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51

2024. 8. 6. 14:37창작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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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철 부하들의 안내를 받으며 술집(룸싸롱) 안으로 들어서던 서동신은 술집 여종업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좀체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여자들의 환호성과 서명(사인)공세가 말 그대로 요란법석이었기 때문이다. 김금철 부하들 역시 가수 서동신의 얼굴을 직접 보기는 처음인지라, 그런 여자들을 제지 하지 않고, 상기된 얼굴들을 한 채, 우두커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동신 오빠, 정말 반가워요.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에요.”

“저도요 오빠.”

“오빠, 저도요.”

이런 일에 수없이 단련이 된 동신으로서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얼굴 가득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묵묵히 여자들이 원하는 바를 성실하게 이행 해 주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렇게 성대하게 환영을 해 주시니, 정말 기쁩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제 노래, 제 소설 많이많이 사랑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네, 오빠. 앞으로도 오빠 노래 많이 듣고, 소설도 열심히 읽을게요.”

“그럴게요 오빠! 사랑해요 오빠!”

“당연하죠. 영원히, 영원히 오빠 노래만 듣고, 오빠 소설만 읽을 거 에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제 볼일을 좀. 고맙습니다.”

“자자, 그만! 여기까지. 너희들은 이제 영업 준비 하고! 동신 형님, 이제 그만 들어 가 보시죠. 우리 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럽시다. 안내 좀 해 주세요.”

“네,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동신 곁을 벗어나길 주저하던 아가씨들은 이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저마다 달뜬 표정들을 하고서, 동신에게 연신 헤픈 웃음들만 날려대고 있었다. 

“어서 와라 서동신. 이게 얼마만이냐? 정말 반갑다. 그래,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그래 김금철. 정말 오래만이다. 택시를 탔더니, 기사 아저씨가 어렵지 않게 잘 찾아오던걸 뭐.”

“하하하! 그러냐? 사실 나는 테레비에서 자주 봐서 니 얼굴이 낯설지가 않은데, 너는 그렇지 않지? 어떠냐? 거리에서 보면, 내 얼굴 알아 볼 수 있겄냐?”

“예전 그대론데 뭐.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어.”

“그럴 리가 있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말이다. 옛날 모습 그대로다. 그래도 변한 게 한 가지 있긴 하네.”

“그래? 그게 뭔데?”

“나를 대하는 너의 태도. 그거 하나 만큼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군. 예전에 너 지독히도 나를 싫어 했잖냐? 기억 안 나?”

“자식! 그 땐 내가 철이 없어서 그랬겠지 뭐. 지금은 이렇게 나이도 먹고, 성년이 되었으니까.”

“정말이냐? 정말로 나를 미워하던 감정을 말끔히 날려버린 거냐?”

“자식, 십년 만에 만나서 자꾸 그렇게 면박만 줄 거냐? 자자, 그런 얘긴 그만두고 어서 안기나 해라. 우리 오늘 오랜만에 만났으니, 코가 비뚤어지도록 한번 퍼 보자. 어때? 혹시 또 술 못한다고 샌님 소리 하는 건 아니겄지?”

“그래, 니 말대로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축하주 한 잔은 나눠야겠지. 많이는 못 해도 어느 정도 즐길 정도는 되니까.”

“그거 잘됐군. 담배도 피냐?”

“물론, 담배도 피지.”

“하기야 연예인 생활을 하려면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자, 담배부터 한 대.”

“그래, 고맙다.”

똑똑!
“뭐야?”

“예, 술 하고 안주 준비 됐습니다. 사장님.”

“어, 들어와라.”
마침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던 듯, 양주와 안주 등속을 제각기 쟁반에 받쳐 든 남자 종업원들과 술시중을 들어 줄 아가씨 두 사람이 밀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아가씨들을 보고, 금철이 입을 열었다.

“야, 너희들은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부르면 그때 들어 와.”

“네, 알았어요 사장님.”

“네, 사장님.”

종업원들과 아가씨들이 모두 문을 닫고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담배 연기를 공중으로 내뿜으며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동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여기 물이 아주 좋구나. 아가씨들이 아주 미인인데?”

“동신이 너도 아가씨들한테 한눈을 팔 때가 있냐? 그럼 내 동생은 어쩌고? 너, 금채가 이 사실을 알면, 어쩔라고?”

“자식!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을 가지고. 니 말마따나 나한테 금채 빼 놓고 누가 있겠냐.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금채에게만 일편단심인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너도 만나러 온 거고.”

“그랜 마. 나도 알지. 니가 우리 금채를 그 얼마나 좋아했는지 말이다. 그건 그렇고 말이다. 혜경이 소식은 정말 못 들은 거냐?”

“그랜 마! 내가 왜 알면서도 너한테 일부러 안 알려 주겠어? 내가 오히려 더 혜경이 소식이 궁금할 정도인 데. 정말, 그 애는 어떻게 된 걸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거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동신은 자신이 이렇게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해질 수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 내가 모르는데, 너라고 어떻게 알 수가 있겄냐. 서울 한 복판에서 미스 김 찾기지. 자, 술이나 한 잔 들어라.”

“그래.”

두 사람은 양주를 들이켜고, 안주를 집어 먹고 하면서도 종내 착잡한 표정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 이민정이라는 아가씨는 정말로 금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거냐?”

동신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니까. 혹시라도 속이는 게 없나 싶어서 겁도 줘 봤지만, 정말로 모르는 눈치더라고. 하기야, 같이 한 방을 썼다고 해도 작심하고 몰래 도망을 쳐 버렸다는 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

“그렇겠지. 그래, 그 아가씨는 지금 어디 있는데?”

“생활비 대준다고 하고서 집에 붙어 있으라고 했다. 나 하고 같이 금채를 찾아보자고 하고서.”

“흠...... 애당초 간 곳을 모른다는데, 그 아가씨하고 같이 찾아본들 큰 도움이 될까? 내 생각에는 말이다. 광고를 한번 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광고?”

“그래, 신문광고도 좋고, 방송 광고도 좋고.”

“글쎄. 그게 또 효과가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 몇 번 광고를 내 보긴 했지만, 별무 소용이던데.”

“그래? 언제?”

“몇 번 씩이나 조선, 중앙, 동아 세군 데 다 내 봤었지.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너는 본 적이 없냐?”
“그랬구나. 그런데도 나는 한 번도 광고를 못 봤네. 하기는 신문 볼 시간도 없이 늘 바쁘기만 했으니까.”

“거 봐라. 신문 광고 낸다고 해서 무조건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니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죄다 신문을 본다면 몰라도.”

“그건 그렇군. 거 참!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경찰에 실종자 신고는 했지?”

무심결에 이런 말을 툭 내 뱉고 난 뒤, 동신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금채를 경찰에 실종 신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쳐도, 만일의 경우 혜경이까지 실종신고를 하자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나 저제나 경찰이 자신을 찾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처지에서 정말 위험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게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이런 일이 되어나서 파리들한테 알리기가 뭣해서 말이다. 그리고 설사 실종 신고를 낸다고 해도 걔네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 같지도 않고. 결정적인 건 내 경우, 아직까지도 법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죽 불에 타죽은 거로 되어 있다 이거야. 금채도 마찬가지고.”

“정말이냐? 금채하고 너 둘 다?”

“그래. 우리는 아직도 법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인 것이지.”

“아니 그러면, 사회생활 하는데 많이 불편할 텐데? 살아가면서 경찰서나 관공서에 들락거려야 할 일이 꼭 생기게 마련이잖아? 더군다나 너 같은 경우는 더 더욱 말이지. 그 땐 어떻게 하는데?”

“지금까지는 대리를 내세워서 잘 버텨왔지. 관공서 일도 죄다 데리고 있는 애들이 다 처리 했고.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처지라면, 그럴 수가 없겠지. 하지만, 나 같이 깡패 노릇이나 하면서 어둠 속에 묻혀 지내는 처지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그러나 앞으로 차차 사실을 밝힐 작정이다. 솔직히 유령인간으로 살아가자니,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아서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 행세를 해서야 말이 되겄냐. 금채 찾으면 너희 둘 다 꼭 그렇게 해라. 그렇게 해야 금채 역시도 나 하고 떳떳하게 다시 맺어질 수 있는 것이고.”

“알았다. 그러고 보면, 니 녀석도 참 대단한 놈이다. 어떻게 그렇게 십 년 세월이 지나도록 일편단심일 수가 있는 거냐. 나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 때는 니가 그렇게도 미웠는데, 이제는 되려 감동스럽게 여겨질 정도라니까.”

“고맙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마음을 돌려줘서.”

그러면서 동신은 속으로 혜경이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그녀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혜경이를 자꾸 세상에 노출 시켜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금철과 금채의 경우,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서 혜경모를 살해 하고 도주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눈치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일부러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던 그 문제 역시 결국은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동신아, 니 아버지 문제 말인데......”

“그만. 그만둬라. 이제 와서 새삼 그런 이야기 꺼내봤자......”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너 하고 나 하고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맞대면하게 된 처지에서, 어떻게 그 일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겠어?”

“금철아, 나는 말이다. 이제 분노 같은 건 없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되시고, 한동안은 정말 많이 화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는 그런 감정들도 죄다 사그라져 버렸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렇게 된 책임이 전적으로 니 아버지한테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이번 기회에 그 인간을 대신해서 너한테 사죄를 하고 싶다. 사실 나는 지금도 그 인간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그 인간에게 많이 두드려 맞으며 자랐다. 그래서 늘 그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달고 살았었지. 내 생각에는 아마도 어딘 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뒈져 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렇게 되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금철아 이 자식아, 죽기는 고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니 아버지가 혜경이 엄마까지 죽이고 달아나 버렸다니까. 말하자면, 혜경이 역시도 너희 집안하고 원수지간이 되고 만 거라 이거야. 그런데도 혜경이를 다시 찾겠다는 거냐? 물론, 나 역시 할 말은 없지만. 내 아버지를 죽인 자의 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버젓이 이렇게 원수의 아들 녀석하고 술자리까지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지. 너나 나나 참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지.

“그래, 니 마음 아니까 그만해라. 서로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제부터는 그런 이야기 말고, 오롯이 금채 찾는 일에만 몰두 해 보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전력을 다 해 금채를 찾는 일에만 몰두 해 보자 이거야.”

“고맙다. 그렇게 이해를 해 줘서. 그러자. 금채 당연히 찾아야지. 니가 좋아하는 여자이기 이전에 하나밖에 없는 내 친여동생이기도 하니까. 더불어 혜경이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찾아서 꼭 걔한테 들려 줄 말이 있으니까.”

혜경이는 안 된다니까. 너희 집안하고 원수지간이 되었을 뿐더러, 그 애는 이미 내가 먼저 임신까지 시키고,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기까지 한 여자란 말이다.

“금철이 너, 아직도 그렇게 혜경이를 좋아하는 거냐?”

“내가 어떻게 그 애를 잊을 수 있겠어. 어릴 때부터 난 그 애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물론, 한 때는 니 여동생한테도 마음을 빼앗긴 적도 있긴 했지만. 어떠냐? 동희는 요즘 잘 지내고 있냐?”
“뭐라고? 니가 우리 동희를 좋아한 적이 있다고?”

“자식, 아무튼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다 옛날 일이지. 지금은 물론, 니 여동생 깨끗이 잊은 지 오래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혜경이가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지.”

동신은 금철이 한 때, 동희를 좋아했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무조건 동희 이야기도 삼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져 먹고 있었다. 하물며 더 더욱 동희가 지금 서울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처지에서야.

“그래, 어릴 때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지. 내가 니 여동생을 좋아 했으니, 금철이 너라고 해서 내 여동생을 좋아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난 말이다 동신아, 혜경이를 찾아서 결혼 할 거다. 꼭 그러고 싶다. 그 애 몸을 빌어서 내 아기를 하나 꼭 갖고 싶다 이거야. 이런 내 심정 이해 할 수 있겄냐?”

“그래, 이......해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몸을 빌어서 내 자식을 얻고 싶은 마음은 세상 모든 사내들의 로망일 테니까.”
나 역시도 그렇다 금철아. 나 역시 금채의 몸을 빌어서 내 자식을 얻고 싶단 말이다. 금채가 낳아 준 내 자식, 그 얼굴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이거다. 그래서 더 더욱 혜경이의 낙태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르지. 또, 그녀의 목숨 자체를 빼앗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너의 그런 소망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서 정말 유감이구나. 혜경이는 지금 생사여부조차도 모르고 있다. 물론,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여러 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에 대한 소식이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상한 것이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전혀 그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는 점. 그 한 가지가 너에게 있어서 일로의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시체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던 낙하지점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 역시 약간의 희망을 가져 볼만도 하지. 하지만 금철이 너는 이미 혜경이의 원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록, 니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니 아버지가 저지른 일이니, 자식인 너로서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지.

“그래, 그렇게 해.”

“고맙다. 자, 들어라. 우리의 전도를 위하여. 그리고 혜경이와 금채를 꼭 다시 찾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위하여.”

“그래, 위하여.”

“그런데 말이다 동신아, 나는 말이지. 혜경이가 꼭 대전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전 어느 구석인가에서 자기 엄마와 함께 말이지. 그런데도 부하들과 함께 대전 바닥을 이 잡듯이 뒤져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옛날 안면이 있던 산동네 사람들까지 찾아다니며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또 그 사람들 역시 이미 내가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라서 말이다.”

“글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내가 대전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거기에 있었던 건 분명하니까.”

“너 정말, 대전에 있을 때 혜경이 하고 계속 만나고 그런 적 없냐? 혜경이가 너 엄청 좋아했었는데?”

“물론, 그 애가 나를 좋아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일부러 피했지.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그 애 원대로 해 준 적은 없다. 너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오직 금채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고.”

“그래...... 그 심정 내가 겪어봐서 알지.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는데, 싫어하는 여자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경우만큼 끔찍한 일도 또 없으니까.”

“내가 너무 차갑게 대해 주니까, 결국은 떨어져 버리긴 하더라. 어느 날 부터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게 되었지. 물론, 혜경이한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녀 문제라고 하는 것이 어거지로 뭐가 되는 것은 아니잖냐. 너 한테는 혜경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될지 몰라도, 나한테는 금채와 나의 사랑을 가로 막는 전혀 불필요한 장애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으니까.”

“그 바보 같은 것....... 하기야, 나한테도 잘못이 있기는 하지. 혜경이를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일부러 더 그녀를 찾지 않았으니까. 아니,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 금철아, 니 말대로 다 지나간 일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새 출발해라.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말이야. 물론, 금채는 찾아야 하겠지만.”

“아니, 그건 그럴 수 없지. 너한테 금채가 잊혀 진 과거가 아니듯, 나한테도 역시 혜경이는 절대로 잊혀 진 과거가 아니다. 너 두 번 다시는 그런 말 내게 하지 마라. 너는 모른다. 내가 지금도 그 얼마나 혜경이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래...... 미안하다. 내가 말한 뜻은 니가 혜경이 때문에 너무도 괴로워하기 때문에 니 몸도 좀 돌봐라 하는 뜻이다. 너 그렇게 혜경이만을 골똘히 생각하다가는 결국엔 마음의 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그 마음의 병이 결국 육체의 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지나친 궤변일까? 그럴 것이다. 김금철, 지금의 이 녀석에게 있어서는......

“자식, 남 말 하고 있네. 너야말로 금채 생각만 하다가 마음의 병이라도 얻으면 어쩔 거냐? 그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이어지면 또 어쩔 거고?”

“하하! 그렇군. 나 지금 사돈 남 말 하고 있는 거 맞지?”

“하하하! 자식, 알긴 아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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