다. 톱날 같이 날카로운 녀석의 발끝들로부터 여하히 벗어나 보려 필사적으로 발버둥질을 쳐 보지만, 애당초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몸뚱이의 미약한 꿈틀거림에 보조라도 맞추어 오듯 녀석의 날카로운 발끝들은 점점 더 억세게 내 살 속 깊숙이 파고만 든다.

저승사자와도 같은 형용으로 무섭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면상을 향해 있는 힘껏 악머구리를 뱉어 보지만, 그저 미약한 외침이 되어 입 안으로만 맴돌 뿐이다. 마침내, 녀석의 주둥이에 달린 길쭉한 대롱 같은 그것이 서서히 내 모가지 쪽을 향해서 하강을 해 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공포의 눈길로 뚫어져라 쏘아보다 못해 다시 한 번 더 있는 힘껏 버둥질을 쳐 보고 고함 소리까지 내질러본다. 하지만, 그저 거미줄에 걸린 나약한 벌레의 미약한 몸부림 밖에는 되지 못한다.

마침내, 길쭉한 대롱을 닮은 그것이 내 목살의 표면에 닿는 것과 동시에 깊숙이 살 속을 헤집고 든다. 그런대 정작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왜 이런 것일까.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대롱 속으로 내 목살 속의 시뻘건 핏물이 하늘 쪽을 향하여 힘차게 빨려 올라가고 있는 기괴한 저 모습이라니. 그 모양이 마치, 설치미술가의 해괴한 설치미술작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시 한번 사력을 다 해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보고, 소리도 내질러 본다. 하지만 역시 아무 소용도 없다. 시나브로 눈앞이 가물거려오고 의식조차 점점 몽롱해진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서 편히 영면에 들고 싶은 생각만 들어올 뿐이다.

마침내, 푸른 연기 같은 그 무엇이 내 몸 밖으로 쑤욱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래, 바로 저것이 영혼이라는 것일 테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지금 식은 방귀를 뀐  것이 확실하다면, 의식은 왜 여전히 이곳에 그대로 남겨져 있단 말인가. 몸뚱이가 명줄을 놓아 버린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의 이 의식 역시도 응당 저 영혼과 함께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그나저나 이 녀석은 또 어디로 간 것일까. 그토록 찰거머리처럼 짓눌러 붙던 녀석이 느닷없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다니. 그리고 물밀 듯 밀려오는 허탈한 이 감정이라니. 아니, 아쉽기까지 한 이 느낌이라니. 그토록 내 몸뚱이를 괴롭히던 녀석인데 이건 또 어찌 된 변덕이란 말인가. 앓던 이도 빠지면 서운하다는 말이 정말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란 말인가. 기가 찰 일이군. 어찌됐든, 빨리 기운부터 차려놓고 봐야 한다. 녀석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또 왜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제발 움직여다오. 아아, 미칠 것 같다.

끊이지 않고 휴대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려온다. 그리고 천장 벽지의 물결무늬 역시 흐릿하게 동공 안으로 얼비치어 든다. 늘 보아온 익숙한 바로 그 풍경이다.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간신히 추스르고서 여전히 질기게 울어대는 탁자위의 휴대전화기 쪽으로 느릿하게 손을 뻗치어 본다. 액정화면 속에서 양보경의 화사한 얼굴이 내게 고혹적인 미소를 지이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이럴 땐 무슨 대답을 들려줘야 할까. 이제 막 꿈속 모기 괴물과의 사투에서 힘겹게 벗어난 참이라고 해 주어야 할까. 그래, 일단은 그게 좋을 것 같다. 사실, 틀린 이야기도 아니니.

“응, 모기 괴물하고 다투다가.”

“뭐? 모기 괴물? 풋!”

  내 생각에도 조금은 우습고 유치 해 보이기는 한다.

“왜 웃니? 이거 진짜야.”

“뭐가 진짜? 오빠, 오빠 나이가 지금 몇이야? 그러지 말고 오빠, 우리 어디 놀러나 나가자. 놀이공원 어때? 오락 따위는 정말 오빠 나이에 안 어울린단 말이야.”

“놀이공원은 안 유치하고?”

“쿡! 듣고 보니 그러네. 아무튼, 우리 내일 만나. 굳이 놀이공원이 아니더라도 아무데나 놀기 좋은데 가서 기분 전환 좀 하잔 말이야.”

“으이그 알았어요 우리 착한 보경 어린이. 그런데 보경이 너 진짜로 그 모기 괴물이 뭔지 궁금하지가 않은 거니?”

“왜 자꾸 그래! 이젠 막 짜증까지 나려고 한다. 그래, 그 모기 괴물이란 것이 대체 뭔데? 요즘 새로 나온 전자오락 주인공이라도 되는 거야?”

“전자오락 주인공이 아니고, 꿈속에서 만난 괴물이야. 그 녀석이 글쎄 내 모가지에다 대롱을 푹 박아 넣고는 피를 쭉쭉쭉 마구마구 빨아 먹더라니깐.”

“깔깔깔! 그러니까 전자오락 주인공이 아니고 꿈속에서 만난 괴물이었다는 거네. 어머, 그거 정말 재미있었겠다.”

“야, 위로는 못 해 줄 망정.”

“쿡쿡! 미안! 아무튼 우리 내일 만나 오빠. 그럼 쿨쿨 잘 자고 이만 안녕!”

“그래 보경이 너도 고운 꿈 잘 꾸고 꿈속에서 꼭 그 모기 괴물과도 상봉하길 바래. 큭큭큭!”

“으이그, 누가 심술쟁이 아니랄까봐.”

양보경과의 오글거리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또 초인종 소리가 크게 울려온다. 아마도 지난 달 관리비와 수도요금을 걷으러 온 아랫집 총무 아주머니일 것이다. 하지만, 벽 거울 속의 내 모가지에서 좀 체로 시선을 거두어내질 못하고 있다. 가슴 속의 서늘한 이 느낌 역시 좀 체 들어낼 수가 없다. 하기야 생각 여부에 따라서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가볍게 치부 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 언저리에 새로 생긴 붉으죽죽한 저 자국이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놀이기구에 앉아서까지도 종내 굳어진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내게 기어코 양보경의 골부리가 날아든다.

“뭐야 지금? 나 하고 같이 있는 게 싫어서 이래?”

“응? 아니.”

“그럼 뭔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무얼?”

“계속 심각한 얼굴이잖아. 정말 이상해. 어젯밤엔 애들처럼 모기 괴물 타령이더니, 오늘은 또 넋이라도 다 나간 사람처럼 이러고 있고.”

설사 그렇다 해도 이 여자에게 모가지 이야기를 들려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분명히 지금 무슨 전설의 고향 찍고 있느냐며 마구 놀려댈게 분명할 테고.

“사실은 말이야. 며칠 전, 회사 계장하고 좀 다툰 일이 있어서 그래. 그게 자꾸만 마음에 걸려서 그러나 보다.”

“저번에도 다퉜다던 그 사람? 그 사람 또 왜 그러는 건데? 아휴! 속상 해! 그래도 오빠가 좀 참지 그랬어.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직장상사잖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마 오빠. 요즘 취직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더군다나 그런 직장은 더욱 더 말이야. 알았지?”

얘가 벌써부터 마누라 행세네.

“알았어. 마나님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앞으로는 꼭 그래야겠다.”

“피! 그건 아니다 뭐. 화나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서 오빠 할 일만 열심히 성실하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승진도 하게 될 거고, 그 때가 되면 잔소리 들을 일도 없게 되겠지.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꼭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너를 위해서?”

“그래, 어차피 우린 결혼도 해야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가장한테 직장이 없어서는 안 될 거 아니야. 가장이 직장이 있어야 마누라와 예쁜 아가들도 굶지 않고 목숨을 이어 갈 수 있을 테니.”

헉! 음, 그러나 말이야 보경아, 우리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없구나. 물론, 우리가 기왕에 몸을 섞은 사이니 만큼 너로서야 응당 그런 생각을 먹는 것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요즘 세상에 살 좀 몇 번 섞었다고 해서 꼭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잖니. 이런 내가 정말 쳐 죽일 놈일까. 설사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구나 보경아.

“우리 아가라...... 하하하! 어째 네 잔소리 수준이 그 사람보다도 한 단계 더 위인 것 같다.”

“농담 아니야 오빠. 제발 나를 위해서 아니, 우리를 위해서 그래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그만하자.”

집까지 따라오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양보경을 간신히 그녀의 집 앞에서 따돌려 놓고는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진행 해 가다가 저만치 길가에 보이는 대형 잡화점 앞에다 잠시 차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던 중 한 쪽 진열장 안에 놓여있는 분사식 살충제 쪽에다 오래도록 시선을 고정 시켜 본다.

하지만, 제아무리 귀찮은 존재라 하더라도 비겁한 술수까지 동원해 가며 결투(?)에 임하고 싶지는 않다. 정정당당하게 녀석과의 대결에 임해야 한다. 사실, 살충제가 아니더라도 녀석의 남은 수명은 불과 이 삼일에 불과할 것이다. 모가지의 이 붉은 자욱 역시 그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것이다. 먹이 공급원이 잠 든 것을 확인 한 녀석이 기회는 이때다 싶어 주저 없이 대롱을 꽂아 넣었을 테고, 그러자 순간적으로 이물질의 침투를 감지해 낸 머리통 속의 뇌 세포들이 즉각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해서 악몽이라는 형태로 경고를 발해 준 정황이리라.

계속 차를 운전 해 가던 중에 집 근처에 새로 생긴 편의점 앞에다 다시 또 차를 멈춰 세운다. 곱상하게 생긴 여종업원이 환한 미소로 손님을 반겨준다. 음료수 한 병과 과자 몇 봉지를 가져 다 계산대 위에 올려놓을 때 까지도, 계산을 다 마치고서 물건들을 수지 봉지에 담아 다시 내게 건네 줄 때 까지도 아가씨의 환한 미소는 좀 체 사라질 줄을 모르고 있다. 과자 한 봉지를 꺼내들어 그런 그녀의 앞으로 슬쩍 밀어 줘 본다. 여종업원의 당황한 눈길이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까지도 뜨겁게 매달려온다.

거실 탁자 위에다 구입 해 온 것들을 아무렇게나 부어놓고는 다시 또 천천히 실내의 이 곳 저 곳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천장, 벽, 전등의 갓, 바보상자와 그 거치대, 전축과 그 소리통 등등. 역시 녀석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가 않는다. 녀석은 지금 분명히 욕실이나 안방 중의 음침한 어느 한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어젯밤엔 주정 기운 진득하게 뒤섞인 먹이 감의 핏물을 맛좋게 빨아 드셨을 테니, 양기 보충은 물론,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분 좋은 포만감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독한 주정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진작 식은 방귀를 놓아 버렸을지도 모르고. 여하튼 잠자리에 들고나면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겠지.

바삭거리는 과자의 맛을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다시 또 편의점 여종업원의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던 얼굴을 만족한 웃음으로 떠 올려 본다. 바로 그 순간, 거실이라도 폭파 시킬 듯한 엄청난 초인종 소리에 덜컥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다.

“누구요?”

“나야 오빠, 얼른 문 열어!”

아니 쟤가 어떻게 또 여기를?

“아니 너?”

“택시 타고 쫓아 온 거니까 그렇게 놀랄 거 없어.”

오도카니 문 앞에 서서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양보경. 그 모습을 도저히 미워  할래야 미워 할 수가 없다.

“부모님은 어떡하고?”

“내가 어린앤가 뭐. 그나저나 계속 이렇게 그냥 세워 둘 거야?”

“어, 그래 일단 들어 와라.”

양보경의 미끈한 나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욕실의 힘찬 물줄기 소리. 하지만, 이 와중에도 편의점의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타락? 분방함? 파렴치? 비 양심? 몰염치? 글쎄. 그런 단어들로 간단하게 규정 지어버릴 수만은 없는 수컷들의 근본적, 원초적 본능이라고 애써 자위를 해 볼까.

안락의자 속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로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양보경의 미끈한 나신. 흡사 그리스 미의 여신의 재림이라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 듯싶다. 물기가 덜 마른 채로 투덕투덕 흩어져 내린 저 머리카락 역시 그 치명적인 매력을 한껏 더 배가시킨다.

“보경아!”

“응?”

사파이어 같은 눈길로 곧바로 내게다 시선을 고정시켜 오는 그리스 미의 여신. 발간 포도주 물이 살짝 적셔진 고른 상아 빛 치열들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반짝 반짝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너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는 그럼 나를 사랑 하지 않기라도 한다는 거야?”

“나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야.”

“진지하게? 흠! 그렇다면 그래. 나 오빠 정말로 사랑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오빠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 거고. 우린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야. 오빤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래, 나도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결혼 문제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비록 네가 이렇게 깨물어 먹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기는 해도.

“너 정말 나 하고 결혼 하고 싶은 거야?”

“왜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해. 그리고 오빠는 왜 대답을 안 해주는 거야?”

“그래. 오빠도 너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싶고. 하지만......”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좀 더 있다가. 조금만 더 있다가.”

“난 오빠가 왜 그러는지 다 알지. 사실 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곤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총각 시절을 만끽하고 싶다는 거 그거잖아.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아가씨 시절을 만끽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결혼을 서두는 거니?”

“나도 굳이 서두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자꾸 이렇게 미루고 있다가는 다른 여자한테 오빠를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그래. 아까만 해도 그래. 얼굴 좀 반반하게 생겼다고 어쩌면 그럴 수 있냐?”

“뭐?”

“놀라긴 뭘 그렇게 놀래? 편의점 그 아가씨 말이야.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알았어? 앞으로 또 그러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결혼을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는 뱃속의 우리 아가 때문이야.”

“뭐?”

품안에 꼭 안긴 채로 잠들어 있는 양보경의 얼굴을 충격어린 눈길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좀 체 이 충격을 거두어 버릴 수가 없다. 애 아버지라니. 벌써 내가 애 아버지라니.

그나저나 이 자식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먹이공급원이 둘, 아니 셋(?)으로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동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네. 휴대전화기 속 아이의 시보 목소리가 밤 열 두 시가 되었음을 알려온다.

아, 드디어 소리가 감지되어 온다. 저 어두운 허공중으로부터 미약하게 고막을 쳐 오고 있는 소리. 바로 녀석의 날개 짓 소리. 그래, 어서 오너라. 널 많이도 기다리고 있었지. 잠들어 있는 양보경의 나신을 조용히 한쪽으로 밀쳐놓고는 두 손바닥을 곧게 펼치고서 은밀히 머리통 근처로 이동시킨다. 우수는 내 오른 쪽 귀 옆으로, 좌수는 보경의 오른 쪽 귀 옆으로. 그에 더해 우리 둘의 목 아래쪽까지 완벽하게 차렵이불로 감싸 버린다. 결국, 녀석의 공격이 가능한 곳은 모가지 위 쪽 밖에는 없게 되었다. 순간, 잠들어 있던 보경의 입에서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아, 더워......”

“더워?”

급기야 감싸 준 이불의 귀퉁이 한쪽을 축구선수의 발길질처럼 거세게 걷어 차 내 버리고 마는 그녀. 안된다. 이런 짓이야말로 먹이공급원이 스스로 알아서 날 잡아 잡수 하는 꼴이 될 수밖에는 없다. 그리스 미의 여신의 몸뚱이를 대책 없이 녀석에게 헌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광석화처럼 벗어나 있던 이불의 귀퉁이 한쪽을 다시 끌어 올려다 덮어준다.

“아우 덥다니까 왜이래!”

그렇게 속절없이 또다시 걷어 차여지고 마는 이불.

“보경아, 이불 덮고 자야지. 안 그러면 배탈 나.”

그렇게 달래 보지만,

“아이, 배탈 안나.”

그러면서 무쪽처럼 허연 허벅지를 내 배꼽위에다 척 걸쳐놓기까지 하는 그리스 미의 여신.

“이것아. 배탈도 배탈이지만 녀석이 지금 네 몸뚱이를 노리고 있단 말이야.”

“응? 노려? 뭐가?”

“모기 말이야. 녀석이 드디어 활동을 시작했다니까.”

“풋!”

“왜 웃니?”

“그럼 안 웃겨? 그깟 모기 한 마리 땜에 이러고 있는 것이? 오빠, 누가 그러는데 모기한테 헌혈 한 번 해 주는 것도 그리 나쁜 게 아니라더라. 오히려 면역력이 더 좋아져서 몸에 이롭다고 하던 데 뭘.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일부러 더 물려보고 싶은 걸. 덮으려면 오빠 혼자서나 덮고 자. 나는 헌혈 좀 해 가며 잘 테니까.”

그렇게 잠이 다 달아난 목소리로 일장 연설까지 해 대는 양보경.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누가 그런 소리를 했겠어. 바로 위대하고도 영명하신 이 양보경 박사님이시지. 깔깔깔!”

“양보경!”

시간이 그렇게 또 고요하게 흘러간다. 또 한 차례의 강렬한 정사덕분이었을까. 덕분에 파김치가 다 된 채로 곤하게 잠에 떨어져 있는 그리스 미의 여신. 이제는 내 눈꺼풀 역시도 천근만근의 추가 매달린 거 마냥 자꾸만 아래로 쳐져 내리려 한다. 물론, 녀석의 날개 짓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녀석이 지금 저 어두운 천장의 한 구석에서 자신의 먹이 감들을 계속 눈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모기 로봇의 형상을 한 녀석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 몸뚱이를 마구 짓이겨온다. 발버둥질을 쳐 보고 비명까지도 내 질러 보지만, 당체 몸을 꼼짝 할 수가 없다. 시나브로 몸뚱이의 힘이 계속 빠져나간다. 조급함마저 들어온다. 그런데도 그리스 미의 여신은 보이지 않는다. 보경아, 어디에 있니? 어서 와서 오빠 좀 구해 줘. 그런 간절한 바람도 아랑 곳 없이 결국 녀석의 뾰족한 주둥이가 내 모가지 쪽을 향하여 서서히 하강을 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목살 깊숙이 푸욱 헤집고 드는 느낌. 아아악!

흐릿하게 열린 시선 사이로 물고기의 뱃바닥처럼 허연 여자의 나신이 점점 뚜렷하게 확대되어 온다. 그리스 미의 여신이 꽤나 재미있다는 표정을 한 채로 젊은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젠장, 또 그 꿈이네!”

“도대체 무슨 꿈인데 그래. 무슨 꿈을 그렇게 요란하게 꾸는 거야?”

“......!”

“게다가 식은땀까지 흘리고. 하긴, 나도 신기하긴 하더라. 도망도 안 치고 질기게 그렇게 사람 몸에 붙어 있는 녀석은 처음이라니까.”

“.......”

“그게 막 손을 막 일렁거려도 도망도 안 치는 거 있지? 글쎄 그게 오빠 목에 찰싹 들러붙어 같고는.”

“목?”

“그래. 그래 같고는 도망도 안치지 뭐야.”

“모 모기 말이니? 그, 그래서 잡았니?”

“못 잡았어. 잡으려고 하니까 그냥 휭 하고 날아가 버렸지 뭐야. 그나저나 오빠 모기약 어디 있어?”

“모기약? 모기약은 왜?”

“왜는 왜야. 잡아야지.”

“그런 거 없어.”

“모기약이 없어? 으이그, 모기약도 없냐. 미리 좀 사다 놓지.”

그렇게 또 언제 또 잠이 들었던 것일까. 연신 귓속을 파고드는 그리스 미의 여신의 보채는 소리에 잘 열리지 않는 눈을 억지로 밀어 올린다.

“오빠, 일어나 봐.”

“너 안 자고 뭐해?”

“일어났어. 근데 오빠. 이것 좀 한 번 봐봐.”

“뭔데?”

양보경의 시선을 따라서 무거운 머리통을 침대 아래쪽으로 천천히 늘어 뜨려본다. 터져나가도록 배가 통통해진 모기 녀석 하나가 방바닥 위에다 자신의 몸뚱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고서는 허공중을 향하여 열심히 발장구질을 치고 있는 모습이 서서히 눈 안에 잡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15.12.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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