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창장편소설

[장편소설]잎새의떨림36

허세창 2025. 9. 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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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이름 모를 소녀(小女)

 

자연의 놀라운 기적인가.

만물조화의 기막힌 묘술인가.

한 순간, 너의 모습에 눈멀고,

두 순간, 너의 모습에 할 말 조차 잊고,

세 순간, 너의 모습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고통으로 점철되는 시간들,

그리고......

한 해, 두 해, 석 삼년, 쓰린 기억으로 점철되는 시간들.

아, 성도 이름도 모르는 기억속의 소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두 손 모아 이렇게 간절히 하늘에 간구하는 밤.

창밖으론 여전히 가을 찬바람 몰아치는데.

창밖으론 여전히 가을 낙엽 어지러이 흩어지는데.

 

(어느 고삐리 소년의 사춘기 가을 일기 중)

 

오후 세시에 세석평전 야영장에 천막을 쳤다. 내일의 천왕봉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장터목의 산희 샘 근처에 천막을 쳐야 하지만, 나로서는 여기서 출발을 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니, 구태여 복잡한 산희 샘 근처까지도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천막을 쳐 놓고 선비 샘에서 채워온 수통의 물로 커피를 끓여 마시다 보니, 저녁밥을 지어 먹을 물이 좀 모자라게 되었다. 그 이유로 다시 천막을 걷어 꾸린 채, 대성 골과 삼신 봉 쪽으로 갈라지는 곳 못미처에 있는 음양수 샘까지 다녀와야 했다. 쌀을 씻고 수통에도 물을 가득 채워 온 것이다. 혼자서 하는 산행의 단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어디를 다녀오려면, 꼭 행장물건들을 다시 꾸려서 짊어지고 갔다가 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행이 있으면, 잠시 지킴이를 시켜놓고서 다녀오면 될 일인데 말이다. 그런 문제 때문에라도 더 더욱 희정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승주나 주미, 희 대신으로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지리산 깊은 계곡 속에서의 방아질 느낌은 또 어떨까? 주미와의 그 짓거리 말이여. 꼴깍! 딱! 파! 화상 정신 차리고! 알았어 짜샤!

그런데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겨? 시간상으로는 벌써 도착 해 있을 때인 디? 혹시, 그냥 지나쳐 간 거 아녀? 그렇지는 않을 겨. 설사,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니 께. 그 자식들은 지금 산행이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나를 노리고서 온 놈들이니 께. 그나저나 녀석들이 노리는 바가 정확히 뭘까? 복수를 위해 나를 죽여 암매장? 아닐 겨. 그건 너무 극단적인 생각일 겨, 거머리처럼 가는 곳곳마다 달라붙어서 아예 학을 떼게 해 주고 말겠다는 수작? 그럴 겨.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여? 그런 생각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지들 스스로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이 될 건 디 말이여. 하지만 말이여.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녀석들은 이제부터 내 밑으로 들어와서 박박 기어야 할 운명인디 말이여. 그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나마 재롱들 많이 떨어보길 바려. 안 말려. 그렇다면, 녀석들이 재수 없는 고삐리 자식 혼이라도 완전히 빼 놓고 가겠다며 확 덥치고 들 때는 언제쯤일까? 그렇지. 신 새벽이 가장 유력하겄지. 고삐리 녀석이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을 바로 그 시간 말이여. 녀석들은 틀림없이 그 시간대가 가장 취약한 때라고 생각할 게 뻔 혀. 저 재수없는 고삐리 자식이 눈 떠 있는 동안은 감히 혼내주겠다고 덤벼들 엄두를 낼 수 없으니께 말이여.

그런 저런 생각들 속에서 휴대용 소리통으로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춰 보았다. 때마침, 오늘 밤 사이로 남부 산간 지방 등에 많은 눈이 내려올 것이라는 보도내용이 지직 거리며 흘러나온다. 눈 좋지. 눈 가득한 겨울 산을 산행하는 기분을 세상 사람들이 알란가 몰라.

눈이 신나게 내리고 있다. 말 그대로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눈꽃송이를 펑펑 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시나브로 온 천지가 새하얀 순백의 세상으로 변해가리라. 아, 이 느낌 정말 좋아. 세상이 온통 하얘서 그런지 풍진 가득하던 내 마음마저 깨끗하게 정화가 되고 있는 느낌이여.

그리고 마침 내, 그런 눈 세상 속을 헤집고 허겁지겁 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 희정이 일행이었다. 아니 그런데 저게 무슨 일이래? 우리 희정이가 발을 절고 있는 거 아녀? 그리고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보고 있는 저 고운 얼굴 가득히 번들거리고 있는 눈물자국은 또 뭐고? 헉! 저 새끼가! 그랬다. 느닷없이 더벅머리 자식이 우리 희정이의 가녀린 몸뚱이에다 들입다 발길질까지 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저 새끼가 갑자기 돌았나?

아니, 우리 희정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런 만행을?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지금 당장 저 미친 자식들을 눈 밭 위에다 때려눕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절대적 당위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호색무인은 지금 녀석들을 때려눕히길 주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호색무인은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망설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녀석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학적 탐미주의의 유혹에 느닷없이 함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 깡패 녀석들의 느닷없는 발길질에 쓰러져 있는 눈밭위의 저 소녀를 보라. 사랑스럽다.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깨물어 먹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딱! 파! 화상, 드디어 너도 미쳤군! 뭐? 가학적 탐미주의? 에라 이 화상아! 가학적 탐미주의고 나발이고, 언능 저 새끼들을 때려눕히고 희정이를 구하지 못 혀? 화상, 너 자꾸 그러면 죄 받는다. 알어 짜샤! 나도 지금 당장 저 새끼들을 때려 눕혀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참아보자 우리. 나 정말 미칠 거 같다. 눈밭에 쓰러진 모습으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저 미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란 말이여. 이건 정말 예술 작품이 따로 없다니께. ‘수난 받는 눈밭위의 미소녀’ 라는 제목을 붙여보면 어떨까? 아, 사진기가 없는 것이 한이구나. 얼른 이 장면을 사진기에 박아서 영원히 예술 작품으로 보존해야 하는데. 딱! 파! 화상! 정신 차려엇! 아니 짜샤! 조금만 기다려 달라니까. 나 아주 조금만이라도 저 아름다운 모습을 더 감상하고 싶다니까. 딱! 딱! 딱! 파! 파! 파! 

 

<글쓴이의 말>

하루속히 대법원 확정판결 범죄자이며 반란수괴인 그 자가 정당하게 법의 심판을 받고, 다시 정상적인 나라로 복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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