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5. 14:51ㆍ허세창장편소설

49
창가에 처연한(?) 모습으로 기대 선 채, 그 에머랄드 같은 눈빛으로 내 모습만 뚫어질 듯 응시하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를 일부러 모른 체 하고서,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보려 했다. 하지만, 얄미운(?) 그녀는 그런 내 의도를 심술이라도 부리듯, 묵살 해 버리고 만 것이었으니,
“저기, 수창이 학생 잠깐만!”
미치갔네 증말!
갑작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 세우는 그녀의 목소리에 일제히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아이들. 그리고 유난히 더 놀란 눈을 치켜뜨고 있는 사내 녀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정인철 그 녀석. 제기랄! 가까스로 멀리 떼어놓았나 싶었더니, 완전히 도로아미타불 되아부렀네. 저 자식 저거 큰일인 디. 태민아는 안중에도 없고, 또 저 여자만 보고 침을 질질거리고 있네 그랴.
“야, 너희들부터 먼 첨 가라. 나는 저 아줌마하고 할 말이 좀 있어서 말이야. 희정이 너도 얘들 따라서 먼저 가.”
별일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를 더 꾸며대며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싫어 오빠, 나는 오빠랑 같이 갈 거야. 근데 저 여자 누구야?”
에그 요것아! 니 형님이여. 앞으로는 니 형님이 될 여자란 말이여! 딱! 파!
“미안해 희정아. 내가 먼저 살던 집 아래층에 살던 아줌마인데, 집세 문제 때문에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애들하고 먼저 가고 있어.”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싫다니까 오빠! 나는 오빠랑 같이 간다니까. 근데, 먼저 살던 집 아래층 아줌마면 아줌마지 왜 오빠를 불러 세우고 그러는 거야? 그런 문제라면 오빠 엄마 하고 얘기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냐?”
우째야 되는 겨 이거? 그렇지. 재현이 너를 믿어보는 겨. 그나저나 이 좌식아! 정신 좀 차리란 말이여! 이건 뭐 넋이 다 달아나 버린 것 같구먼. 곁에 싱싱한 영계를 대동하고도 저러니? 하기야 나도 저 아줌니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랑 똑같은 충격에 빠졌었으니께. 인철이 녀석 역시도 다를 게 없었고 말이여. 그러니 저토록 고운 아줌니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니 심정이야 오죽 하겄냐. 그러고 보니, 태민아와 최수희가 제 아무리 싱싱한 영계미를 뽐내고 있다 할지언정, 저 아줌니의 원숙한 그것에다 비하면, 그야말로 닭발의 피 수준일 뿐인 것을.
“재현아, 니가 희정이 좀 데리고 가라. 같이 데리고 가서 먼저 놀고들 있어. 부사동 사거리 충무 고고장 알지?”
“어? 으응!......”
마지못해 세 영계(?)의 등을 떼미는 시늉을 해 보이는 녀석. 하지만, 녀석 역시도 아줌니의 엄청난 미모에 넋이 다 달아나 버린 상태인지라 차마 발길을 떼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물며 인철이 녀석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오. 녀석은 목메에도 그리던 옥중 춘향이를 다시 본 듯, 말 그대로 감격에 찬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줌니의 고운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태민아와 최수희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기는 매한가지였으니. 한마디로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고와! 하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이거 정말 미치갔구만. 그렇다고 억지로 마구 몰아댈 수도 없고. 그래. 할 수 없지. 이럴 땐 희정이를 희생양 삼아서 좀 더 단호하게 나가는 수밖에.
“희정이 너 오빠 말 안 들을 거야? 내가 저 아줌마 하고 집세 문제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 그런다는데 왜 이렇게 앙탈을 부려? 우리 엄마는 장사 때문에 저 아줌마 만날 시간도 없단 말이다.”
완전히 딴 사람 같은 차가운 얼굴을 해 보였다.
“오빠......”
미안하다 희정아. 하지만 말이야. 이 오빠는 저 이쁜 아줌니하고 꼭 볼일(?)이 있어서 그래.
그 순간 팽팽한 공기를 가르며 흘러나온 아줌니의 나긋거리는 목소리,
“이봐요! 꼬마 아가씨! 나아 정말 수창이 학생하고 잠깐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안, 잠깐마안 자리 좀 비켜주면 안 될까아?”
“......”
“......”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두 여자의 치열한 눈싸움이 차가운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기고 있다. 최소한 몇 분 정도는 더 흐른 것 같고, 아니 실제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두 여자의 무시무시한 눈싸움은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그 모습을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내 자신은 왜 이리 기분이 나쁘지가 않은 겨? 아니, 꼬습기까지 한 겨? 딱! 파!
하지만, 제법 오래도록 이어질 것만 같던 두 선수의 눈싸움은 의외로 쉽게 판가름이 나 버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억센 아줌니 선수의 일방적 승리. 아마도 아줌니 선수의 강한 기가 가출소녀의 그것 보다는 최소한 몇 수 더 위였던가 보다. 역시 대단 혀 우리 아줌니 선수! 가출소녀 선수의 무시 못 할 기세마저도 단숨에 꺾어놓을 정도라니.
“알았어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뭐. 하지만 우리 오빠 최대한 빨리 보내 줘야 해요?”
“알았어. 최대한 짧게 이야기 하고 보내 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말아”
승자의 여유마저 보여주고 있는 매혹적인 아줌니 선수. 그나저나 주미 너는 얼굴은 그렇다 치고, 목소리마저도 어찌 그리 매혹적이냐? 내가 미친다니까. 잠자리에서의 그 황홀한 교성 소리 하며. 그러니,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겄냐 이 말이여.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고 말이시. 딱! 파!
“희정아, 오빠도 꼭 약속 지킬 테니까 어서 먼저 가 있어. 그리고 너희들도 어서 가 보고.”
“약속 꼭 지켜야 해 오빠?”
“알았다니까. 그리고 재현이하고 인철이 너도. 그리고 민아 하고 수희도 얼른?”
“알았어 갈게 호정무인! 근데 저 여자 예쁘긴 정말 디게 예쁘다. 수희야, 저 여자 혹시, 영화배우 아닐까?”
주미한테만 안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민아 목소리.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여배우 중에 저런 얼굴은 본 적이 없는 걸.”
역시 주미한테만 안 들릴 정도로 낮게 속삭이는 수희 목소리.
“야, 여배우 아니고, 여류 피아니스트니까 아무 걱정 말고, 어서들 가 보기나 해!”
주미한테 안 들릴 정도로 낮게 속삭이는 호색무인 목소리.
“여류 피아니스트? 그렇구나. 그런데 호정무인! 왜 자꾸 그렇게 우리를 쫓으려고 그러는 거야?”
주미한테 들렸다 말았다 할 정도 민아 목소리.
“그러게 말이야.”
마찬가지 주미한테 들릴 듯 안 들릴 듯한 수희 목소리.
“쫓으려는 게 아니고...... 너희들 정말 내 말 안 들을래?”
이하 대사, 주미 귀에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 크기들.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니야. 지금 간다구!”
“그래. 가 갈게!”
“야, 탁재현! 정인철! 침 좀 그만 흘리고 어서들 가보라니까. 너희들 그러다 쟤네들까지 다 놓치고 말겠다?”
“알았어. 갈게! 후우우!”
“재현이 너도 어서?”
“알았어! 후우우우!”
아쉬움 가득한 두 녀석의 긴 한숨. 특히, 인철이 녀석이 길게 내 뿜은 한숨에서는 마치 땅이라도 꺼져 버릴 듯한 느낌마저 든다. 녀석들 정말 많이도 걸떡대는군. 하지만 안 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주미를 너희들한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지. 무엇보다도 주미 자신이 너희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바에야.
인철이 녀석이 무거운 발길을 옮기다 말고는 다시 돌아와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 눈엔 아직도 보일 듯 말 듯 물기가 보인다. 하! 고 자식, 신경쓰이게 하네. 아무리 그래도 주미는 안 된다니까.
“야, 정말 놀랐다. 공주미를 이런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다. 수창이 너는 무슨 복이 그리도 많아서 저런 미인을...... 후우!”
“너 자꾸 헛소리 할 래? 나 그럼 진짜로 화낸다?”
“알았어!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녀. 그럼 나 먼저 간다.”
“그래! 어서 가 봐!”
가련한 녀석. 하지만 어쩌냐 인철아. 이것도 다 니 운명인걸. 그러니 주미는 이제 완전히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최수희로 만족을 해 보란 말이여. 젊고 파릇파릇하고 얼마나 좋냐. 더군다나 남자경험도 없는 숫처녀 아니냐 이 말이여. 그에 비하여 주미는 이제 완전히 헌 여자잖어. 박성철이한테 먹히고, 호색무인한테도 수 없이 따먹히고, 이리저리 마구 잡아먹힌 헌 여자인데 뭘 그리 탐을 내고 그러는 겨. 딱! 파! 화상, 너 지금 인철이 약 올리는 거 맞지? 아녀 짜샤! 내가 왜 인철이를 약 올리겄냐. 그냥 불쌍해서 하는 소리지. 쯧쯧! 화상,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 말 해라. 속 보인다 속 보여! 아니 이 자식은 그런데 뻑 하면 나타나서 사람 억장을 질러놓고 지랄이여 지랄이! 꼬르륵! 얼렐레! 이 자식 봐라. 또 꼬르륵? 짜샤, 너 빨리 이리 안 겨 오냐? 너 이 새끼! 주긴다아?
지금 여기는 인철이 녀석마저 눈물짓게 한 미녀 아줌니 집 거실, 아니 지금은 죽고 없는 내 사랑 희 집 거실. 미치겠다. 희가 없는 집에 이렇게 앉아 있으려니. 그런데 장인 장모님은 어디로 가시고,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겨? 아 물론, 이 여자가 홀로 이 집을 지키고 있지 말란 법은 없다. 자신의 본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어릴 때부터 죽 사촌동생인 희와 더불어 숙부모 슬하에서 자라났다고 하니 말이지. 그러고 보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 여자의 부모님 역시 내게 있어서는 장인 장모나 마찬가지가 되겠군. 거참 장인 장모 많아서 좋네. 딱! 파! 화상, 장인 장모 많은 게 자랑이냐? 짜샤!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지. 하기는 꼬르륵! 어쭈구리! 또 말하다 말고 꼬르륵? 짜샤, 너 정말 죽을래? 좋다. 결산은 다음에 한꺼번에 하자고. 그건 그렇고, 아무리 그래도 이 여자는 어쩐지 이 집에 어울리지가 않는 디? 희가 이미 죽고 없어서 그런 것일까? 또 이미 이 여자는 이집에 있어서의 출가외인이란 선입견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까? 아마도 둘 다 맞을 겨. 그러나 저러나 희야! 희야! 너 도대체 어디로 간 겨?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니 께? 이 바보 같은 지지배!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니가 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와락 내 품안으로 뛰어 들 것만 같단 말이여. 이 바보! 이 천치야! 꺼흐흑! 어서 나와! 어서 나와 보라니 께! 왜 안 나오는 거여? 왜 못 나오는 거여? 이 바보 같은 계집애! 흐흐흑!
“자기야, 우리 이번에 정말 많이 기뻐할 일 생겼어!”
에그, 철딱서니! 희도 죽고 없는데, 뭐가 그리 기뻐할 일이 있다고? 주미 너는 언니가 되어 가지고, 니 사촌 여동생 죽은 게 슬프지도 않단 말이여? 정말 그런 겨? 희야! 불쌍한 것! 어쩌자고 덜컥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 겨? 이 바보야!
“기뻐할 일?”
“한번 알아 맞춰 봐!”
“기쁜 일이 뭐가 있겠어. 희도 이렇게 죽고 없는데. 나한테는 더 이상 기쁜 일은 없을 거야.”
“너무 그러지 말라니까. 나 역시도 그 애가 죽은 것은 정말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란 말이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이미 죽은 아이만 가지고, 살아 있는 우리들이 몸상하고, 애통해 해야만 하는데? 그건 주희도 원하는 바가 아닐 거야. 진정으로 주희의 죽음이 안타까운 거라면, 이젠 그만 슬픔을 잊고, 그 애를 보내 주어야만 해! 내 말이 틀린 거야 자기야?”
그래도 이것아! 어떻게 하루아침에 죽은 사람을 잊을 수 있단 말이니? 이 철딱서니야? 이런 철딱서니를 인철이 자식은 뭐가 좋다고 눈물까지 지어가며 사모하는 겨?
“그래, 자기 말이 맞긴 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희를 잊을 수 있단 말이야? 그게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닐 테고.”
“그래도 우리 이제는 잊어 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기쁜 일도 좀 챙겨봐야 하는 거야.”
“도대체 그 기뻐 할 일이라는 게 뭔데 자꾸 그래? 주택복권이라도 된 거야?”
“주택복권은 무슨......”
“그럼 뭐냐니까? 자꾸 뜸들이지 말고, 그냥 어서 말 해!”
“알았어! 그건 말이지. 바로 예쁜 우리 아가.”
“아가? 자기 아가가 뭘? 우량아 선발대회라도 나가서 우승이라도 했나보지?”
“그게 아니라니까. 자기 하고 나하고 만의 예쁜 우리 아가.”
쿵!
“그게 무슨?”
“새삼스레 놀라긴? 당연한 일을 가지고? 우리가 어디 한두 번 살을 섞은 사이야? 이번에 이혼까지 한 거 알면 자기 기절 하겠다?”
쿵!
“이혼?”
어지럽다. 현기증도 좀 이는 것 같다. 내 아기 임신에다가 이혼까지. 정말일까? 사실일까? 주미야, 정말이니? 정말, 내 아기를 가진 거니? 게다가 이혼까지?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 주미가 본래 황당한 여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황당할 줄이야. 하지만 니 아이가 내 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다는 건가? 니 법적인 남편, 아니 이제는 이혼한 전 남편의 자식이 아니고, 내 자식이란 걸 뭘로 증명할 겨?
“그거 확실한 거야? 이혼한 전 남편 아이가 아닌 게 확실 해?”
“그건 믿어도 돼! 그동안 나 자기 아이 가지려고 엄청 노력을 많이 했었잖아. 그 남자하고, 어쩔 수 없이 관계를 가져야 할 때는 피임 노력을 확실하게 실천했었구. 하지만, 자기하고 그럴 때는 일부러 더 피임 노력을 삼갔었잖아. 자기가 그렇게 하라고 해 놓고서 새삼스럽게 뭘 놀라는 척 하고 그래? 자기는 나 하고 관계를 가질 때, 장화 사용도 한번 해 본 적이 없잖아. 일부러 더 말이야. 게다가 나 역시도 자기가 그러니까 그 어떤 피임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고. 그러니 오히려 애기가 서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꼭 자기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농담할 게 따로 있지 그런 농담을 하냐? 그리고 나는 그 인간하고 이혼하면 안 되는 거야? 싫은데도 억지로 붙어살아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아이는 자기가 오히려 더 원했던 거 아니야?”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희의 집에서 그런 말을. 기왕이면, 다른 곳에서 해도 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가슴속이 터져오는 것 같은 벅찬 이 희열감은 또 무엇일까. 그렇다.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아기를 가졌다고 하니, 가슴이 저절로 벅차오르는 것이다.
“정말, 내 아이가 맞긴 해?”
“틀림없이 자기 아이야.”
“그럼, 그 애기는 어쩌고?”
“그냥 그 집안에 줘 버렸어.”
“그래?...... 안...... 보고 싶어?”
“아니.”
“정말로?”
“그래.”
이건 뭐 타락남녀의 끝을 보는 기분이다. 미안 하오 승주! 그리고 희야! 이래서 희 네가 훌쩍 세상을 등져 버리고 만 거겠지. 이런 추악한 연놈들 때문에 네가 삶을 포기 해 버리고 만 거겠지.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이 엄청난 죄악의 덩어리들을 대체 어찌 하실 작정이십니까? 별님, 나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절대로 별님이 생각하는 그런 싯타르타에 필적할만한, 그리고 허균 선조님께 필적할만한 그런 인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으흐흐!
“그리고......작은 아빠하고 작은 엄마는 더 이상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실 거야.”
“그럼, 그분들이 자기한테 이 집을 물려준 거야?”
“아니.”
“?”
“집은 여전히 작은 아빠 집 그대로지만, 그냥 내가 이 집을 지키기로 했다구. 말하자면, 별장지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마위에 두 손가락을 얹고 잠시 생각에 젖어 보니, 대충 짐작이 간다. 죄송합니다. 장인 어르신. 장모님. 이 못난 사위. 그저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박성철 그 자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순순히 이혼 도장을 찍어 줄 위인이 아닌데?”
“그게 나도 신기하다니까. 의외로 아주 쉽게 찍어 주더라구. 그것도 깨끗한 합의로 말이야. 그러니 자기는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웃기는 녀석이네. 평소의 심보를 보면, 그렇게 쉽게 물러날 녀석이 아닌데?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이미 다른 여자 하고 딴 살림을 차려놓고 있었다든지 뭐 그런 거.”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봤는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오히려 잘 된 일인데. 어차피 그 남자하고는 끝나 버렸는데. 그 남자가 다른 여자하고 동거를 하든 재혼을 하든 나는 아무 관심 없어. 그러니까 자기야, 우리는 이제부터 그런 남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일에만 신경 쓰자. 우리만 행복해지면 그만이잖아. 그런 그렇고 자기야. 아까 그 애는 뭐야?”
“뭐가?”
“아까 그 애 말이야?”
“아 희정이? 그냥 가출 소녀지. 집 나온 가출 소녀.”
“이름이 희정이야? 그리고 가출소녀?”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그러지 말고 이리 와 봐. 우리 애기가 뱃속에서 어떻게 뛰어 노는지 한번 확인 좀 보게!”
“이러지 마! 벌써부터 태아가 어떻게 뛰어논다고 그래. 그보다 먼저 그 희정이라는 아이 걔 하고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부터 말 해 보라니까.”
“어떤 사이?”
“그래 어떤 사이야? 자꾸 만지지 말고!”
“만지지 말기는! 자기가 먼저 잘 가고 있는 사람 붙잡아 끌어들였으면서.”
“알았어. 나도 자기 못지않게 몸 달아 있으니까 우선 먼저, 그 애 하고 어떤 사이인지부터 말 해 줘!”
“꼭 들어야 해? 걔한테 질투 하는 거야?”
“내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애송이한테 질투를 해? 근데 이쁘기는 디게 이쁘더라. 그렇게 이쁜 애가 왜 집을 나왔대? 그리고 왜 그런 애를 자기가 데리고 다닌데?”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 보호 해 주고 있는 거야. 우연히 인신매매범들 한테 붙잡혀 있는 것을 구해 준 것 뿐이라니까.”
“인신매매범?”
“그래! 그러니까 자기도 항상 그런 놈들 조심하란 말이야. 자기 같이 예쁜 여자들은 더 더욱 조심을 해야지. 그 자식들은 예쁜 여자라면 더 사족을 못 쓰니까. 예쁜 여자들일수록 엄청 돈이 많이 된다니까.”
“아휴! 세상이 왜 이렇게 험하게 변해가는 거야? 이제는 인신매매범들 무서워서 밖에도 못나가겠네. 근데, 정말 그것뿐이지? 그 애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그렇다니까 그러네. 자꾸 의심을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는 거 에요. 나도 이제 어엿한 애 아빠가 되었는데, 함부로 아무 여자 하고 어울려서야 쓰겠어?”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아무튼 그 애 하고 절대 사귀면 안 돼! 만일 그랬다가는.......”
“서방님 거시기를 싹둑 잘라버리기라도 할 거라 이 말이지? 에고 무서워. 물건 잘릴까 무서워서라도 절대 그 애하고 사귀면 안 되겠군. 알았어. 자기 말대로 하지.”
하지만, 몰래 만나는 것까지야 니가 감히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딱! 파!
“고마워. 그건 그렇고 자기야. 그 인철이라는 애 정말 나한테 홀딱 빠진 거 맞지?
오늘도 보니까 나를 보자마자 어쩔 줄을 모르던데? 자기 여자 친구들이 곁에 있는데
도 어쩌면 그럴 수 있지?”
“그래, 그 자식이 당신을 짝사랑하고 있는 건 맞는데, 아무래 안 되겠어. 빨리 단념을 시켜야지. 그러다가는 멀쩡한 아이 폐인 만들고 말겠다.”
“그래 자기가 얼른 단념 시켜 줘! 나 정말 부담스럽단 말이야. 그런데 아까 그 다른 머시매도 마찬가지더라. 그 애도 나를 처음 보자마자 눈길을 떼지 못하던데 뭐. 그리고 그 여자애들도 꽤나 놀란 눈치고. 근데 걔네들 다 뭐야? 뭐 하는 애들인데 그런 애들하고 같이 어울려 다니는 거야?”
“그런 일이 있었어. 다른 학교에서 껌 좀 씹는 애들인데, 내가 모두 집합 좀 시켰지.”
“집합? 그럼 자기가 그 애들을 불러내서 혼을 내 준거야?”
“그래. 그 애들뿐만 아니라 대전 시내 전체 고등학교에서 껌 좀 씹는 애들은 다 집합시켜서 교육 좀 시켰지 뭐!”
“정말? 대단해! 정말 대단해! 내 남자가 이렇게도 대단한 사람이라니.”
“그런 대단한 서방님의 품에 어서 안겨보시기나 하시지요 색골 마님?”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제는 나 보다 더 밝힌다니까?”
“이리와 봐! 어서!”
“아이 참...... 헉!”
'허세창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편소설]잎새의떨림51 (2) | 2025.12.17 |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50 (3) | 2025.12.11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8 (0) | 2025.11.27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7 (7) | 2025.11.20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6 (0) | 202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