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19. 07:23ㆍ허세창수필

막걸리 대신 시원한 캔 맥주가
내게 있어서도 군복무와 관련된 추억은 꽤나 여럿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그 추억들 중에서도 현역 복무시절에 대민 지원을 나갔을 때의 특별한 기억 하나를 떠 올려 보고자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비슷한 경험들이 있으리라. 바로, 모내기나 벼 베기 대민 지원 행사 중에 마시게 되는 시원한 술 한 잔 말이다.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일을 하고 난 뒤 점심참에 논주인의 호의로 얻어 마실 수가 있었던 그 시원한 술 한 잔.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갔어도 나는 아직까지 그 때 마셔 보았던 술의 맛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때 내가 마셨던 술이 과연 무엇인 줄 아시는가. 그것은 바로 황당하게도 농주라 칭해지는 막걸리가 아닌 논 주인댁 냉장고에서 갓 꺼내 온 시원한 캔 맥주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 논의 주인장께서 막걸리보다는 맥주 종류를 더 선호하셨던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무튼 지금 역시도 돈 몇 푼이면 동네 구멍가게에서 캔 맥주를 쉽게 사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캔 맥주 맛이 아닌, 아련한 옛 기억속의 바로 그 캔 맥주 맛을 뜻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부대의 동료들은 너 나 없이 대민 지원을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 이유야 역시, 맛있는 사회 음식-농민이 내는 점심이나 세참, 그리고 막걸리-을 푸지게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 욕망은 너무도 강해서 최고참 병장에서부터 저 밑의 까마득한 이등병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간절하게 염원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무조건 고참병만 대민지원을 나갈 수도 없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사병들의 그런 간절한 여망을 진작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부대에서 고참들의 그런 횡포 아닌 횡포(?)를 가만히 놔두고 볼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대민지원을 나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소대 전체가 분대 단위로 흩어져 나갈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소대 전체가 아닌 분대 단위로서만 선발되어 나갈 경우도 있었다. 방식이야 어떻든지 간에 결론은 고참병들만 따로 열외가 된 채로 대민지원을 나갈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이등병 쫄따구(졸병)라 해도 고참들 틈에 끼여서 그 꿀 맛 같은 막걸리 한 두 사발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생각 해 보아도 당시에 부대에서 그렇게 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평소 경직된 생활에 잔뜩 찌들어있던 사병들의 숨통을 그런 식으로나마 잠시 트여줌으로 해서 군대 전체로 보았을 때도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를테면 평소에 탈영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던 일부 사병들의 어긋난 욕망을 미연에 예방 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해서 부대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되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사병 스스로서도 결국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결과가 되니, 두루두루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손을 공짜로 지원받는 농민들에게도 아주 좋을 것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이제, 그러저러한 모든 기억들은 먼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후배 병사들에게만큼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내 좋은 벗과 더불어 생맥주집에라도 들려야 할 성 싶다.
2008.10.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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