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2. 09:15ㆍ잎새의떨림
02
방과 후, 애기엄마의 집 현관문 앞에서 그녀와의 조우를 강력히 기대하고 있던 나는-등교 시간에도 마주치긴 했지만, 또 바보처럼 용기를 내지 못했던 탓에- 엉뚱하게도 그녀의 남편과 조우를 하게 되었다. 제기랄! 단단히 각오를 다져먹었건만!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아는 체 하기 싫어하는 본래의 내 성격상, 그냥 외면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것조차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았다. 느닷없이 그녀의 남편이 내게 시비를 걸어 왔던 것이다. 그것도 기분이 확 상해 버릴 정도의 거만한 말투와 태도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바로 이 쓸데없이 거만하게 구는 인간들이다.
"이봐 자네? 자네 이층에 살고 있는 학생 맞지? 나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 학생이 어른을 봤으면 먼저 인사를 해야지 버르장머리 없이 왜 그러고 그냥 지나가나?"
버르장머리? 다짜고짜 첫 대면부터? 이거 정말 완전히 개차반이군. 내가 저를 언제 봤다고 인사를 하냐. 그리고 학생이면 아무나보고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하는 법이라도 있어? 대체 그게 누가 정해놓은 엿 같은 법이란 말이여? 그리고 여기가 무슨 아래층 고교 2학년 1반 교실이라도 되냐? 그래 안 봐도 삼천리다. 그동안에 이 인간에게 시달렸을 학교 아이들의 그 엿 같은 심정을. 이 인간이 학교에서 짤려 버린 것 자체부터가 아이들한테는 더 할 수 없는 축복이요 경사였을 테지. 사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 꼰대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교탁 앞으로 불러내어 그것도 아이들 앞에서 제 마음대로 바지안의 불알을 떡 주물러대듯 하던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변태 국어담당 꼰대, 내가 뭐 지지배처럼 예쁘장하게 생겼다나 뭐래나. 그리고 뻑 하면 나를 앞으로 불러내어 그것도 아이들이 잘 보고 들으라는 듯 귀 딱지가 내려앉도록 수업료 타령을 일삼아대던 중학교 때의 그 밉살스런 담임 꼰대들. 누가 안 가져가고 싶어서 안 가져갔냐고. 함지박 길거리 떡장수 엄니가 수업료 줄 돈이 당장은 죽어도 없다는데. 그럼, 도둑질이라도 해서 수업료를 가져가야 했을까. 아, 물론 그 꼰대들 입장에서도 반 아이들을 무조건 닦달 해 보라며 교무실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나도 충분히 잘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점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꼰대들의 그런 완전 안면몰수 한, 사정이 있어서 수업료 납부가 조금 늦어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 해 주지 않는 그런 몰인정한 행태 때문에 애초부터 꼰대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내 호박 통 속에 강력하게 심겨질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과거 꼰대들의 그런 모습이 한꺼번에 떠 올라와서 그런지 한층 더 더러운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은 이 인간이 애기엄마의 엄연한 법적인(?) 서방이니 만큼, 성질대로 확 꼬장을 부려 댈 계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 대신 이 커다란 불쾌의 감정을 실어, 저 재수대가리 없는 사내의 면상 쪽에다 대고, 강렬한 야수의 눈빛을 날려주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학교의 노는 애들이 그토록 밥맛 없어하는, 아니 살 떨려하는 독기품은 스라소니의 눈빛으로 말이다.
“아니 이 자식이? 얌마! 너 지금 그 그거 무 무슨 시츄에이션이야? 누 눈깔 똑바로 안 깔어?”
시츄에이션? 명색이 전직꼰대였다는 작자가 시츄에이션? 외래어 남용의 본보기를 보여주는구만! 그나저나 아무리 승질머리가 엿 같아도 학생 녀석의 예상치 못한 대거리 행동에 말까지 더듬으며 급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전직 꼰대. 흐흐흐! 그럼 그렇지. 역시 너는 보잘 것 없는 양아치 부류에 불과했어. 그나저나 이 인간, 전직 꼰대가 맞긴 한 겨? 명색이 꼰대였다는 인간이 말할 수 없이 시건방지고 거만스러운데다가 무분별한 외래어 남발에 시정잡배스러운 말투까지. 그야말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전형적인 조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네 그랴!
“이 자식? 얌마? 눈깔? 시츄에이션? 이 양반이 주둥이로 똥만 쳐 드셨나? 빠다만 쳐 드셨나? 당신 죽으려고 환장 하셨수?”
시작을 안 했으면 몰라도, 일단 발동을 걸었으면 보다 대차게 나가 줄 필요성이 있다. 연장자에다 전직 꼰대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마음 약하게 굴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더 불러 올 뿐이다. 자고로 싸움의 승패는 기세 잡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뭐야? 당신? 주둥이? 죽으려고 환장? 아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새끼야!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너 이 새끼 뵈는 게 없냐? 그래, 야 이 새끼야!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너 같은 새끼들을 데리고 선생질 해 먹던 사람이다. 아니, 그래, 아래 위층 한 집에 같이 살게 되었으면, 어른한테 어린 학생 놈이 먼저 다가 와 인사를 하는 게 도리지, 어른인 내가 먼저 허리를 숙이고 애한테 인사를 해야 되는 거냐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이건 뭐 지나가던 사람이 처음 들으면, 나만 아주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이 인간이 증말!
“병신 육갑도 가지가지십니다요. 그깟 꼰대 질 좀 한 것도 자랑이라고? 댁이 꼰대였다고 하니, 나 더 더욱 댁 같은 부류한테는 인사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구먼. 그러니 앞으로는 나와 마주치더라도 절대 아는 척도 하지 마. 알았어?”
“뭐야? 아니 이 새끼가 정말 뒈지려고 환장을 했나? 야! 이 새끼야! 너 이리 와 봐! 에라 이 새끼가!”
쫘악!
헉! 나 지금 싸대기 맞은 겨? 이 호정무인이? 이게 말이 되는 겨? 실질적으로 학교에서조차 대빵 대접을 받고 있는 난데? 게다가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무슨 일인지 현역 꼰대들조차 감히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거늘? 그런데도 감히 전직 교사 따위가 나를?
“후레자식!”
헉! 후레자식까지? 으아아! 더 이상은 못 참어. 아니 안 참어! 급하게 분노의 주먹이 사내의 면상을 바라고 힘차게 뻗어나갔다. 이런 와중에도 내 두 눈깔은 아직도 현관문 쪽을 흘깃거린다. 왜? 그야 애기엄마 때문이지. 딱! 파! 그런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현관문이 느닷없이 휙 밀어젖혀지며 몽매에도(?) 그리던 그녀가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오늘은 더 이쁘네! 어쩌면 저리도 이쁘냐? 딱! 파!
퍼억!
“컥!”
전직 꼰대의 관자놀이에 내 분노의 주먹이 정확히 날아가 꽂히는 것과 동시에 -물론, 사내가 재수 없게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겠고, 또 옥수수들이 분리되어 나가서도 안 되겠고, 또 눈탱이가 맛탱이가 되어서도 안 되겠고, 또 그런 결과로 인하여 불쌍한 우리 떡 장수 엄니의 피 같은 돈이 합의금으로 낭비되어져서도 절대 안 되는 일이었기에 일부러 강도를 많이 조절한 상태의 타격이긴 했지만- 사내의 허리가 급격히 아래쪽을 향하여 구부러지고 있었고, 또 그 틈새를 이용한 내 왼손 주먹의 가차 없는 2차 타격 -이 또한 강도를 많이 줄인 상태의 타격이긴 했지만- 역시도 남자의 하복부 쪽으로 정확하게 꽂혀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강도를 많이 줄인 미약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벌써 눈알이 개개풀리고 두 다리마저 흐물흐물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 아마도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었다. 바로 그 때, 애기 엄마가 우리들 사이로 급하게 뛰어 들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더불어.
“꺄아악!”
놀라운 것은 그런 비명소리와 더불어, 애기엄마의 새하얀 섬섬옥수가 갈쿠리처럼 내 멱살 쪽을 향하여 쭉 뻗쳐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여자 뭐야? 표정이 마치 귀여운 암 표범 같군. 분명히 나를 좋아하고 있던 것 같은데? 아, 그렇군. 잠시 깜빡했다. 저 인간이 바로 이 여자의 남편이었지. 제기랄! 그런데 순식간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파고들 던 여자의 가느다란 섬섬옥수가 어느 순간, 내 손가락들 사이에 톱니바퀴처럼 꽉 끼워지고 만 것이다. 흡사 연인들의 다정한 그 손가락 깎지 놀이 장면처럼. 이게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렇군. 바로 이런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저 상태의 무의식적 발현이라고 하는 거겠지. 이제야 생각이 난다. 그나저나 이 여자의 손은 너무도 부드럽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손이 부드러울 수가 있을까? 이건 뭐 비단결보다도 더 하네 그랴. 으으! 살살 녹아서 없어져 버릴 것만 같어! 미치갔네 증말! 딱! 파!
“이거 놔! 너 이거 못 놓니?"
당신 정말로 이 손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아닌 것 같은데? 역시나 여자는 깎지 끼여진 손가락들을 다시 풀어 내 보려고 안간힘을 다 쏟는 체 하고만 있었다. 귀여운 것! 게다가 어거지로 눈물까지 마구 쏟아내며 서럽게 흐느끼는 장면 연출까지? 대단 혀! 이건 뭐 남정임(가수 혜은이를 사랑하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전까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여자배우)보다 오히려 낫네? 그나저나 뽀얀 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슬 같은 저 눈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죄다 흡입 해 들이고만 싶어! 살짝 벌어져 있는 박속같은 저 입술을 내 뜨거운 입술로 무작정 찍어 눌러 주고만 싶어!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지 바닥에 걸레처럼 널 부러져 있던 사내의 몸뚱이가 미세한 움직거림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자의 섬섬옥수는 이미 내 손가락들 사이에서 벌레처럼 부드러운 꿈틀거림을 보여주고 있었고, 열에 들떠있는 여자의 두 눈 역시도 뜨거운 내 눈길 안에 완전히 사로잡힌 채, 잔물결 같은 미세한 파동만 간간히 보여주고 있었다. 여자의 창부적 본능이 드디어 제 활약을 하기 시작한 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전직 꼰대의 몸 움직임이 좀 더 분명해지고 있다. 반항하는 여자의 섬섬옥수를 강제로 풀어 내 버리고, 여전히 열기에 휩싸여 있는 여자의 두 눈에서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는 대문 쪽을 향하여 곧바로 몸을 돌려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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