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7. 10:59ㆍ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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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게도 방문객은 젊은 신문기자였다. 그런데 신문기자가 무슨 일로 우리 집을 다? 그 이유는 바로 낮에 옥계동 대전천변 공터에서 있었던 불량청소년 단합대회(?) 건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새 그 소문이 산지사방으로 다 퍼져나갔던 것이다. 역시, 발 없는 소문이 천리까지 간다더니......
그런데 이 사람은 불량청소년(?)들이 단합대회(?)를 가졌다는 그 사실 자체엔 관심도 없고, 그저 그런 모임을 선도한 호정무인이라고 하는 녀석이 펼쳐 보였다는 신기한 경공술(?)에만 관심이 생겨서 부득불 이렇게 없는 시간을 쪼개 왕림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그 호정무인이 나인 줄은 또 어찌 이리도 빨리 알아냈으며, 그 호정무인의 집이 여기라는 건 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낸 겨? 역시 기자나 짭새 종족들이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이라더니......
허지만 기자나리, 그렇게 시간 안 쪼개셔도 되고요. 왕림 안 하셔도 되거든요? 별 시덥지도 않은 기자 나리. 아무리 그렇지만, 허수창이 너, 기자선생한테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맞고요. 나 일부러라도 더 무례 해 지고 싶어요. 왜냐고요? 그거야 뭐 우리나라 기자 나부랭이들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기자 나부랭이들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너무 편협적인 생각 아니냐고요? 아니지요. 절대 편협적인 게 아닙니다요. 그 이유는 말입니다요. 굳이 제가 자세히 언급을 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공감 하실 겁니다요. 게다가 말입니다요. 아 글씨, 그 기자 나부랭이란 작자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겠습니까요. 자신은 어릴 때부터 무협지 광이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꼭 경공술을 익혀보고 싶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자네가 꼭 좀 그것 좀 가르쳐 주라. 가르쳐만 준다면, 사례비로 십만 원 쯤 선사 할 용의가 있다. 사례비가 싫다면, 그 대신으로 자기 사촌 여동생을 친구로 소개시켜줄 용의도 있다. 얼굴은 좀 덜 생겼지만 마음씨만은 정말 고운 아이다. 라고 말이죠.
아 글씨, 이 호정무인을 대체 뭘로 보고 그런 망발을 늘어놓는가 이 말이죠. 사례비 십 만원 운운하는 소리도 기가 찼지만, 그 대신으로 얼굴 덜 생긴 사촌 여동생을 친구로 소개 시켜준다는 그 제의 역시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아니 내가 뭐가 부족해서 달랑 돈 십 만원을 사례비로 받는다거나, 또 그 대신으로 얼굴 덜 생긴 기자 나부랭이 선생의 사촌 여동생을 여자 친구로 소개 받아야 한단 말입니껴? 그런 여동생이 굳이 아니더라도, 중학교 때부터 이미 뼈에 사무치도록 사모하고 있는 우리 어여쁜 여가수 혜은이, 아니 김승주를 비롯해서, 얼굴 제대로 생기고 거시기 능력까지 끝내주는 유부녀 피아노 연주자, 또 귀엽고 깜찍한 가출소녀에다가, 또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 사랑하는 그녀까지도 존재하는데 말이죠. 물론, 사례비 십 만원이라고 하는 것이 평소 용돈 한번 변변히 못 타 쓰고 있는 가난뱅이 떡장수 아줌마 아들 주제에게는 제법 큰 돈 아닌가베? 하실 분도 계시다는 점을 저도 잘 압니다요. 하지만, 그게 말입니다요. 조만간 이 고삐리 녀석이 대전 시내 양대 폭력조직인 학하리 파와 하돌이 파를 깡그리 수중 안으로 갈무리 해 들이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깟 사례비 십 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몇 억, 아니 몇 십억, 아니 몇 백억, 아니 몇 천억, 아니 몇 조, 아니, 몇 경의 돈까지도 우리 엄니 떡 주무르듯 하게 될 터인데, 그깟 십만 원 따위가 뭐가 대수냐 이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저러한 제 잡다한 이유로 인하여 기자 나리는 생각지도 못한 고삐리 녀석의 차가운 냉대를 받고 들입다 그냥 집 밖으로 쫓겨 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라 이 말입죠. 그 작자, 오늘 밤은 아마도 시발네발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겁니다요 네네! 딱! 파!
기자 나리를 그렇게 쫓아 보내 놓고는 전화번호부에서 고고 장 전화번호를 급히 알아내 부리나케 그리로 연락을 취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가출소녀의 동정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바꿔 든 녀석은 인철이었다.
“못 가봐서 미안 혀. 그 여자 하고 집세 문제로 상의가 길어져서 말이여.”
“나한테까지 그렇게 둘러댈 필요는 없잖여? 이미 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 디. 하여튼 나는 수창이 니가 정말 부럽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별 재미가 없다야.”
“건 또 뭔 소리여? 왜 재미가 없어? 니가 그렇게 원하던 예쁜 깔치까지도 같이 있는 디?”
“그게 아니고, 걔들이 너 없이는 절대 같이 안 논다잖어. 그리고는 휭 하니 그냥 찌그러져 버리고 말더라. 하기야, 그렇지 않아도 주미씨를 다시 보고 난 뒤에는 나 역시 심드렁해지긴 했지.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까지 들던 디 뭐.”
이거 정말 보통일이 아니군. 이 자식이 주미한테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렸네. 이걸 어떻게 한다?
“바보 등신 녀석들, 입에 넣어주는 떡도 못 먹어? 주미는 주미고, 걔들은 걔들인 거지. 너 희들 그런 주변머리 가지고 어떻게 깔치를 꿰 찰 껴? 그런 주변머리로는 너 같은 바보 녀석 늙어 죽을 때까지 주미 같은 여자 열 지게를 져다 줘도 털 끝 하나 못 건드릴 껴.”
“야,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녀? 그래도 우린 친구 사인 디?”
주제에 존심은 있어가지고.
“왠 마? 내 말 틀렸어?”
“아니, 꼭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게 그래도 그렇지. 그래, 나 니 말대로 바보 등신 맞어. 하지만 말이여 수창아. 너도 그랬잖여? 너도 나처럼 여자에게 숙맥이긴 매 한 가지였잖여. 주미씨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만 해두......”
“이 새끼가 증말!”
“아차 미안!”
맞다. 주미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것 참.
“그건 그렇고 희정이는 어떻게 된 겨?”
“건 나도 모르지. 지 집으로 갔겠지 뭐.”
“앞으로 니 형수님이 될 애한테 왜 그렇게 무신경 한 겨? 그리고 걔 가출 소녀라는 거 몰러?”
“아참, 그렇지. 그럼 어디로 간 겨? 근디, 희정이가 형수님? 주미씨는 어떡하고?”
“얌마, 다다익선이라는 말 몰러?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
“야, 허수창......”
“이만, 끊는다.”
딸깍!
딱딱! 파파! 짜샤 너 이 새끼! 이번엔 왜 두 대씩이나 때리는 겨? 화상 너도 사람이냐? 그러고도 인철이한테 큰 소리 칠 자격이 있는 겨? 그럼 어떡하냐 짜샤! 너 같으면 주미를 버릴 수 있어? 희정이를 버릴 수 있어? 승주를 버릴 수 있어? 희를 버릴 수 있어? 말 해 봐 짜샤! 그 그게 그런가 알았어. 화상 니 말이 맞어. 꼬르륵! 어렵쇼! 거 거기 안서 짜샤아!
찝찔한 마음을 구겨 넣고는, 혹시 또 기자 나리나 가출소녀가 집 밖에 와서 서성거리고 있나 싶어 몇 번을 이층 난간에 기댄 채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또 내려다보았지만, 거리에는 아주 오랫동안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이부자리를 깔고서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주미와의 질긴 푸닥거리에 삭신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박 통마저 지끈거리는 것 같아 나도 몰래 두 손바닥을 양 호박 통에 대고는 지그시 압박을 가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또 경포대의 그 민박집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희와 함께 했었던 그 시각, 그 장소(민박집)를 다시 되돌려 보고 싶다고 하는 간절한 열망에 휩싸여들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전혀 뜻하지 않았던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느닷없이, 느닷없이, 방 안 천장이, 방 안 천장이, 팽이처럼,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으니...... 아아아아아!
얼마의 시간이 흘러 버린 겨? 그라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여? 진짜 그 민박집아녀? 내가 벌써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겨? 아니여. 이건 결코 꿈이 아니여. 꿈이 아닌 명백한 현실이 분명한 겨. 꿈속의 일이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고, 또 보여 질 수가 있을 겨? 하지만, 희는? 여기 이렇게 분명히 보이는 희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죽었던 희가 편안한 모습으로 내 옆에 누워 있을 수가 있는 겨? 그렇지 희야? 너 진짜 희 아니지? 가짜 희지? 그래, 역시 꿈을 꾸고 있는 겨. 그래, 꿈이라도 좋다. 꿈속에서라도 이렇게 너를 다시 만나니 그 얼마나 좋은 겨. 아아 희야!
“희야! 희야!”
“아이, 시끄러!”
죽었던 아이가 말을? 게다가 아주 피곤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기까지 하는 죽었던 희. 에그 살 떨려.
“희 희야? 저 정말 너니? 너 맞는 거야?”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희의 씩씩한(?) 목소리란 말인가. 이토록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어여쁜 저 눈동자. 고운 저 얼굴.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니,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다. 제발, 이 꿈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딱! 파!
“아아아! 희야. 아아 희야! 흐흐흑!”
그대로 희의 가녀린 몸뚱이를 으스러질 듯 껴안아 버리고 말았다. 두 번 다시는 너를 보내지 않을 겨. 절대로, 절대로 너를 놓아 주지 않을 겨.
“아이 숨 막혀!”
“희 희야?”
“그만! 그만! 니 마음 잘 아니까 이제 그만! 근데, 창! 이 반지는 뭐야? 처음 보는 건데?”
“반지? 무슨 반지?”
“이 반지 말이야. 혹시 다른 여자한테 선물 받은 거니?”
“......”
갑자기 왜 말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이 이놈의 혀가 갑자기 왜 이래? 우르르르르!
“그랬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
아니여 희야. 절대 그게 아니여. 내가 어떻게 너를 두고 다른 여자를. 아, 미안하다 희야. 물론, 니 말대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절대로 이 반지만큼은 그 여자들한테서 받은 게 아니란 말이여. 미친 놈. 허수창! 너는 정말 미친놈이여.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미친놈이란 정의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이놈의 조동아리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님, 대체 왜 이래요.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별님, 제발 대답 좀 해 줘요.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닌 감요?
희가 내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맹렬하게 몸을 비틀어대고 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왜 이리도 생생한 겨? 꿈이 아닌 겨?
“나를 놓아 줘 창! 제발!”
“......”
통사정까지 하고 있는 희. 별님, 제발 이 저주스런 조동아리 좀 열리게 해 주세요. 희한테 그것이 아니라고 꼭 설명을 해 줘야 합니다. 그래, 도리도리다. 진작 왜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정신없이 도리도리질을 해 보였다.
“그렇게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돼 창!”
어느새 내 품에서 벗어나 방문 밖으로 스르르 걸어 나가고 있는 희. 마치, 발 달리지 않은 귀신이라도 된 것처럼......
거기 서 공주희! 거기 서라니까!
아, 귀신이라도 좋다. 그러니 제발 희야! 희야! 가지 마! 가지 말라니까! 아아아!
하지만, 골목길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 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 줘 희야! 너를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어! 그러니 제발, 내게로 다시 돌아와 줘! 희야아! 희야아!
그런데 저기 보이는 저 승용차, 어쩐지 눈에 많이 익지 않는가. 그래, 바로 그 자식들 차군. 개새끼들! 내 사랑하는 희를 죽게 만든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릴 겨! 다 죽여 버리고 말 겨!
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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