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소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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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87
87 저만치 여리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이 반지를 끼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내 시야를 벗어날 수 없고 숨을 수도 없다. “선생니이임! 선생니이임!” 역시 효과가 나타나는군. 여리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늦춰진 것이 감지되어 온다. 역시 인간은 권위 의식 또한 무척 즐기는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나 말이지. 아무리 제자 녀석에게 제 육신을 바친 처지라 해도, 그 제자 녀석으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은 과히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라 하겠지. 반지의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이십 여 미터를 날아갔다. 그리고는 정확히 여리의 등 뒤에 내려서서 으스러져라 그녀의 몸뚱이를 껴안아주며 속살거린다. “가지 마! 제발!” “이거 못놓......
2024.08.24 -
[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68
68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던 오동춘은 변혜경의 부재를 확인하고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급해진 심정으로 집 주변과 가까운 산책로 곳곳을 이 잡듯 뒤졌지만, 말 그대로 그녀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져버렸는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토록 거부하던 결혼 허락까지 해 주었던 그녀였는데...... 지난밤만 해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매달려 오던 그녀였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더 더욱 커다란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오동춘이었다. 결국, 그 모든 변화의 모습이 철저히 자신을 기만하고, 안심을 시켜놓기 위한 기망 술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부처님 손바닥 위니까. 너를 반드시 다시..
2024.08.23 -
[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86
86 “당신이 여길 어떻게?” 귀신도 모르게 재빨리 화가 나 있는 여리의 혈을 짚었다. 그리고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픽 쓰러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서 총알같이 뒷자리로 구겨 넣었다. 곱디고운 두 눈에서 끝도 없는 원망의 눈물을 계속 흘려내고 있는 여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아려오긴 했지만, 재빨리 최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금 뒤쳐져 올라오던 희원이도 이제 거의 다 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오 여리씨. 잠시 먼저 집에 가 있어주오. 그 때 가서 설명 해 주겠소. 그러고 나서도 당신이 굳이 나를 떠나겠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못할 거요. 왜? 일단은 설명을 해 주기 전에 당신을 완전히 녹초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 할 거거든요. 흐흐! 세상에서 가장 ..
2024.08.23 -
[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67
제 23장 쫓는 자 쫓기는 자 67 칠월 중순의 무더위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범골을 향하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겨놓고 있던 오춘화는 한층 더 발걸음이 무거운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춘화와 동철이를 데리고 함께 동행하고 있는 오춘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제부(弟夫)인 추판석을 어떻게 달래서 가는 골 댁과의 결합 의도를 취소시키고, 다시 마음을 돌려세울지, 또 그가 막상 춘화를 보게 되면, 다짜고짜 손찌검을 가해 오지나 않을지 여러 가지로 근심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춘이 스스로도 춘화를 다시 보았을 때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 제부 입장으로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
2024.08.22 -
[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85
85 공주미와 더불어 그 짓거리에 빠져 있느라 미처 들장미 소녀 캔디가 끝난 줄도 모르고 있던 고삐리 녀석은 아차 싶은 생각으로 부리나케 거실 쪽으로 나가 보았다. 하지만, 바보상자는 이미 동물의 왕국이 돌아가고 있었고, 의젓한 아이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 반 궁금 반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던 것인데, 그랬던 것인데...... 의젓한 아이가 정원의 한 쪽 끝에 있는 향나무 그늘 아래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얼굴엔 정말 다 큰 처자와도 같은 짙은 수심의 그늘까지 가득 띠운 채. 그래, 결국 다 알아 버렸구나. 이런 쪼다! 어리다는 생각으로 너무 방심을 했어. 하지만, 기회는 아직 있다. 니가 아무리 영악스러운 아이라 해도 결국은 애..
2024.08.22 -
[창작장편소설]별빛의향연66
66 부하들에게 모든 지시를 끝내고 그들을 죄다 집 밖으로 내 보낸 김금철은 또다시 이층의 김금채가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 위에다 발을 올려놓았다. 이민정의 방과 또 복도 사이를 둔 그 건너편 김금채의 방 모두 지금은 고요한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민정은 책을 읽거나 잠을 자고 있을 테고, 금채는 아직까지도 심란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 채 큰 번민에 휩싸여 있을 게 뻔했다. 십년 만에 다시 재회한 친오빠가 여전히 동신 오빠를 달갑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많이 상심 해 있는 그녀였던 것이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서동신이 제 아무리 가수나 작가로서 출세를 하고, 돈까지 많이 벌었다고는 해도 엄연히 그의 집안과 자신의 집안과는 하나가 될 수 없는 ..
202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