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59

2026. 2. 5. 06:30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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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나무

 

길을 걷다가 어떤 나무를 보았다.

사방 하늘로 알맞게 푸짐하게

벙그러진 가지들......

그리고 이파리들......

마치, 생명의 위대함과 고고함을

자연스럽게 시위 해 주는 듯 했다.

아니, 그의 의지, 생각 그대로였다.

누구라서 감히 그를 부정하리오.

나무여, 그대는 실로 위대하도다.

그리고 고고하도다.

그런 생각으로 아주 한참동안을

경이의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니, 그를 우러르고 있을 뿐이었다. 

(김승주를 미치도록 사랑한 어떤 고삐리 소년 일기장 중에서)

 

이틀 후, 모 술집 최고급 밀실 안. 

학하리 파 두목 족제비와 부두목 사시미, 그리고 행동대장인 삽자루 세 녀석은 건너편 푹신의자위에서 똥 씹은 얼굴들을 한 채, 호정무인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고, 이쪽 편 푹신의자-일명 소파라고 하는 것인데, 나는 그냥 푹신의자라고 명명하고 싶을 뿐이다. 그냥 그러고 싶다.-위엔 그 이름도 거룩하신(?) 호색무인, 아니 호정무인께서 당당하게 그런 녀석들을 맞쏘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좌우로는 탁재현군과 정인철군도 함께 보인다. 좀 아쉬운 것은 호정무인만 빼 놓고서 두 좌우 협시무인(?)들이 약간 주눅 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긴, 족제비의 명성(?)이 워낙 자자하긴 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불알 달고 나온 녀석들이 이그......

호정무인이 작성해서 보내 주었던 그 쪽지는 두목인 족제비 녀석에게 무사히 잘 전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정무인은 족제비가 자신의 제의를 그냥 무시해 버리거나, 아니면 한 판 승부를 지어보자는 뜻을 전해올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한다. 하지만 족제비 녀석은 의외로 협상을 제의 해 왔다고 하니 이게 대체 뭔 일이여? 예상이 빗나가긴 했지만, 어찌됐든 녀석의 의중이 무엇인지나 슬슬 파악하고 나서 푸닥거리를 해 주어도 될 일이었던지라, 기꺼이 이렇게 녀석의 초대(?)에 응하게까지 된 것이다. 

“반갑소 허수창 학생, 우리 처음 만나는 거지요?”

짜식! 쫄긴 쫄았구나. 고삐리에게 하오까지 다 하고 말이여. 하지만 마, 너는 이제부터 내 발밑이여. 그게 앞으로의 네 정해진 운명인 겨.

“반갑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내드린 쪽지는 잘 읽어보았습니까?”

“그렇소. 읽어는 보았는데 그 제의가 음......”

“어떻단 말입니까?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나 보지요?”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자, 수창 학생! 우선 우리 술부터 한 잔씩 하고 천천히 얘기를 풀어 나가 보도록 합시다.”

무식한 녀석!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더니 기껏 어린(?) 고삐리 녀석에게 술부터 권하다니. 세상 말조여. 게다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비굴한 모습을 보여 줄 줄이야. 저런 모습이 소위 논다고 하는 놈들의 거시기였단 말이여? 에그, 내 낯짝이 다 화끈거리네 그랴.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한 없이 비굴하고, 자신보다 약한 녀석에게는 끝도 없이 위세를 부려대는 모습. 바로 그것이 너희들의 생리였단 말이지. 하긴, 나 역시도 크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부녀를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든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다는 것이여.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할 말은 좀 해 보도록 하지.

“나는 학생이오. 아무리 똥오줌을 못 가려도 그렇지 어떻게 학생에게 술을? 그런 군더더기 소리 말고 어서 본론이나 꺼내 보쇼.”

“아니 저!”

“끄응!”

“쩝!”

아니꼽다는 뜻이리라. 나도 안다 이 좌식들아! 일부러 더 그러는 겨!

“현재, 학하리 조직이 관여하고 있는 업소들의 숫자와 이권의 규모라든가 하는 것들을 소상하게 설명 해 주쇼.”

세 녀석이 똥 씹은 얼굴로 계속 나를 째려보고만 있다. 어쭈, 제법 존심들이 상하셨다 이 말씀이지. 흐흐흐!

“개새끼! 밟아!”

그렇지. 진작 그랬어야 하지. 명색이 호정무인 졸개라는 명함이라도 가져보려 한다면 말이지.

미친 듯이 덮쳐들던 두 녀석의 몸뚱이가 느닷없이 썩은 볏단이라도 된 양 풀썩 풀썩 푹신의자 위로 나뒹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족제비의 두 눈이 크게 치켜 뜨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분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세 녀석은 이제 맨 바닥에다 털썩 털썩 무릎들을 꿇은 채로 고개를 팍 숙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이다. 마치,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인조처럼. 아니, 비유가 적절치 못하군. 마치, 광개토태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토 오랑캐 두목처럼. 

“그래, 자네가 이겼다. 원하는 대로 다 해. 그 대신, 우리가 먹고 살 길도 조금 마련 해 줬으면 하는데......”

“알았소.”

“고맙다.”

“그게 고마워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내 졸개들이 되어 주셔야 겠소.”

“뭐 뭐야?”

“아니 저!”

“끄응!”

세 녀석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소리들. 흐흐흐! 그런 불만이 안 터져 나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겄지.

“왜 싫소 들?”

“끄으응!”

“그것 참!”

“후우!”

역시 세 녀석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소리들.

“싫으면 관두쇼. 억지로 권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 바닥을 영원히 떠나 주시오. 만일, 안 그랬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당신들이 더 잘 알 테고.”

꽃놀이패가 바로 이런 거여. 너희들이 졸개가 되어주어도 좋고 안 그래도 좋고. 이래도 흥이고 저래도 흥이고.

“저기, 수창군......”

족제비의 하소연을 꽁지에 매단 채로 재현이와 인철이를 뒤따르게 하고는 앞발차기로 거세게 밀실 문짝을 밀어 버렸다. 그러자 부서져 나가는 문짝과 더불어 회칼을 손에 쥔 채로 문 밖에 대기하고 섰던 똘마니 녀석들이 급하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똘마니 녀석들의 숫자는 수십 명쯤 되어 보였다. 그 무섭다는(?) 깍두기 아저씨들이 저마다 몽둥이나 회칼들을 하나씩 고나 잡고서 눈깔들을 허옇게 치켜 뜬 채, 조금 씩 아주 조금 씩 반원형으로 죄어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 비켜라! 너희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일부러 거드름을 피워 보았다. 그러자 바로 돌아오는 반응. 똘마니 대표쯤 되는 듯싶었다.

“존만 한 새끼가 무게는 드럽게 잡고 있네! 니가 무슨 이소룡이나 된 줄 아냐? 야 이 존만한 새끼야! 너는 이제 죽었어. 오늘이 니 제삿날이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지들 대빵도 호정무인을 보고 설설 기고 있는 판에 한낱 똘마니 주제에. 그래, 니가 오히려 못난 니 두목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 경우일 터.

어쩔 수 없이 푸닥거리를 좀 해 주어야 할 듯싶다. 녀석들을 영구히 고분고분거리게 만들어 놓기 위해서라면. 약발 좋은 한 방 주사가 오히려 더 디게 아픈 법.

허어이잇!

푸닥거리 시작할 때 들어가는 기합소리다.

푸다닥 닥닥 푸다다다다 다다닥 푸다다 푸푸닥 닥닥!

한 3분 쯤 걸렸지 싶다. 똘마니들 숫자가 제법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긴 영겁(?)의 시간을 소비하고 만 것이다. 자식들이 꺄불고 있어 그냥!

그리고 3분에서 5분쯤의 시간이 더 흐른 후, 술집 내부는 말 그대로 진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재현이와 인철이가 유격조교(?)가 된 채 왔다리갔다리 이 곳 저 곳으로 오가며 널 부러져 있던 군상들의 궁둥짝을 사정없이 걷어차 댄 결과인 것이다.

술집 바닥의 가장 앞 쪽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두 눈을 내려감은 채로 무릎을 꿇고 있는 족제비가 보이고, 바로 그 뒤로는 역시 무릎이 꿇려 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삽자루와 사시미 녀석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면상들이 제법 푸르딩딩히 부풀어 오른 졸개 녀석들 역시도 그 뒷줄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다만, 예외인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술집 남녀 종업원들이라고 칭하여지는 존재들이다. 저들이야말로 뭐 내게 별로 잘못한 일이 없으니, 굳이 무릎을 꿇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 선택하쇼.”

“알......았다. 내가 이 바닥을 뜨겠다.”

호정무인의 무게 잡힌 목소리에 뒤이은 족제비의 쉬어터진 목소리. 말 그대로 족제비 같은 목소리다. 정말 못 들어 주겄군. 명색이 한 구역을 장악하고 있던 깡패 수장의 모습이 저런 몰골이라니. 그래도 일단은 수하로 거두어 둘 필요성은 있겄지. 개똥도 약에 쓸 일은 있는 법이니께.

“굳이 그럴 것 없이 내 밑에서 일을 해 주는 것이 어떻소? 다른 곳에 가 봐야 일자리 잡기도 힘들 텐데?”

“......”

입술이 묘하게 비틀리고 있는 족제비. 그렇겠지. 존심이 무척 상하겄지. 왜 안 그렇겄어? 그래도 할 수 없는 겨.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그대로 통하는 세상이 바로 이 바닥 생리니께. 나는 강(强)이고 너는 약(弱)이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 바닥의 생리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어떻게 처신 하는 것이 당신 자신에게 보다 더 득이 될 것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오.”

와우, 고삐리 입에서 흘러나온 말 맞어? 너 정말 고삐리 맞니? 그래 맞어. 어여쁜 이혼녀까지 여편네로 거느리고 있는 그 잘난 고삐리 맞다니께. 승주! 나 이런 사람이라오. 이제부터는 당신도 거느리고, 아니 그냥 행복하게 해 주고 싶소. 딱! 파!

“알았다.”

한참동안이나 뜸을 들인 후, 족제비의 입에서 겨우 흘러나온 말. 그래, 잘 생각했다. 앞으로 내 밑에서 일 잘 해 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성함이 정확하게 어떻게 됩니까? 족제비란 별명 말고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정식 이름말이오.”

순간, 저 뒷줄로부터 쿡! 하는 웃음소리 한줄기가 삐어져 나왔다. 여종업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최......달식.”

쿡!

큭!

킥!

자고로 여자들만큼 웃음이 헤픈 동물도 없을 것이다. 그까짓 게 뭐가 웃기다고. 달식이보다 더 웃긴 이름도 있었는데. 중학교 때 내 동창 중에는 ‘배우식’이란 이름도 있었단 말이다. 그게 뭐가 웃기냐고? 그런데 그 쌍둥이 동생 이름이 ‘배자식’이었거든. 이래도 안 웃겨? 안 웃기면 말고. 그런데 그 우식이와 자식이 녀석은 정말 불쌍한 녀석들이었어. 집이 째지게 가난해서 점심 도시락도 늘 개떡만 싸 오던 아이들이었으니까. 녀석들, 개떡만 먹고서도 잘 컸는지 지금은 대체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시간이나 내서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니지. 이제부터는 부하들을 시켜도 되겠군. 

“자,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 가족이 되었으니 정말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 세계의 모든 암흑가, 다시 말해서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 정복을 위해 다 함께 일로매진 해 나가 보도록 합시다.”

호정무인의 그 황당 선언을 끝으로 술집 속은 그저,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감만이 사르르 퍼져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포부가 너무 거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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