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7. 10:20ㆍ창작문학관
제 18장 젊은 그들
52
“계십니까?”
벌써 세 번째였다. 하지만, 옥탑방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금철이 말로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밖으로 외출을 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말이지. 하지만, 정말로 없다면? 금철이가 그냥 넘어 갈 녀석이 아닌데. 그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더 불러보고, 그래도 대꾸가 없으면? 그냥 돌아가야겠지. 눈가로 흘러넘치는 주체할 수 없는 이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이민정씨, 안에 있어요?”
“네...... 누구세요?”
제기랄! 대답을 하려면 일찍 하지 않고. 젊은 아가씨가 대낮부터 낮잠인가?
“예, 난 서동신이라고 합니다.”
“예? 서.......동신이요?”
“예, 가수 서동신입니다. 김금철 사장 소개로 아가씨를 만나러 온 서동신입니다.”
“어머! 저 정말이요? 자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 옷을 입어야 되서.”
“예, 천천히 하세요. 급할 건 없습니다.”
“네에, 자 잠시만 요.”
그렇게 오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흔들거리듯 방문이 열어젖혀졌다.
“죄 죄송해요. 제가 지금 너무도 경황이 없어서...... 저기......”
그랬다. 서동신은 이민정이 방문을 열고, 뒤늦게 자신을 맞이했지만, 뒷모습을 보인 채, 구름이 둥실 떠가고 있는 저 먼 하늘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 미안합니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니에요. 안녕 하세요 오빠! 정말 영광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집을 오빠가 방문 해 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를 아나요?”
“그럼요. 왜 모르겠어요. 오빠 같은 대한민국 최고 인기가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꿈만 같아요. 누 누추하지만, 어서 바 방안으로 들어......”
이민정의 목소리는 몹시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자다 일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럼, 잠시 방안 구경 좀 할게요.”
“네, 어서 들어오세요 오빠.”
“어? 내 노래군요? 내 노래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랬다. 마침 방안 한 구석에 놓여져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자신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민정이 김금채에게 선물을 해 준 테이프이기도 했다.
“네, 좋아하고 말구요. 오빠 노래를 안 듣는 날이 없답니다. 사실은, 이 테이프는 금채한테 선물 했던 거 에요. 하지만, 금채는 이것마저 그냥 놓고 갔어요.”
“그......랬군요. 금채도 내 노래를 좋아했나요?”
“네, 아주 많이 좋아했어요. 어떤 때는 오빠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기도 했어요. 저는 그 때, 금채가 단지 오빠 노래에 감동을 해서 그러나보다 했었어요. 하지만, 사장님한테서 금채가 오빠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부터는 그 때의 금채 심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래요.”
동신은 또다시 울컥하는 심정을 억지로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금채가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아직까지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인 때문이었다. 아니, 잊지 못할뿐더러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미안하다 금채야.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못난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네가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데, 우리는 왜 십년이라고 하는 황금 같은 세월을 서로 늘 함께 하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었어야만 하는 것이니. 도대체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도대체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뼈아픈 시련을 안겨 주는 것이니. 그랬음에도 그것도 모자라 너와 내가 지금도 이렇게 함께 할 수가 없다니......
“동신 오빠?”
이민정이 몇 번을 그렇게 불렀음에도 동신은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는 순간, 맺혀있던 눈물이 얼굴 위로 또르르 굴러 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민정씨, 나 이상하지요? 남의 집에 와서 이러면 안 되는데......”
“아니에요 오빠. 저 오빠의 그런 심정 충분히 이해해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두 분이 서로 그토록 사랑을 했으면서도, 또 그토록 오랜 시간을 헤어져 있었으니 말이에요. 거기다 지금도 이렇게 그 애가 간 곳을 알 수가 없으니......”
“고마워요 민정씨. 민정씨 위로가 많이 위안이 됩니다. 그나저나 민정씨 같이 이렇게 착한 아가씨가 금채의 친구였다고 하니,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의 경우, 민정씨가 아니고, 질 안 좋은 나쁜 친구라도 만났어 봐요. 금채는 더 더욱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지금 보니, 금철이가 민정씨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 것도 비로소 이해가 갑니다. 민정씨야말로 금철이나 내게 있어서 친여동생이자 여자 친구인 존재를 대신 잘 보호 해 주고, 잘 지켜 준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오빠. 제가 오히려 금채한테 보호를 많이 받았는걸요. 저는 성격이 워낙 차분하지 못해서 덜렁대길 잘하거든요. 그러나 금채는 차분한 성격이라서 조금이라도 제가 잘못된 행동이나 그릇된 길로 빠져들 기미만 보여도, 강하게 다시 바른 길로 돌려 놓아주곤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그나마 더 많이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 오히려 금채가 제 인생의 은인이라면 은인인 거랍니다.”
“그래요. 이렇게 보면 이럴 수 있고, 저렇게 보면 또 저런 관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민정씨나 금채나 두 사람 천우신조로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천지신명이 우리 금채를 잘 보살펴 주라고 도움을 베풀어 주신 것 같습니다.”
“동신 오빠가 자꾸 그렇게 말씀 해 주시니, 더 더욱 몸들 바를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지금도 사장님이나 동신 오빠 두 분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요. 금채가 집을 나가지 못하게 끝까지 잘 지켜주지 못한 책임...... 정말...... 큰 것도 사실이니까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민정씨. 민정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의 경우, 민정씨가 금채를 놔두고 집을 나갔을 경우라 해도, 그녀 역시 마찬 가지였을 겁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정작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민정씨 하고 나 하고, 그리고 금철이도 같이 최선을 다해서 금채를 찾아보는 겁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금채를 찾아보자고요. 지가 가면 어디로 갔겠어요? 이 조그만 땅 덩어리, 그 안 어딘가에 있겠지요. 나는 금채를 끝까지 찾을 겁니다. 어때요? 민정씨도 도와 줄 거죠?”
“동신 오빠...... 오빠가 너무 불쌍해요. 정말 속상해요. 저도 당연히 그럴 거 에요. 사장님도 함께 그러자고 하셨고요. 저는 물론, 굳이 오빠하고 사장님이 부탁을 안 하셨어도 금채를 꼭 찾으려고 하던 중이었어요. 그럴 때 마침 사장님이 저를 부르신 거죠.”
“고맙습니다 민정씨. 민정씨는 얼굴도 곱지만, 마음씨 또한 정말 선녀 같군요.”
“아녜요 오빠. 저 그렇게 착한 여자 아니에요. 저는 단지 금채 하고 오랜 세월 동료로 지냈기 때문에 그러는 거 에요. 그래서 저 역시 오빠 못지않게 금채가 보고 싶은 거 에요.”
“그래요.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부터 우리 금채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민정씨는 그동안에 특별히 생각 해 둔 방법이라도 있나요?”
“저기...... 오빠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시잖아요. 그런 지위를 좀 이용 해 보면 어떨까 해요. 오빠가 방송에 출연하실 때마다 빼놓지 않고, 금채 이야기를 하시는 거 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금채가 그 방송을 듣게 될 것이고, 오빠가 간절하게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오빠한테 연락 해 오지 않을까요?”
“괜찮은 생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더 더욱 꼭꼭 숨어 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어머,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은 금채가 저 하고 같이 있을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했어요. 오빠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애가 어느 날부터 느닷없이 오빠 노래를 일부러 안 듣는 거 에요. 그리고 제가 오빠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다른 노래를 틀라고 하거나, 자기가 밖으로 나가 버리는 거 에요.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게 바로 오빠를 일부러 멀리 하려고 그랬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아버지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민정씨. 금채 아버지가 바로 내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금채는 지금도 그 원죄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부모들 간의 사건과는 관계없이 지금도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차마 내 앞에 나설 수 없다는 이유를 스스로 그렇게 합리화 시키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내가 지금 민정씨한테 그 사연을 어떻게 고백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럼 정말로 그런 방법을 쓰면 안 되겠네요. 오히려 금채를 더 꼭꼭 숨어버리게 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습니다. 또, 대중들이 그런 일을 알게 해서 좋을 것도 없는 일이고요.”
“맞아요 오빠. 대중들이 금채 하고 오빠 사이를 알게 해서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아닙니다 민정씨. 민정씨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그런 의견을 개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이래요. 말하자면, 금채를 어떤 곳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해 보자는 겁니다. 금채가 그 소식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참석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그런 특별한 유인책 말입니다. 그러자면, 평소 금채가 좋아하는 취미라든가, 장차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금채를 어린 시절에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의 금채가 어떤 취미를 새로 가졌거나, 어떤 일을 새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민정씨가 오히려 나 보다 더 잘 알 수도 있겠네요. 어때요 민정씨? 금채가 평소에 좋아하던 취미라든지, 장차 뭐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네...... 금채는 주로 음악 감상을 한다든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 오빠 노래 듣는 것을 많이 좋아했어요. 또, 그림은 연필로 그리는 그림을 자주 그렸어요. 그 이유가 아마도 물감 같은 것이 비싸니까, 물감 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자기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저,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라고요.”
“음...... 그림이라. 그렇군요. 기억이 납니다. 나도 금채가 연필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제 선명히 떠오르네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나한테 분명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금채의 소원을 풀어줄 방법을 모색 해 봐야겠습니다. 말하자면, 연필그림 공모전 같은 거 말입니다. 당선 상금도 크게 책정 하고요. 그런 공모전을 열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게 뻔한 금채가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어머,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오빠. 정말로 금채가 큰 관심을 보여줄 것 같아요. 금채는 말 그대로 빈털터리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그런 공모전은 없잖아요. 연필그림 공모전이라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어요.”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그런 공모전이 없었지요.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공모전을 직접 만들고 개최를 하면 됩니다. 다행히 내가 아는 화가들이 몇 사람 됩니다. 그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 봐도 되고, 아니면, 내가 직접 그런 공모전을 만들어서 개최해도 되겠지요. 어때요 내 생각이?”
“정말 그러면 되겠어요 오빠. 오빠는 유명한 소설작가시기도 하니까,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겠어요. 오빠, 정말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래요. 하여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를 해 보는 겁니다. 금채를 찾을 수 있다면, 난 모든 걸 해 볼 작정입니다.”
“감사해요 오빠. 이제야 비로소 한줄기 빛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금채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거든요.”
“이제야 비로소 민정씨 얼굴이 펴지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많이 좋아집니다. 자, 우리 이제 금채 얘기는 이쯤에서 잠시 접어 두고, 일단 밖으로 나갑시다. 오늘은 내가 한 잔 살 테니.”
“어머, 밖으로요?”
“예, 금철이는 걱정 말고요. 나 하고 같이 있었다고 하면, 그 녀석 아무 소리 못 할 겁니다.”
“고마워요 오빠. 정말 고마워요.”
“그래요. 많이 답답했을 텐데......”
[후원계좌]
농협 453014-56-274483
예금주 남애균
작품 구상과 집필 작업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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