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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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잎새의떨림09
09 태양의 계절이 언제였던가. 아득한 기억으로 저 멀리 갔지. 너의 사랑스러운 그 느낌까지도.그리고 다시 찾아온 이 가을 숲 속. 붉은 낙엽들이 반짝거리고 갈색 바람은 그 위를 묵묵히 서성거리지. 내 간절한 추회의 한 자락처럼. 밟히는 낙엽소리, 그리고 갈바람, 그들은 또다시 내게 말하지. 반가운 친구여! 어서 오세요. 우리들과 정답게 친구 해 봐요. 나는 웃음 지으며 대답을 하지. 친구들이여! 이리 와 봐요. 저기 보이는 물가까지 함께 가 봐요. 그래서 함께 숲 속 길 따라 호수로 가지. 그러면 낙엽과 바람은 내게 말하지. 호수가 정말로 아름다워요. 그래요 호수는 정말로 아름다워요. 그래서 우리는 정답게 웃지. 마치 저 환하게 미소 짓는 호수의 물빛처럼. (스무 살 승주에게 미쳐있던 열네 살 수창의..
2024.12.30 -
[단편소설]모욕죄
[단편소설] 모욕죄지은이: 허세창 오랜만에 산행을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기운이 많이 빠진 상태다. 몸이 상당히 피로하다. 게다가 투닥투닥 굳은 비까지 내려오기 시작하니,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 찐득거리는 몸의 땀이나 씻어내고, 어서 빨리 자리에 누워야겠다. 했는데, 저기 저 파란 철대문 밖 우체통 밖으로 삐죽이 대가리를 내비치고 있는 허연 무엇. 뭘까? 전기요금 고지서? 수도요금? 가스요금? 건강보험료? 카드대금? 신문구독료? 생각 했는데, 쓱 뽑아들고 보니, 생뚱맞게도 겉봉에 떡 박혀있는 00경찰서 표식. 놀고먹는 기초수급자한테 뭐 뜯어먹을 거 있다고 경찰서씩이나......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쑥 뽑아들고서 녹슨 철 대문을 찌그덩 밀고 마당 안으로 쓱 들어서니, 그래도 제 주인이랍시고 반갑다 살..
2024.12.27 -
[장편소설]잎새의떨림08
08 “안녕하세요. 나는 공주희라고 해요.” 누가 물어 봤니? 누가 물어 봤냐고? 아녀, 아녀 고마워. 다짜고짜 그렇게 이름부터 알려줘서 말이여. 흐흐! 공주희라...... 음...... 공주미 동생 공주희라...... 앞으로 공주 두 마리 확실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구먼. 딱! 파! 당황한 표정으로 제 동생을 휙 돌아보고 있는 애기엄마. 그래, 많이 놀랬을 겨. 사실, 나도 조금은 놀랬단다. 니 여동생이 저렇게 아무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나설 줄은 나도 전혀 예상을 못했으니 께. 아무튼, 너희 두 자매 정말 대단 혀. 대단하다니 께. “아, 네. 반가워요. 나는 허수창이라고 합니다.” 동생뻘로 보여 말을 낮추어 주려다 일단은 하오를 붙여 줘 본다. 초면이니까. 딱! 파! “아니 주..
2024.12.26 -
[장편소설]잎새의떨림07
07 가을밤이다시 또 깊어만 간다.내 기억 속의 수많은 상념들을 마음껏 희롱하면서......밤은 그렇게 날마다나약한 내 가슴속을 휘젓다가는,허망한 몸짓으로 흩어져간다.새벽안개 자욱한 저 먼 곳으로......어둔 밤이 그렇게 다 지나가면,나는 다시 이렇게 일어나 앉아, 서글픈 그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승주, 좋아했단 말로는 많이 부족한,아쉬웠던 기억으론 다 못 다 채울,사무친 기억 속의 내 사랑 그대!나 이렇게 다시 또, 그댈 그리면,눈가엔 작은 눈물 흘러내린다.(스무 살 김승주에게 바치는 열네 살 허수창의 넋두리 중) 11월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날씨가 쌀쌀해져 있었다. 그런 동안에도 아래층여자와 고삐리 녀석의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밀회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래층여자의 법적인 남편은 요즘 눈..
2024.12.21 -
[장편소설]잎새의떨림06
06 [영어, 수많은 세월동안 이 것만큼 우리 한국인들을 많이 웃고 울게 한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국민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공무원시험 준비생을 비롯한 여타 각종 고시 준비생, 심지어 승진시험을 준비 중인 직장인들까지. 말 그대로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시련과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존재. 반면에 그를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하염없는 희열감과 성취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존재. 말 그대로 극단의 양면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존재. 취하자니 뜻같이 잘 안되고, 그냥 포기 해 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는 존재, 마치 먹자니 부담스럽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계륵 같은 존재, 바로 그것이 영어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왜 이리도 영어를 완..
2024.12.18 -
[장편소설]잎새의떨림05
05 먼 과거,세상의 모든 밤하늘에는명멸하는 수많은 별빛들이찬란한 보석처럼 여울지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모든 빛나는 뭇별들을 착한 시선으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의 눈동자 속에서도별빛들은 여전히 은비늘처럼흔들리고 있었습니다.아,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그리고 사랑하는 동생들다섯 식구 오붓하게 마당 평상에 누워밤하늘 가득이로 웃음 짓던 밤.아, 내 사랑하는 그대 손 꼭 붙잡고저 아득한 밤하늘 가물대는 별빛처럼 하얀 박꽃으로 웃음 짓던 밤.(스무 살 승주에게 미쳐있던 열네 살 수창의 일기 중) 일요일 밤,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와서 열심히 호정무(虎正武) 수련을 하다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이 정말 너무나도 곱게 반짝거린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마치 승주의 눈빛을 닮아 있는 것..
202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