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장편소설]잎새의떨림64

2024. 8. 1. 18:40창작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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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영원히 당신만을

 

이 밤,

또 다시 잠에서 깨어

당신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짓다.

당신 생각에 하염없이 몸부림치다.

그렇게 끝도 없이 깊어가는 밤

사랑, 그 이상의 사랑으로

열정, 그 이상의 열정으로

이 한 몸 다 바쳐 그대만을 위해 살아가리라.

이 한 몸 다 바쳐 그대만을 위해 죽어가리라

영원히 당신만을 위하여

영원히 당신만을 위하여

승주!

영원히 그대만을 위하여 이렇게

영원히 그대만을 위하여 이렇게

승주!

영원히 이 한 몸 다 바쳐서 그렇게

영원히 이 한 몸 다 바쳐서 그렇게

영원히 당신만을 위해 그렇게

영원히 당신만을 위해 그렇게

(김승주에 미친 어느 고삐리의 일기장 넋두리 한 대목 중에서)

 

 

다음 날 아침,

과거 각 연령 대 김승주들과의 다양하고도(?) 아쉬운 만남 내지는 상봉 여파가 채 가시지않은 탓인지, 주미가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아침밥도 제대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서둘러 주미의 집을 물러 나왔다. 물론, 주미가 삐지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는 것도 잊지 않고서 말이지. 내 비록 김승주에 강력히 미쳐 있다고는 해도, 새로이 내 여자가 된 사람들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다시 선언 하지만, 승주는 승주고, 주미는 주미고, 희는 희고, 희정이는 희정이인 것이다. 물론, 옥자는 옥자고, 진숙이는 진숙이고, 소희는 소희고, 혜린이는 혜린이인 것도 다 마찬가지다. 다만, 오늘 아침 굳게 다짐하고 있는 바는 바로 하루 빨리 직접 현실의 김승주를 찾아 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또 그녀로부터 사랑을 고백 받는 일이다. 그리고 승주가 내 여자가 되기만 하면, 더 이상은 노래도 못 부르게 할 참이다. 내가 이렇게 떼돈을 벌고 있는데, 굳이 사랑하는 여자가 외간 남자들 앞에서 온갖 민낯을 비쳐가며, 춤추고 노래하기를 바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승주가 내 의견에 동조를 했을 때 이야기다. 승주가 계속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말릴 권리는 없다. 기꺼이 그녀의 의사를 존중 해 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데, 내가 무슨 권리로, 또 염치로 그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올 해부터는 승주는 만 스물네 살이고, 나는 만 열여덟 살이다. 다섯 살 승주, 열 살 승주, 열다섯 살 승주, 스무 살 승주 모두가 그러했듯이, 스물네 살 승주 역시도 나를 보게 되면, 단번에 내게 함몰되어 버리고 말리라. 그런 후, 그녀와 나는 세상 그 어떤 연인들보다도 더 깊이깊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오로지 서로를 위해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승주씨, 내가 갑니다. 잠시만 기다려 줘요. 당신이 사랑하게 될 연인이 여기 있습니다. 미치도록 당신이 사랑하게 될 연인 말입니다. 딱! 파! 화상, 너 너무 자신감 넘치는 거 아녀? 아녀 짜샤! 나 정말 자신 있다니께! 그나저나 짜샤 너 계산 해야지? 응? 뭔 계산? 뭔 계산은 짜샤? 내가 과거의 승주 누님들하고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때 마다 꼬박꼬박 곁에 나타나서는 성가시게 굴곤 했었잖여? 너 닭대가리냐? 그러니 얼른 대가리 대라! 꿀밤 열 대만 맞어야 혀! 아니 뭐여? 화상 너야말로 닭대가리 아녀? 니 입부리로 분명히 계산 면제 해 준다고 했잖어? 그런 디 뭔 또 계산 타령? 어? 내가 면제 해 준다고 했다고? 내가 언제? 기억이 안 나는 디? 아니 이 화상이 진짜 닭대가리가 되었나? 지가 한 약속도 다 까먹고 자빠졌냐? 너 요즘 아무래도 혜은이 때문에 대가리가 어떻게 된 거 같다. 정신 병원에 한번 가 봐야겄어. 이 자식이 증말? 그나저나 내가 정말 그런 약속을 했다고? 거 참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약속을 해 줬지? 짜샤 너는 영원히 내 호구인 디? 에라이 이 화상표 닭대가리야! 니 닭대가리나 팍팍 더 터져라! 팍팍팍! 파파파! 후다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어! 짜샤아! 너 이 새끼! 이젠 딱딱딱! 도 모자라 팍팍팍! 이냐? 짜샤아아아아아!

걸음조차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박박 기고 있는 주미의 힘든(?) 배웅을 받으며 나 역시도 대문간을 어기적어기적 힘들게 나서고 보니,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광이 번들거리는 멋진 국산차 한 대가 문 앞에 착 대기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말 잘 듣는 군! 그런데 국산 소형 승용차가 아니고, 국산 중형 승용차네 그려. 그래, 그냥 모른 척 하자. 너무 지독스럽게 내 입장만 고집해서도 안 될 일. 검소한 것도 좋지만, 대전지역 최고의 어깨 두목을 모시고 있는 부하들 체면도 어느 정도는 생각 해 주어야 하니 말이여. 더군다나 앞으로는 우리 승주 공주님도 차로 모시게 될 일이 많을 텐데, 그럴 때 승주 공주님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해 드리면 안 되니 말이여. 다만, 아무리 우리 승주 공주님을 모시게 될 차라고 해도 외제차만큼은 절대 안 된다 이거여. 국내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말이시. 나는 비록 어깨들의 두목이 되었지만, 국산품 애용 정신만은 그 누구보다도 드높다 이거여. 그나저나 국산차의 성능도 그리 나쁘지가 않구먼.

“최 기사! 어떻습니까? 어제 그 차하고의 성능 차이가?”

“네, 단장님. 별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오십 보 백 보입니다.”

“그렇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 기사는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예, 1957년생입니다. 단장님!”

승주 보다 한 살 어리군.

“군대 갈 나이 같은데?”

“예, 국졸이라 면제받았습니다.”

그런 가? 국졸은 군대도 못 가는구나. 그럼 나는? 물론 고졸이라 가야 하겄지. 아니, 대졸이라 가야 하겄지. 장차 나는 대학을 졸업해야 할 몸이니까.

“애인은 있습니까?”

“애인은 아니고, 알고 지내는 여자들은 많습니다.”

“그 알고 지낸다는 여자들이 보나마나 화류계 아가씨들일 텐데, 최 기사도 그 불쌍한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요. 될 수 있으면, 인격을 존중해 주란 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단장님.”

“내가 최 고문에게 전체적으로 개선조치를 마련하라고 했으니까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예, 도끼 형님 입원 해 있는 병원으로......”

졌다. 이건 정말로 독심술 수준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해도 될 겨. 반지 이 녀석이 분명히 최 기사 독심술을 흉내 내고 있는 게 분명 하다니 께!

“이제부터는 내가 명색이 그 사람의 윗사람이 되었는데, 윗사람으로서 당연히 문병은 해야 하겄지요?”

“네? 아 네, 단장님.”

그렇다. 떨떠름하긴 하지만, 어차피 내 부하가 된 녀석 아닌가. 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도끼 일행 네 녀석과, 희정이를 납치했던 두 녀석들이 모두 함께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려서 몸 조리 잘하라고 이르고, 충성서약까지 받고 다시 나왔다. 예상보다 더 심하게 알아서 잘못을 빌고, 박박 기어들 주니, 새삼 희 생각이 더 간절히 난다. 미안하다 희야.

억지로나마 희 생각을 털어버리기 위해 다시 또 공중전화로 가서 희정이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장인 어르신이 전화를 받으신다. 어제는 부재중이더니 오늘은 웬 일이시래? 술 안자시고? 혹시, 내가 장모님께 건네 드린 그 돈 때문에? 아마도 그럴 테지. 당신들 생애에 있어서 그런 거금은 처음일 테니 말이여. 여하튼 술받이, 아니 약주가 과하신 장인 어르신이라도 무조건 좋습니다. 왜? 당신은 내 사랑 희정이를 낳아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사위, 당신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로 당신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희정이처럼 완벽한 미소녀를 이 세상에 출현시켜 주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입니다. 실로 당신은 세종대왕보다도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희정이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미소녀를 생산 해 주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입니다. 아, 물론 이런 전제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달아드릴 수밖에 없네요. 희정이가 제 아무리 뛰어난 미소녀고, 또 제 아무리 훌륭한 미소녀라 해도, 또 다른 절대 완벽미의 여신 혜은이, 아니 김승주만큼은 아니라는 그 전제 말입니다.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네요. 또 다른 미의 여신 공주미 조차도, 공주희 조차도 안타깝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미의 여신들인 그녀들조차도 완벽미의 여신인 김승주에는 절대로 버금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딱! 파! 화상, 그만 좀 해라!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 니가 너무 그러니까 독자들이 오히려 혜은이를 미워할까 무섭다. 그럴까? 알았다. 지송합니다. 독자님들. 승주 이야기는 그만두겄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둔다고 우리 혜은이, 아니 승주의 완벽미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짜샤 너 왜 또 혜은이라고 했냐? 후다닥! 짜샤 너, 거기 안스냐아아!

“뉘슈?”

“예, 저는 희정이 친구입니다. 희정이 좀 바꿔주세요.”

“희정이 친구? 자네 혹시, 수창 군 아녀?”

“제 이름을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새살 까지 마라 호색한. 당연히 장모님과 희정이가 알려드렸을 테지. 그 돈이 어디 보통 액수인가 말이야 말이. 그러고 보니, 장인 어르신의 말투 역시 상당히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야간비행에서의 그 느낌이 아니다. 

“어떻게 알긴, 희정이가 알려준 거지. 그나저나 자네 지금 시간 좀 있나? 우리가 자네한테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러는 디. 와 줄 수 있어?”

무슨 할 말씀이실까. 혹시, 돈이 모자라서? 에이, 그럴 리가 없다. 평생 지하셋방만을 전전하시던 분이 그렇게 욕심이 많을 리가 없다. 그 정도면, 아무리 큰 부자라고 해도 일단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큰 액수가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장인 어르신, 아니 희정이 아버님.”

“장인 어르신? 허허허! 고맙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네.”

이 정도면 장인 어르신께서 반허락을 내리신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다른 때 같았으면, 장인 소리를 내 비치자마자 너 죽인다 하고 펄펄 뛰셨을 틴 디 말이여.

어디로 가라고 구체적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스스로 잘 알아서 희정이 집 앞까지 달려와 준 최 기사에게 근처 다방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라 일러 놓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희정이네 집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새삼 야간비행에서 장인 어르신을 실신 시켰던 그 때 그 장면이 다시 떠올라 면구스러움이 많이 느껴진다. 지송합니다 장인 어르신, 그땐 정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요.

희정이가 먼저 마중을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구 내 달려와 내 품안으로 폴짝 뛰어든 귀염둥이를 그대로 길 한가운데서 으스러져라 꼭 껴안아 주고 말았다. 숨이 막힐 만큼 힘주어서 꼭! 에그, 승주 강아지 다음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내 강아지! 딱! 파!

“끄으으!”

몸이 너무 꽉 졸려버렸는지 희정 강아지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신음소리.

“아파?”

도리도리!

“아프면서?”

“안 아파!”

“요잇!”

“아아아파!”

이토록 사랑스러운 희정 강아지가 내 곁에 존재함에도, 어떻게 그렇게 또 승주 강아지에게까지 몰입을 하고, 주미 강아지와는 또 그렇게 질펀한 정사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처럼 승주는 승주고, 주미는 주미고, 희정이는 또 희정이라서? 그렇지. 바로 그거지. 그렇게 억지로라도 정당성을 부여하면 되겄지. 나 정말 벼락 맞아 뒈져도 좋단 말이여. 나 말리지 말어. 승주도 좋고, 주미도 좋고, 희정이도 좋고, 다 좋단 말이여. 딱! 파!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과거의 승주를 만나고 와서, 다시 또 주미와 함께 그 짓거리를 하면서 별님을 속으로 가만히 불러 보았었다. 장난삼아 불러보았던 것인데 별님이 의외로 선선하게 대답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바쁜 사람이, 아니 외계인이 주미와 의 생식 행위 장면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거다. 응큼한 별님. 오히려 인간들의 생식 행위가 매우 흥미롭다고 하면서 한술까지 더 뜨던 별님. 자신은 인간들의 생식행위를 판별함에 있어서 도덕성이나 비도덕성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술 더 뜨던 별님. 불륜이든 아니든 그것의 도덕성 여부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자의적 해석에 달린 문제일 뿐이지, 자신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다던 별님. 그러면서 별님은 이런 말까지 덧붙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고맙게시리.

‘주미 씨는 이제 다른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면 별님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호색무인 후원자인 셈이지. 소위 외래어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로 진정한 서포터스. 흐흐흐! 별님, 승주 일로 잠시 당신을 욕해서 지송합니다. 잊어 주세요. 그 망발을...... 딱! 파!

그리고 또 하나 이실직고(?) 할 일은 어젯밤 과거 승주들과의 조우 이후, 다시 또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가 잠시 잠깐 주미를 품어 준 뒤, 그녀가 또 까무러쳐 늘어져 버린 사이를 이용 해 재차 또 고인(古人)들과의 상봉시간을 가졌다는 점이다. 정말 못 말리는 호색한이란 생각들을 하실 텐데, 그렇다. 사실이 그런 걸 난들 어찌하란 말인가. 태어나기를 나는 호색한으로 태어났으니 말이지. 이런 내가 정말 못마땅하시면, 지금이라도 제 고백을 듣지 마시고, 그냥 책장을 덮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다른 보다 고상하고, 영양가 있는 학술서적들을 탐독 해 주시기 바란다. 특별히, 천문학 관련 책들을 추천한다. 딱! 파! 화상, 너 지금 독자들 협박 하는 거냐? 그려 짜샤! 나 지금 독자들 협박하는 중이여 어쩔래? 야아! 화상아! 너 갑자기 왜 이려? 흐으으! 아녀. 언감생심 내가 어떻게 소중한 독자님들을 협박할 수 있을 껴? 으이그 지송혀유 독자님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유 뭐! 허어어! 그나저나 독자님들, 천문학 관련 서적은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굳이 제 권유가 아니더라도, 꼭들 읽어보세요. 솔직히 제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이건 협박이 아니고,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본의 아니게 정말 미안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재미있는 여행을 독자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얌체같이 저 혼자서 만끽을 하고 돌아왔으니 말이지요.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장희빈과의 첫 상봉과 짜릿한 정사도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제 ‘던’ 기운의 전 소유자이셨던 교산 허균 선생과의 만남 역시 참으로 의미가 깊은 일이었습니다. 반역죄를 받아 능지처참을 당하시기 바로 직전의 모습을 만나 뵌 것인데, 별님에게서 선사받은 반지의 도움으로 얼마든지 썩어빠진 조선 왕조를 뒤엎고, 당신 스스로 왕이 되어 국가 개혁을 완수 해 갈 수 있을 터인데, 왜 이렇게 고분고분 능치처참을 받으려 하시냐고 물었더니, 가만가만 고개를 가로 저으시며 미묘한 웃음만 짓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선생의 속 깊은 뜻을 감히 저 같은 범부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백성의 편안한 삶과 행복 증진에는 아무런 아랑곳도 없고, 오로지 저희들의 잇속만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가렴주구를 일삼고 있는 썩어빠진 사대부 나부랭이들을 전부 때려잡아야 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선생을 구해 내고, 나 스스로가 나서서 조선왕조를 때려 엎어볼까 싶기도 했으나, 차마 그럴 엄두까지는 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산 선생의 누이이신 허 난설헌의 시집가기 전 규수 시절의 모습 하고도 조우를 했었습니다. 외모가 무척 단아하시더군요. 그 분과 대화를 해 보니 정말 똑똑하고, 훌륭한 규수였습니다. 한 가지 죄송스러웠던 것은 아가씨의 방으로 몰래 침투 해 들어가는 와중에서 본의 아니게 아가씨를 크게 놀래 켜 드렸다는 점입니다. 다시 생각 해 보아도 허 난설헌은 시대를 잘 못 태어난 불운한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대단한 여류문인이 되었거나 여류 정치가가 되었을 터인데 말이지요. 그나저나 장희빈과의 만남과 정사 장면을 왜 그렇게 단 한 줄로 짧게 요약 해 버리고 마는가하고 불만을 토로하실 분들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물론, 장희빈과의 조우 장면을 보다 길고 자세하게 다루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의 상봉 역시도 장록수와의 그것과 거의 대동소이했다는 점을 아신다면, 굳이 그렇게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알 수 없는 외계어 대화 장면도 그렇고요. 그래도 들어보고 싶다고요? 장희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숙종을 그렇게 미치게 한 것이냐? 정말 예쁘기는 하냐? 또 승질머리가 정말 그렇게 드럽더냐? 등등 알고 싶은 것들이 참 많으시다고요?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그런 염원을 외면하지 않는 차원에서 장희빈을 반드시 다시 찾아가겄습니다. 사실, 저로서도 그녀의 표독미(?)에 푹 빠지는 바람에 승주 생각마저 잠시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장희빈, 성깔이 대단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매력이 느껴지던 여자였습니다. 얼굴 정말 예쁘더군요. 아무튼 여러모로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물론, 그녀가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자라 해도, 솔직히 김승주만큼은 아니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또 강조 드리고 싶군요. 짜샤 말대로 이러다 정말 여러분들이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 누님을 미워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게 되네요. 아무튼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승주 누님을 절대로 미워하시면 안 됩니다. 김승주가 없으면,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놈입니다. 그녀가 존재하기에 저도 이렇게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가 존재하기에 이렇게 되도 않는 독백도 나불대고 있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 장인 장모님으로부터 근사하게 예비사위, 아니 진짜사위로 떠 받들려지며 맛있는 음식까지 대접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장모님은 씨암탉을 잡아주랴 하셨지만, 내가 닭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럼 오리고기라도 잡아주랴 하시는 것이었다. 에그 장모님아, 너무 그러셔도 이 사위 많이 부담되유! 딱! 파! 부럽다 부러워! 여복 터진 화상 무지 부럽다. 짜샤! 나 지금 장인 장모한테 사위 대접받고 있는 중이잖어. 그러니 잠깐만 찌그러져 있어 줄래? 흠! 알았어. 나는 영원한 하이드니까. 잘난 지킬 박사님을 보위 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할 수는 없지. 그려! 지킬 박사님, 이 못난 하이드는 당신을 위하여 곱게 찌그러져 드리겠습니다. 잘 가!

(정정렬 제 춘향가의 변 사또 생일잔치 대목에서 금주미주 시 한 수를 지어 운봉영장에게 내밀어준 어사또 이몽룡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변 사또를 향하고, 나는 이제 간다라고 인사 아닌 인사를 하는 더늠 대목에서 나온 변 사또 더늠 한 대목임. 다시 말해서 정정렬 명창의 변 사또 더늠 대목 목소리를 허수창이도 그대로 흉내 내 본 것임. 그 더늠 대목을 실제로 들어 본 독자님들만이 잘 가! 란 이 대목에서 저절로 폭소가 터져 나올 수 있을 것임. - 글쓴이 주)

“정말 고맙네. 앞으로도 자네 우리 집 사람들한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부탁 하겄네.”

뜨억!

결국, 장인어르신 말씀 의중은 앞으로도 뭉터기 돈 자주자주 많이 갖다 바쳐주게! 나 돈 걱정 안 하고 술 따라지 노릇 제대로 한번 해 볼라네. 알았지 물주 사위? 이 거 같은 디? 그러지유 뭐. 내가 사랑하는 희정이를 낳아주신 아버님인데, 이 사위가 뭔들 못 해 드리겄습니까유? 딱! 파!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의 성대한(?) 환송식을 뒤로한 채로 공공연히(?) 당신들의 따님을 데리고 골목길을 빠져 나오다 대뜸 눈앞으로 보이는 구멍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왜냐하면, 과거로의 회귀 여행 시, 일곱 살짜리 희정이에게 얼음보숭이(아이스께끼)를 사 주다가 그만 둔 그 가게하고 너무나 흡사 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게는 그 때의 그 가게는 아니다. 희정이네가 다른 동네 지하방에서 살 때의 그 가게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란디 얼음보숭이가 뭐냐고? 그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외래어 아이스께끼의 북한식 용어를 일컫는 말이다. 내가 굳이 북한에서 사용되는 얼음보숭이란 용어를 차용 하고 있는 이유는,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용어가 정말 승주만큼이나 예쁘고 마음에 들어서다. 이 얼마나 예쁘고, 멋스러운 용어란 말인가. 내가 북한 독재 정권을 증오하긴 하지만,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하는 행위만큼은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죽으나 사나, 아이스께끼라고 하는 외래어 사용만 고집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 얼음보숭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란 말인가? 우리 깨끗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가자. 얼음보숭이가 북한에서 먼저 쓰는 용어라 싫으면, 얼음과자라는 용어도 있다. 그런데도 왜 부득부득 국적불명의 아이스께끼만 고집하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다.

“희정이 너 혹시 일곱 살 때 생각나니? 니가 다른 동네 살 때 구멍가게로 이 오빠하고 함께 얼음보숭이 사 먹으러 간 일 있었는데?”

“얼음보숭이?”

“그래 이것아! 북한 사람들이 아이스께끼 대신 쓰는 말이잖아.”

“아, 얼음보숭이? 정말 예쁜데?”

“그래.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는 아이스께끼라고 하지 말고, 꼬박꼬박 얼음보숭이라고 해.”

“하지만, 그런 말 함부로 쓰면 잡혀 가잖아? 북한 사람들이 동무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그 단어를 못 쓰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바보. 내 나라 사람이 내 나라 말 쓰는데 어느 놈이 감히 잡아 간다는 거야? 그런 걱정 말고, 열심히 애용하란 말이야. 만일 그런 말 썼다고 잡아가는 놈이 있으면, 내가 그 놈을 그냥 안 둘 거야.”

“으이그 알았어. 하여튼 누가 깡패 두목 아니랄까봐. 그나저나 오빠하고 나 하고 일곱 살 때 이미 만났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오빠 하고 나는 지리산에서 처음 만난 거잖아?”

역시 허상에 불과했다는 건가?

“그런가? 이상하네. 내가 꿈 꾼 것을 착각한 건가? 어쨌든 너 어릴 때도 다른 동네 지하방에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정말인가? 오빠 하고 나 하고 그런 일이 있었던 게?”

그리고 희정아, 너는 그 때 그 지하셋방에서 니 아빠한테 많이 줘 터지기도 했단다. 에그 불쌍한 내 새끼! 쩝쩝!

“그래, 너는 그 때 너무 어려서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지. 나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우기자. 나 혼자만의 몽상적 경험이라고 할지언정 그런 경험 역시도 소중한 경험은 경험이니까. 억지로라도 우리의 소중했던 경험이라고 설정을 해 두자고 말이여.

“정말? 정말로 우리가 어릴 때도 알았던 거라고? 그치만 이상하네. 나는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바보야. 너는 그 때 땅꼬마였잖아. 그렇게 어렸으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거지.”

헤헤헤! 미안하다 희정아. 자꾸만 이렇게 사기를 쳐서. 마누라한테 사기를 치는 이 서방님 심정을 네가 좀 이해 해 주렴. 나 정말 그 일이 실제의 사실이기를 바라고 싶어.

“그럼 우리 아빠 엄마는? 어렸을 때 오빠 하고 나 하고 알고 지낸 사이라면, 아빠 엄마는 더 잘 알 텐데?”

그렇군. 하지만 희정아. 이 오빠는 또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구나.

“장인 장모님은 이제 기억력이 약간 흐릿해질 때가......”

딱! 파! 화상, 너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는 겨? 그럼 희정이 부모님이 치매에 걸릴 연세라도 되었다는 겨? 화상아, 희정이 부모님은 아직 오십 줄도 안 됐어. 두 분 다 아직 팔팔한 사십 줄이라 이 말이여. 나도 알어 짜샤! 누가 치매에 걸릴 연세라고 했냐? 다만, 우리 보다는 약간 노쇠한 나이다 이런 뜻이지. 짜식이 말이야. 자꾸 비약을 시키고 있어. 짜샤 너 죽을래? 아니!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어!

“그럼 오빠가 그 때 일을 먼저 말씀드려보지 그랬어?”

“다음에 말씀 드려보지 뭐.”

“그럴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물어 보면 되겠다.”

에그, 우리 귀여운 강아지, 물어보든 말든 그건 네 자유니까 실컷 물어보시고, 일단 우리 얼음보숭이부터 하나씩 빨아보실까요? 나 말이야. 그 때 지갑을 안 가져와서 너한테 얼음보숭이 못 사준 게 정말 한에 맺혔단 말이여.

“그래, 니가 직접 한번 물어 봐. 그나저나 너는 어떤 거 먹을 거야?”

“아무거나.”

“그럼 나도. 할머니, 이 얼음보숭이 두 개요.”

희한하군. 이 구멍가게 주인도 그 때처럼 할머니네.

“얼음보숭이? 그게 뭐여? 옳아. 아이스께끼를 말하거구먼. 그려. 아이스께끼는 부래보 콘이 최고여!”

얼음보숭이란 말을 단번에 알아들으시네? 신기하다. 그란디요 할머니, 아이스께끼는 국적불명의 외래어니까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마셔유. 그나저나 부래보 콘? 어디서 많이 듣던, 아니 들어봤던 소린 디? 그래. 그렇군. 그때 그 할머님도 틀림없이 부래보 콘이라고 하셨는 디?

희정이는 지금 일곱 살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부래보 콘을 아주 맛있게 빨아먹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감개가 무량하다.

“오빠 다 녹겠어. 얼릉 안 먹고 뭐 해?”

“알았어.”

맛있기는 드럽게 맛있군.

둘이서 담벼락 한 쪽에 나란히 기대선 채 부래보 콘을 열심히 빨아대고 있는데, 제 시간에 맞추어서 저 멀리 최 수종 기사가 몰고 오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상징인 자랑스러운 국산 중형 승용차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백화점에 들러서 사랑의 단짝반지, 단짝 목걸이까지 구입해서는 서로에게 끼워주고 채워주었다. 그리고 꽃집으로 가서도 희정이에게 노랑제비꽃 한 다발을 사서 선물로 안겨주기도 했다. 정말 좋아한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빨간 장미로 할까 하다가, 수줍은 사랑이라는 꽃말이 맘에 들어 그렇게 한 것이다. 게다가 노랑제비꽃은 1월에 피어나는 제철 꽃이기도 하니 말이지.

꽃까지 안겼으니, 남은 건 거시기 하나. 그렇다. 거리를 오가는 남들 이목을 숨겨야 하니, 골목길 한쪽에서 진하게 입술 접붙이기 한 판까지 덧붙여준다.

쩌어억!

열심히 그 짓거리에 빠져 있는데, 최 기사가 어느새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 것이 아닌가. 가쁜 숨까지 몰아 쉬어대며.

“다 단장님, 비 비상입니다. 하 하돌이파가 기 기습을 가 해 왔답니다!”

“하돌이파의 기습? 그런데 그 자식들이 왜 기습을 해 왔답니까?”

“네, 최 고문님 말씀으로는 그 자식들이 단장님 때문이라고......”

“나 때문에?”

“네.”

“그러니까 새파랗게 어린놈이 주제넘게 학하리 파를 접수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의 구역까지도 넘보고 있으니, 기 맥히고 코 맥혀서 더 두고 볼 수가 없다 뭐 이런 이야기인가요?”

“네? 아 네 단장님.”

“오빠 어떡해?”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돌아보는 희정이.

“두 사람 다 잠깐만 대기. 내가 직접 본부로 연락을 취 해 볼 테니까.”

“네, 단장님.”

“오빠!”

희정이가 계속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지만, 애써 모른 척 하고 다시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좀 전 그 학상아녀? 왜 부래보 콘 하나 더 줄까?”

구멍가게 할머님이 반가운 얼굴로 다시 나를 맞이하신다.

“예, 할머니. 그 전에 전화 좀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전화? 그 그려. 헌디, 어데다 걸려구? 시외전화는 전화세 많이 나와서 안 되는 디?”

“시외전화 아닙니다. 사용요금은 바로 드릴게요. 여기 있습니다. 할머니.”

그러면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손에 쥐어 드리니, 할머니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족제비 고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놈들의 숫자가 많고 기세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 쪽이 밀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호정단의 위세로 그깟 놈들 하나 몰아내지 못한단 말입니까?”

“예, 그게 저......”

“차라리 잘 된 일이니까 내가 갈 때까지 잘 버티고 있어요. 부단장들은 어디 갔습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이란 의미는 어차피 하돌이파도 내가 직접 쳐 들어가서 접수 해 버릴 작정이었으니, 오히려 이렇게 녀석들이 먼저 알아서 무덤 속으로 기어 들어와 준 것이 고맙다는 의미다.

“예, 잠시 볼 일들을 보신다고...... 나가셔서는......”

“그럼 지금 최 고문만 사무실에 숨어 있는 겁니까?”

독자님들께 노파심에서 다시 설명 드리면, 학하리 파 전 두목 족제비 최달식이 바로 최 고문이다. 다들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아 네네, 지송합니다.

“예, 제가 직접 사무실을 지키며 최 기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겁이 나서 혼자 사무실 문 팍 닫아걸고 짱 박혀 있는 중이라는 소리는 안 하는군 못난 녀석!

“그래서 주기적인 안부 연락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 단원들은 몇 명이고, 저 쪽은 몇 명입니까?”

“예, 우리 쪽은 저를 비롯해서 총 열 두 명입니다. 저 쪽은 오십 명쯤 됩니다. 하돌이 파가 갑자기 이렇게 급습을 해 오리라고는 저도 미쳐......”

“하돌이가 직접 온 겁니까?”

“아닙니다. 그쪽 행동대장이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니까 걱정 말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할머니께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재빨리 몸을 돌리려는데, 곧바로 어깨 죽지를 낚아채시는 할머니. 에그 할머니, 저 지금 바쁘다니깐요.

“학상, 그게 무슨 전화여? 나는 당체 통 알아들을 수가 없구먼. 그나저나 그냥가면 어떡 혀? 여기 잔돈 받아 가야 제?”

“아닙니다. 잔돈은 그냥 가지세요.”

“그러믄 안디야. 학상 때부터 돈을 그리 훼피쓰면 안 되는 벱이여. 얼릉 받아 가.”

“그냥 가지시라니까요. 할머님이 제 어머님 같아서 그냥 드리는 겁니다.”

“뭔 소리여? 학상 엄니 정도면 나보다도 한참 더 젊을 틴 디. 우리 며느리 삘 밖에 안 될 틴 디. 그짓말 하고 있네 그려.”

할머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정말 바쁘다니까요. 하우!

“그러면, 잔돈은 됐고요. 콘으로 하나 주세요.”

죄송합니다. 할머님 고집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럴 텨? 그럼, 부래보 콘 또 주까?”

“그렇게 하세요.”

할머님이 주름투성이 손으로 부래보 콘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시며 한 말씀을 더 덧붙이신다.

“학상은 인물도 좋고 마음씨도 착하고 참 마음에 드는 청년이여. 이 담에 우리 손녀 딸 배필감 삼으면 딱 맞겄네 그랴. 그럼 잘 가아! 여기서두 남은 잔돈은 학상의 성의를 봐서라도 내가 가져야 쓰겄어.”

네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저는 지금도 여자가 너무 많아서...... 승주도 있고, 주미도 있고, 희도 있고, 희정이도 있고, 진숙이도 있고, 또 누구더라 아, 옥자도 있고, 소희도 있고, 혜린이도 있고, 헥헥! 그러고 보니 참 많네요.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생길지 저 자신도 잘 모른답니다. 딱! 파! 화상, 승주 하고 희는 제외! 짜샤! 승주도 곧바로 내 여자가 될 거라니까. 그라고 희가 왜 내 여자가 아니냐? 너 지금 희가 죽었다고, 일부러 제외 시켜 놓는 겨? 맞아 죽을 래? 아니 그건 아니고......

“최 기사, 이 부래보 콘 얼른 해치우고 빨랑 갑시다.”

“네? 아 네, 단장님! 고맙습니다. 풉!”

“왜요?”

“아 아닙니다. 그냥 저......”

그려, 나도 웃긴 디, 너는 안 웃기겄냐.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나요?”

“그럼요 단장님. 저도 같이 본부로 가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최 기사는 됐고요. 그냥 운전만 잘하면 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오빠, 나도 같이 가서 힘을 보태고 싶어!”

“희정이 너야말로 얌전히 그냥 있어 주는 게 오빠 도와주는 거 에요. 이 오빠가 혼자 잘 알아서 해결할 일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되요 우리 공주님?”

“알았어. 그런데 오빠, 내 부래보 콘은 왜 없어?”

“에고 이것아! 넌 좀 전에 먹었잖아. 그러다 배탈 나려고 그러니? 충치 생겨 요것아!”

“또 먹고 싶은데.”

이건 뭐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겨? 철부지 아가를 모시고 다니는 겨? 다섯 살 배기 승주 아가는 그리도 의젓 하더만.

호정단 본부가 있는 거시기 대형 술집 입구까지 왔을 때, 자기도 같이 싸우겠다고 마구 떼쓰고 앙탈부리는 철부지 소녀를 방아깨비 여관까지 강제로 잘 모셔다 놓으라고 최 기사에게 일러놓고는 입구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여관 이름이 방아깨비다. 독자님들처럼 나 역시도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들입다 뿜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돌이 파 똘마니들로 보이는 대 여섯 녀석이 입구 쪽을 장악한 채로 내게다가 감히 도끼눈들을 치켜 떠 보인다. 녀석들, 나중에 내 얼굴 어떻게 보려고 이러는 겨?

“얌마! 너 누구여? 여기가 어디라고 어린놈이 감히 이런 곳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겨? 썩 꺼지지 못 혀?”

그래도 이 녀석들은 지금 나를 완전한 애로는 보지 않고, 대딩 내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놀고 있는 놈쯤으로는 봐 주는 눈치다. 한마디로 고삐리란 생각은 못 하고 있을 거라 이거지. 왜? 언젠가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교복만 벗어 던지면 꽤나 조숙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지. 오죽하면, 나이 이상으로 노숙(?) 해 보이는 내 모습과 약간은 연세 이하로 어려보이는 듯한 주미가 함께 어울려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고것들 꽤나 잘 어울리는 바퀴 한 쌍일세 하는 눈초리를 보내오곤 하겄는가. 그건 바로 내가 그들 눈에도 주미 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연하 남 쯤으로 비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어슷비슷한 연배의 잘 어울리는 바퀴 한 쌍쯤으로 자연스레 인식이 되어져서 그런 것일지니. 바로 그래서 우리 주미 역시도 번번이 나를 제 나이 또래쯤으로 착각(?)하곤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 게고. 흐흐흐! 딱! 파!

“비껸 마!”

피라미들하고 말을 섞는 시간조차 아깝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쯤 나도 잘 안다. 항상 자신의 부하들을 잘 챙겨주고, 깊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폭력배 두목의 역할일진데 말이지. 

 

“뭐여?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그랬......”

푹! 푸부푹! 푹! 푹!

꼬르륵!

탁탁! 대 여섯 마루타, 아니 통나무들을 순식간에 혈 짚어서 술집 입구의 한쪽에다가 나란하게 눕혀 놨다. 어차피 내 부하로 만들 것들인지라 최대한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 것이다. 번개처럼 계단을 밟고 호정단 본부 술집 안으로 뛰어들고 보니, 제법 힘꼴 깨나 쓸 것 같은 덩치 하나가 부하들을 양 옆으로 거느린 채, 느닷없이 제 앞으로 현신한 노숙 해 뵈는 고삐리 녀석을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척 봐도 저 녀석이 하돌이 파 행동대장인 듯싶다.

“어렵쇼! 넌 또 뭐여?”

“아이고 단장님! 지금 오십니까? 야 임마! 너 말 함부로 하지 말어. 우리 단장님이셔. 얼른 인사 올리지 않고 뭐하고 있는 겨?”

그 때까지 사무실 입구 문짝 쪽으로 바짝 몰린 채 하돌이 파와 대치를 하고 있던 삽자루 고문과 부하단원들이 내 모습을 보고는 지옥에서 부처 만난 듯한 표정들을 해 보인다. 에그, 못난 사람들.

“뭐여 단장님? 이 자식이? 옳아! 바로 너였구먼? 니가 바로 그 싸가지 없는 고삐리 새끼라 이거지? 좆만한 새끼! 어린놈이 감히 이 바닥이 어떤 덴지도 모르고 겁 대가리 없이 설치고 있다 이거지? 삽자루 형! 쪽팔린 줄이나 아쇼. 그리고 족제비 형은 저게 무슨 꼴이고. 명색이 학하리 파 두목이라는 사람이 사무실 문 꼭 닫아걸고,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있는 저 꼬락서니가 대체 뭐란 말이오? 쯧쯧쯧! 당신들 말이요. 대전 시내 어깨들 망신은 당신들이 다 시켰......”

쉬웅!

퍽 퍼벅 퍽퍼벅 퍽퍽 퍼버버버버퍽 퍽 퍽퍼벅 퍽퍽!

윽 으윽 윽윽윽 윽윽 윽윽윽윽윽윽 윽 윽윽윽 으윽!

말이 많어 짜식이 말이여! 대전 시내 어깨들 망신은 되려 니들이 더 시키고 있는 겨 이 하돌이 같은 눔들아!

하돌이파 행동대장을 위시한 수십 명의 똘마니 녀석들이 번개 같은 호정단장의 손속 및 발속으로 인하여, 술 집 춤 바닥판 여기저기로 어지러이 널 부러져 있다. 별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렇게 무지막지한 무림 최고수로 만들어 주셔서 말이죠. 별님께서 주신 반지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어찌 이런 멋진 장면을 순식간에 연출 해 보일 수 있었겠습니까요. 그런데 별님, 혹시 지금도 저를 관찰하고 계신 중인가요?

‘그래요 수창 군, 아주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에요.’

뜨억!

‘뭘 그래요 수창 군. 어젯밤 과거 어린 승주씨들 하고의 만남도 그렇고, 또 주미씨 하고의 사랑 놀음 장면까지도 아주 보기가 좋던데!’

‘에그, 별님도. 부끄럽게 그런 말씀을!’

‘호호호!’

‘정말 쑥스럽구먼유!’

‘수창 군, 빨리 볼 일 보고 희정양에게도 가 봐야지요. 희정양 하고의 사랑 놀음은 또 어떨지 정말 기대된다니까요.’

벼 별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 너무 한...... 아니다. 뭐가 어때서? 다른 여자도 아니고, 어린 새 각시하고의 사랑 놀음을 관찰하고 싶다는 말씀인 디 뭐가 이상하다는 겨? 딱! 파!

‘아 네. 그래야지요 에구구!’

‘호호호!’

별님과 그렇게 본의 아닌 음담패설(?)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부하 단원들이 나서서 바닥판 정리를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 놓고 있었다.

엄숙하고 긴장된 기운이 파르르 흘러넘치고 있는 호정단 본부 겸 거시기 대형 술집의 질퍽한 춤 바닥판. 그 바닥판 위에 하돌이 파 행동대장을 위시한 50여 명의 졸개 녀석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서 호정단장에게 간절히 뭔가를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단장님, 꼭 허락 해 주시면 고맙겄습니다.”
“단장님!”

“단장님!”

“강삼식씨, 그토록 우리 호정단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까?”

강삼식은 일타로 내 발길에 걷어 차였던 하돌이 파 행동대장의 이름이다. 원래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까 한 방에 나가떨어질 때,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 또 아니면 이제 막 내 일장훈시를 듣고 나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강삼식과 그 졸개들 모두 일제히 호정단 가입을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고 보니, 오히려 내가 더 얼떨떨할 지경이다. 이건 너무 쉽잖아? 그나저나 이걸 좋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건가? 아니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저런 간사스러운 짓거리를 준엄하게 심판해 줘야 하는 것인가? 그래 좋은 게 좋은 것이지 뭐. 굳이 심판까지는 필요 없고. 어차피 나 스스로도 세상 모든 어깨 조직들을 몽조리 내 수중 안으로 거두어들이기로 작심한 마당에 있어서는 더더욱 말이여. 

“예, 단장님. 맹세하겄습니다. 저희들을 받아 주신다면 앞으로 호정단을 위해 분골쇄신 하겄습니다.”

“호정단을 작살 내 놓겠다고 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예, 저희 모두가 단장님이 어떤 분인지를 미처 몰라봤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하나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춤사위 같았습니다. 허공중을 우아하게 답보 하시며 휘돌아 가시는 단장님의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무협지에서 말하는 경공술 내지는 어검술 같은 신비한 장면 묘사가 결코 과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단언컨데, 단장님야말로 무술이나 무예 실력에 있어서의 동서고금 절대지존이라 확신합니다.”

거 참 쑥스럽구만 기래! 딱! 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강삼식씨가 모시고 있던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일 아닙니까? 남자들의 의리라는 것도 있는 것인데?”

“아닙니다 단장님. 남자들의 의리라는 것도 그만한 존경을 받을만한 존재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지금 현재 제가 모시고 있는 사람을 험담하는 것이 도리는 아니겄지만, 하돌이파 두목 하돌이는 한마디로 인간쓰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목으로서의 품격은 고사하고, 비열하고 치사한 인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 부하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짐승이나 노예 부리듯 하고 있는 놈입니다. 한마디로 단장님과 비교하면, 고고하고 경외스러운 황새의 모습과 간사스럽고 흉물스러운 까마귀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제야말로 참다운 주군을 모실 수 있게 되어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꼭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저희들을 꼭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어지럽다. 비행기도 적당히 태워 주어야 덜 어지러운 법인데. 그런데 주군은 또 뭐여? 저 자식 저거 정말로 무협지 광인가?

“주군?”

“예, 말 그대로 주군입니다. 삼국지에서도 보면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지 않습니까. 또, 초한지에서도 유방이나 항우가 부하들에게 주군으로 떠 받들려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개 그런 의미입니다.”

삼식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제법 지식도 있고, 생각도 깊은 녀석이군. 아마도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지. 하기야 폭력배 두목인 나 자신부터가 엄청난 독서광이기도 하니, 능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아, 그거 괜찮을 것 같다. 모든 호정단원들의 독서 취미화. 아니면, 호정단 사무실의 완전 도서관화? 딱! 파!

“그건 그렇고 당신들 두목하고 부두목을 어떻게 설득할 거요?”

“예,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볼 수 있으니 그 사람들도 틀림없이 현명한 처신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오죽하면, 학하리 파 족제비 형님과 삽자루 형님까지도 단장님을 저토록 공손하게 모시고 있겄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단장님은 그야말로 어두운 구름을 헤치고 어리석은 중생들 앞에 밝게 현신하신 태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하느님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부처님 같은 존재입니다.”

어지러워! 낯바닥도 좀 간지러운 것 같고. 짜샤! 보고 있냐? 내가 이런 사람이다. 딱! 파! 화상, 그렇다고 너무 자만하면 안 되는 겨.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에게게! 짜샤 니가 지금 나를 훈계하고 있는 겨? 너 이 자식! 자식이 에비를 갈치려 들어도 유분수지. 얼렐레! 내가 왜 화상 니 자식이냐? 그냥 하이드지. 너는 지킬이고. 아무튼 짜샤! 하이드 주제에 자꾸 지킬 박사를 갈치려 들지 말란 말이여. 너는 내 훈장 선상님이 아니고, 그냥 내 그림자라 이거여. 내가 걸어가면, 너도 걸어가고, 내가 뛰어가면 너도 뛰어가고, 내가 밥을 먹으면 너도 밥을 먹고, 내가 똥을 누면, 너도 똥을 누고, 내가 주미 하고 신나게 그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너도 신나게 그 짓거리를 하고 있, 아참 아니지. 그럴 땐 너는 그냥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고 그래야 된다 이거여 짜샤! 알간? 모르간? 얼렐레! 그게 말이 되냐 화상아! 다른 건 다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서 왜 주미하고 그 짓거리를 할 때만 쏙 빠지라는 겨? 그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는 겨 이 나쁜 화상아? 아니 뭐여? 나쁜 화상! 이게 또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에잇! 딱딱딱! 파파파!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어!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일 것 같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 말도 안 되고 소도 안 되는 소리다.

“예, 물론 힘이 들긴 하겠지만 최선을 다 해 보겄습니다. 제가 먼저 최선을 다 해 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 단장님께서 직접 나서서 해결 해 주시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적지 않은 세월을 모셔오던 사람들인데, 다짜고짜로 피 맛부터 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 강삼식씨의 생각이 그렇다면 내 한번 믿어 보지요. 그건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진정으로 호정단 입단 의사가 있다는 말입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그 대신, 더 이상은 이 바닥에서 발붙이고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그것은 물론, 세상의 모든 어깨 조직들이 점차적으로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일어나세요. 그리고 밖으로 나가세요. 그런 후에는 공장에 취직을 하든가 기타 건전한 직업에 종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내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없군. 단 한 사람도. 공장에 취직 하거나 건전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그토록 꺼려지는 것인가? 하긴, 어깨 생활로 제멋대로 놀아나다가 느닷없이 그런 일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보수 역시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닐 테니.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정도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가 아니고 정도 말이다. 어찌됐든 좋다. 가기 싫다는 사람들 억지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 밑에서도 충분히 정도의 길을 걷게 해 줄 수는 있으니까. 물론, 내 밑에서의 정도라고 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길은 아닐 것이다. 약간은 색다른 정도의 길, 그쯤이라고 해 두자. 범 우주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도덕률과 인간세상에서 취급하는 도덕률의 종류가 다르듯이 일반 세상에서 바라보는 정도의 길과 호정단 세상 안에서 통용되는 정도의 길이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각설하고,

“한 사람도 일어나지를 않는 것을 보니, 모두들 진정으로 호정단 단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군요. 만일,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품고 있다든가 회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마음 따위는 과감히 내팽개쳐도 될 것입니다. 그런 정도로 우리 호정단은 기존의 어깨 조직과는 차원이 다른 단체입니다. 기존의 어깨 조직들이 더러운 냄새 펄펄 풍기는 시궁창 같은 존재들이라고 한다면, 우리 호정단 조직이야말로 맑은 물이 한 가득 흘러넘치는 개울물이요, 시냇물이요, 강물이요, 호수요, 바다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을 자랑스러운 호정단 단원으로 받아들일 것을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우리 호정단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예!”

호정단 본부 겸 대형 술집의 넓은 실내 공간 안으로 한때는 하돌이 파의 식구였다가 느닷없이 호정단 단원으로 둔갑(?) 해 버린 새 식구들의 우렁찬 대답소리가 드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축이 흔들거리고 호정단 본부 겸 대형 술집 실내 공간이 그대로 폭삭 내려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자, 새로운 호정단 식구들을 큰 박수로써 맞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동 박수!”

쫙쫙쫙쫙쫙쫙쫙쫙쫙쫙쫙!

어깨들답게 박수도 쫙쫙으로 나가는군!

“그만!”

뚝!

“강삼식씨는 지금 당장 하돌이에게로 돌아가서 설득 해 보세요. 내일까지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결판을 지으러 갈 것이라고 전하세요.”

“알겄습니다 단장님! 얘들아, 돌아가자.”

“예!”

대답소리가 우렁차게 실내를 울린다.

“강삼식씨!”

“예, 단장님.”

“앞으로는 얘들이라고 막 부르지 말고 호정단원들이라고 정식으로 불러주세요. 아무리 부하라고 해도 이제부터는 호칭서부터 예의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예 단장님, 죄송합니다. 자랑스러운 호정단원 여러분, 돌아갑시다.”

“예!”

말 잘 듣는군! 하지만 조심해야 혀! 저 자식 같이 한번 배신 한 놈은 두 번 배신도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이여. 오죽하면, 간웅으로 소문 난 조조까지도 그런 놈들을 늘 백안시 했을 것인가 이 말이여. 유비나 손권 밑에 있다가 제 밑으로 전향 해 온 자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빼앗는 일을 밥 먹듯이 했었지. 반면에 제 밑에 들어와 몸을 의탁하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유비 하나만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 관운장에겐 그 얼마나 큰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표했던가.

새로운 호정단원들이 질서도 정연하게 거시기 호정단 본부 겸 대형술집을 죄다 빠져 나가자 호정단 행동대장인 최팔용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보이며 호정단장에게 보고를 올린다. 

“단장님, 밖에 뒤늦게 달려 온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할까요?”

“원위치 시키시오. 그리고 최팔용씨!”

“네, 단장님.”

“최팔용씨도 앞으로는 애들이라고 하지 말고 호정단원으로 호칭하세요.”

“아 예 단장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들으세요. 이제 우리 호정단 단원들이 하루 사이에 오십 여명이 더 불었습니다. 확실하게 귀의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일이지만, 강삼식씨의 행동을 보아하니 이미, 우리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라는 것도 있으니아주 마음을 놓아선 아니 될 것입니다. 모두 명심하세요.”

“예, 단장님.”

호정단원들의 복창소리가 실내를 크게 울린다.

“그럼 나는 내 볼 일을 보러 가 볼 테니까 뒷정리들을 잘 해 주기 바랍니다.”

공손한 모습으로 문 밖까지 배웅을 나온 족제비 고문과 삽자루 고문, 그리고 행동대장 최팔용을 위시한 잔류 호정단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신속히 거시기 여관으로 연락하라 이르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호정단 본부 겸 대형술집을 물러나왔다. 어느 새 저 쪽에 최 기사가 차를 끌고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출발 합시다 최 기사!”

“예, 단장님!”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노파심에서 또 그렇게 물어본다. 왜? 그거야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면, 연료 낭비에, 시간 낭비에, 희정이 바가지에(?), 여러모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국민 된 처지로서도 정말 안 될 말이다. 그렇다면, 아예 자가용을 타지 말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지 그러냐 하실 독자도 계실 듯하다. 안 그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긴 한데, 우선은 우리 승주 공주님 때문에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짠돌이 짓을 하고 싶어도 우리 승주 공주님에게까지 그런 짓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딱! 파!

“네, 단장님. 방아깨비 여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구만. 그럼 언능 방아 찧으러 가보실까? 딱! 파! 으이그 짐승!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어!

“그럼 수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단장님, 저는 정말 부럽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희정 양 말입니다.”

이 좌식이?

“이봐요 최 기사!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네? 아 예 죄송합니다. 단장님. 저는 그저 희정양 같이 단장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여자는 정말 행복하겠구나 하는 점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런 뜻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단장님.”

“아닙니다.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요. 사실, 희정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그런데 나에겐 그 애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또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단장님. 공주미씨 말씀이지요?”

그렇군. 당신도 결국 헛점은 있구만. 미안하지만 하나만 맞았소. 물론, 주미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방금 전 내가 떠 올린 여자들은 바로 김승주와 공주희란 말이오. 알간? 모르간?

“아닙니다. 이번엔 틀렸습니다. 김승주와 공주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입니다.”

“네? 아 예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 여자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애틋하게 저려오고, 또 에려오기도 합니다.”

“네......”

진심이다. 거짓이 아니다. 승주만 생각 하면, 늘 가슴이 애틋하게 저려오고, 또 희 생각만 하면 정말로 가슴이 아프게 에려온다. 더군다나 내가 이렇게 크게 출세(?)한 마당에 있어서는 더 더욱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최 기사에게 여관 앞 다방에서 대기하면서 주기적으로 호정단 본부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라 일러놓고는 희정이가 기다리고 있는 방아깨비 여관 출입구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 놓았다. 별님의 요청대로 그녀와의 방아 놀이 때문에?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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