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34

2024. 7. 20. 13:14창작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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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그 해 봄, 그리고 여름 가을

제12장 복마전(伏魔殿)

 

                                         34

 

김금채는 오늘도 수상기 화면에 비치고 있는 서동신의 모습을 눈물이 어린 시선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단 한순간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기에 더 더욱 가슴이 에려오기만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 그리운 가슴에 폭 안겨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더욱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에겐 이미 사랑하는 여자까지 존재한다니 말이다. 사실, 그가 아직까지도 자신을 생각하고 있고, 또 애인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럴 경우 역시 그를 찾아갈 수 없기는 매일반일 터였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주한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천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방적 공장의 보잘 것 없는 노동자 인생인 반면에, 동신은 이미, 그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성과를 일구어 낸 유명인사 신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지금 일간지 신춘문예 공모전을 통하여 등단한 가장 촉망받는 신예작가일 뿐만 아니라, 수상기의 화면에도 비치고 있는 것처럼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인기 가수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 절망적인 심정임에도 불구하고, 금채는 자신도 모르게 동신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나지막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최근 들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내 사랑 어디에’라는 곡이었다. 서정성 짙은 곡으로서 그가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한 노래라고 한다. 특히, 애달프게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더 심금을 울려주는 것이다.

 

내 사랑은 지금 그 어디에.

내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해 놓고

속절없이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 그대.

내 사랑은 지금 그 어디에.

내 삶을 이토록 허망하게 만들어 놓고

속절없이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 그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슬프도록 아름다운 네 눈동자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시리도록 곱고 고운 네 눈동자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금채는 보고 싶은 그 대상이 틀림없이 자신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가 지금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존재인 자신은 이미 과거 속의 철부지 한낱 어린 소녀에 불과할 뿐이며, 결코 지금의 이 초라한 모습의 나는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요 오빠, 나 역시 아직까지 오빠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결코 오빠 앞에 나설 수가 없어요. 오빠가족에겐 영원히 죄인인 나. 그리고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모습의 나. 그래서 더욱 오빠와 나는 어울릴 수가 없는 거 에요. 이젠 그만 나를 잊어 주세요. 힘들겠지만, 나도 이제 오빠를 더 많이 잊도록 노력 해 볼 게요. 오빠의 음악, 오빠의 글 그 어느 것조차 더 이상은 듣지도 보지도 않을 겁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 에요. 오빠를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오빠의 삶과 내 삶 자체는 이미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니까. 오빠와 나는 이미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니까.

금채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상기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억지로라도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도 동신은 벌써 두 번째의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또 다른 내용의 애절한 노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채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수상기의 단추 쪽으로 손끝을 길게 내밀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참새처럼 폴짝 안으로 뛰어 들었다. 함께 자취를 하고 있는 이민정이었다.  

“어머 얘! 끄지 마! 서동신이잖아!”

민정은 물건이 든 비닐봉지를 방바닥에 내 동댕이치다시피 하며 수상기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 것이었다. 다른 젊은 여자들처럼 만큼이나 그녀도 역시 요즘 서동신에게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

민정이 그러는 바람에 이제 막 수상기를 끄려던 금채의 손끝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졌다. 동거하는 친구의 시청 권리까지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으로 금채는 애써 수상기 화면 쪽을 외면하며 식 재료가 든 비닐봉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 금채를 흘깃 돌아보며 민정이 입을 연다.

“어쩜 저리도 잘 생겼을까? 목소리는 어떻고? 저런 사람이 내 애인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

“......”

금채는 애써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많이 창백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슬프도록 고운 두 눈 역시, 더욱 아린 빛으로 변해 있었다. 동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바로 그 눈이었다. 그제야 민정은 금채가 평소와는 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왜 그래? 또 머리가 아파?”

“아니......”

마지못해 답변을 하기는 하면서도 금채는 여전히 수상기 쪽으로는 두 번 다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금채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동신의 모습은 이미 화면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자신의 노래 두 곡을 다 부르고 난 뒤, 다른 가수에게 순서를 넘겨준 것이다. 민정이 다시 한 번 폭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들어갔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민정에게 금채가 입을 열었다.

“밖에 나가자. 이젠 별 구경이나 하지 뭐.”

“또 무슨 별 구경? 요즘엔 예전 같지도 않은데. 별도 별로 안 보여.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밤하늘 가득히 별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말이야.”

사실이 그랬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자동차와 밝아지는 도시의 불빛들로 인하여 제대로 된 별 구경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많아. 어서 나오기나 해.”

“알았어.”

두 사람은 옥탑방의 마당에 있는 널평상 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금채의 고향집 마당 한 귀퉁이에 놓여 있던 그것과 많이 흡사 해 보이는 널평상이었다. 사실, 금채가 지금의 이 옥탑 방으로 세를 얻어 들은 이유 역시도 바로 이 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널평상을 처음 발견한 순간, 눈물까지 지었던 것이다.

역시나 밤하늘에는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달빛만이 밝은 도시의 불빛과 자동차 매연으로 그늘진 대기 속에서 힘겹게 자신을 나투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금채 너는 왜 그렇게 별을 좋아 해?”

“글쎄......”

민정은 이미 몇 차례나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 한마디였다.

“하긴, 별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 그건 그렇고 나는 금채 너 같이 인물 좋은 아가씨가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돼. 너 때문에 애 태우는 남자들이 그 얼마나 많은데. 공장 남자들, 모두가 너만 보면 그러잖니.”

“그러는 너는?”

“나는 요즘 만들었잖니.”

민정의 이 말은 물론, 동신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반 장난의 말이었다.

“......”

“금채 너도 서동신 무지 좋아하지?”

그러면서 짓궂은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민정. 금채가 동신 이야기만 하면 얼굴을 붉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니? 내가 그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봐? 하지만 안 돼. 서동신은 이미 내 가 점 찍어 놓았단 말이야.”

민정은 자못 의기양양하기까지 하다. 그런 민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금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폭 하고 내 쉰다.

“기지배! 그런다고 한숨까지 내 쉬니?”

“자꾸 놀리지 마.”

“알았어. 서동신 니 꺼 해라. 내가 기꺼이 포기 해 줄 테니. 그나저나 금채 너, 빈혈 약 먹어야 되는 거 아냐?”

정말, 그랬다. 금채는 늘 상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도 또다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밤하늘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좀 방안으로 들어갈게.”

“정말 큰일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민정은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금채를 잘 부축해서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부자리 위에 그녀를 조심스레 눕혀 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금채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민정이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린다.

“더 심해지면, 그 사람들이라고 언제까지 편리를 봐 주지는 않을 텐데.”

사실이 그랬다. 금채가 간혹 한번씩 일 도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책임자들은 계속해서 큰 아량을 베풀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 저마다의 가슴에 금채의 고운 외모를 소중히 아로새겨 두고 있는 탓도 있었고, 또 금채의 근무 태도 역시 매우 반듯하고 성실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금채의 창백한 얼굴을 지켜보고 있는 순간에도 금채는 계속 꿈을 꾸고 있었다. 바로 동신 오빠에 대한 꿈이었다. 그런데 꿈속에서의 그의 모습은 어쩐지 아주 많이 초췌해 보였다. 그래서 더 더욱 안타깝게 그의 이름을 불러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동신 오빠......”

“어머, 이 기지배 좀 봐!”

민정은 놀란 눈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흘려내고 있었다.

 

서동신은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이 출연한 가요방송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얼굴 표정은 지금 수상기 화면에서 보이고 있는 그 느낌과는 어쩐지 많이 달라보였다. 그를 알고 있는 지인들이 보아도 의아스럽게 여겨질 만큼, 몹시 우울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문학가로서의 출발이 무난히 잘 이루어졌고, 대중가수로서의 인기 역시도 점차 상승 해 가고 있으며, 게다가 아름다운 애인까지 곁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에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도,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늘 쓸쓸하고 침울한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표정과 심리상태를 일부러 더 견지 해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사랑하던 소녀를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 버렸다고 생각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삶의 방식이 그렇게 고정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 자신의 신변에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시킨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놀라운 성취를 있게 한 가장 큰 동인 역시, 바로 그런 저조한 심리 상태를 일부러 견지 해 온 탓이 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 덕분으로 오히려 더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을 일구어 낼 수 있었고, 그만의 독특한 감성 느낌이 살아있는 색다르고도 서정적인 느낌의 음악 역시, 지속적으로 탄생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전화기의 신호음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신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아니, 들고 싶지가 않았다. 보나마나 방송 출연을 읍소하는 방송국 섭외담당자의 전화이거나 언론매체 연예담당 기자의 전화 아니면, 바로 그녀의 전화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아니라면, 고향 집 어머니의 전화일수도 있을 것이다. 전화기의 신호음은 대 여섯 번 정도를 더 울리다가 그대로 끊어지고 말았다.

다시 고요해진 방 안 침대 위에서 동신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고향의 어머니를 떠 올려 보았다. 아버지 영면 이 후, 지금까지 춘균이 외삼촌과 더불어 무난하게 공장을 잘 이끌어 온 어머니. 오로지, 살림밖에 모르던 어머니가 그렇게 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세 자체가 크게 신장이 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재혼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지 아니한가. 그토록 많은 주변인들이 어머니에게 재혼을 권유 해 왔음에도 말이다. 그런 처지는 외삼촌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었다. 벌써, 4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공장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 지방대학교의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막내 동생인 동기, 또 같은 대학 졸업 후 성실하게 유치원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동희. 또한, 정부(情夫)와 함께 도망을 쳐 버린 이모 대신으로 지금까지도 혼자서 열심히 정님이를 키워 오고 있는 이모부. 그리고 벌써 여고 3학년이 된 정님이까지. 그 모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소중하고 살뜰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채를 잃고 난 뒤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의 나날들을 지새우고 있던 그에게 있어서는 가족이나 일가친척만이 삶의 유일한 지탱목이요 위로목이 되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화기 신호음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녀의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네?”

변혜경의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많이 들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벌써, 십년 동안이나 지속 되어 온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요할 정도로 매달려오는 그녀를 끝내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채나 아버지를 생각해서 단호히 거부를 해 볼까도 싶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었다. 사실, 혜경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긴 했다. 단지,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불륜녀의 여식이라는 죄 아닌 죄 밖에는 말이다. 또한, 혜경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죄라고 볼 수도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죄가 될 수가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혜경을 내쳐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금채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또 고향집 식구들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분명히 큰 충격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특히 어머니는 절대 용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빠, 나 오늘 할 말이 있어. 정말, 중요하고도 기쁜 소식이란 말이야.”

혜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기쁜 소식? 그게 뭔데?”

“전화상으로는 말 할 수 없고, 직접 올라가서 들려줄게.”

“그냥, 전화로 이야기 해. 나 지금 바빠. 미루어 두었던 글도 좀 써야 하고, 음악 작업도 해야 하고, 또 잠도 좀 자 두어야 해. 너도 잘 알잖아. 오빠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거. 그러니 어서 말 해 봐.”

동신은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결코, 그런 기분상태를 표현하지 않았다.

“아니라니까. 정말, 중요한 이야기란 말이야. 우리의 미래와 관련 된 아주 중요한 이야기.”

“글쎄, 그러니까 지금 이야기해 보라니까.”

“정말 그럴 거야? 나 지금 오빠 집 앞에 와서 공중전화 하는 건데.”

“그럼 들어오지 않고 왜? 아무튼 알았어. 기왕에 왔으니 일단 들어와. 그리고 그 중요한 이야기란 것도 빨리 들려주고 말이야. 그리고 오늘은 일찍 돌아가. 나 오늘 정말, 바빠서 안 되겠다.”

엄살이 아니었다. 동신은 그만큼 요즘 들어 시간을 쪼개어 쓰는 것조차 모자랄 정도로 바쁜 것이다.

“알았어. 바로 올라갈게.”

혜경은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한 번 더 지그시 아랫배를 눌러 보는 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동신을 완전하게 자신의 남자로 붙들어 둘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고운 얼굴과 맑고 커다란 두 눈 역시 오늘따라 더 눈이 부시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주변을 스치는 뭇 사내들의 시선들마저 저절로 그녀에게로 향할 정도로 그녀는 지금 젊은 여자로서의 싱싱한 매력을 한껏 뽐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신조차 이제 막 아파트의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무르익을 대로 익은 싱싱한 자태를 보며 흡! 하고 숨을 들이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중요한 이야기란 것이 대체 뭔데?”

“어쩜 앉으라는 말도 없이?”

그러면서 다짜고짜 그의 품안으로 안겨드는 혜경. 뽀얗고 작은 두 주먹으로 그의 넓은 가슴을 팡팡 두드려 댄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앙증맞은 동작이었다. 동신 역시, 자연스럽게 그런 그녀의 새 같은 몸뚱이를 꼭 껴 안아준다. 금채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혜경의 싱싱하고도 도발적인 매력 역시 차마 거부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혜경의 육체를 취하게 된 것 역시 역설적이게도 금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그녀였기에 그녀를 향한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언제나 혜경과의 뜨거운 정사를 통해서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진심으로 혜경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혜경 역시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동신에게 있어 자신은 정신적인 사랑의 대상이 아닌, 오로지 욕구불만을 해소 할 수 있는 성적 수단으로서의 정액 배출구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됐어?”

“응.”

“행복해?”

“응!”

“그럼, 이제 말 해 봐. 오빠 바쁘다는 거 잘 알잖아.”

“놀라지 마 오빠. 저기, 우리말이야. 조만간 아빠 엄마가 될 것 같다?”

“뭐?”

“나, 임신했다고. 벌써, 3개월째래.”

“......”

동신은 자신의 품에 안긴 채, 뚫어져라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혜경의 커다란 눈망울을 당장이라도 파먹을 듯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오빠는 기쁘지 않아?”

혜경으로서도 애당초 동신이 이런 소식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안 돼! 당장 떼어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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