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04

2024. 12. 15. 09:09잎새의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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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여러 날이 지나도록 아래층 남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겨? 아니라면, 그 날 일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 겨? 그녀 역시도 통 보이지를 않으니 정말 이상하네 그랴. 몸이 달아 미칠 것만 같구먼. 혹시, 그 자가 진짜로 맞은 부위를 다친 거 아녀? 그렇다면 치료비를 대 주어야 할 텐 디? 우리 집 형편에 그런 돈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이여.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어떡 혀? 어떡하긴 뭘 어떡 혀. 그냥 몸으로 때우면 되지. 그 자식 말대로 그냥 깜빵에 들어가서 조금 살다 나오면 되지 뭐. 아니여. 정말 그렇게 되면 빨간 줄도 올라가게 될 것이고, 내 전도에 큰 지장을 초래하게 될 텐 디. 이거 증말 미치고 환장하겄구만!

그나저나 여자는 또 어떻게 된 겨? 왜 갑자기 안 보이는 겨? 혹시, 내게서 생각이 멀어진 겨? 아닐 겨. 나를 그토록 갈구 해 놓고서 느닷없이 생각이 바뀔 리가 없을 겨. 아니여.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 같다고 했는 디. 누가 그랬더라? 파스칼? 셰익스피어? 그래, 파스칼이여.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라고 뇌까렸었잖여.

애 타는 심정으로 일부러 더 계단을 자주 오르내리며 그녀의 집 거실 안을 기웃거려 보지만, 두툼한 천 가리개가 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하릴없이 그렇게 며칠을 더 계단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현관 앞에서 늘 나를 기다렸다가 묘한 눈길을 던져오던 그녀의 그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만 같다. 혹시, 내가 진짜로 꿈을 꾸었던 게 아닐까? 아니여.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오늘 아침에도 엄니가 사내 이야기를 또 끄집어냈었잖여.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나는 오늘도 역시 애타는 심정으로 열심히 그녀의 집 동정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 가 대문 쪽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녀의 집 현관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거짓말처럼 그녀가 그곳에 현신 해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이야! 그나저나 증말 반갑네. 이건 뭐 죽었다 살아나온 사람 다시 만난 기분일세. 하지만 원망스러워 이 여자야. 왜 이제사 모습을 드러낸 겨? 내가 그동안 너 때문에 그 얼마나 애를 태운 줄 알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하세요?"

절제된 태도로 여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 본다. 물론, 쑥스러운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지만, 기왕에 이미 손깎지까지 끼어 본 사이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미 눈빛으로도 서로의 마음까지 확인한 사이인데. 어차피 한번 뚫린 물길, 더 이상 거칠 것도 없는 것이고. 딱! 파!

“네.”

하지만, 너무도 간결한 대답. 그리고 굳어 있는 너의 표정. 이런 제기랄! 너 답지 않게 왜 그러니 이 여자야. 그냥 평소대로 혀!

"아저씨는 집에 계신가요?"

이런 건 지금 상황에 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겠지? 그 인간 따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게 우리 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어디 가서 뒈졌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너 하고 나 하고의 문제뿐인 것을. 물론, 할 말이 궁색해서 무심코 내 뱉은 말이긴 하지만.

"어디 좀 갔어요."

어디를 갔다고라고라? 그렇다면 네 남편이 지금 집에 없다는 말이지. 오홋! 이게 웬 일이냐. 가만, 정말로 고소하러 간 거 아닐까?  아니면, 병원에 치료 받으러? 아니여! 아니여! 그 정도가지고 병원 신세질 것 까지는 없는 일이여. 그리고 제깟 놈이 감히 어떻게 고소를 한 단 말이여. 그렇게 겁이 많은 놈이. 그나저나 이 여자 오늘 왜 이러냐? 왜 이렇게 힘이 하나도 없는 겨? 어디 아픈가? 여자가 저러니 더욱 더 할 말이 궁해지네. 무슨 말을 또 꺼내지? 그래, 이거다.

"오늘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꽤 괜찮은 질문 맞지? 여자를 걱정 해 주는 느낌도 살아있고. 딱! 파!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데 이름이 허......수창 인가요?"

어렵쇼! 이 여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맞아요. 그런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요? 나 가르쳐 준 적 없는 것 같은데?”

"다 아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원래 그렇게 성정이 괄괄하고 사나운가요? 처음에 봤을 때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던데?"

"그래요. 나 성정 사납습니다. 동시에 수줍음도 많이 탑니다. 이상하죠?"

“아니요. 그런 점이 오히려 좋아요."

그래, 바로 이거다. 그래야 너 답지. 진도 잘 나가고 있어. 딱! 파!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아줌마는 보면 볼수록 정말 매력적이네요.”

“그래요?”

“이리 와 봐요.”

나 이런 사람이다. 수줍음이 많다고 하지만, 한번 길이 뚫리고 용기가 생기고 나면,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왜요?”

왜긴 왜요. 당신 입술을 훔치고 싶어서지요. 딱! 파!

“어차피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한 사이, 구차스럽게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할 필요 없잖아요?”

“이러면 안 돼요 학생, 너무 급하게 서두르면 안 돼 흡! 흐흡!”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토록이나 대담해 질 수 있다니. 진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여자의 입술 느낌이 너무도 달콤하고 부드럽고 감미롭다. 거칠고 때로는 강렬하게 그 속을 휘젓다가 다시 부드럽게 감기어드는 촉촉한 혀의 촉감. 그리고 내 손바닥 가득이로 전해져 오는 탄력 있는 여자 둔부의 느낌. 게다가 코끝을 파고드는 그녀 머리의 들꽃 내음까지. 아 이런 것을 두고 뿅 간다고 하는 것이구나. 정말, 뿅 가 버릴 것 같군. 승주, 미안하오! 나 이런 사람이라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은 승주 당신임에 전혀 변함이 없소. 딱! 파!

“흐으흡!”

하여튼 희한한 여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소답지 않게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굴더니, 대번에 이렇게 표변해 버리는 것을 보라. 그래, 넌 바로 이런 여자였어. 앞으로도 네가 어떤 상태에 있던 내 마음대로 요리 해 버리면 그만인 거여. 왜? 너는 내 여자니까. 흐흐흐! 그런디 여자의 신음소리와 더불어 느닷없이 현관문 안쪽으로부터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아기 울음소리? 그래, 아가야. 울 테면 마음껏 울어라. 니 엄마는 지금 이 삼촌(?)하고 볼일 때문에 몹시 바쁘시단다. 그나저나 이 뽀얀 목덜미 살도 정말 예술이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거침없이 여자의 뽀얀 목덜미 살을 한 입 가득 덥석 물어 버렸다.

“으음!”

바로 그 순간,

딩동!

제기랄! 하필이면 이럴 때!

“그만해요! 남편이에요!”

“알았어요.”

꿀맛 같은 여자의 목덜미 살에서 아쉽게 입술을 떼어내며 달콤하게 속삭여 주었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여자의 뽀얀 목덜미 살이 발갛게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딩동!

제기랄 될 대로 되라지!

“아흑!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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