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 08:27ㆍ창작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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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대전시 대사동에 소재한 보문산 공원 쪽으로 슬슬 신형을 이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이제 막 오후 두시가 넘어가고 있고. 물론, 최 기사가 운전을 하는 고급 국산 중형 승용차 뒷좌석에 편안히 몸을 싣고 있는 중이다. 이쯤이면, 보문산이 어딘지 벌써 눈치를 채신 분들이 많으실 줄로 안다. 그렇다. 희정이와 더불어 스카이 콩콩 놀이, 아니 하늘 뜀뛰기 놀이를 신나게 즐겼던 바로 그 장소다. 재삼 강조하지만, 이 보문산 공원이야말로 50만(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대전시 인구-글쓴이 주) 우리 대전 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내가 문창국민학교, 대전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봄 소풍, 가을 소풍 장소를 무조건 이 보문산 공원으로 정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도 거의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 현상은 비단 우리 학교만이 아니고, 다른 모든 대전시에 소재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거의 죄다가 다 이 보문산 공원으로 소풍장소를 택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볼 때 그 불문율의 이유라고 하는 것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단 하나, 대전 시민들에게 너무도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 아담한 야산 공원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인 것이다. 굳이 비교를 해 보자면, 서울에 있는 남산과 비슷한 성격이라고나 할까. 서울 시민들의 남산 사랑을 이해한다면, 보문산을 향한 대전 시민들의 사랑의 깊이를 가히 짐작 하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남산이든 보문산이든 높이 하나만으로 놓고 보자면,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산들이기는 하다. 말 그대로 둔덕이나 동산 수준을 약간 벗어난 정도니 말이지. 그래도 굳이 두 산을 놓고 서로 비교를 해 보자면, 그래도 보문산이 남산 보다는 조금은 더 산다운 산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서울 남산이 300미터 언저리 수준에서 오락가락 하는 정도인데 반하여, 대전 보문산은 그래도 해발 450미터 언저리 정도는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말이지. 보다 정확한 산의 높이는 지도책을 열어서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일거리가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 각자가 직접 찾아보기를 기대 해 본다. 게다가 지도책에 확실히 표시가 되어 있는지 여부조차도 장담을 못하겠다. 딱! 파! 화상, 너 이제는 독자들에게 심부름까지 시키는 거냐? 아녀 짜샤! 이참에 독자들 지리공부 좀 시킬라고 그러는 겨! 오해하지 말어! 에게게! 이 화상 이거 이제는 억지로 갖다 둘러 붙이기까지? 아니라니까 그러네 짜샤! 내가 뭘 갖다 둘러 붙였다는 겨? 그러냐? 아니면 됐고. 그나저나 화상 너 오늘따라 웬 서론이 이리도 기냐? 게다가 학창시절에 지겹도록 소풍으로 와 봤다던 이런 구태의연한 장소를 굳이 또 찾은 이유가 뭐여? 지겹지도 않냐? 더군다나 주미나 희정이도 안 데리고 혼자서 이렇게 말이여. 그리고 화상 너는 호정단이라고 하는 대전 최고의 깡패집단 수장이기도 한디, 너 혼자서 이렇게 이런데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되는 거냐 이 말이여? 게다가 겨울방학이기도 한디, 숙제도 안 하고서 말이여. 짜샤 너 오늘 뭐 잘 못 먹었냐? 수다쟁이 장소팔 고춘자(1960년대에서 1970년대를 풍미한 유명한 만담가들-글쓴이 주) 마냥 너야말로 오늘따라 왠 잔소리가 이리도 낭자한 겨? 그려 짜샤! 사실은 나 말이다. 여기 우리 승주 만나러 왔다. 뜨억! 뭐 뭐라고? 여 여기서 혜은이를 만난다고? 그 자식 호들갑스럽기는. 저도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놀라는 척 하는 꼬락서니라니. 에헤헤! 미안! 그나저나 화상아, 독자들이 많이 놀라고 있을 건디, 언능 그 소종래(所從來)를 알려 드려야지. 보문산 야그는 이제 그만하고 말이여. 그렇찮아도 그럴라고 하던 중이여. 그런 디 짜샤 니 녀석이 갑자기 이렇게 끼어드는 바람에 야그가 또 헛길로 센 거 아니냐 이 말이여! 그러니 너 꿀밤 열 대만 맞고 가라. 뭐여? 이 화상이 이거 미쳤나? 에라이 딱딱딱! 파파파!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어! 거기 서어!
각설하고, 이 보문산이 내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산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부터가 이 보문산의 정기를 듬뿍 먹고 태어난 몸뚱이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보문산 자락의 한 마을인 벙굴이란 동네에 있는 외가가 바로 내가 태어난 장소라는 의미다. 그란 디 말이지. 여러분들 중에는 이 벙굴이란 마을 이름이 대체 뭔 뜻이여 하고 의문을 가지실 분들도 많을 것으로 안다. 사실은 이 벙굴이 바로 범골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서 범골의 충청도식 표현이 바로 이 벙굴인 것이다. 예로부터 이 범골 마을에는 아니 이 벙굴 마을에는 무서운 범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 야그인 것인 디,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이야기에 의하면, 내가 태어나던 그 날 밤 그 야심한 시각에 갑자기 벙굴 골짜기에서 크게 포효하는 호랭이 울음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야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태어난 1962년 그 해는 이미 호랭이들이 훨씬 그 이전 일제 시대 때 일본 놈들에 의하여 완전히 멸종 해 버리고도 수십 년이 더 지난 때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마도 외할머니께서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환청을 들으신 게 분명 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찌됐든, 1962년 그 해가 바로 호랭이 띠 해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 호랭이 띠 해인 그 해에 호랭이 골 마을인 벙굴 마을에서 호랭이 띠 머스매 하나가 고고성을 울리며 세상에 나온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랭이 골 마을인 벙굴 마을에서 태어난 1962년생 호랭이 띠 사내 호정무인 허수창. 이거 참 묘한 기분이기는 한디 말이여. 별님, 제가 혹시 보문산 호랭이 하고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요 수창군!’
‘헉! 별님?’
‘......’
‘별님?’
‘......’
에그 설명 좀 더 해 주고 가지. 그냥 갈 건 또 뭐여. 아니면 아니지. 음, 그나저나 짜샤 말대로 보문산 관련 수다는 이쯤에서 그만두겄습니다요. 지송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 하고 현실 속의 김승주를 직접 만나러 가 보실까요? 고백하자면, 보문산 야그를 저토록 길게 늘어놓은 것도 다 김승주 때문이랍니다. 사실, 제 가슴은 지금 몹시 떨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좀 진정 시켜 볼까 하는 의도로 보문산 야그를 길게 가져 간 것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처음으로 현실 속의 김승주를 처음 만난다고 하니,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네요. 김승주가 혹시 나를 보고서 첫눈에 싫어하는 눈치를 주면 어쩌지요? 물론, 과거에서 만난 각 연령대의 승주 누님들은 하나 같이 모두가 첫눈에 저에게 뿅 가버리기는 했었지만 말입니다. 딱! 파! 그 명백한 사실이 그나마 위안을 주기는 하네요. 아니면, 김승주가 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확 아는 시늉을 해 버리면 어쩌지요?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너 도대체 혜은이가, 아니 김승주가 오늘 이 시각에 보문산에 출현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 낸 거냐? 그 소종래를 가장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제가 어제 승주 누님의 집을 찾아 갔었습니다. 아 서울의 그 길옥윤씨 집이 아니고, 승주 누님이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죽 성장했던 대전의 그 선화동 집 말 입니다. 승주 누님이 가수로써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서 그런지 승주 누님의 부모님, 아니 장인 장모님은 표정들이 매우 밝으시더군요. 딱! 파! 화상, 아직 니 장인 장모 아님! 알어 짜샤! 이제부터 그렇게 하면 되잖어! 그러냐? 알았다. 후다닥! 얼레! 짜샤 저 자식이 갑자기 왜 저래? 똥 매렵나? 아무튼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특히, 장모님은 승주 누님 다섯 살 때의 모습으로부터 거의 십 오년 이상이 지난 모습임에도 미모가 여전하시더군요. 여전히 대단한 미인의 풍모를 보여주고 계셨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승주 누님이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장모님의 그 모습을 그대로 빼닮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김승주 아버지 어머니한테 인사는 해 본 거냐? 김승주 어머니가 너를 알아보시더냐? 대화는 나누어 봤냐? 등등의 궁금증들이 일어나실 줄로 압니다. 빨리 대답을 해 드리지요. 사실 처음엔 다짜고짜로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두 분이서 함께 외출을 하셨다가 집 쪽으로 걸어가시며 낮은 목소리로 나누고 있는 대화를 뒤에서 가만히 엿들으며(?) 따라갔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모님이 저를 무심코 한번 돌아보시면서 반짝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던져주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십 오 년 전에 나와 만났던 그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히 길에서 마주 친 잘 생긴 한 청년에게 가지게 되는 한 여성으로서의 강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승주 누님도 그렇고, 장모님도 그렇고, 유난히 나 같이 생긴 사람에게 큰 호감을 느끼는 기질인 가 봅니다. 물론, 제 자랑은 아니고, 눈앞으로 보이는 명백한 사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짜샤 녀석이 아무리 딴지를 부려대도 그 사실만큼은 명명백백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 분은 제 앞에서 걸어가며 이런 대화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반지의 초능력 효과 때문인지 낮게 속삭이는 그 목소리들마저 제 귀에는 아주 또렷하게 날아와 박히고 있었습니다.
“승주는 내일 보문산에서 무슨 촬영을 한다는 거야?”
“지 노래 영상으로 촬영한대나 봐요.”
“보문산 볼 것도 없는 산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찍는단 말이야?”
“여기가 승주 살던 데니까 그런 생각을 했나 보지요 뭐. 그나저나 여보, 저 젊은이 좀 봐 봐요.”
“누구 말이야?”
“뒤에서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저 젊은이 말이에요.”
“남이야 따라오거나 말거나 뭘 신경을 써? 가는 방향이 같은 거겠지. 그나저나 그 놈 인물한번 잘났군. 키도 크고.”
“그렇지요?”
“허허! 당신 지금 저 젊은이에게 반한거야?”
“호호! 당신두!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 사람이?”
“당신 질투 하는 거 에요?”
“질투는 무슨. 질투할 거리가 뭐 있다고.”
이런 대화들을 나누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단번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에라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빠르게, 그것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두 분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께서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더군요.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
“아 예..... 누구시더라? 나는 통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처음 보는 젊은이인데?”
그러면서도 두 분은 제게 사람 좋은 미소를 계속 던져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속으로 그 얼마나 큰 쾌재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님이 내게 저토록 큰 관심을 보여 주실 줄이야. 이건 뭐 누워서 떡 먹기 보다 더 쉬울 것도 같은 디? 하는 생각마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딱! 파! 특히, 장모님의 아리따운 그 모습은 지금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마치 승주 누님이 순간적으로 세월을 훅 건너 뛰어 사십 대 중년 미부인의 모습을 하고 짜잔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네, 두 분이 바로 가수 혜은이 씨 부모님 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혜 혜은이? 가수 혜은이 말이오? 그 그건 아닌데? 우리는 혜은이 부모가 아닌데?”
“이를 어쩌나? 미안하지만 우린 혜 혜은이 부모가 아 아닌데요 젊은이?”
왜 이러십니까요 장인 어르신! 장모님! 굳이 그렇게 사위한테까지 당신들의 정체를 속이실 필요는 없습니다요.
“그러신가요? 정말 혜은이 씨 부모님이 아니신가요?”
“그래요. 젊은이가 잘못 봤어요. 여보, 어서 가자구!”
“네 여보! 미안해요 젊은이! 우리는 그만 가 보겠어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사실,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그러시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가벼운 기분으로 그렇게 두 분을 보내드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무엇보다도 장모님이 계속 내게 던져주시던 강렬한 그 호감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승주의 집 앞에서도 그러하셨 듯, 지금 이렇게 또 현실의 세상에서조차 장모님은 제게 강한 호감의 느낌을 표 해 주셨던 겁니다. 장모님, 저 역시도 장모님을 사랑합니다. 비록 딱 두 번의 만남이긴 했지만, 그 때마다 저 역시도 장모님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오해는 하지 마세요. 장모님에 대한 저의 사랑은 남녀간의 이성적인 사랑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언감생심 제가 어찌 장모님을 이성적으로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되는 일이지요. 딱! 파! 화상 너, 그 말 정말이냐? 혜은이 엄마 정말로 이성적으로 사랑하는 거 아닌 거 확실 해? 이 자식이 지금 미쳤나? 짜샤 너 이 자식, 정말로 맞아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겨? 내가 아무리 여자에 환장한 놈이기로서니, 어떻게 내 아내가 될 여자의 어머니까지 걸떡 거린단 말이냐? 그건 파렴치한들이나 할 짓이여.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 하지. 화상, 니 말을 믿어본다. 믿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믿어. 나 허수창, 호정단장으로서의 명예, 아니 호정무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맹세 한다. 절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는 생각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알았다. 그런 디 말이여 화상아, 니 신조는 인간들의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아니었냐? 이를테면, 남녀가 서로 이끌리기만 하면,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살아도 되고, 또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살아도 되고, 또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어머니와 사랑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고, 또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아버지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가진 녀석이 바로 너 아니었냐 이 말이여? 말하자면,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다는 것이 화상 너의 신조가 아니었냐 이 말이여? 그런 신조를 가진 녀석이 지금은 또 왜 생각이 달라진 겨? 왜 자꾸 맴이 미친 여자 널뛰듯 하냐 이 말이여? 그래, 짜샤 니 말 무슨 뜻인지 알겄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에게까지 군침을 흘릴 수가 있단 말이냐? 그건 말이여.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힘들게 하고, 욕보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안 되는 일이여. 물론, 니 말대로 승주 어머니가 지금 과부고, 또 승주라고 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라면, 얼마든지 승주 어머니와의 사랑이나 연애도 가능 할 수가 있겠지. 사랑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초월하는 법이니께. 물론, 승주 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잖냐. 나는 지금 엄연히 승주 어머니의 딸과 연애를 하고 싶은 거고, 또 사랑을 하고 싶은 거고, 또 내 아내로 만들고 싶은 거 아니냐 이 말이여. 게다가 승주 어머니는 지금 당신의 남편까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 않냐 이 말이여. 내가 만일 지금 이 시점에서 승주 어머니, 아니 장모님마저 욕심을 내어 내 여자로 만든다고 생각을 해 봐라. 그렇게 되면, 승주와 승주 아버지가 겪게 될 정신적 고통이 그 얼마나 지대할 것인가 이 말이여.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또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여. 그러니 아무리 우주적, 자연적 도덕률 관점에서는 충분히 용인이 되는 일이라 해도, 그런 짓만큼은 차마 벌일 수가 없다는 것이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간? 알았다 화상, 하여튼 갖다 둘러 부치는 데는 선수라니께. 그나저나 화상 너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뜸만 들이고 있을 거여? 도대체 언제 보문산 혜은이와 조우를 할 거냐 이 말이여? 독자들 궁금해 하는 저 모습 안 보여? 알았어 짜샤! 지금 가면 될 거 아녀. 지송합니다. 독자님들, 그럼 지금부터 진짜로 보문산으로 승주를 만나러 가 보도록 하겄습니다.
아, 저기 보인다. 내 사랑 승주가 저기 보인다. 보문산 전망대 마당 한쪽 나무 장의자 위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그마한 몸뚱이의 가녀린 저 여자. 확실하다. 아,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그녀가 바로 저기에 있다. 가슴이 마구 떨려온다. 숨길마저 가빠져 온다. 심지어 두 다리의 힘마저 쏙 빠져 버리는 것 같다. 아, 드디어 스물네 살 김승주와 열여덟 살 허수창이가 허상 속의 만남이 아닌, 진짜 현실 속의 생생한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은 반지 녀석의 농간에 분노하지 않아도 되며, 시간의 압박 현상에 애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곧장 승주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볼까? 아니면, 멀찍이서 이렇게 촬영이 끝나기를 좀 더 기다려 볼까? 그래, 잠시 대기하면서 승주가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으리라. 어찌됐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를 그녀의 눈 속에다 확실하게 각인 시켜 주는 일이겠지. 그렇게 되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보아서라도 그녀는 단숨에 내게로 함몰되어 오고 말리라. 내가 그녀에게 단숨에 그렇게 되어 버렸듯, 다섯 살 승주가 단숨에 그렇게 되어 버렸듯, 열 살 승주가 단숨에 그렇게 되어 버렸듯, 열다섯 살 승주가 단숨에 그렇게 되어 버렸듯, 스무 살 승주가 단숨에 그렇게 되어 버렸듯 그렇게......
아, 내 사랑 승주가 촬영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고른 치아를 하얗게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심한 눈길로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본다. 당연히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시선이 닿아오고 있지만, 거리가 먼 탓인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시선이 옮겨져 간다. 그리고는 촬영진들의 촬영 시작 동작에 맞추어 승주 역시도 자신의 자리 위치에서 촬영동작을 취하기 시작한다. 촬영감독의 지시에 따라 촬영이 시작되고, 휴대용 녹음장치에서 그녀의 노래 ‘수선화 필 무렵’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녀가 앞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어 가며 자신의 노래 소리에 맞추어 예쁘게 입을 벙긋거리기 시작한다. 그 가냘픈 몸뚱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처럼 이리저리 살랑살랑 흔들거린다. 세상에 저토록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울 수가! 마음 같아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 가냘픈 몸뚱이를 휙 낚아채서는 바람처럼 저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물론,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하느니.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지금은 엄연히 승주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시간. 그녀의 권리를 함부로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런데 승주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닌, 생소한 노래를 음악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겠지. 승주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 보자 하는 취지일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승주의 노래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 역시 아주 많이 좋아한다. ‘수선화 필 무렵’ 역시도 그런 곡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신은 모르실 거야’, ‘당신만을 사랑 해’ 같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 역시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승주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음악영상을 제작하고 있는가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혜은이, 아니 김승주라고 하는 저 보석 같은 존재, 아니 보석덩어리 그 자체일 뿐이다. 아, 저 작고 가녀린, 그러면서도 지극히도 사랑스러운 미의 결정체를 보라. 위대한 자연이 빚어 놓은, 아니 이룩해 놓은, 저 지고지순한 순결미와 고결미의 결정체를 보라. 아, 어쩌면 저리도 귀여울 수가! 아, 어쩌면 저리도 깜찍할 수가! 아, 어쩌면 저리도 사랑스러울 수가! 아, 정신마저 혼미해져 올 정도로 그렇게......
“혜은이씨, 갑자기 왜 그래요?”
이게 뭔 소리여? 느닷없이 왜 승주의 노래 소리가 그쳐 버린 겨? 헉! 승주가 나를 보고 있잖어. 노래마저 그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추어 선 채 뚫어질 듯이 나를 응시하고 있잖어. 그렇군. 드디어 미의 결정체가 나를 발견했어. 내 예상이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어. 기어코 김승주가, 현실속의 김승주가 현실 속의 허수창이에게 그대로 함몰되어 버리고 만, 바로 그 기념비적인 순간이 닥쳐오고 만 겨. 아, 천지신명이시여 고마워유! 증말로 증말로 고마워유! 그리고 별님, 보고 있남유? 결국 이런 날이 닥쳐오고야 말았습니다유. 별님, 고마워유. 증말로 고마워유.
‘수창 군, 굳이 나한테까지 그렇게 고마워 할 건 없어요. 내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 해 준 것도 아닌데요 뭐.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김승주씨 역시도 필연적으로 수창 군을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아무튼 축하해요. 수창 군이 자신한 그대로 스물네 살 승주씨가 단숨에 열여덟 살 수창 군에게 함몰되어 버리고 말았군요. 하기야 김승주씨가 아니래도 세상 그 어떤 여자가 수창 군 같이 잘 생긴 남자한테 첫눈에 반하지 않겠어요. 주미씨도 그랬고, 주희양도 그랬고, 희정양도 다 마찬가지였잖아요. 그나저나 김승주씨의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긴 하군요. 그리고 나를 많이 닮기도 했고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별님, 그래서 내가 별님을 처음에 보았을 때, 그렇게도 많이 놀랐던 것입니다. 승주 누님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서.’
‘자, 나와의 대화는 이쯤 해 두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승주씨에게만 집중을 해 봐요. 승주씨가 저렇게 수창 군을 보자마자 넋이라도 다 달아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수창 군이 그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를 유혹하기만 하면, 무조건 수창 군을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니까요. 자, 그럼 나는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 잘 해 봐요.’
‘네, 고맙습니다 별님.’
승주가 다시 촬영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지 거듭해서 실패를 반복 하고 있다. 그리고 촬영감독으로부터 계속해서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고 있고. 하지만, 그 핀잔이라고 하는 것이 진짜 화가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닌, 오히려 우호적인 웃음을 동반한 그런 성격인 이유가 대체 뭘까. 그럴 것이다. 제 아무리 성격 사납고, 거친 사내라 할지라도, 승주 같은 미인들에게만큼은 매사에 한없이 관대해 질 수밖에 없는 수컷으로서의 근본적 속성 때문이리라. 내가 볼 때, 촬영감독을 포함한 촬영진 모두가 다 그런 심리상태에 빠져 있는 듯싶다. 승주가 그 어떠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모두가 한없이 깊은 이해심과 관대함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미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 얼마나 편한 것인가. 그게 불만이냐고?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나 역시도 승주나 주미, 희정이 같은 미녀들이 사내들에게서 그런 배려(?)를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추녀들과의 형평성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이 있는 거 아니냐고? 맞다. 차별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미인은 미인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배려와 선망을 받게 되는 것이고, 추녀는 또 추녀이기 때문에 그 만큼의 차별과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게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것이요, 수십억 년 간 진화를 거듭 해 온 생물종의 근본적인 속성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자연 현상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도덕률과 법률적 관념으로는 이건 무조건 옳고, 저건 무조건 그르다는 임의적 판별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자연이라고 하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그런 임의적 판별 자체부터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사나운 호랑이가 순한 고라니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반대로 순한 고라니가 사나운 호랑이의 공격을 피해서 용케 도망을 쳤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박수를 쳐 주어야 할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자연의 입장에서는 호랑이가 고라니를 잡아먹는 것도 선이요, 잡아먹지 못하는 것도 선이 될 수가 있다. 또 반대의 경우 역시 당연히 성립한다. 잡아먹는 것도 악이요, 잡아먹지 못한 것도 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숫 사자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부다처제 현상이나, 원앙새 암수 한 쌍이 달랑 둘이서만 함께 살아가는 일부일처제 현상 역시도 다 마찬가지다. 둘 중의 어떤 삶의 방식이 보다 더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가 하는 잣대를 누구라서 함부로 세워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사자는 사자대로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원앙은 원앙대로 나름의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거시적 자연의 관점에서는 애초부터 어떤 것이 더 도덕적이고, 덜 도덕적인가 하는 판단 내지는 구별 자체부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매사는 우리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도덕적 정의 내지는 일방적 판단에 의해서만 그렇게 규정이 되어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게다가 그 도덕적 정의 내지는 판단이라고 하는 것 자체 역시도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그 정의 내용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든다면, 조선 시대엔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는 것이 천하의 불상놈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여겼지만, 지금 시대에 초중고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머리를 길게 따거나 봉두난발을 하고 다녔다가는 교사들로부터 언제 어느 때, 천하에 몹쓸 불상놈 취급을 받거나 심지어는 매타작까지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조선 시대엔 이혼한 여자가 재혼 하는 것을 대단히 비도덕적인 행위라 치부 했지만, 지금 시대에 그런 주장을 펴는 자가 있다면, 단번에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뿐인가. 조선 시대엔 한 여름에도 몸을 노출하는 것이 불상놈 짓이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지금 시대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있으면, 시대착오적인 답답한 인사라는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해 보자. 조선 시대엔 왕이나 양반 사대부들이 본처에 더해서 첩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되었지만, 지금 시대에 만일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즉각적으로 여성단체로부터 큰 비난을 받게 되거나, 나아가서는 법의 제재까지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시대적으로도 그렇게 다른 판단 기준을 가진 도덕적 관념들이 넘쳐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감에도 지역에 따라 서로가 다른 도덕적 관념을 가진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어떤 나라에서는 대마초를 흡입하는 것이 중범죄-중공이란 나라는 사형까지도 시킨다-지만, 또 어떤 나라에서는 담배보다 덜 해롭고, 덜 해악적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대마초 흡입이 허용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여자들의 매음 행위가 불법이지만, 또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이라 하는 경우,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행위가 불법이지만, 또 어떤 나라들(남미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정글 원주민 부족 등)에서는 당연히 허용이 되는 경우 등등 일일이 거론을 하자면, 날을 세도 다 못할 것이다. 그러니 대체 어떤 것이 도덕적인 행위이고, 어떤 것이 비도덕적인 행위인가 하는 판단부터가 정말 헛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내가 여러 계집을 거느리고 사는 게 도덕적인가? 그러지 않는 게 도덕적인가? 한 계집이 여러 사내와 함께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도덕적인가? 그러지 않는 게 도덕적인가? 그리고 그 도덕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그 누구라서 함부로 세워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들 스스로부터가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같은 사안을 두고도 그리도 다른 생각, 다른 판단 기준을 적용 해 왔는데 말이다.
딱! 파! 화상 너 지금 여러 여자들을 네 여자로 만들어 둔 상태에다가 이렇게 또 혜은이 마저 네 여자로 만들 가능성이 커지자, 그게 새삼스럽게 부담으로 다가와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아니라고 말 못할 거다. 그래 짜샤. 솔직히 부담이 되기는 한다. 내가 과연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 자격이 있단 말인가. 저토록 순결하고, 고결하고, 고귀한 여자를 언감생심 나 같은 양아치가 감히 취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런 고민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짜샤야, 나 어떡 하냐? 나 정말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어도 되는 거냐? 화상, 니가 그렇게 솔직하게 말 해 주니 하는 말이지만, 너의 반자아인 나 역시도 지금 많이 긴장이 되긴 한다. 그러니 화상 너 자신은 그 얼마나 긴장이 될 것이냐. 하지만 말이다. 화상 니가 저 여자를 중학교 이 학년 때부터 그 얼마나 마음 깊이 짝사랑 해 왔는지를 한번 생각 해 봐라. 자그마치 오년이다 오년. 그 오년 동안을 너는 저 여자 때문에 처절하도록 가슴앓이를 해 왔지 않았는가 이 말이다. 그러니 말이다. 솔직히 화상 너는 자격이 넘치고도 남는다. 나이 차이? 그 따위가 무슨 대수냐. 공주미 하고도 잘만 어우러지고 있잖아. 혜은이 하고 공주미 하고 동갑녀잖아. 그러니 제발 이제부터는 마음 편히 저 여자를 취해 보는 거야. 고맙다 짜샤! 니가 그렇게 말 해 주니까 이제야 좀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는 한다. 그리고 니가 그렇게 저 여자를 포기 해 준 것도 고맙고. 그러나 말이야 짜샤, 너는 어차피 내 반 자아니까 내가 김승주하고 잘되면, 너 역시도 절반은 김승주를 차지한거나 마찬가지라 이거여. 그렇지 않니? 그래 화상, 내가 왜 그걸 모르겠냐. 그래서 내가 이렇게 너한테 기꺼이 혜은이를 양보 해 준거잖어. 그런데 짜샤, 너 왜 아직도 꼬박꼬박 김승주를 혜은이라고 부르는 겨? 김승주란 이름이 싫은 겨? 내가? 싫기는 왜 싫겠냐? 내가 김승주라는 본명을 놔두고, 꼬박꼬박 혜은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혜은이라는 이름의 그녀에게 혼이 다 달아났었기 때문이란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어. 화상 너도 그랬던 거고. 처음엔 너도 혜은이란 이름의 그녀에게 넋이 빠졌던 게 사실이잖어. 김승주는 훨씬 뒤에 니 멋대로 덧붙여 사랑하기로 다짐한 이름이고. 그래, 짜샤 니 말이 맞다. 내가 어찌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냐. 나도 사실은 혜은이란 이름의 그녀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김승주라고 하는 본명의 그녀보다도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히 혜은이는 가명인 것이고, 김승주가 본명이니, 일부러라도 본명으로 불러주고, 또 본명으로 사랑을 해 주는 것이 더 맞지 않냐 이거여. 어제 보니까 승주 부모님도, 아니 장인 장모님도 꼬박꼬박 승주라고 부르고 있고. 흐흐흐 화상! 알았다. 이제 그만하자. 독자들 또 짜증나겄다. 도대체 승주하고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장면은 언제부터 묘사 될 거냐고 말이여. 그려 알았어. 지금부터 묘사하면 되지 뭐. 딱! 파! 화상, 그럼 잘 해 봐라. 후다닥! 짜샤아! 너 거기 안 서!
짜샤 녀석과 모처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승주는 기어코 촬영을 다 마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 그만큼이나 내가 신경이 많이 쓰였던 건가요 승주? 미안합니다 승주! 당신의 일을 방해 할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어찌됐든 승주, 지금부터는 내가 어떻게 해 줄 까요? 곧장 당신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줄까요? 아니면, 좀 더 이렇게 멀찍이서 당신을 지켜보고만 있어 줄 까요? 아, 나를 일부러 외면한 채로 살짝 얼굴을 붉힌 채, 수줍은 표정으로 촬영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랑스러운 당신의 모습. 정말로 미칠 것만 같습니다 승주! 그런데 그 의미는 촬영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난 뒤 우리끼리 몰래 잘해보자는 의미인가요 승주? 그런 까닭으로 당신 혼자서 거기에 그냥 남아 있겠다는 의도인가요 승주? 정말 그래요 승주? 그래만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승주. 그건 그렇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저 엄청난 인파(?)는 대체 어쩌지요? 물론, 그 인파라고 하는 것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고작 서른 대 여섯 명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여가수인 혜은이가 보문산 전망대 광장에 나타났는데,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파 숫자가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되나? 하고 의아심을 가질 독자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여가수라고 해도 시간적, 장소적 제반 상황을 다 고려해 봐야 한다. 만일 그녀가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대전 역 광장이나 야간비행 주변에 느닷없이 출현 했다고 가정 해 보자.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방과 후 시간이나 퇴근 시간 무렵에 말이다. 과연 그녀를 둘러싸게 될 인파가 고작 그것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못 잡아도 최소한 수백 명 정도에는 둘러싸이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어날 테고.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인적이 많이 한적한 곳. 그도 그럴 것이 추운 겨울 평일 날 오후에 보문산 공원으로 한가하게 나들이를 즐기러 나올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직장 없이 방황하는 일부 젊은 실업자들이나 산 속에서 혼자 고독을 즐기고픈 노인들, 그리고 나처럼 겨울 방학 중이면서도 오락실을 마다하고, 특별히 겨울 산을 찾아 온 몇몇 별종의 학삐리들이 고작인 것이다. 실제로도 지금 승주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만 봐도 대충 그런 구성이 그려지고 있고 말이다. 희한한 것은 그들 중에 선뜻 승주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어 기념서명을 요청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석같이 빛나는 승주의 미모에 그저 넋이 나간 듯 그녀의 일거수일투족만 뚫어질 듯 주시하고들 있을 뿐이다. 사실 바보상자 안에서만 늘 보아오던 대한민국 최고 인기 미녀 여가수를 이렇게 직접 실물로 본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특별히 작심을 하고서 만나고자 하지 않는 바에야 우연히 이렇게 만나지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나란히 군중 사이에 섞이어 본다. 그런 내 모습을 승주가 힐끗 한번 돌아다본다. 맑고 촉촉한 그녀의 눈망울 빛이 내 눈망울 속으로 찌르듯 파고든다. 아, 저 곱고도 투명한 눈망울 빛을 영원히 내 동공 안에다 가두어 둘 수만 있다면. 이런 내 기대감을 일부러 무질러 버리기라도 하 듯, 승주의 그 사슴 빛 눈망울이 급하게 다른 사람들 쪽으로 향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마음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결코 낙담하지는 않는다, 아니 할 필요도 없다. 다섯 살 승주가 이미 그랬듯이, 열 살 승주가 이미 그랬듯이, 열다섯 살 승주가 이미 그랬듯이, 스무 살 승주가 이미 그랬듯이, 지금의 이 스물네 살 승주 역시도 단숨에 이 허수창이에게 함몰이 되어 버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오년 전에 그녀를 처음으로 보고, 단숨에 그녀에게 함몰이 되어 버렸던 그 미소년처럼 그렇게.
촬영진들과 함께 승주가 보문산 전망대 마당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내게는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렇게 총총히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 확신이 빗나간 것일까? 내가 홀로이 이곳에 남아 있으면, 승주 역시 당연히 홀로 남게 될 것이라는 그 바람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리고 만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그렇지. 그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 해 온 이 편지를 몰래 건네주기로 하자. 어젯밤 그토록 정성스럽게 쓴 이 편지를 그녀에게 몰래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여.
사랑하는 승주씨에게
안녕하세요 승주씨, 저는 오래전부터 승주씨를 마음 속 깊이 흠모 해 온 허수창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대전상업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니 이제 곧 3학년이 될 사람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고 있노라니, 지금쯤 많이 놀라고 있을 승주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아니 뭐야? 그렇게나 어린 녀석이었어? 나 하고 비슷한 연배이거나 한두 살 어린 나이쯤으로 보였는데......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고삐리 녀석이었단 말이지? 겉늙어 보여서 그런 건가? 그런 녀석이 감히 누나도 한참 누나뻘인 나를 마음 속 깊이 흠모 해 왔었다고? 그리고 날 보고 승주씨라고? 승주 누님도 아니고 승주씨라고? 당돌한 자식! 어림도 없어. 네 녀석이 아무리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도 내가 너 같은 아이에게 넘어 갈 여자는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여가수인데, 감히 평범한 시골(?)도시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 녀석이 나를 유혹하려고 수작을 부려? 정말 우스운 얘기야. 당돌한 녀석! 그런데 말이야. 이 녀석이 좀 어리긴 해도 생긴 것은 정말 장난이 아니더란 말이야. 나처럼 눈이 높은 여자가 한눈에 반해 버릴 정도로 그렇게. 심지어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최무룡 선배나 신성일 선배한테도 아무런 감정을 느껴 본적이 없던 나인데, 평범한 지방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런 녀석 따위에게 마음이 이렇게 흔들리게 될 줄이야. 안 된다. 마음을 다 잡아 먹어야 해. 그래, 이 편지는 무조건 무시하는 거야. 그러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겠지 뭐. 불쌍하기도 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잖아.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요 승주씨? 만일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깨끗이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려도 좋습니다. 왜냐고요? 그건 바로 우리가 겨우 여섯 살 차이 밖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십 살 차이도 아니고, 육백 살 차이도 아니고, 겨우 여섯 살 차이라 이겁니다. 남녀 사이에 있어서 나이 네 다섯, 여섯 살 차이 정도 가지고는 그냥 결혼을 해 버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 차이라 이겁니다. 그러니 제발 그깟 여섯 살 차이 정도 가지고,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승주씨 자신이 누나뻘이라는 생각에도 너무 골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누나 동생 사이로 어우러질 무미건조한 사이가 아닌, 오로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게 될 연인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따위로 우리가 서로를 피해야 한다면, 승주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남은 인생에 있어서 그 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승주씨를 처음 바보상자 안에서 보고, 그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시나요? 말 그대로 혼이 다 달아나 버린 듯한 그런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저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존재하다니. 세상에 저토록 목소리 고운 여자가 존재하다니. 세상에 저토록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존재하고 있다니. 바로 그런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로 지금까지 승주씨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내 마음에서, 내 가슴 안에서, 내 머릿속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승주씨를 무조건 내 여자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주씨를 다른 사내에게 빼앗기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승주 씨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를 아시나요?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인습이 정해 놓은 얄궂은 도덕률 바로 그 것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힘들게 떡 장사를 하시며 가정을 꾸려 가시는 어머니의 입장도 헤아려 드려야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학교를 때려치우고, 무작정 승주씨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오년 동안을 바로 그 이유들 때문에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인내 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요. 비록 아직도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승주씨, 그깟 나이가 무슨 대수란 말입니까? 나이가 어리다고 사랑을 생각 못 하고, 사랑을 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어거지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또 책임 질 능력까지 구비되어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랑은 허용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저는 승주씨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고, 또 물질적으로도 승주씨를 완전히 책임질 능력까지 구비하고 있습니다. 승주씨가 원하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수 활동을 접고, 저에게 완전히 의지해도 됩니다. 승주씨가 가수 생활을 하며 누리던 물질적 영화보다도 백 배 천 배 더 많이 호강을 시켜 드릴 능력도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주씨가 가수 활동을 하는 이유가 돈 보다는 음악 자체가 좋아서라고 한다면, 굳이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녀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거야?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그것도 고등학생인 주제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서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거야? 지가 무슨 재벌 집 아들이라도 돼? 설사, 재벌 집 아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아직은 직접 돈도 벌지 못하는 학생 녀석이 무슨 수로 부모한테서 그런 많은 돈을 타 낼 수 있다는 거야? 기껏해야 학생 신분에 맞는 코흘리개 용돈 수준일 테지. 돌아도 단단히 돈 녀석이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승주씨, 제발 그런 의심 따위는 지워주세요. 나는 비록 재벌 자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잘 버시는 아버지가 생존 해 계신 것도 아니고, 오로지 떡 장사를 하고 계시는 홀어머니와 단둘이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승주씨가 원하기만 하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다가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지어 줄 수도 있고, 또 억대를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도 선물 해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절대로 믿어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너 같이 어린 학생이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승주씨와 따로 만나서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상군자(梁上君子)가 되어 억지로 그런 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나저나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해 주고 싶어도 승주씨가 먼저 그런 부탁을 해 올 리는 없겠지요. 설사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아는 승주씨는 그런 허례허식에 사로잡힌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냐고요? 압니다. 나는 승주씨가 절대로 허영에 들뜬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분명히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승주씨의 사랑을 얻어 보려 간절하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간절히 원하고 진실로 사랑하고픈 여자가 사실은 바로 그런 부류의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니 말이죠. 자신의 분수를 알고 다소곳이 그것을 잘 지켜 갈 줄 아는 그런 여자 말입니다. 그러니 승주씨, 승주씨도 더 이상은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제 간절한 바람을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확신합니다. 승주씨가 오늘 나를 처음 본 순간, 크게 마음의 동요를 받았으리라는 그 사실을 말입니다. 절대로 승주씨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없을 겁니다. 아니,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용광로 불길처럼 일어난 뜨겁고도 간절한 그 염원을 그대로 성취 해 가기만 하면 되고, 또 있는 사실을,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인습의 굴레로 인하여 소중한 인연의 닻줄을 끊어 버려야 한단 말입니까? 승주씨와 내가 서로를 사랑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우리의 사랑을 가로 막을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어머니 조차도, 또 승주씨의 부모님 조차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조차 설사 우리가 맺어지는 것을 반대하신다고 쳐도 절대로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럴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만일의 경우에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볼 때 승주씨 부모님은 우리의 사랑을 가로 막으시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의 사랑을 격려(?) 해 주실 것처럼 보이더군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사실은 말입니다 승주씨, 어제 낮에 승주 씨 선화동 집 대문 앞에서 우연히 승주씨 부모님을 만나 뵀었습니다. 물론, 미리 약속을 드리고 만난 것은 아니고, 승주씨가 너무도 보고 싶어서 승주씨의 선화동 집 근처를 배회 하다가 우연히 그 곳에서 승주씨 부모님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승주씨 부모님은 혹시 승주씨 부모님 아니시냐고 여쭙는 내 질문에 절대로 당신이 당신들의 따님이 아니라고 펄쩍 뛰시더군요. 그래도 나는 그리 섭섭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께서 평소에도 늘 당신들 따님의 유명세 덕분으로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계셨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분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승주씨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나를 처음 보시자마자, 단번에 내게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는 그 사실을 말입니다. 이건 절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특히, 승주씨 어머님이 나에게 매우 깊은 호감을 보여주시더군요. 의심이 가면, 승주씨가 부모님한테 직접 한번 물어보세요. 정말로 엊그저께 그런 청년을 만난 일이 있으시냐고 말입니다. 아마도 승주씨 부모님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계실거라 확신합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진실로 충심으로 승주씨를 사랑합니다. 오 년 전 중학교 이 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시도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미치도록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역시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당신의 머릿속에는 내 생각만이 가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지나친 자신감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승주씨 당신은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그 순간에도 온 마음 가득이, 온 머릿속 가득이로 내 생각만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발 자신의 그런 마음을 속이려 들지는 말아 주세요. 그냥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주세요. 그런 후에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 하는 장소로 내일 저녁 여덟시까지 꼭 나와 주세요. 거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잊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당신을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꼭 당신께서 나와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우리들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신다면, 방송일정이나 공연일정 따위가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장소는 바로 그 곳. 우리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로 하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나와 주시리라 믿습니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늘 당신만을 깊이깊이 사랑하고 있는 수창 드림.
사랑합니다. 승주씨!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후원계좌]
농협 453014-56-274483
예금주 남애균
작품 구상과 집필 작업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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