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9. 10:02ㆍ창작문학관
33
범골 마을에 희한하고도 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누구 입에서 먼저 흘러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판석의 처인 정님이 엄마가 윗마을에 사는 늙은 노총각과 더불어 갯가 덤불 숲 안에서 같이 똥을 쌌다는 해괴망측한 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벌써, 동네 꼬마 녀석들뿐만 아니라 갯가 빨래터에 모여 앉아있는 아낙들에게까지도 아주 좋은 입방아거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꼬마 녀석들에게야 다 큰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이 함께 엉덩이를 맞대고 똥을 쌌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저 우스운 이야기 거리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정작 문제는 빨래터 아낙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입 방아질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낙들의 생각은 역시, 아이들처럼 그리 단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그러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사실을 당사자인 구용섭과 오춘화 역시도 재빠르게 간파 해 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동네 저수지의 칠흑 같은 갈대 숲 그늘 아래서 위험을 무릅쓴 채, 다시 조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십일 월 중순의 서늘한 물가 바람이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몸뚱이를 휘익 감싸 돌고는, 다시 또 사르르 갈대 잎들을 어루만지면서 흩어지고 있었다. 용섭이 춘화의 보드라운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다가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판석이는 지금 어뗘?”
“업어 가도 모를 거 에요. 고주망태로 마셔댔으니.”
“잘 됐어.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겨.”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그 여편네가 다 불어 버렸나 봐요.”
“그 년이 불었는지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고, 아무튼 이젠 더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어. 나는 오늘 밤 중으로 이 동네를 뜰 작정이여. 당신은 어쩔 껴? 함께 갈 테여?”
춘화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도망을 가 보자고 해도 정님이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 어린 것을 두고 어떻게?”
“시간 없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혀. 어영부영 하다간 당신과 나, 내일이라도 당장 판석이 손에 맞아 죽을 겨.”
“하지만, 정님이가......”
춘화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런 답답한 사람. 지금 정님이가 문제여? 이러다 우리 둘 다 맞아 죽는대도? 판석이 성질 몰라서 그려?”
“그럼 우리 어디 가서 뭘 먹고 살아요? 이렇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작정 도망을 가 버리고 나면 그 땐 우리는?”
그러면서도 춘화는 애당초 용섭과 몸을 섞게 된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곳에 가서도 용섭의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을 미리 확인 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어. 내 진작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다 해 놓았으니께. 당신 굶겨 죽일 일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갈 거여 말 거여? 빨리 결정 혀. 그리고 이렇게 농사꾼의 아내로 늙어가는 거 억울하지도 않어? 당신 같은 여자는 이런 시골이 당췌 어울리지가 않어. 그러니, 이참에 다른 도회지로 떠 버리자고. 거기 가서 예쁜 아이도 낳고 여 보란 듯이 둘이서 한번 살아보는 겨. 춘화, 우리 제발 그러자. 나 당신 없이는 정말 힘들 겨.”
용섭의 그 말에 춘화는 마침내 최종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씩 용섭과 함께 다른 먼 곳으로 도망을 가 버리는 상상을 해 본적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늘 정님이가 걸리는 것이었고, 또 요즘 들어서는 언니네 집 흉사까지도 겹쳐서 잠시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말없이 눈물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춘화를 보고, 용섭은 입가로 미소를 머금었다.
“잘 생각했어.”
용섭은 춘화의 사랑스러운 몸뚱이를 으스러질 듯 꼭 껴안아 주었다.
“나, 지금 어려운 결심 한 거 에요.”
용섭의 품 안에 안긴 채, 춘화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하염없는 눈물만 흘려내고 있었다.
추판석은 요즘 들어서 술에 만취되는 날이 잦아지고 있었다. 농번기가 지난 탓도 있었지만, 처형 가족의 최근 불행에 대하여서도 크게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판석은 요 며칠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는 자신의 집안과 관련 된 그 우세스러운 소문조차 미처 감지를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아내는 물론이고, 정님이까지 꼭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술에 떡이 되어 잠들어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내가 몰래 가방을 꾸려가지고, 야반도주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사정은 정님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꿈나라 여행에만 빠져 있는 것이다. 춘화는 그런 딸의 얼굴을 묵묵히 한참동안을 더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엄마는 나쁜 사람이여. 그러니, 너도 더 이상은 엄마를 찾지 말어. 알았지? 부디,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렴.
그렇게 춘화와 용섭이 야반도주를 결행 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범골의 가을밤은 무심히 깊어만 갈 뿐이었다.
십이월로 접어들면서 찬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마저 냉한 상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동절기 날씨는 아니라고 해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한껏 움츠러들게 할 만큼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슬슬 날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 역시 많이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그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산동네 판자촌 사람들과 집도 절도 없이 유랑 걸식을 하는 뜨내기들, 그리고 하천 다리 밑에 모여 사는 동냥치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국가 경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민의 많은 다수가 50년대나 60년대의 궁핍상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빈부 격차가 계속 커지다보니, 돈이 많은 부자들은 고급 먹거리나 입을거리 즐길거리를 찾아 이 곳 저곳으로 떠돌게 된 반면에, 단 돈 푼조차 아쉬운 일반 서민들로서는 그저 오늘 하루 일용할 끼니만을 걱정하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죽자 사자 박박 길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일한 삯으로 손에 받아 쥐는 돈이라고 해 봐야 부유층 사람들 하루 저녁 술값만큼도 되지 않으니, 이건 정말 억장이 무너질 노릇인 것이다. 하기야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조차도 나날이 향상되어가는 국가경제 덕분으로 인하여 허구 헌 날 보리죽에 밀가루 수제비로 배를 곯는 일만큼만은 면하게 되었으니, 보릿고개 시절 세대 오 육십년 대 아이들 삶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천지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일가친척 하나 없는 사고무친의 아이들 신세였다. 하물며, 부모와 함께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버리고만 아이들은 더 문제였다. 처음부터 고아원 같은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왔다면, 그나마 배를 덜 곯았을 터인데,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이제 당장 삼시 세 때를 때울 일조차도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어린 것들이 무슨 수로 어디서 먹 거리를 구해 온단 말인가. 물론, 어느 정도 머리가 큰 고아 아이들의 경우에는 신문배달이나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라도 해서 국수거리라도 마련 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 사정은 김금철과 김금채 남매의 경우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비록, 금철이 신문 배달을 해서 어떻게 끼니를 이어갈 수는 있다손 쳐도, 학비 등을 비롯한 기타 제반 비용은 또 어떻게 조달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그런 답답한 문제 때문에 금철은 지금 금채하고 마주 앉아서 진지하게 그 해결책을 모색 해 보고 있는 것이다. 말이 모색인 것이지, 기실은 금철의 일방적인 제안 내지는 설득 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금채는 지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들 남매는 그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끼니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한 두 끼 국수나 라면으로 때우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살인자인 아버지를 잡기 위해 밤마다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서고 있던 형사 두 사람이 마지못한 듯 손에 쥐어 준 몇 푼의 동냥 돈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어.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떠야 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
금채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괴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좌우로 도리질만 해댈 뿐. 예의 그 고왔던 두 눈조차도 지금은 그저 해골 속처럼 쾡 하기만 하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서울로 가자. 그 곳으로 가서 살자. 그 곳에서 오빠가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무슨 일이든지 해서 너 먹여 살릴 테니까. 그런 염려는 말고. 너 혹시, 아직도 그 자식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그렇다면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해. 그 자식과는 이제 더 더욱 안 돼. 아버지 때문에라도 안 되는 거야. 걔도 이제 니 생각 따위는 다 지웠을 거야. 오히려 너를 증오하고 있을 걸? 물론, 우리 식구 모두를 다 말이지.”
“......”
그 소리를 듣고 또 눈물을 흘려내는 금채.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눈물을 흘려 왔지만, 그녀의 눈물샘은 여전히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잊어야 한다. 나도 혜경이를 완전히 잊기로 했으니까 너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해.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 남매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야.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자. 그런 사람은 아버지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니까. 잡혀서 무기징역을 언도받든, 사형을 언도받든, 더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어. 우리끼리 씩씩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속 편한 거야.”
“흐흐흑!”
어깨를 들썩이며 마구 흐느끼는 여동생. 그런 여동생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주는 친오빠.
“네 마음 잘 알아. 그래도 그렇게 하자.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 지금의 이런 아픔 역시 모두 지워지게 될 거야. 그 때는 너와 나 우리 모두 이미 담담한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그러니 우리 이제, 서울로 가서 이 악물고 열심히 살아보자. 너 그럴 수 있지? 오빠는 꼭 그렇게 하고 말겠어. 가자. 다시 한 번 더 부탁한다. 제발!”
그제야 금채는 눈물이 어린 시선으로 가만 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틀 후, 남매는 낡은 가방을 하나씩 손에 들고서 서울 행 비둘기호(1970~80년대에 운행되던 완행열차의 이름 -글쓴이 주)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을 끊임없이 감시 해 오던 잠복 형사들마저 용케 따돌리고서 결행한 일이었다. 하기는 요즘 들어 형사들의 발길조차 많이 뜸해져 있었으니, 그들의 눈을 속이는 일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집을 떠나오기가 힘들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금채 때문이었다. 금채가 어제 하루 온종일 동안에도 역시 좀 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몇 시간동안이나 정신 나간 사람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었다. 금철 역시 그런 여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오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어렵게 결심한 일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련한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아니 불쌍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또 살인자의 자식이란 굴레와 눈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지옥구덩이를 탈출해야만 했던 것이다.
남매가 그렇게 총총히 집을 버리고 떠나간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초겨울의 시린 바람이 산동네의 판자 집들을 향해서 제법 예리한 칼끝을 들이대고 있던 그 시각,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남매가 살고 있던 바로 그 판잣집의 뒤편으로부터 갑자기 실오라기 같은 파란 불꽃 하나가 팍 하고 피어올랐다. 그 순간 센 바람 한줄기가 훅 하고 불어와서는 그 연약한 불꽃을 그대로 주저앉혀 버릴 듯도 싶었으나, 용케도 그 불꽃은 다시 살아올라 남매가 살고 있던 집 뒤의 판자벽을 타고서 집 전체로 거침없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남아있던 해리 녀석이 멀찍이 뒤로 물러난 채, 괴수처럼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그 커다란 불덩이를 향해서 끊임없이 짖어대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바람의 힘을 입은 수많은 불꽃 조각들이 다른 판잣집 지붕 위로 불꽃놀이나 하는 것처럼 마구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건조한 날씨에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오면서 느닷없이 발생한 화재는 산동네 마을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몸이 성한 사람들이나 가족이 있는 병자, 불구자들은 불길을 피해서 재빨리 집 밖으로 피신 해 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길이 집 전체를 휘감아 올 때까지도 미처 대피조차 못한 채, 고스란히 화마의 희생양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불구덩이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 판국이니, 용케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산동네 아래로 피신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주변의 이 곳 저 곳에서 가족들을 애타게 부르고 찾으며 몸부림을 쳐 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들을 구해 낸답시고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다시 뛰어 들려는 사람들이 번다하게 나타나곤 했으나, 그럴 때 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결사적으로 제지를 당하고 있었다. 뒤늦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간댔자, 정작 구할 사람은 구하지도 못하고, 희생자만 더 보탤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방차들의 출동까지 아주 더디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불길은 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번져만 갈 뿐이었다. 산등성이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판자 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불쏘시개 역할을 해 주면서 끊임없이 붉은 화마의 먹잇감이 되어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불길을 멀리로 노려보면서 서동신은 정신없이 산동네 쪽으로 달음질 쳐 가고 있었다.
“금채야! 금채야!”
그랬다. 동신은 자신의 집 거실에서 방송 화면을 보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흘러나온 긴급보도를 통해서 그 운 좋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피신객중에 금채도 역시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점은 금채의 집이 산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집 사람들보다 아래쪽으로 피신 해 내려오기가 그만큼 더 힘이 들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 해 보면 그녀의 집이 산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산 정상으로 해서 반대편 산 아랫마을로 피신을 하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신은 지금 시장이 있는 산동네의 입구 쪽으로 먼저 가 보았다가 그 곳에서 금채를 찾지 못하면, 다시 산의 반대편 쪽 아랫마을까지 둘러 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 두 장소중의 한 곳에서 틀림없이 금채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말이다.
그러나 동신의 그러한 바람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일부러 피신자들이 몰려있는 곳만을 찾아 산동네의 앞 뒤 주변 이 곳 저곳을 이 잡듯이 뒤져보아도 금채와 금철 남매의 모습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신은 강하게 머리를 좌우로 도리질쳤다. 그럴 가능성은 애초부터 염두조차 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채가 자신을 두고 절대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은 꿈 속에서도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신은 급하게 아버지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금채를 찾아 헤매고 있는 지금의 이런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비록, 누가 될지언정, 오히려 그런 아버지에게 금채를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빌고 싶어졌던 것이다.
아버지,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은 오직 그 인간일 뿐이지, 결코 금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오늘 일로 그녀가 잘못되지 않도록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그녀가 없으면 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동신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 등으로 훔치고 또 훔쳐내었다.
며칠 후, 산동네의 화재로 인하여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의 최종 명단이 방송 보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망자가 62명에 실종자 27명이라고 했다. 산동네에 거주하던 사람들 중 넷 중의 하나가 목숨을 잃거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대참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위치는 최초의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그 판잣집의 주변 일대라는 보도 내용도 함께 들어 있었다. 공교로운 것은 그 판잣집의 주인이 바로 도주한 살인용의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에서는 그 살인용의자를 가장 강력한 방화 혐의자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살인용의자가 철저한 은신의 목적으로 자신의 남은 두 자녀까지 불태워 죽이려다 그런 엄청난 재앙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좀 억측스러운 면이 있었으나, 그 두 자녀 역시 이번 화재의 사망자 명단에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경찰의 그런 발표를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매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실종자가 아닌 사망자 명단 속에 포함이 된 이유는 역시 수사당국의 그런 의중이 많이 반영이 된 탓이었던 것이다.
동신은 비통한 심정으로 폐허로 변해버린 판자촌의 산길을 비틀비틀 기어오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타다가 남은 건물들의 잔해가 눈에 뜨였고, 불에 그슬린 가재도구들 역시 제멋대로들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속에서 불에 탄 각 집 자리 마다 추위에 웅크린 모습을 한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잿더미 속을 파헤치고 있는 모습도 많이 눈에 뜨이고 있었다. 집이 소실되어 버린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 성하게 남은 가재도구들이나마 미리 갈무리를 해 두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동신은 더욱 더 쓰라린 아픔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목숨이라도 건져서 저러고 있기라도 한데,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그 불쌍한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자신과 함께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절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를 왜 지켜주지 못했을까. 진작 너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함께 살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네가 이렇게 불행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동신의 두 눈에서는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와서는 슬픔의 눈물로 얼룩진 그의 얼굴과 야윈 몸뚱이를 마구 할퀴어 댔다. 하늘 역시도 동신의 참담한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검은 구름을 잔뜩 이고 있었다. 이제 곧 첫 눈이라도 뿌려 댈듯한 그런 날씨였다.
동신이 가까스로 발길을 옮겨 폐허로 변한 금채의 집터에 막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긴 눈발들이 간간히 흩날리고 있었다.
네가 살았던 이 자리. 그러나 너는 간 곳이 없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린 성긴 눈발만이 한 점 두 점 계속해서 폐허의 잔해위로 흩어져 내린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나를 혼자 두고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제발 말 좀 해 봐 금채야! 여기에 있으면 제발 말 좀 해 봐 금채야!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너의 고운 두 눈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어. 나를 사랑한다는 너의 그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어. 너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더 들려주고 싶어. 사랑해!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 해! 가여운 내 사랑! 믿을 수가 없어. 네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정말 믿을 수 없어. 영원히 함께 하기로 한 그 약속은 대체 어떻게 하고? 영원토록 내 귀여운 신부가 되어주기로 한 그 약속은 대체 어떻게 하고? 고흐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되어주기로 한 그 약속은 대체 어떻게 하고? 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던 내 굳은 약속은 또 어떻게 하고? 제발 말 좀 해 줘 금채야! 한번 만, 꼭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말 좀 해 줘 금채야!
바로 그 때였다. 동신은 문득 무언가의 소리를 듣고는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두 눈을 억지로 치켜떴다. 그리고는 폐허의 한 쪽 가에 시커멓게 그을린 채로 누워 있는 감나무 둥치 밑의 그것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뜻밖에도 용케 살아남은 해리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몇 날 며칠을 굶어서 그런지 뱃가죽이 완전히 붙어 있었다. 그랬음에도 동신은 녀석이 너무도 반가웠다. 비록, 금채가 살아있는 것만큼의 기쁨은 아닐지언정, 녀석 역시 한 때나마 그녀에게 몹시 사랑을 받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는 동신이 자신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둥이를 쑥 빠뜨린 채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 한줌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몸뚱이를 연신 오돌오돌 떨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동신은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성기던 눈발도 이제는 함박눈이 되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시커멓던 폐허의 잔해들 위 역시 시나브로 백색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해리가 너의 마지막 선물인 거니? 너를 대신해서 잘 돌보아 달라는 마지막 선물? 그래, 내가 잘 돌보아 줄게. 그러니, 아무 걱정 말어 금채야. 안녕! 가여운 내 사랑!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내 사랑! 이젠 안녕! 영원히 안녕!
세상천지가 새하얀 눈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동신은 해리를 품에 안은 채, 하늘 가득이로 흩날려 내리는 눈발들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눈을 가진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한 채로 저 허공중에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제 1부 끝
[후원계좌]
농협 453014-56-274483
예금주 남애균
작품 구상과 집필 작업에 큰 힘이 됩니다.
'창작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34 (2) | 2024.07.20 |
---|---|
[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52 (2) | 2024.07.20 |
[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51 (0) | 2024.07.19 |
[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32 (0) | 2024.07.18 |
[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50 (0) | 2024.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