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40

2025. 10. 2. 08:14ㆍ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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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운동

 

휴대용 소리통 양 귀에 꽂고

춘향가 더불어 물가 둔치 길 걷다.

변학도 그악스런 패악 질에

성춘향의 당찬 마주 대거리라.

그래 걷자.

걷고, 또 걷자.

집장사령 모진 매질에 

성춘향의 독 오른 울부짖음이라.

그래 걷자.

걷고, 또 걷자.

성춘향 굳은 절개, 만고지절 으뜸이요

변학도 추한 행티, 만고지절 으뜸이라.

그래 걷자.

걷고, 또 걷자.

 

(춘향가 판소리에 맛이 갔던 어느 고삐리 1년 학생의 넋두리 중)

 

 

등산 가방을 품에 안은 채, 가출소녀의 새같이 작은 몸뚱이를 들쳐 업고는 삼십 분 동안을 내리 힘차게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등 위에서 새근새근 잠도 잘 자주는 가출소녀. 대견한 것! 등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하기야 불편한 점이 좀 있어도 차마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많이 졸립고, 다리도 정상이 아니었으니 말이지. 

“많이 힘들어요 오빠?”

“아니. 니 몸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가벼워서 말이지. 내가 볼 때 35킬로도 안 될 것 같은데? 정확히 몇이니?”

“그런 건 묻지 말아요. 창피하게.”

“창피하기는. 우리 사이에 창피할 게 뭐 있어.”

“정말 알고 싶어요?”

“그래 말해 봐.”

“37킬로......”

“역시, 가볍긴 가볍구나.”

우리 승주도 1975년 당신은 모르실거야 처음 취입할 때 몸무게가 39킬로였다던데. 아, 승주도 이렇게 안고, 메고, 업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지금의 이런 기분 상태보다도 백 배 천 배는 더 황홀할 텐데. 에고, 미안하다 가출소녀야. 너를 이렇게 둘러업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다니.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단다. 김승주 그녀만큼은 너도 공주미도 공주희도 감히 대신하지 못할 만큼, 정말 특별한 여자라서 말이야.

“그래도 무겁고 힘든 건 사실이잖아요. 사람이 아니고, 다른 물건 37킬로를 짊어지고 간다고 생각 해 봐요.”

“사람하고 물건은 다르지. 사람 몸뚱이는 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서 덜하지만, 물건은 그렇지가 않거든.”

“그게 그런가? 암튼, 미안한 건 사실이에요. 오빠가 힘들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거고요.”

아니야 소녀야. 전혀 미안 해 할 것 없어. 나는 오히려 이렇게 너를 들쳐 업고 갈 수가 있어서 더 행복하단다. 마치, 희를 품에 안거나 주미를 침대로 데려가기 위해 번쩍 안아 들었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내가 새로 영입해 들인 어린 양에 미쳐서 잠시 다른 양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구나. 특히, 주미는 그렇다 치고, 희야 정말 미안하구나. 니가 지금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왜 그래요 오빠?”

새로 영입해 들인 어린 양이 물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양치기 소년은 한동안을 더 그렇게 미안한 감정에 휩싸인 채로 오도카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왜 안가요?”

어린 양은 어느새 내 등 뒤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아, 아니야. 빨리 가자.”

어린 양을 다시 들쳐 업으려고 하자, 완강히 거부하는 어린 양.

“싫어요. 나 이제부터 그냥 걸을래요.”

“왜 그래? 너 다리 때문에 걷기 힘들잖아?”

놀란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면서도 내 마음속은 여전히 희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방 안에 틀어 박혀서 내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겠지. 네가 내 생각 안 하고 다른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다 알어 희야.

“나 때문에 힘들어서 그러는 거잖아. 더 이상, 오빠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기특한 것!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이리 착하기까지. 너 정말 가출 소녀 맞니?

“아니야, 나는 전혀 힘이 안 든다니까.”

그러면서 이번에는 등산 가방을 등 뒤에다 정상적으로 진 뒤, 다짜고짜 가출 소녀의 가녀린 몸뚱이를 앞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마치 귀여운 아가나 된 것처럼...... 팔뚝 아래서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가는 두 종아리. 이런 느낌 정말 좋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주미의 나신을 이런 식으로 자주 들어 안아주기도 했었다. 딱! 파!

“내려줘 오빠! 힘들고 불편해서 어떻게 갈라고요?”

“가만히 있어. 자꾸 그러면 더 안 내려 줄 거야.”

“힘들어하면서도 굳이 왜 이러는 거야?”

이 바보야. 그걸 몰라서 물어? 나는 예쁜 여자를 안거나 업고 있으면, 오히려 힘이 더 난단 말이다. 딱! 파! 왜 또 임마? 화상은 변태! 뭐야 짜샤? 그게 왜 변태야? 예쁜 여자 안아주고 업어주는 것이 왜 변태냐고? 내가 지금 얘한테 추태를 부렸냐 따 먹기를 했냐? 말해 봐 짜샤? 그 그게 그런가? 그 그래 너 변태 아니다. 꼬르륵! 짜식이 말이야 자꾸 꺄불고 있어!

“바보야. 새 털처럼 가벼운 데 무겁긴 뭐가 무거워. 그것 때문에 서 있었던 게 아니야. 집에 계신 우리 엄마 때문이지.”

역시 잔머리 대왕.

“오빠 엄마요?”

“그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이 불효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떡 장사를 나가시는 우리 엄마 때문에.”

억지로 슬픈 감정을 끌어 올려보자니 잘되지 않는다. 미안혀유 엄니. 본의 아니게 엄니를 팔아 먹었네유. 어쨌거나 산행 잘하고 돌아 갈께유. 그라고 엄니 새 작은 며느리도 이렇게 또 생겼당께유! 딱! 파!

“......”

소녀의 작은 몸뚱이가 뱀 만난 개구리 모양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가느다란 종아리 역시 흔들거림이 멈춘 상태다. 떡 장수 엄니란 말이 그렇게도 충격적이었나? 그렇게 십 여 분정도를 더 불쌍한 떡 장수 엄니 생각, 아니 더 불쌍한 희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왜? 너 지금 우는 거야?”

“아, 아니야.”

그러면서도 소녀의 훌쩍임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소녀를 다시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세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운 볼 가득이로 흘러내린 눈물 자욱이 새벽 별빛을 받아 물처럼 번들거린다.

“왜 그래?”

“......”

“떡 장사 엄마란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요. 오빠 말 듣고 갑자기 우리 아빠 엄마 생각이 나서요. 불쌍한 우리 엄마, 아빠. 흐흐흑!”

“......”

제기랄! 괜히 엄니는 팔아먹어 가지고. 딱! 파!

“자자 기분 풀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장터목이야. 거기서 좀 쉬었다 가자.”

“......”

다시 가출소녀의 몸뚱이를 번쩍 안아들고는 가야할 길을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속은 칼로 도려낸 것처럼 에려온다. 희가 겪고 있을 심적 고통이 고스란히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 너 지금 울고 있는 거니? 그래서 이렇게 네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이되어 오고 있는 거니? 혹시 지금, 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도끼 그 자식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거니? 미안하다 희야. 최대한 빨리 네게로 돌아갈 게.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이렇게 너를 혼자 두고 훌쩍 떠나오는 짓은 그만 둘게. 정말 약속하겠어.  

그러는 사이에도 발길은 어느새 장터목에 닿고 있었다. 다른 산행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천왕봉 정상까지 보통사람의 발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눈이 약간 덮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시간 이십 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강철 같은 내 두 다리로는 삼십 분이면 족할 것이다. 지금 시간이 여섯시 사십 분이니까 십분 쯤 쉬고 오십 분에 출발한다면 일곱 시 이십 분 전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출 시각은 일곱 시 삼십 분 경. 하늘을 보니, 다행히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렇게 예쁜 소녀하고 같이 왔는데 말이여.

“희정이 너, 지리산 일출은 처음 보는 거지?”

어느새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소녀. 아빠 엄마 생각은 벌써 잊었는가 보다. 기특한 것. 그래야 예쁜 소녀지. 그리고 당연하기도 하겠지. 희정이처럼 어린 소녀가 이런 곳에 언제 와 볼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고 보면, 아직도 천막 안에서 눈깔만 뒤룽거리고 있을 두 녀석들이 본의 아니게 희정이의 천왕봉 일출 구경을 도와 준 셈이다. 고맙다 니 녀석들. 니 녀석들 덕분으로 우리 희정이가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리산 천왕봉 일출 구경을 하게 되었구나.

“오빠는 엄마 생각 많이 해요?

“그래. 이상하게 오늘따라 자꾸 엄마 생각이 나네. 추운 날씨에 떡 팔고 계실 생각을 하니, 더 걱정도 되고.”

죄송해요 엄니. 지금 한 말은 진심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세요. 엄니한테 곧 많은 돈을 안겨 드릴 테니까. 더 이상 떡 장수는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냥, 편하게 팔도유람이나 하시면서 사셔도 될 거 같네요. 이 자랑스러운 아들 녀석이 조만간 의적(?) 두목이 되어 엄니를 편안히 모시게 될 테니 말이죠. 그리고 희야, 너도 곧 이 오빠가 호강 시켜 줄 거야. 그러니 너무 속 썩이지 말고, 차분히 잘 기다리고 있어주렴.

“오빠는 정말 효자인 것 같아.”

“그렇지도 않아.”

고맙다 소녀야. 칭찬을 해 주니 너 참 기특하구나. 하지만, 이 오빠는 이렇게 너와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있는 파렴치한에 불과하단다. 에그!

부지런히 천왕봉 정상을 향해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출소녀는 이제 군소리도 없이 가만히 품에 안겨 있을 뿐이다. 효자(?)오빠가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결 부담도 덜해진 모양이다. 그래, 희정아. 나는 아무래도 특이 체질인 거 같아. 예쁜 여자를 안거나 업거나 어깨에 걸치고 있으면, 이렇게 힘이 더 나는 특이 체질 말이야. 딱! 파!

드디어 저 앞으로 많은 산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산행객들마저 재빨리 추월해 나가기 시작하는 소녀의 오빠. 새해의 일출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 것 같았다. 저마다의 간절한 염원들을 빌어보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들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소녀를 안아 든 소녀의 오빠를 바라보는 등산객들의 반응과 표정이 제각각이다.

“여동생이 다리가 많이 아픈가 보네.”

라며 얌전히 관심을 표명 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빠가 개고생이네.”

라며 상스러운 말로 관심을 표명 해 주는 자들도 있다. 어쨌거나 모두의 오해가 고맙다. 딱! 파!

천왕봉 정상으로 태양빛이 찬란하게 퍼져 흐르고, 솜털 같은 흰 구름 역시 저 먼 하늘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소녀와 소녀 오빠는 일출을 감상한 한참 후 까지도 감히 이곳을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그저 벅찬 감동의 물결에만 사로 잡혀 있었다.

새해의 태양이 처음 떠오를 때, 나는 다짐을 했다.

학하리 파를 내 수중으로 완전히 거두어들인 다음, 내 어머니와 내 여자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 이런 다짐을 했다는 사실을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된다면, 저 자식 저거 제 정신이여? 했을 테지. 하지만, 다행인 것은 아직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출소녀가 그 어느 때 보다 몹시 행복 해 하고 있다. 천지신명이시여. 아니, 지리산 신령님이시여. 정말, 고맙습니다. 저토록 사랑스러운 소녀를 또다시 제게 안겨 주시다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의 지리산 산행 길 역시, 이런 좋은 일이 있을 운명이라서 이렇게 떠나오고 싶었던 가 봅니다. 지리산 산신령님, 정말 고맙습니다. 원하시면 저 하고 소주라도 같이 한 잔? 딱! 파!

사진사에게 부탁하여 소녀와 더불어 사진도 찍고, 말 그대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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