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의 인생 역정 이야기

2025. 10. 9. 08:29ㆍ허세창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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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역정 이야기

 

2년 전, 내가 다른 회사에 다닐 때의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업무의 특성 상, 주기적으로 상사(上司)에게 아부성(?) 술자리를 마련 해 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정기적으로 그렇게 술을 사지 않으면, 결국 눈에 보이지 않게 나의 수입이 줄어들게 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술을 얻어 마시지 못한 상사는 결국, 괘씸 죄를 적용해서 내게 일거리를 덜 주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고 결국, 그 여파로 인한 수입의 전반적인 저하 현상은 고스란히 내가 떠맡아야 할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술자리를 베풀어(?)주어야 함에 있어서 과연, 그 비용은 어느 정도가 소모된단 말인가. 놀라지 마시라. 한 달 치 수입액의 거의 절 반 이상이 아부성 술자리 비용으로 지출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일 년에 한 번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당시 나의 월 수입액이 평균 300만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런 난감한 술자리 접대를 일 년에 한 번씩은 연례행사로 베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면 내 속이 매우 쓰려오곤 했었다. 고향의 부모님 생활비 대어 드리고 나머지를 거의 다 저축 해 가며(집 장만을 위해서) 내핍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그런 생떼 같은 돈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뜯기다 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투자 성 지출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 아닌가.

결국, 나의 그런 짧은 생각(?)이 화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도저히 그 부당성을 참지 못한 내가 감히, 상사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무엄하게도 2년 전의 그 때, 나는 상사에게 술을 크게 사야 할 때가 이미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술을 사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 여파는 직격탄으로 날아오고야 말았으니, 그 달 이후로 나의 수입이 거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상사는 나를 본보기로 삼고서 고의적으로 일거리를 주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향응을 베풀지 않으면, 결국, 그 종말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냉혹한 현실로서 증명 해 주며 말이다.

그 후, 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 월수입만으로는 부모님 생활비 대어 드려가며 도저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 해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상사와의 타협만은 마다하고서 그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와 버렸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지난날의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깊이 반성(?)을 하고 있다. 아무리 부당한 일이라 하더라도 베풀어야 할 때는 어느 정도 베풀어야 한다는 만고고금 인간사의 진리를 말이다. 그렇게 해야 만이 우리 인간세상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안 좋았던 2년 전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음력 2월 27일은 정말, 내 생애에 있어 최고의 날이자 가슴 훈훈했던 날로 또 다시 기록되지 않을까 한다. 바로, 그 동안에 간절히 고대해 왔던 내 집을 장만 한 날(비록, 융자를 받아 산 집이기 하지만)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또한 그날은 나의 마흔 네 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그 날 나는 정말, 스스로의 살을 마구 꼬집어보기까지 하면서 말 그대로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은 그 얼마나 각고의 날들이었던가. 특별하게 가진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학력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닌 채로 그렇게 무작정 회사를 뛰쳐나와서는 가는 곳마다에서 문전 박대를 받기가 예사였었고, 그나마도 어렵게 새로 구하게 된 직장에서 처음으로 받게 된 월급이나마, 어떻게 해서든, 집을 장만하기 전까지는 최소한도로 아껴보자는 심정에서 그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보나 자전거로만 출퇴근을 했던 나였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 들 중에는 나이 마흔이 다 넘어서 이제야 집 한 칸 장만한 것을 가지고 그 무슨 호들갑인가 할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 동안 그 집 한 칸 장만하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벅차고 힘든 일이었다. 남들 다 쉬는 날에도 놀지 못하고 또,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에서 그저, 내핍 생활로만 일관했던 내 자신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고향의 내 부모님 편하게 내 집에서 남 눈치 안 보고 잘 모셔 보자는 것. 바로, 그 하나의 목적에서였던 것이다.

새삼 지난 기억을 잠시 돌이켜 보면, 지난 시절 내가 객지에서 새롭게 시작하며 월급이라고 받은 200 만원 돈에서 고향 부모님 생활비로 30만원 부쳐드리고 나면 남는 돈은 170 만원. 나는 거기서 거의 150 만 원 돈을 저축을 하고 남은 돈 20만 원 정도를 가지고 생활을 했던 날들이었다. 물론, 결혼 못한 노총각의 신세로서 홀홀단신의 몸이었기에 그런 생활도 능히, 가능했으리라. 하기야 석 달에 한 번씩 나오는 80 만 원 돈 상여금이 있었기에 그런 생활이 더 더더욱 가능했겠지만,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그 상여금 80 만원 돈과 다달이 저축하고 남은 생활비 20 만 원 돈도 아까워서 다 쓰지 않고 거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통장에 집어넣었었던 나였다.

그럴 정도로 지독하게 구두쇠 생활을 했으니, 옷은 거의 일 년에 한두 벌 사 입을까 말 까한 생활이었고, 먹는 것 역시도, 회사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해 가며 먹게 되는 두 끼 식사에만 거의 의존하다시피 할 정도였었다. 물론, 고향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실 때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니,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한 여자와의 데이트는 언감생심 꿈도 꾸어 보지 못했었고, 어쩌다가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맞선을 보게 된 경우에도 동생 녀석의 낡은 자가용을 빌려서 사용을 한다거나 그 데이트 비용마저도 미리 5 만원 한도로 정해 놓고서 그 범위 내에서만 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지독한 녀석이 바로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불가사의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을 해서라도 이제 이렇게 작은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과거의 그 때처럼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삶을 살지는 않으리라 다짐도 가져 보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고작, 칠 십 한 평생인데, 나이 사십이 다 넘도록 이렇게 재미없는 생활만을 지속 해 온 내 자신이 정말,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 부쩍 그런 생각이 더 들게 된 것은 그간에 목격하게 된 모 재벌 그룹 회장의 자살사건이나 얼마 전의 다른 재벌 그룹 회장 딸 자살 사건들을 보고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돈 걱정 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훌쩍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나는 비록, 그 동안에 많은 시련을 겪어오긴 했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내 집에서 함께,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하게 수중에 지니고 있을 때에나 유용한 것이지, 너무 지나치게 적게 갖고 있거나 또, 지나치게 많이 지니고 있어도 오히려, 그것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음을 요즘 새삼, 더욱 더 절감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2006.03.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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