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안동지역 목조건축 문화재를 찾아서

2025. 1. 13. 14:34허세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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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목조건축문화 문화재를 찾아서

 

저번에 저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동(安東)하회마을과 그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병산서원, 그리고 안동시 법흥동 소재의 임청각 건물, 또한 안동시 오천리 소재 군자마을 내에 있는 탁청정 등을 차례대로 돌아보고 왔습니다. 세 곳에 각기 위치하고 있는 목조건축문화재들을 사진이 아닌 실물로서 직접 접해 보고, 또 그 목조문화재들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느낌까지도 오롯이 가슴 안에다 품어 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선 제가 가장 먼저 들리게 된 곳은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122호)’이었습니다. 언젠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이 하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가 되고 있는 그런 마을이지요. 그런데 이 곳 ‘하회마을’은 서애 유성룡 선생으로 대표가 되는 풍산 유씨들의 집성촌이라고 하더군요. 집성촌의 역사가 거의 600여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회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또다른 볼거리 유산이 바로 그 유명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69호)’라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길에서는 계획된 일정상 직접 그 공연을 구경 할 수는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마을 안 상설마당에서 정기공연을 갖고 있다는데 다음에 언젠가는 꼭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직접 그 흥미로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체험 해 보리라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하회마을의 본래 우리 말 이름이 ‘물돌이동’이라고도 하더군요. 말 그대로 물(낙동강)이 마을을 말굽형상으로 크게 감싸 돌아 나가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멋진 이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말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때 우리말 명칭들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촌스럽다고 하는 고정관념들은 이제 많이 사라지게 된 것 같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하회마을에는 ‘하동고택’, ‘남촌댁’, ‘주일재’, ‘삼신당 신목’, ‘작천고택’, ‘원지정사’, ‘빈연정사’, ‘만송정 솔숲’, ‘옥연정사’, ‘겸암정사’, ‘충효당’, ‘양진당’, 그리고 ‘북촌댁’과 같은 유서 깊은 옛 가옥들과 문화재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보존이 되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옛 가옥 안에는 사람들이 직접 살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요. 박제되어 있는 문화재가 아닌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직접 고가(古家)에 살면서 쓸고 닦고 다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 역시도 그런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을 골목길들이 모두 시멘트 포장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편의를 위해서는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할 테지만, 어떤 면으로 보자면 그러한 사소한 불편쯤은 능히 참아 넘길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왕에 중요한 민속마을로 지정이 되어 진 처지라고 한다면 더 더욱이 그런 의식을 가져주셔야 하겠다는 말인 것이지요. 그분들에게 너무 삶의 불편만을 강요하는 것 같아 죄송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 생각에는 그 시멘트로 포장된 고가마을 골목길의 바닥모습이 명화(名畵)속의 사족(蛇足)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다시 발길을 옮겨 제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유명한 병산서원입니다. 사실, 병산서원(사적 제 260호)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선조5년(1572)에 후학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풍산현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 하더군요. 그 후로 광해군 6년(1614)이 되어서 서애 선생의 학덕과 업적을 기리는 마음으로 유림 측에서 사묘를 세우고 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명문 서원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산서원이 특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서애 선생의 그 명성도 명성이지만은 무엇보다도 병산서원의 그 위치 자체가 주변 풍치들과 아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서원의 만대루 위에서 조망이 되어지는 낙동강과 그 주변 산세의 풍경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그 어떤 감흥을 받게 되니 말이지요. 함께 동행 하였던 다른 분들 역시도 너나없이 그런 기분에 젖어드는 눈치더군요.

다음 세 번째로 제가 병산서원을 떠나서 찾아간 곳이 바로 안동시 법흥동에 소재하고 있는 임청각 건물입니다. 임청각 건물의 바로 옆에는 국보 제 16호 법흥동 7층 전탑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지요. 조선중기(1515년)에 세워진 이 곳 임청각 건물에는 백사 이항복, 농암 이현보 선생 등의 시판이 걸려있고 임청각의 현판 역시도 퇴계 선생의 친필로 되어있을 만큼 매우 격조가 높고 유서가 깊은 목조건물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가 볼 때에도 우리 한옥의 우아하고 맵씨 있는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비록, 고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철길이 바로 그 옆을 비껴가고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고가의 마당 안으로 들어서고 보니, 그처럼 또 마음이 편안 해 질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우리네 고가가 안겨주는 독특한 향취라고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건축물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지요. 

이제 마지막 네 번째로 제가 살펴 본 목조문화재는 바로 안동시 오천리 소재 군자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탁청정 정자건물입니다. 바로, 과거 안동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 위기에 처했을 때 이 곳 군자마을로 이전을 해 온 건물인 것이지요. 물론, 이 마을 안에는 탁청정 이외에도 고풍스럽고 정겨운 이름을 간직한 고가 건물들이 여러 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후조당’, ‘사랑채’, ‘산남정’, ‘읍청정’, ‘군자방’, ‘규수방’, ‘외내방’, ‘송죽방’, ‘탁청정’이라고 하는 숙소방이나 정자방의 이름들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바로 그 고풍스럽고 정겨운 고가숙소에서 이번 답사객들 모두 실제 잠을 청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를 살면서 그런 특별한 경험까지 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화재로 등록된 목조 가옥의 고가방안에서 직접 그렇게 밤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이 정말 놀랍기만 한 일인 것이죠. 아마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문화재 보호라는 구실 하에 언감생심, 밤잠은커녕 고가의 작은 기둥뿌리 하나라도 손끝으로 건드려 볼 수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문화재 보호를 담당하는 정책입안자들이나 일반인들의 의식 수준 역시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고가를 진정 고가답게 길이 보전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제야 제대로 터득한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산남정 숙소의 따뜻한 방바닥에서 숙면을 취하고 난 탓인지 몸 상태 역시 한결 가뿐해진 느낌입니다. 더군다나 도회지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고가에서의 새벽 맑은 공기까지도 한결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같았고 말이지요.

이부자리에서 나와 숙소의 창호방문을 가만히 열고 밖으로 나서보니 한쪽에서 탁청정 정자가 의젓한 모습으로 저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책 속의 글에서나 느끼고 사진으로 보아오던 정자를 이렇게 막 잠을 자고 나온 방문 앞에서 실제의 현실로 접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자체부터가 정말 믿겨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인 것입니다. 그런 감격에 휩싸인 채로 저는 ‘탁청정’ 정자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열심히 사진기 안에다 담아둘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목조 건축문화재를 대표하는 것들 중에서 안동시에 소재하고 있는 목조 건축물 몇 가지의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우리의 목조 건축문화재들은 그 우아한 품세와 세련된 형식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그야말로 보기 드물 만큼의 세계적인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재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목조 건축문화재들을 우리 모두가 함께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만 할 것입니다. 서울 남대문의 비극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할 책임 역시도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2008.06.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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