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01

2024. 12. 11. 10:25잎새의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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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잎새의떨림

 

글쓴이-허세창

 

[시대배경 및 장소]

1970년대 중반,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전시, 서울시, 동서고금 과거와 현대, 기타 지역 등등

 

[등장인물]

허수창(17세 남성): 1962년 충남 대전시 호동(虎洞)-속칭 범골마을-에서 호랑이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호랑이띠 사내. 대전 문창국민학교, 대전 중학교를 거쳐 현재 대전 상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 호정무(虎正武)의 창시자로서, 동서고금 최고 무공의 달인. 또, 문학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까닭에 공부하는 짬짬이 자신의 공책에다가 창작 단편소설이나 시를 쓰기도 하고, 또 음악, 미술, 무용(발레), 판소리, 창극 등과 같은 여타 예술 분야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 하지만, 여성편력이 지나칠 정도로 심하고, 한 도시의 깡패집단을 어린 나이에 송두리 째 접수 해 버릴 만큼의 반사회적인 능력도 십분 발휘하는 인물. 그러나 부조리한 정치현실이나 사회현실 같은 문제에도 끓어오르는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치열한 논쟁을 펼친다든가, 신문 기고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개선 해 보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등의 매우 특이한 기질을 가진 존재임.

김승주(23세 여성): 1956년도에 제주도 제주시에서 태어나 일곱 살까지 그 곳에서 살다가 전 가족이 충남 대전시 선화동으로 이사를 한 후, 대전 선화국민학교, 호수돈 여중을 거쳐, 호수돈 여고를 졸업한 후, 집안 사정상 대학입학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서 혜은이라는 가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 해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 인물. 깜찍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뇌쇄적인 미모와 순간적으로 살짝살짝 꺾어지는 비음 섞인 가녀린 미성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던 바, 허수창 역시도 중2 때부터 고2가 된 지금까지 줄곧 4년 동안, 그녀를 향한 가슴 시린 짝사랑의 열병을 지독하게 앓아오고 있는 중임.

공주미(23세 여성): 1956년도에 충남 대전시에서 태어나 김승주와 마찬가지로 대전 선화국민학교와 호수돈 여중, 그리고 호수돈 여고를 거친 후, 대전 한남대 음대를 졸업 하자마자, 곧바로 결혼을 하고 가정 안에 눌러 앉아 버린 색정끼 농후한 유부녀. 엄청난 미모를 무기로 허수창의 몸과 마음을 휘어잡고야 만다. 허수창과 그 어머니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이층 단독주택의 아래층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공주희(17세 여성): 1962년에 충남 대전시에서 태어나 대전 석교국민학교, 청란여중을 거쳐 현재 청란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공주미의 사촌 여동생. 사촌 언니인 공주미의 집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허수창과 마주치고 난 뒤, 첫눈에 그에게 반해 버리고 만다. 김승주, 공주미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이나, 허수창의 파렴치한 애정 행각을 눈치 채고 난 뒤, 엄청난 배신감으로 인하여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등지고 만다. 그로 인한 커다란 충격으로 인하여 허수창 역시 동반 자살까지 시도하나, 결국은 미수로 그쳐 버리고 만다.

장희정(14세 여성): 대전 신일 여중 2학년으로 지독히 빈곤한 집안 출신의 가출 소녀. 가출 후, 지리산 주변 시읍면 지역까지 흘러가 이리저리 떠돌고 다니던 중, 불량배들에게 걸려들어 그에 얽매인 처지가 되고 말았으나, 마침 공주희를 잃고 실의에 잠긴 채 지리산 산행을 간 허수창으로부터 극적인 구원을 받고는, 결국 그의 여자가 되고 마는 인물. 허수창이 끔찍이 위해주는 여인들 중 하나다.

장희원(12세 여성): 현재 충남 대전 보운국민학교 6학년으로 장희정의 사촌 여동생이며, 허수창을 매우 좋아하고, 많이 따르는 귀여운 어린 소녀. 사촌언니인 장희정과 많이 닮았다. 그런 이유로 허수창은 그녀를 많이 위해 주기는 하나, 차마 자신의 여자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장옥자: 20대 초반의 다방 여종업원. 공주미와 함께 다방에 들린 허수창을 처음 보자마자 홀딱 반하게 된다. 그녀 역시 그의 여자들 중 하나가 된다.

유진숙: 20대 초반의 화류계 여성. 여대생 행세를 하며 돈 많은 남자를 낚아보려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허수창과 만나게 된다. 결국 그녀 역시도 허수창의 여자들 중 하나가 된다.

윤소희: 허수창이 공주희와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가던 중에, 우연히 고속버스 안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그녀 역시 결국 허수창의 여자가 되고 만다.

김혜린: 요정에서 일하는 20대 초반의 젊은 화류계 여성. 허수창이 호정단 두목이 되어 부하들과 함께 요정에 들렸을 때, 그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 역시 결국은 그의 여자가 되고 만다.

정여리: 허수창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20대 초반 매우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교사. 허수창의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 결국 제자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그의 여자가 되고 만다.

정진희: 허수창이 장희정과 함께 사는 언덕위의 하얀 집 젊은 자가용 여기사. 허수창을 지독하게 흠모하고 있으나, 자신의 여자가 너무 많아 관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가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녀 역시도, 허수창의 여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손미혜: 허수창이 장희정과 함께 사는 언덕위의 하얀 집 젊은 여 가정부. 그녀 역시 허수창을 매우 흠모하고 있으나, 정진희와 마찬가지로 허수창이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임예나: 허수창의 어린 아내 장희정이 학교를 그만두게 됨에 따라,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새로 가정교사로 영입한 젊은 여성. 그녀 역시 정진희와 마찬가지로 허수창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여인.

허주희: 허수창과 공주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죽은 공주희를 생각해서 허수창이 주희라고 이름을 지어 줌. 커 가면서 놀랄 정도로 공주희의 모습을 닮아간다.

민지혜: 허수창과 같은 거시기 대학교 1학년 같은 과의 동료 여학생. 수줍은 성격과 폐쇄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허수창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되나, 의붓아버지에게 오래도록 성적 시달림을 받아 온 끝에, 결국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정인철: 허수창과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 동료 학생. 싸움 실력이 뛰어나지는 못하나, 선한 성품으로 인하여 허수창과 친한 친구가 되고, 나중에 허수창이 호정단 단장이 되었을 때, 부단장 중의 하나가 되어 호정단을 함께 이끌어 가게 된다.

탁재현: 허수창과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 다른 반 동료 학생. 싸움실력이 매우 뛰어나, 깡패집단인 학하리 파의 눈에 들게 되고, 결국 고등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학하리파의 똘마니 일원이 되어, 깡패 수업을 받게 되나, 결국은 허수창의 학하리 파 접수로 인하여 호정단 부단장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하돌이: 깡패집단 하돌이파의 두목. 허수창에게 굴복하고, 그의 부하가 되어 호정단 고문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추문상: 깡패집단 하돌이파의 부두목. 허수창에게 굴복하고, 그의 부하가 되어 호정단 고문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최달식: 족제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깡패집단 학하리파의 두목. 허수창에게 굴복하고, 그의 부하가 되어 호정단 고문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별님: 먼 다른 별에서 날아와 오래도록 지구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가수 혜은이의 외모를 빼어 닮은 외계인. 인도의 싯다르타에게 주었던 반지를, 다시 이씨조선의 교산 허균에게 넘겨주었다가,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허수창에게 넘겨주게 되는 인물. 반지가 가진 놀라운 영험함으로 인하여 허수창은 자신의 무공에 더 큰 힘을 실을 수 있게 된다.

박성철: 허수창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이층 양옥집의 아래층으로 아내인 공주미를 데리고 이사를 오게 되는 전직 학교 교사. 한마디로 백수. 믿거나 말거나 교장과 교감에게 대들다가 학교에서 짤리게 되었을 거라는 허수창의 억측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음. 어른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한다는 이유로 허수창을 혼찌검 내 보려다가 되려 자신이 당하고 만다. 결국은 자신의 아내인 공주미까지도 허수창에게 빼앗겨 버리고 마는 인물.

최수종: 호정단 단장인 허수창의 자가용 기사. 허수창의 여자를 건드린 이유로 기사 자리를 내 놓고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최민수: 허수창의 여자를 건드렸다가 쫓겨나게 된 최수종의 후임으로 호정단장 허수창의 자가용 기사가 된 인물. 눈치가 정말 빠르다.

장녹수: 허수창이 반지의 힘을 빌어 과거로 가서 만나게 되는 여인. 연산군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여인이다.

장희빈: 본명이 장옥정인 여인으로 조선 숙종의 애첩. 과거로 간 허수창이 그녀를 만나게 된다.

성춘향: 고전소설 춘향전에 등장하는 대표적 미인. 다층구조의 또 다른 세상 과거로 간 허수창이 그녀를 찾아보고 그곳에서는 성춘향이 실존 인물이었음을 확인한다.

민비: 본명이 민자영인 여인으로 조선 고종의 아내. 과거로 간 허수창이 그녀를 만나게 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과연, 그 무엇을 위하여 이 거친 세상 속에 남아있는가.

승주, 지금은 가을도 몹시 깊어 가는 밤

세상 모든 만물들이 더 할 수 없는 고요함으로

끝없이 침잠 해 드는 시간......

승주, 이런 밤이면, 나는 또다시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지친 이 영혼을 끝도 없는 하얀 밤에 울어야 한다.

마치, 저 숲 속 이름 모를 밤새의 그 흐느낌처럼......

승주, 그리고 다시, 여명의 시간.

싸늘한 갈바람이 새벽 창밖으로 스치어 갈 때,

밤새 시달린 초라한 내 영혼마저도

아스라한 꿈속으로 멀어져간다.

(열네 살 허수창의 스무 살 김승주를 향한 연정시 중에서)

 

내 나이 만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 공부를 아주 잘하는 편이고, 싸움 실력 역시 꽤나 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소위 노는(건들거리는) 애들과는 잘 상종하질 않는다. 왠지 천성적으로 고독을 즐기고픈(?) 기질을 많이 타고 난 때문이리라. 홀로 심신을 열심히 단련하여 학문과 예술, 무공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의 실력자가 되는 게 내 궁극적 목표라고나 할까. 특히, 무공 수준의 경우, 지금 단계에서도 거의 준 고수급은 되기에, 학교 밖의 웬만한 양아치들이나 학교 안의 노는 녀석들 그 누구도 선뜻 내게 대들지를 못한다. 겁 대가리 없이 내게 대 들었다가 곧바로 깨갱 해 버리고 말았던 몇 몇 노는 녀석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내가 현재 노는 놈들 사이에서 스라소니의 환생으로까지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원조 스라소니처럼 변칙적인 박치기 공격이 아닌, 번개처럼 빠른 손속과 발차기 기술 달인의 느낌으로써 말이다.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뻑 하면 쥐어 터지고만 살았던 악몽의 중학교 시절을 상기 해 보면 더 더욱 말이다.

그래서 더 일부러 고독한(?) 스라소니에 빙의가 되어보기로 한 나는, 방과 후에도 될 수 있으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질 않고 곧장 귀가를 해 버리고야 만다. 마치, 공부 밖에 모르는 순진한 범생이처럼 말이지. 물론, 제법 친하게 지내는 한 녀석만큼은 딱 예외다. 그 녀석이 같이 좀 어울리자고 할 때만큼은 못 이긴 척 적당히 함께 놀아주기도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니 말이지. 꽤나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그러나 나는 범생이는 범생이로되, 단세포적인 범생이의 길을 단호히 거부하는 놈이다. 호정무(虎正武)라고 하는 직접 개발한 무공의 지속적인 연마, 그래서 스스로 정한 명칭이 호정무인(虎正武人)이기도 하다. 호랑이 띠인 나의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공의 단련, 동서고금의 명저 섭렵, 그리고 학교 공부까지. 단세포적인 범생이가 아니라, 다세포적 범생이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훌륭한 인간의 길은 심신을 고루 완벽하게 닦아 뭇 사람들의 존경과 귀감이 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는 호정무인. 그리고 재즈음악이나 발레, 국악, 예술영화, 서양 고전 음악 등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스스로 참 대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관심사 중에 내가 요즘 새로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김승주(가수 혜은이)만큼이나 귀엽고 깜찍한 여자 친구 하나 사귀어 보자는 것. 이래 뵈도 나 역시 혈기왕성한 이팔청춘 아닌가. 하지만, 이 연애문제라고 하는 것이 좀 체 바람대로 잘되지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낯가죽 상태가 남보다 못해서 그런 것이냐. 물론 그건 아니다. 오히려 길거리든 어디든 오며가며 마주치게 되는 뭇 여자들-어린 소녀에서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죄다-이 너무도 많이 내 낯가죽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것이 되려 부담이 될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것이 이 나이(?) 잡수시도록 여자 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어 보지 못하고 있는 참 이유인 것이다. 그저, 가수 혜은이 김승주만 죽도록 짝사랑하면서 말이지. 에그, 가련한 녀석!

이런 가련한 녀석이 떡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계시는 모친과 더불어 단둘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이층 양옥집의 두 칸 셋방이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  가셨다. 그런데 10월 어느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층 셋방의 아래층으로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를 온 것이다. 집 주인이 새로 집을 지어 옮겨 가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아래층 집을 전세로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아주 살 떨리는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그 집으로 새로 이사 온 젊은 안주인이 나와 마주칠 때 마다 아주 요상한 표정과 몸짓을 계속 연출 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져오고 있다는 그 뜻이다.

사실,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하게 봐 왔던 그 어떠한 미녀조차도 감히 범접을 못할 정도로 그렇게 곱다. 아마도 인간종이 처음 진화를 한 이후로 숱하게 명멸 해 왔던 동서고금의 숱한 미인들조차도 그녀에게 만큼은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곱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아니, 단순히 곱다고만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점이 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곱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정도로 특이하고, 희한하고, 아름답고, 귀엽고, 색정적이고, 도발적이고, 수줍고 한 그런 여러 가지 모습들이 복합적으로 묘하게 뒤얽혀 있는 그런 신비한 느낌을 가진 여인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녀는 정말 미치도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물론, 그런 여자가 또 하나 있기는 하다. 내가 열네 살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슴 시리도록 흠모 해 오고 있는 여인, 바로 김승주라는 본명을 가진 가수 혜은이 말이다. 그녀 역시도 이 유부녀 못지않게 엄청 예쁘긴 하다. 아니, 오히려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아, 승주 누님! 미안합니다. 당신 외에는 절대 다른 여자한테 한 눈을 팔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느닷없이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하지만, 어쩝니까. 저 유부녀가 당신만큼이나 이렇게 나를 살 떨리게 하고 있는 것을. 그렇다고 허구 헌 날, 바보상자 속에서 당신이 노래하고 있는 모습만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 쉬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벌써 며칠 째, 등하교 시간마다 그녀의 집 현관문 앞에서 그 살 떨리게 생긴 여자와 계속 마주치고 있는 중이다. 이건 마치, 서로 미리 약속이라도 정해 둔 것 같다. 우연이든, 그녀가 의도한 일이든, 어쨌거나 기분이 묘해지는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녀의 남편은 학교 교사였다가 그만둔 사람이란 얘기를 어머니에게서 이미 들었다. 현재는 백수라는 사실까지도. 혹시, 교장이나 교감한테 멋대로 게기다가 덜컥 짤려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보고 있는 중이다.

부부가 이사를 온지 벌써 일주일 째. 남자가 백수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먼 소리로 거의 날마다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씩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난다. 심지어 여자의 흐느낌 소리까지도. 혹시, 여자가 손찌검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여? 정말 그렇다면? 끄응! 저토록 사랑스러운 여자에게 어떻게 감히 손찌검을 할 수 있단 말이여? 아니여. 교장이나 교감한테 개기다가 쫓겨 날 정도로 승질머리가 정말로 더러운 사내라면? 그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여. 아니 틀림없을 거여. 학교 교사정도면,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무시할 수 없는 명예로운 직업이니께, 그런 직장에서 쫓겨 날 정도라면......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도 정말 열 받네. 백수 주제에 왜 여자를 울리고 지랄이여 지랄이. 지가 전직교사면 다여? 내가 지 마누라라도 마찬가지겠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면 공사판 일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해야 할 거 아니여. 쉭쉭! 그나저나 저런 인간이 어떻게 저런 엄청난 보물덩어리를 낚아 올렸냐. 어떻게 다른 잘난 사내들 다 제치고 저런 보물중의 보물 덩어리를 꿰찰 수가 있었는가 이 말이여. 낯가죽이 그리 헤번 듯 해 보이지도 않던데. 내가 모르는 사내 나름의 특별한 매력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일까? 허수창, 너 지금 뭐하냐? 저 부부하고 너 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치고 박고 쑤시고 산다한들 굳이 네가 나서서 참견할 일은 아니잖어? 니가 무슨 저 여자의 친정 남동생이라도 되냐? 숨겨놓은 정부라도 되는 겨?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여. 하지만, 너도 이거 하나만큼은 걍 인정 해 주라. 뭘? 저 여자가 말이여. 지금 말이여. 나를 엄청 좋아하고 있다는 그 사실 말이여. 그게 대체 뭔 소리냐? 다 알고 있으면서 웬 내숭이여 짜샤. 아무튼, 두고 봐라. 내일이라도 당장 내가 저 여자를 그냥 콱! 딱! 파!

오늘도 역시 귀가 후,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호정무를 수련 한 후, 내 방에 틀어박힌 채로 열심히 학과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공부가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조금 전 그녀의 집 현관문 앞을 지날 때, 여자의 어깨살이 물컹하고 내 팔뚝에 닿아온 촉감 때문이다. 여자는 이제 완전히 노골적으로 내게다 육탄공격까지 감행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대범하고 화끈하고 씩씩한 여자가 왜 지 남편한데만큼은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더욱 더 내게 관심을 보여 오는 것일까. 불쌍한 여자 하나 잘 생긴 니가 제발 좀 구원 해 달라고? 정말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내일은 기필코, 여자의 간절한 그 염원(?)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사내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네 그려. 사내는 엄연히 저 여자의 법적 남편인 디. 고것 참 난감하네 그랴. 자자, 허수창, 여자가 싫다는 것도 아니고, 지가 먼저 몸이 달아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들이대는데, 더 이상 뭘 망설이는 겨.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여자는 유부녀잖여. 난 아직 미성년자 학생 신분이고. 그 자식 무술을 수련한다는 놈이 왜 이리 겁이 많은 겨. 니가 이러고도 니네 학교 대빵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는 겨? 수창아, 유부녀고 미성년자 학생신분이고가 다 무슨 대수여 임마. 남녀가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지.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는 거 몰러? 알어 임마. 내가 그걸 왜 모르겠어. 후! 그래, 니 말대로 내일은 미친 척하고 여자를 받아들이자. 나만 용기를 내면, 얼씨구나 하고 내 품안으로 달려 들 게 뻔하니까.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여. 하지만 역시 여자의 남편이 문제란 말이시. 내가 아무리 무공에 능하고, 공부도 잘하고, 학교 대빵이면 뭐 혀. 그 놈의 법적인 남편이 문제란 말이여. 하, 그 자식 용기를 내라니까. 그래? 휴! 모르겄다. 어쨌든 스칼렛 오하라의 넋두리마냥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인 것이지 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께.

(스칼렛 오하라/ 미국의 여류 소설가 마가릿 미첼이 쓴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빅터 플래밍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어 커다란 성공을 거둔 바 있음. 비비안 리가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할로 분함. -글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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