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56

2026. 1. 14. 10:57ㆍ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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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다음날 오후,

지금 내가 하릴없이 시간을 죽치고 있는 곳은 그 이름도 거룩하신(?) 대산 다방. 사랑하는 우리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다. 옥자한테 내가 일부러 틀어달라고 했다. 곡 제목은 당신만을 사랑해! 언제 들어도 노랫말이, 가락이 내 가슴 속을 후비고 드는 것만 같다. 마치, 우리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가 내게 간절히 사랑을 고백 해 오는 것만 같다. 나도 사랑해 승주! 영원히!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 해!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수많은(?) 다른 내 여자들을 제쳐두고, 엉뚱하게 이런 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인가. 혹시, 어여쁜 영계 여종업원(다방레지)이 새로 들어왔다는 소식 때문에? 그건 아니다. 잘못 짚었다. 그 이유는 바로 희정이 때문이다. 매정하게도 글쎄 그 아이가 어제 나를 문전 박대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삐진 김에 일부러 이곳으로 와서 엉덩이를 깔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가출소녀 희정이. 그 바람에 살짝 심술이 돋기도 했지만, 중국집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과거속의 그 어린 희정이를 생각하며 속절없이 그냥 물러 나오고 말았다. 하긴, 사랑싸움도 가끔씩 해 가며 살아야 더욱 더 깨가 쏟아지는 법. 딱! 파!

그건 그렇고 우리 승주는 지금 뭐 하고 있는 중? 혹시, 길옥윤씨 하고, 새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중?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중? 아니면, 어디 가서 공연을 하고 있는 중? 아무튼 어디에 있든, 늘 건강하게만 잘 있어줘 승주! 조만간 나 당신을 꼭 찾아가고 말거여. 그리고 우리 주미는 또? 우리 주미는 지금 뭐하고 있는 중? 내가 찾아가지 않아서 삐져 있는 중? 그럴지도 모르지. 하긴, 사랑 놀음도 가끔씩 사이를 줘가며 해야 더욱 더 깨가 쏟아지는 법. 딱! 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장옥자가 찰싹 붙어 앉은 채, 통통한 허벅지를 마구 밀착시켜온다. 다른 종업원들의 시기어린 눈초리 따위는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냐. 그건 그렇고 우리 옥자씨, 갈수록 더 예뻐지네?"

빈 말이 아니었다. 장옥자는 그 전통스러운 이름과는 다르게 외모가 점점 더 세련되어져 가고 있었다. 봉봉 4중창단의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라는 유행가 가사 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듯. 역시, 사내든 계집이든 사랑의 꿀물을 주기적으로 충전 받아야 한다. 딱! 파!

(봉봉 4중창단은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4인조 남성 중창단 가수임 - 글쓴이 주)

“정말? 호호!”

다른 자리의 동료 여종업원들에게 혀를 낼름 해 보이기까지 하는 옥자 낭자. 옥자야! 옥자야! 너 너무 그러지 마라. 그러다 너 마담 언니한테 눈 밖에 나서 실업자 신세 되면 어쩔 껴? 하기야, 이런 곳에서 허구 헌 날 늙다리 사내들의 음험한 손길에 시달려 대느니, 차라리 가만히 방구석에나 쳐 박혀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것이 더 낫겄지. 그래, 조금만 기다려다오 옥자야. 이 서방님이 말이야. 조만간 대전 암흑가 전체를 완전히 손아귀에 쥐게 된다 이 말이다. 그 땐 너도 그냥 편하게 가정이나 지키면서 이 서방님이 주는 꿀물이나 받아먹어가며 살게 해 줄게. 나는 말이야. 한번 내 여자가 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책임져 줄 각오가 늘 되어 있단 말이다. 승주 누님? 알았지요? 그러니 승주 누님도 어서 내 여자가 되어주세요. 가만, 심심한데 승주 누님 어린 시절로 회귀나 해 볼까? 딱! 파! 화상, 지금은 옥자 처자한테 집중할 때. 아녀 짜샤! 승주 누님은 특별한 여자라니께 그러네. 심지어 주미나 희정이 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가 바로 우리 혜은이, 아니 승주 누님이란 말이여. 에그, 그 화상! 일편단심 민들레가 따로 없네 그랴. 하기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혜은이, 아니 김승주한테 미쳐서 여기까지 왔으니 오죽 하겄냐. 내 인정 해 주마! 어쭈! 짜샤 니가 또 왠 일이냐? 가만, 너 이 새끼! 결산 해야지? 아직 결산 안 했잖어? 에그머니! 후다닥! 짜샤아! 짜샤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어어!

대산다방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휩싸인 채 잠시 망중한(?)을 즐긴 후, 어렵사리(?) 옥자를 다시 떼어 놓고는 탁재현과 정인철이 기다리고 있을 야간비행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옥자가 혜은이 노래 더 마구마구 틀어준다고 간절히 옷고름까지 잡고 늘어졌지만, 냉정히(?) 그녀의 손을 뿌리치기까지 하고서.

필 콜린스의 감미로운 ‘tonight'이 어둑한 실내를 뱀처럼 휘감아 돌고 있는 저 한 쪽 구석 자리에 녀석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모습이 보였다. 뜻밖이었던 것은 최수희와 태민아가 그들과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녀석들, 벌써 그렇게 진도가 나갔단 말여? 대견하네. 그런데 쟤들 표정이 왜 저려? 맞선이라도 보러 나온 애들처럼 왜 저리 거북살스러운 겨? 가만 쟤들이 지금 뭘 보고 있는 겨?

뜨억! 저 저건?

그랬다. 호색무인과 수 없이 살을 섞고 지금은 그의 아기까지 당당하게(?) 지 몸속에 지녀 가지고 있는 어여쁜 임신녀, 바로 그녀가 거기에 버젓이 현신 해 있었던 것이다. 주미 니가 어떻게? 가만, 아니지. 주미도 이제는 이곳이 단골이나 마찬가지니 이상할 것은 없는 거지. 얼마든지 올 수 있는 곳이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이럴 땐 대체 어찌해야 하는 겨? 난감하네. 다짜고짜 주미에게로 다가가자니 아이들 보기가 민망스럽고, 또 그런 주미를 일부러 외면하고 아이들 쪽으로 가자니 주미에게 미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결정을 내려 버리고 말았다. 이참에 임신녀의 애간장을 좀 태워보기로. 흐흐흐!

“너희들 여기 웬 일이냐?”

기다렸다는 듯 여자애들이 제각기 쫑알거린다.

“대장 보러 온 거야.”

“대장 아니면, 여기 올 일도 없지 뭐.”

그런 거였나? 얘들아, 제발 이러지 마라. 나 임자 있는 몸이야. 저기 내 애까지 가진 여자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얘네들 만나러 온 게 아니고?”

“아니야.”(민아)

“절대 아니야.”(수희)

이것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대 놓고 그렇게 강하게 호박 통을 저어 댈 수 있냐? 재현이 하고 인철이 입장도 좀 생각 해 줘야지. 요 철딱서니들!

“야, 수창아, 저기 그 여자 와 있다.”

주미 쪽을 눈짓 해 보이며 재현이 녀석이 침을 꼴깍 삼킨다. 이 좌식이 증말! 주미가 무슨 세렝게티 평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맛 좋은 임팔라쯤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겨 뭐여? 이 좌식을 오늘 작심하고, 손 한번 봐줘 말어? 식식! 그래, 참자. 가진 놈이 참아야지. 딱! 파!

“그냥 모른 척 해.”

임신녀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아이들에게 몰래 찡긋 해 보였다. 어이없어 하는 아이들의 표정.

“대장! 저 여자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대장이 이렇게도 싫어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찐드기처럼 따라붙을 수 있어?”(수희)

“미친 여자는 아니니까. 아무튼, 너희들도 오늘은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어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모른 척 하냐?”

그러며 침을 꼴깍 삼키는 인철이 녀석. 이 좌식들 정말 왜들 이러는 겨? 이거 아무래도 안 되갔구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식을 올려버리든지, 혼인 신고를 해 버리든지, 아니면 그냥 데리고 살아버리든지 세단 간에 결정을 내 버려야지. 주미가 이 녀석들 손에 어떻게 될 까봐 걱정이 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 녀석들이 철모르고 자꾸만 껍죽대다가 내 손에 한번 죽도록 얻어맞게 될 일이 생길까봐 그게 걱정이 되서 이러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녀석들은 아직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혜은이, 아니 승주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공주미나 장희정한테만 관심을 쏟고 있는 줄 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세상 모든 사내들이 그토록 흠모하는 혜은이, 아니 승주에게 이 애들은 왜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일까? 혹시,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그녀라서 지레 포기 상태? 그래서 만만해 보이는 일반인 여자들 중에서 혜은이 못지않은 미모를 가진 공주미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는 중? 흠!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모른 척 하라니까!”

인철이 말을 무지르며, 살짝 주미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았더니. 음메 무시라! 주미의 표정 정말 가관이다. 붉으락! 푸르락! 그래, 그 단어가 딱 어울릴 것 같다. 그래도 어쩌면 저리 어여쁘냐? 너를 도대체 어떡해야 되는 겨? 임신한 여자가 그렇게 예뻐도 되는 겨? 아 물론, 우리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 보다 더 예쁘다는 건 아니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는 언제든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여자를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생겼네 라고 단언을 했을 경우라 해도, 무조건 승주는 그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승주는 주미보다도 희정이보다도 무조건 더 예쁜, 말 그대로 초미녀라는 뜻이다. 알았다 화상! 같은 야그를 몇 번씩이나 하고 자빠졌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승주를 끔찍이 사랑한 니 마음은 잘 알겄는 디,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 아니 뭐여? 자빠졌어? 이 좌식이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가만, 짜샤 너 이 새끼! 계산 해야지?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스냐아!

“불쌍하잖아. 야! 그나저나 저 여자, 어쩌면 저리도 맛있게 생겼냐. 미치겠다.”(인철이)

이 좌식이 증말?

“맛있게 생기긴 뭐가 맛있게 생겼다고 그래! 쭈굴쭈굴 할망군데!”

허걱! 끙! 민아야, 민아야, 아무리 그래도 쭈굴쭈굴 할망구가 뭐냐? 너 그렇게도 주미한테 자신이 없는 겨? 하기야 보통 맛있게 생겼어야지. 내가 봐도 참 맛있게 생기기는 했다. 딱! 파!

민아의 시샘소리를 듣고, 수희 역시도 즉각 한 소리를 거들고 나선다.

“꼭 늙다리 술집 여자 같애!”

허걱! 끙! 그래도 참아야 하느니! 그나저나 얘들아! 너희들 도대체 왜 이러니? 아무리 그래도 스물여섯 살 밖에 안 된 여자한테 쭈굴쭈굴 할망구에다가 늙다리 술집 여자라니? 우리 주미가 어디로 봐서 술집 여자로 뵈는 겨? 저렇게 그리스 조각상처럼 고상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여자 봤어? 하여튼 계집애들의 시기심이란. 그나저나 스물여섯 살이나 먹은 이혼한 임신녀가 어쩌면 저리도 싱싱하고 매력적일 수가 있는 겨? 내 여자지만, 솔직히 신기하긴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인철이 녀석이나 재현이 녀석이 염치도 모르고 환장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야간 비행 안에 죽치고 있는 모든 어린 죽돌이, 죽순이들의 시선마저도 오로지 저 임신녀에게만 쏠려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러고 보면 나는 정말 행운아중의 행운아인 겨. 만고고금을 통틀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물론, 김승주는 제외하고-를 완전히 정복하고 만들었으니 말이지. 게다가 지금 저 여자의 뱃속에서는 사랑스러운 내 아기까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조금만 더 애를 태워보지 뭐. 스물여섯 살 아름다운 이혼녀가 고삐리 녀석 하나 때문에 저렇게 얼굴이 벌개져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참 짜릿하고, 흥미로운 일 아니겄어? 이런 것을 두고 바로 새디즘, 아니 가학취미라고 하는 것 아니겄어? 딱! 파!

“여기 있다 재현아, 니가 직접 그 자식들한테 가서 삽자루한테 전해 주라."

“이게 뭔 디?”

“뭐긴 짜샤! 통보장인지 경고장인지 도전장인지 아무튼 그런 거지.”

“아, 그 도 도전장이구나.”

“짜샤! 그냥 통보장이라고 해.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도전을 한단 말이냐. 그 자식들이 도전을 해온다면 몰라도.”

모두의 시선이 둥그렇게 변한채로 내 쪽만을 응시하고 있다. 특히, 민아와 수희는 더 호기심이 어린 눈빛을 보내오고 있다.

“아 알았다. 토 통보장.”

“켕기냐?”

“케 켕기기는.”

녀석은 분명히 켕기고 있었다. 걱정마라 재현아. 다 이 엉아가 처리 해 줄 테니까. 너희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어차피 나 혼자서 처리해야 될 일 아니냐. 그러고 보니 인철이 녀석 역시도 안면이 꽤나 굳어져 있었다. 제 아무리 사모하는 여인과 함께 한 공간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라 해도 말이지.

“깔깔깔!”

“큭큭큭!”

느닷없이 터지듯 터져 나온 민아와 수희의 웃음소리. 그래, 사춘기 소녀들의 특권이란 게 바로 저런 것이지. 시도 때도 없이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해맑고 천진스런 개구장이 웃음소리.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그냥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시기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여학교 대빵 면도칼 소녀들인 민아와 수희한테 그런 정의를 내려준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는 해도 말이지.

“갑자기 왜들 웃어?”(호색무인)

“재현이 하고 인철이 표정이 너무 웃겨서. 마치, 꽁지 말린 강아지 꼴 같지 않아?”(민아)

어린 소녀들의 웃음 속에는 어이없는 이유가 짙게 배어 있음을 늘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내들이 볼 때는 전혀 웃기지도 않는 상황인데, 어떻게 저런 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민아야. 수희야, 너희들은 정말 저게 웃기니? 정말 그런 거야? 그나저나 우리 임신녀 불쌍해서 어쩌냐. 서방이라는 작자가 저를 이렇게 소 닭 보듯이만 하고 있으니 말이지. 애처로워서 못 봐 주겄네.

“야, 너희들! 날아가는 참새 니노지를 봤냐? 뭘 그리 쪼개?”(재현)

재현아, 재현아, 그래도 그렇지. 니노지가 뭐냐. 독자들 귀도 있는 디.

“그러게 말이다. 쟤네들, 밑이라도 빠진 거 아녀? 확인 좀 해 볼까?”(인철)

“뭐야?”(수희)

“야, 탁재현!”(민아)

하여튼, 우리 소녀들. 좋을 때는 좋을 때다. 웃기도 잘하고, 삐지기도 잘하고. 그래서 희정이도 그렇게 느닷없이 삐져 버린 건가?

“야, 아무리 봐도 민아하고 수희는 저 여자 발끝도 못 따라 갈 것 같다. 어쩌면 저리도 고상스럽고 사랑스럽게 생겼냐!”(인철)

덤으로 녀석은 내 염장까지도 함께 슬쩍 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얻어터질 때 터지더라도 계속 이렇게 답답한 속을 그냥 싸안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간접 항의의 표시이리라. 그래, 인철아. 나 같아도 너 같았을 껴. 저토록 고상스럽고 사랑스럽게 생긴 여자를 두고, 하염없이 속만 끓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께. 그래도 주미는 안 되는 겨 인철아. 주미만큼은 절대로 안 되는 겨!  

“야 정인철!”(민아)

“정인철 너, 말 다했어?”(수희)

웃음기가 싹 가셔버린 계집아이들의 면상. 그 뿐이 아니다. 계집아이들은 독사 같은 눈을 치켜뜨고서 인철이 녀석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으니.

“그러 길래, 왜 우리 속을 먼저 뒤집어?”

보다 못한 재현이 녀석이 인철이 녀석을 거들고 나서자, 이번엔 또 여자애들의 독기 서린 눈초리가 재현이 쪽으로 휙 옮겨져 간다. 그 사나운 눈길들을 그대로 받아 낼 자신이 없었던지 여자애들 쪽은 외면한 채, 오로지 내게다만 다른 소리를 던져 오는 재현이 녀석. 에그, 불쌍한 녀석.

“수창아, 희정이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래, 내가 너를 구원 해 주지 않으면 그 누가 해 주겄냐.

“당분간 헤어져 있자고 그러더라.”

“정말?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별 일은 아니야. 그나저나 민아 하고 수희 너희들 그러다 사파리 안 될라나 몰라?”

“대장!”(민아)

“대자앙!”(수희)

그 순간, 기어코 우려하던 일이 터져 버리고 말았으니,

탁 드르륵 의자 밀려나가는 소리와 더불어 또각또각! 굽 높은 소리를 요란스레 울려대며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들고 있는 고상스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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