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58

2026. 1. 29. 12:47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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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골목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잠시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부차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두 여자의 관원 혈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그러자 내 양 옆구리에 끼인 채로 곰장어 꿈틀대듯하던 두 여자의 몸뚱이가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축 하고 늘어진다. 그제야 가출소녀가 학학거리며 뒤 쫓아와서는 숨이 턱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오빠 미쳤어?”

하긴, 그럴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가출소녀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할만도 하다. 하지만 희정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하늘같은 서방님한테 미쳤냐는 소리가 나와? 떽! 할 소리 있고 못할 소리가 있는 겨!

“이것아, 오빠 지금 위험에 처해있는 여자들을 구해 낸 거야. 악의 소굴에 갇혀있던 여자들을 구해 낸 거라고.”

“그게 무슨?”

허나, 철부지 가출소녀의 의문을 곧바로 풀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세 녀석이 벌써 저만치로 눈에 비치고 있었으니 말이지. 녀석들의 손아귀에 움켜쥔 비수의 날 끝이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물고기 비늘처럼 희번뜩인다. 나라는 존재가 저 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터. 그나저나 반지로 제압을 해 줄까 발차기로 제압을 해 줄까? 잠시 고민이 된다. 그래, 이번엔 내 주특기로 나가보자. 반지로 제압하는 것은 좀 싱겁잖아. 인생살이가 너무 간단하면 무료증도 몰려오는 법이거든. 더군다나 지금은 세 여자까지도 여섯 눈 동그랗게 뜨고 서방님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지 아니한가. 한 소녀는 오도카니 서서 그러고 있고, 두 처자는 마비된 몸뚱이를 골목길 담벼락에 편안히 의지한 채로 그러고 있고. 그래, 반지의 힘도 약간 보태주지 뭐. 왜? 내 여자들한테 최대한 멋지게 보이고 싶으니까. 딱! 파!

제물(祭物)들은 아가리를 딱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서운 고삐리 녀석이 느닷없이 지구의 중력도 무시한 채 자신들의 눈앞으로 너울너울 날아들고 있었으니 말이지.

푹! 쿡! 툭! 쿵! 쿵! 쿵!

무슨 의성어인지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독자 분들은 벌써 다 눈치를 채셨을 줄 안다. 내가 보기에도 제법 그럴듯한 장면이 연출되었지 싶다. 무협 영화가 별건가 이런 게 바로 무협 영화지. 어때 요것들아. 너희들 서방님 솜씨 멋지지?

“지푸라기들! 별것도 아닌 주제에! 그건 그렇고 오빠, 이 여자들 대체 모야?”

제 서방의 멋진 활약에 어깨가 으쓱해진 어린 아내의 외침.

“말 해 주었잖니. 악의 소굴에 갇혀있던 여자들 구해 낸 거라고.”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하여튼 여자들 직감 능력 하나는 알아줘야 혀. 그래 희정아, 오빠한테 이미 한두 번씩 몸을 바쳤던 처자들이란다. 그래도 악의 소굴에서 구해낸 것은 사실이잖니. 아무래도 안 되겄어. 일단 희정이를 잠재워놓고 두 여자의 혈을 풀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어린 애가 너무 눈치가 빠르니 말이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희정아, 잠깐 너 이리 좀 와 볼래?”

“왜에?”

“왜긴 왜야? 너가 너무 이뻐서 입술박치기 좀 해 줄라고 그러지.”

“뭐야? 하여튼 황당하긴! 이런 순간에 무슨 입술박치기야.”

“이런 순간이 뭐 어때서? 오히려 더 짜릿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하긴......그거야......그렇긴 하지만......”

에그, 어린 것이 통 마다하질 않아요.

쪼옥!

“아음!”

꼬르륵!

입술박치기를 받다말고 느닷없이 서방님 품안에서 코 잠들어 버린 가출소녀. 믿거나 말거나 입술에도 분명히 혈 자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희정이를 가만히 처자들 옆에다 뉘어놓고는 급히 두 처자의 관원 혈을 역으로 되짚어서 풀어주었다.

“수창......”

가냘프게 흘러나온 소희 목소리.

“허수창 너......”

가녀리게 흘러나온 진숙 목소리.

“일단 우리 다른 곳으로 가서 얘기 하자고. 행인이 저 깍두기 놈들을 보게 되면 괜히 시끄러워질 테니까.”

상황판단이 빠른 화류계 처자들답게 신속히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여주는 소희와 진숙. 그래 요것들아! 나 너희들하고 할 얘기가 많아. 특히, 진숙이 너 하고는 결산할 일도 있고. 감히, 서방님을 배신하고 저 자식들하고 한 통속이 돼? 물론, 그런 너 때문에 가출소녀를 만난 것도 사실이지만......

희정이를 들쳐 업고 두 처자를 이끌고서, 골목길을 슬슬 빠져 나오며 가만히 뒤를 돌아보니, 좀 전에 곁을 스쳐갔던 그 행인이 우리가 방금 떠나왔던 그 위치쯤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는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라도 신고를 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촉새처럼 다가 와 서는 택시에 재빨리 내 여자들을 태웠다.

 

여기는 꽤나 비싸 보이는 고급 여관 3층 건물의 2층 객실 안.

가출소녀는 침대의 한 쪽 모서리에서 공주님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고, 화류계 두 처자는 침대의 다른 모서리에 나란히 걸터앉은 채, 자신들의 서방님 얼굴을 감회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소희는 어떻게 된 거야? 강릉에서 어떻게 여기로 온 거야?”

“......”

하지만 소희는 눈만 더 둥그렇게 뜰 뿐이다. 화류계 여자치고는 눈빛이 제법 맑다. 그렇다. 내가 고속버스 안에서 소희에게 반했던 이유도 역시 저 맑은 눈빛 때문이었지. 나는 본래 눈빛이 맑아 보이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그러면서도 색기가 적당히 가미가 된 눈 말이지. 한마디로 주미의 눈 같은...... 그런데 왜 대답은 않고 눈만 둥그렇게 뜬 것일까. 그거야 뭐 반말 때문이겠지. 하지만 소희야. 너는 이미 내게 머리를 얹었잖니. 그러니 나이가 무슨 대수야. 네 서방님이니까 반말도 하는 거지. 그리고 너 자살 미수사건은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굳이 내 여자의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도 않으니까.

“왜 그래?”

“응? 아 아니야. 자 자기 자살기도 사건 신문에 났을 때 그 때 왔지 뭐.”

에그, 자살 이야기는 하지 말자니까. 그러고 보니, 너나 나나 자살기도 동지이긴 하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진숙의 저 표정은 또 뭔가? 느닷없이 오뉴월 서리 같은 저 표정은? 그건 바로 소희가 방금 전에 한 대사 속 한 단어 때문일 터. 바로, ‘자기’란 그 말...... 그 단어 하나로 단숨에 우리 관계를 눈치 채고 만 것이겄지. 화류계 여자들은 눈치가 9단이니까. 믿거나 말거나 이건 정말 사실이다. 산전수전 온갖 남자를 다 겪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숙아. 너무 질투는 하지 않아도 돼. 이 서방님은 내 여자들을 골고루 사랑해 줄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지. 딱! 파! 한 번 내 여자가 된 사람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잘 건사 해 줄 거란 말이다. 그래서 불쌍하게 죽은 희까지도 후생에 다시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거 아니겠니.

“그럼, 내가 병원에 입원 해 있을 때? 그런데 왜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지?”

“그러고는 싶었지만, 빠져 나올 기회가 없었어."

그랬겠지. 죽일 놈들! 아니, 살릴 놈들! 잘 살려서 내 밑에 두어야 할 놈들. 물론, 개과천선도 시켜야 하겄지. 비록, 암흑가 놈팽이 짓을 해 먹을지언정, 세상을 위하여 무언가 좋은 일도 한 두어 개 쯤은 할 줄도 아는 그런 놈들로 변신을 시켜 주어야 하겄지.

“그건 그렇고 진숙이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진숙이?”

우리 진숙이가 아직도 화가 덜 풀렸단 말이지?

“왜? 진숙이라고 하니까 기분 나뻐?”

“그걸 말이라고 해? 나이도 어린 게......”

“얼씨구!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누나 대접만 받으려고 그러네?”

“내가 뭘? 음 그거, 지리산에서의 일? 그거야 오히려 더 잘된 일이잖아? 그 바람에 결국 저 꼬맹이도 만날 수 있었던 거고?”

소희도 질투하고, 희정이까지 질투하고 있다 이거지? 그래 진숙아, 니가 그만큼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여 주마! 그리고 니가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들, 그 어찌 저 깜찍한 귀염둥이와 조우할 수 있었을까. 그래, 인정한다. 그런 의미로 이번 한번 만큼은 너의 죄를 기꺼이 사하노라! 딱! 파!

“아무리 그래도 꼬맹이가 뭐니?”

“그럼 뭐라고 불러?”

“가출소녀......”

“푸훗!”

“큭!”     

그래, 바로 이 것이다. 웃고 살아야 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웃으면, ‘엔돌핀’이라는 물질이 인체 내에 생성되어 우리 몸뚱이를 아주 이롭게 해 준단다. 그래야 여자들 피부도 고와 져 이것들아. 너희들 피부가 고와지면, 이 서방님한테도 좋은 일인 것이고. 딱! 파!

“자, 우리 이제 지난 일은 다 잊고 새 출발 해 보자고. 이제부터는 내가 누나들을 편안히 지내게 해 주고 싶어. 그러니, 더 이상은 그 자식들 눈치 안 봐도 돼. 누나들도 짐작하다시피, 수 일 내로 내가 학하리 파를 접수하게 될 테니까.”

떵!

멍!

호색무인만의 필살기, 이름 하여 느닷없이 화제 돌리기 신공 한 수로 급격히 표정이 변해버린 두 처자들의 반응을 보라. 후후! 니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이 서방님한테는 못 당할 걸? 딱! 파!

“누나들 어떡할래? 대산 다방 옥자 누나하고 셋이서 같이 할래, 아니면, 각자 해 볼래?”

“뭘? 뭘 말이야?”

두 여자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말. 희한하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어감, 똑같은 음조로 흘러나온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두 여자가 다 이 서방님의 정기를 받아먹었던 전력의 동질성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상상 내지는 망상을 좀 해 보고 싶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딱! 파!

“화류계 여자들이 왜 이리 눈치들이 없어? 척 하면 착 이지. 이제부터는 내가 학하리 파 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잇권을 한 손에 거머쥐게 된다 이 말이야. 한마디로 학하리 파를 까부수고, 아니 접수 해 드시고 누나들을 편안히 모시겠단 말이야.”

“......”

“......”

두 처자는 할 말도 잊은 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저 지들 서방님의 얼굴만 계속 치어다보고 있다. 많이 놀라기도 했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이제부터 복 터진 겨. 서방 하나 잘 만나서 평생 호의호식호정 하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말이여. 여기서 ‘호정’이란 단어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들 아시리라 믿는다. 말 그대로 밤일을 말한다. 딱! 파!

“어찌됐든 이제부터 누나들은 안심해도 돼. 그리고 여기 여관방에 한 며칠 머물러 있든가 아니면, 다른 어디 호텔방으로 가서 묵고 좀 있어. 내가 일을 다 끝마칠 때까지.”

“......”

“......”

여전히 황당한 표정들을 풀지 못하고 있는 두 처자. 하긴 그럴 만도 하겄지. 자신들의 서방님 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어린 고삐리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 몸으로 그 패거리들을 제압하겠다는 것인지 말이지. 지금까지 그 놈들 때문에 그 얼마나 살 떨어가며 지내 왔을 것인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들이라도 됐어?”

“그 그게 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이니? 나,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소희야, 그러면 못 써. 서방님을 믿어야지 누구를 믿니.

“그런 걱정 붙들어 매 두라니까.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야. 그리고 나한테는 마법의 반지도 있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반지. 아니, 이 지구상에서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당함에서 어이없음으로 급격히 표정이 뒤바뀌어 버리고 마는 두 처자. 떼국 놈들의 ‘변검’이 생각난다. 이것들아. 그런 표정으로 날 보지 마. 너희 서방님은 지금 지극히 제 정신이란 말이여. 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별님한테도 한번 물어보렴. 너희 서방님이 지금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별님은 지금도 분명히 여관방 천장 너머 저 높은 허공중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계실 테니까.

“어쩌다가 니가 이렇게......”

진숙아, 그게 아니라니까 대체 왜 이러니? 하늘같은 서방님을 뭘로 보고.

“내가 뭘?”

“너 아무래도 영양보충 좀 해야 할 것 같다. 홀어머니 밑에서 먹는 것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그러니, 아무래도 영양실조에 걸려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 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특히, 두뇌 세포에 좋다는 달걀은 하루에 하나씩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물론, 콜레스테롤이 좀 들어 있긴 하지만 하루 한 개씩은 괜찮다고 그러더라. 너 달걀은 자주 챙겨 먹고 있니?”

이건 뭐여? 느닷없는 영양사 말투는? 

“쓸데없는 소리. 우리 엄마가 날 얼마나 잘 챙겨 주시는데. 달걀은 물론이고 당근, 양파, 마늘, 배추, 파, 바나나, 딸기, 포도, 수박, 참외, 돼지고기, 소고기, 개고기, 닭고기 등등 아주 잘 챙겨주고 계시는데 뭔 소리 여 지금?”

니가 영양사면 나는 영양사 할애비다.

“그런데 왜 이래? 왜 헛소리를 하고 그래?”

진숙이 너야말로 몸 생각 좀 해야겄다. 그리고 소희 너도. 허구 헌 날 그 해로운 알콜을 몸 안에다 들어붓고 있으니. 게다가 끼니마다 식사나 제대로 했겄어? 그냥 대충 대충 허기나 달래는 수준이었겄지. 균형이 잡힌 식단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생활. 그것이 바로 화류계 여자들의 일상 아니었겄냐 이 말이여.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 서방님이 너희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눌러(?) 줄 테니까 더 이상의 걱정은 붙들어 매란 말이여. 딱! 파!

“나는 지금 지극히 정상이니까 그런 소리는 하덜덜 말어. 이제부터 지켜보면 되잖아. 그러니, 속는 셈 치고 여기에 가만히 숨어들 있어. 쓸데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그 자식들한테 또 붙들려 가지나 말고. 알았지?”

“진숙아 얘 말을 진짜 믿어야 하는 거니?”

“글쎄, 겉모습은 멀쩡한데......”

“이 여자들이 정말? 서방님을 뭘로 보고?”

“뭐야?”

“서방니임?”

에그 실수.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 승주는 본처, 주미는 후처, 희정이도 후처, 진숙이와 소희 옥자 너희들은 씨앗. 딱! 파!

“아, 미안. 말이 빠져서 이빨이 헛 나왔네. 말인즉슨 그렇다는 거지.”

“소희야, 수창이가 아무래도 영양실조에 걸린 거 같지 않니? 그러지 않고서야.”
“글쎄......”

이거야 혈관들을 까뒤집어서 영양물질들을 확인 시켜 줄 수도 없고.

“그건 그렇고, 누나들 정말 어떡할 거야? 어디 목 좋은 곳에다 괜찮은 가게 하나씩 장만 해 줄 테니까, 이참에 잘 들 해보란 말이야. 업종은 아무거나 원하는 걸로 선택 하고. 각자 하든가, 아니면 동업으로 하든가 그건 누나들이 알아서 결정 해.”

“큰일이네.”

“그러게 말이야.”

지친다. 계속 뇌까려 보았자 씨알도 안 먹힌다. 그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지.

“아무튼,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서 잠시 머물러 있겠다는 약속들이나 해 줘. 내가 돌아버렸든 아니든, 그건 조만간 확인이 될 테니까.”

“꼭 그래야만 되니?”

진숙이가 제 서방을 불쌍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며 대답을 한다. 

“물론, 당장은 밖으로 나가기도 두렵지만, 답답해서 어떻게?”

소희는 머리가 돌아버린 제 서방이 불쌍해서라도 말을 들어주겠다는 표정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 주겠다면 된 것이다.

“답답해도 참아. 잠시면 되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 일단 속는 셈치고 그래 보지 뭐. 여기서 나가봐야 그 자식들한테 걸려서 맞아 죽기나 할 테고.”

“나도 속는 셈 치고 니 말 들어줄 테니, 그 대신 너 어디 멀리 가지 말고 빨리 돌아와야 해?”

미치갔네 증말.

“알았다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축 늘어져 있는 희정이의 몸뚱이를 오른 쪽 어깨에다 척 걸치고는 두 여자의 걱정스러운 손짓들을 뒤로 한 채로 재빨리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백 미터 쯤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여관방에다 희정이를 얌전히 코 재워놓고는 재현이 녀석의 집으로 재빨리 전화기의 숫자판을 돌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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