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05

2024. 12. 16. 09:44잎새의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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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먼 과거,

세상의 모든 밤하늘에는

명멸하는 수많은 별빛들이

찬란한 보석처럼 여울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빛나는 뭇별들을

착한 시선으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의 눈동자 속에서도

별빛들은 여전히 은비늘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들

다섯 식구 오붓하게 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 가득이로 웃음 짓던 밤.

아, 내 사랑하는 그대 손 꼭 붙잡고

저 아득한 밤하늘 가물대는 별빛처럼

하얀 박꽃으로 웃음 짓던 밤.

(스무 살 승주에게 미쳐있던 열네 살 수창의 일기 중)

 

 

일요일 밤,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와서 열심히 호정무(虎正武) 수련을 하다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이 정말 너무나도 곱게 반짝거린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마치 승주의 눈빛을 닮아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의 눈빛 같기도 하고. 내 마음을 마구 뒤 흔들어 놓은 또 다른 그녀의 그 눈부신 눈빛 말이다. 아, 나는 지금 승주 말고도 또 다른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맞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것 맞다. 딱! 파!

 

월요일 아침,

등교를 하던 중 그녀의 집 현관문 앞에서 그녀가 아닌 그녀의 법적인(?) 남편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제기랄! 재수 없게시리! 하지만, 엿 같은 마음을 애써 숨기고서 먼저 가볍게 목례를 건네 본다. 단번에 고개를 외로 틀어버리는 사내. 어렵쇼! 니가 감히 나를 무시 해? 인사도 안 한다며 시비를 걸어 올 때는 언제고? 아니지.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이여. 고맙소 고상하신 전직 교사 나리. 일부러 그렇게 외면까지 해 주어서. 당신의 그런 시건방진 태도야말로 이제부터는 더 이상 고소도, 치료비 타령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그 뜻 아니겄소? 내 기꺼이 그대의 호의(?)를 접수 해 주리다. 딱! 파! 그나저나 당신의 아내, 아니 이젠 내 여자가 된 당신의 법적인 아내하고 처음으로 입맞춤도 나누었소. 정말 감미롭고 달콤하더이다. 게다가 그 부드러운 목덜미 살을 한 입 콱 깨물던 맛이란! 하늘나라 천도복숭아의 맛이 그럴란가 모르겄소. 아, 미치겄소 증말! 딱! 파! 당신은 이제 애기 엄마를 완전히 내게 헌정(獻呈)해 버리고 만 것이오, 고맙소 진정으로.

자기 아내마저 고삐리 녀석 따위에게 기꺼이 헌정하신 못난 사내가 정원(庭園)의 다른 한쪽으로 슬슬 멀어져 가고 있는 뒷모습을 노려보며 힘차게 대문을 열어 부치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골목길을 맹렬히 질주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요. 나 나쁜 남자 맞습니다요 독자 여러분, 내게 돌을 던져 주세요. 돌을 맞고 뒤질지언정, 절대로, 절대로, 이제는, 이제는, 기왕에 이렇게 된 마당에는 애기 엄마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승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딱! 파!

 

방과 후, 백 할의 가능성을 안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중, 예상대로 단번에 애기 엄마와 딱 조우하게 되었다. 그렇지. 당신이 나를 안 보고는 못 배기겄지. 흐흐흐! 아마도 하루 종일 이 낭군님이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을 거다. 안 봐도 뻔하지 뭐. 당신의 그 절실했던 심정을 이 낭군님이 왜 짐작을 못하리오.

은밀한 눈짓으로 애기 엄마에게 가만히 사내의 부재 여부를 물어 본다. 애기 엄마 역시 은밀한 눈짓으로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어준다. 그래, 바로 이런 맛이지. 불륜의 남녀 사이에서만 통할 수 있는 긴장되고도 짜릿한 소통의 이 맛. 그나저나 그 인간, 놈팽이(백수) 신세라서 그런가 어디 마실 갈 데도 없는 모양이여. 하기야 누구라서 감히 놈팽이를 환영하겄는가. 일가친척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죄다 슬슬 피하기만 할 터. 같이 술을 마셔도, 차를 마셔도, 음식을 먹어도, 차를 타고 어디로 이동을 하자해도 죄다 놈팽이 것까지 이중으로 부담을 해야만 할 테니까. 나 같아도 절대 놈팽이 하고는 함께 어울릴 마음이 나지 않을 겨. 그나저나 불륜남녀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몰래 훔쳐 먹는 천도복숭아의 맛 역시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되는 법. 그런 흥분감을 안고, 여자 앞으로 서슴없이 바짝 다가선다. 더 이상은 망설이지도 않는다. 한번 뚫린 물길 아닌가. 그런 자신감으로 연분홍빛 그 입술을 거침없이 흡입 해 들이고 만다.

“이리 와 봐요!”

“흐읍!”

다시 말하지만, 한번 물길이 터지면 본래 일사천리가 되는 법. 설사 아무리 수줍음이 많던 사내라 하더라도 다 이렇게 되게 되어있다. 숫기 없고 수줍음 많은 사내들이여. 그러니 용기를 갖고 한번 도전 해 보라. 그 다음부터는 그대로 일사천리가 될 테니까. 여기 이렇게 산 증인이 있지 않은가. 본능적으로 고삐리의 가슴을 살짝 떠밀어 오는 애기 엄마. 하지만 거부 아닌 거부의 몸짓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고삐리 녀석, 그리고 애기 엄마.

“안에 있다니까요.”

애기 엄마의 속살거림은 오히려 더 고삐리 녀석의 거시기만 자극 할 뿐이다. 사내가 있으니까 오히려 더 짜릿하잖아. 흐흐흐! 이런 경우가 바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흘러넘친다고 하는 상황 아니겄는가? 미안 합니다 여러분, 외래어를 함부로 남용해서. 앞으로는 될 수 있는 한 우리 국어를 애용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슬아슬함과 살 떨림이 흘러넘친다고 해야 할 깝쇼?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애기 엄마의 허리를 휙 감아 잡고서, 굳게 닫혀져 있는 현관의 문짝에다 그 가녀린 몸뚱이를 바짝 밀어 붙인다. 혹시라도 있을 사내의 돌출 행동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입술을 옮겨 이번엔 애기 엄마의 뽀얀 목덜미 살을 또 한입 덥석 물어본다. 역시, 천도복숭아 맛이군! 마치, 산중군자(호랑이)가 막 사냥한 사슴의 뫼가지를 한 입 덥석 물어 버리듯 그렇게.

“음!......”

본능적으로 고삐리 녀석의 허리를 강하게 조여 오는 애기 엄마의 가늘고 뽀얀 두 팔모가지. 역시 요부(妖婦)라니께!

“주미 어디 있냐?”

“에? 에에! 여 여기요!”

“애 울어!”

“아 알았어요.”

애기 엄마 목소리의 마지막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삐리 녀석의 날렵한 몸뚱이는 벌써 자신의 집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밑으로 이동 해 와 있었다. 이 정도면 호정무 수련자다운 번개 같은 대처 아닌가? 아, 물론 사내가 두려워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유부녀를 해 드셨다는 핑계로 괜히 쓸데없이 여기저기서 오라 가라 할지도 모른다는 그 우려 때문이다. 물론, 십중팔구에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지만.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 전개 될 게 분명하다. 주변 사람의 입방아도 그렇거니와 더 이상은 이 동네, 아니 이 도시에서 제대로 낯바닥을 들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세상에도 꼬박꼬박 남편한테 하오를 바치는 여자가 다 있네.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더군다나 저토록 색끼 진득하니 되바라진 요부가 말이여. 세상은 정말 요지경(瑤池鏡)이여! 딱! 파!

애기 엄마의 달뜬 눈길이 여전히 내 근육질 등짝 위로 끈적끈적 달라붙어 옴을 느낀다. 그런 여자의 간절한 눈길을 그대로 뒤에 남겨 둔 채, 내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아침에 말씀한대로 엄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볼 일 보고 늦게 들어올 테니 혼자서 저녁 밥 챙겨 먹으라고 했었다. 교복을 벗고, 발 씻고, 세수하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는 그 다음엔? 식사? 호정무 수련? 아니다. 보무도 당당히 다시 또 아래층으로 향하고 있는 고삐리 선수. 요즘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 깊이깊이 공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딱! 파!

설마 했는데, 설마 했는데 어찌 저럴 수가? 대단 혀! 증말 대단 혀! 혹시, 일단은 들어갔다 이단은 다시 나온 것인가? 그나저나 방금 전에 봤는데도 보자마자 왜 이리 또 반가운 겨? 게다가 무슨 애기엄마가 시집 안 간 이팔청춘보다도 더 저리 청초름하고 우아 해 보일 수가 있는 겨? 이건 정말 기적이란께! 마치 우아한 그리스 여신과도 같은 저 미의 결정체를 보라지. 으드드! 내가 미쳐! 아프로디테인들, 헬레네인들, 황진이인들, 장녹수인들, 장옥정(장희빈)인들, 성춘향인들, 민자영(민비)인들, 어찌 지금의 저 애기 엄마 고운 자태를 당해 낼 수 있으리오? 아, 물론 승주 그녀만큼은 쏙 빼고. 딱! 파! 아, 불문곡직하고 그대로 내달아서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끌어안아주고만 싶어! 하지만, 자중해야겄지. 지금 저 미(美)의 결정체가 새로 자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거실 창문 밖으로 직방 내다보이는 자리이니께. 그나저나 현관문 앞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왜 위치는 변경하고 그러는 겨 이 깨물어 먹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여자야! 그랬으면 내가 곧바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더 당신의 뽀얀 목덜미 살을 덥석 깨물어줄 수 있겠건만서도. 천도복숭아처럼 그렇게. 딱! 파!

"안녕 하세요 아주머니,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아저씨는 집에 잘 계신가요? 몸은 어떠신지? 그리고 저번에 절 고소한다고 했던 그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정원마당을 크게 울리는 고삐리 녀석의 느닷없는 외침에 살짝 당황한 듯한 미의 여신. 놀라기는? 나 본래 이렇게 능청스러운 놈이여 내 사랑! 딱! 파!

“아 네, 반가워요 학생. 애기아빠는 안에 있어요. 그리고 몸도 괜찮고요. 그리고 그 고소 건은 우리 애기아빠가 그냥 없었던 일로 한다고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요. 학생이 사과도 몇 번씩이나 했잖아요.”

고운 눈을 찡긋 해 주며 곧바로 읊어주는 우리 예쁜이 선수. 잘 한다 우리 애기! 아니 애기 엄마! 아니지 우리 애기 맞지. 니가 아무리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라 해도, 너는 이제부터 내 애기가 된 겨. 딱! 파! 이런 경우를 두고 바로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하는 것인가? 그나저나 당신 법적인 남편은 그동안 정말 복 많이 받고 산거여. 말 그대로 선녀와 나무꾼 상황 그대로였던 겨! 그래 결심했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당신을 다시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끌어 올려놓고야 말겠어! 여기서 말하는 옥황상제는 당연히 허수창 청소년 비유법 되시겄습니다 네네! 딱! 파! 허수창 너는 청소년이라서 안 된다고? 그렇다면,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저 인간의 마수(?)로부터 당신을 완전히 분리시켜 놓고야 말겠어!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어디 먼 절해고도(絶海孤島)로라도 귀양(?)을 보내 버리고야 말겠어! 아, 사내의 씨앗인 저 애기까지도 도매금으로 묶어서 말이지. 두 번 다시는 당신과 내 곁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해 줄 겨. 딱! 파! 화상, 화상, 너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겨? 와 그리도 횡설수설 해 대는 겨? 그러다가 너 진짜로 콩밥 먹는 수 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짜샤! 누가 지금 당장 그렇게 한다고 했냐. 그래도 찢어지게 만드는 것만큼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잖어. 사내가 저렇게 놈팽이 신세로 빈들거리고 있고, 또 그로 인한 여자와의 불화도 심하고, 여자 역시도 이미 사내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나고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 아니냐 이 말이여. 찢어짐의 조건이 이렇게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경우 봤어? 봤어 짜샤? 짜식이 말이야. 꼭 토를 달고 나와요. 두고 봐 임마!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할 테니까. 에휴 나쁜 자식! 아무리 여자에 미쳤어도 그렇지 어떻게 생모하고 아이를 생이별 시킬 생각을 다 하냐? 화상 너 그러다가는 천벌 받을 겨. 벼락 맞아 뒈질지도 몰러. 그리고 학생 녀석이 무슨 수로 여자를 먹여 살릴 겨? 학교 때려치우고 공장생활이라도 할 겨? 못할 것도 없지 짜샤. 저런 여자하고 함께라면 그까이꺼 못 할 것도 없지 짜샤. 흐허어! 야가 드디어 실성을 해부렀구먼. 아이고 이를 어쩐다냐. 우리 고삐리 녀석이 유부녀한테 완전히 미쳐 부렀네. 그러면 혜은이는 어떡하냐? 우리 혜은이 정말 불쌍해서 어떡하냐? 이 자식이 증말! 누가 우리 혜은이, 아니 우리 승주를 버린다고 했어? 내가 아무리 이 여자한테 미쳐버렸어도 우리 승주는 승주고, 이 여자는 이 여자여. 둘 다 내 여자란 말이여. 그리고 너 승주라고 안 하고 왜 또 혜은이라고 하냐? 자꾸 그러면 맴매한다고 했지? 후다닥! 짜샤아! 거기 안 스냐? 저 자식이 증말!

열려진 거실 창문 안으로 사내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 눈가로 감지되어 온다. 보나마나 창문 밖의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제 법적인 아내하고, 또 재수 대가리 없는 저 고삐리 녀석하고 뭔 일이나 없을까 하는 그런 의심을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이 사람아, 이미 늦었어. 당신의 법적인 아내는 이미 이 고삐리의 차지가 되었으니께. 이제부터는 슬슬 찢어질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아니, 저 남쪽바다 절해고도로 귀양이나 갈 생각 하고 있으라고. 진짜 그래주었으면 좋겄어. 고명하신 천지신명이시여, 어떻게 그렇게 안 되겄습니까? 딱! 파!

“아,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그런데 아주머니! 아저씨는 출근 안 하세요? 늘 집에서 놀고 계신 것 같던데?”

흐흐흐! 놈팽이 아저씨 열 좀 받을까?

“네 학생, 애기아빠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에서 잠깐 놀고 계세요.”

얼씨구! 이건 뭐 척 하면 착이니, 천생연분이 따로 없구먼! 딱! 파!

그나저나 우리 애기의 이름이 주미인 것은 알겠는데, 성은 뭘까? 깜박 잊고 그걸 안 물어봤네. 김주미? 이주미? 최주미? 아니여 너무 평범해. 될 수 있으면 아주 특이한 성이면 더 좋겠지. 맹주미, 탁주미, 혜주미, 제갈주미, 선우주미 등등. 그래, 기왕이면 혜주미가 좋겠구나.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혜씨가 존재한다. 언젠가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가수 혜은이, 아니 김승주도 사실은 혜라는 성에다 은이라는 이름으로 예명을 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냥 혜은이라는 이름만의 예명이 아니고, 혜라는 성에다가 은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인 예명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진짜 이름은 혜은이가 아니고 김승주지만. 내가 지금 이 여자 주미보다도 더 끔찍하게 짝사랑하고 있는 그 이름이다. 그 사실을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다가 우연히 선데이서울이라는 잡지를 보고 알게 되었다. 다시 언급하지만, 혜은이, 아니 김승주 그녀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내가 정말 가슴 시리도록 짝사랑하던 여자다. 아니, 일반인 연예인 통틀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슴시린 짝사랑을 시작했던 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때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녀를 미치도록 짝사랑하고 있다. 여자 연예인 한사람을 이토록 오랫동안 광적으로 짝사랑 해 온 경우는 그녀가 유일하고, 또 앞으로도 죽 그렇게 될 것 같다. 물론, 문희나 남정임, 김지미 같은 여배우들에게도 살짝 정신을 빼앗긴 적은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시대 최고 미녀배우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정윤희나 유지인, 김자옥 같은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고. 아니, 너 지금 그런 절세의 미녀들을 죄다 마다하고, 그 무슨 요상한 짓거리냐 하실 분들이 분명 있을 줄 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서는 소위 양코배기들이 말하는 화학작용이란 것이 발동되지 않는다. 영어로 chemistry impact라고 하던가. 우리말로 소위 끌린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거다. 양코배기들은 끌린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아무튼 그 여자들한테서는 끌리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질 않는다. 끌리기는커녕 오히려 싫은 느낌이 더 강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다. 이 경우 역시도 양코배기들 단어로 against 내지는 aside라고 하는 것 같던데. 싫어서 밀쳐놓거나 제쳐 놓는다는 의미가 그 단어들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그 누구보다도 chemistry impact 화학작용 왕성하게 풍겨오는 혜은이, 아니 김승주 그녀를 영원히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녕코? 무엇보다도 더 그녀가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국민 학교(허수창이 살던 그 시절엔 초등학교를 국민 학교라고 불렀음- 글쓴이 주)에서 고등학교까지 죽 말이다. 그런 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진출하여 그 쟁쟁한 경쟁자들을 다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인기가수로 우뚝 선 것이다. 물론, 그녀가 태어나서 일곱 살 때까지 살았던 최초 고향은 제주도 제주시였다. 따라서 이 도시가 제 2의 고향인 셈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굳이 서울물을 먹지 않고도 그렇게 지방물만 먹고서, 또 대학교를 나오지 않고서도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여가수가 될 수 있었다니. 그래, 대학교 다 필요 없다. 자신의 능력만 있으면, 굳이 대학교 다닐 필요 무엇 있는가. 대학을 안 나오고도 그렇게 대단한 성취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리고 지방출신이라고 해서 함부로 깔 볼 이유도 없다. 서울물 좀 먹었다고 지방 사람들을 촌사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거 다 바보 등신 같은 짓거리다. 요즘 같은 개화(開化)시대에 말이다. 사실, 혜은이, 아니 김승주가 그렇게 일찍부터 사회로 진출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 김성택-제주도의 어느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기도 했었고, 또 낙랑쇼로 명성이 자자한 우리나라 최고의 유랑극단을 이끈 사람이었다고 한다.-씨가 진 후배 빚보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대로 먹고 살만하던 집안이었는데, 의리의 사나이(?)인 아버지가 그렇게 후배의 빚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집안이 알거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진학도 못하고서-이 대목의 경우, 진짜 그것 때문에 대학진학을 못한 것인지, 아니면 공부를 못해서 못한 것인지 여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될 수 있으면 전자이기를 기대 해 본다. 물론, 후자라도 상관은 없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공부를 못해서 대학교 못 갔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내가 먹여 살리면 되는 것이지. 딱! 파!-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서울의 밤무대에서 가수 일을 시작 하면서 불과 일 년 만에 당신은 모르실거야 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최고 인기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겨? 애기 엄마 야그 하다말고 왜 느닷없이 샛길로 빠져 든 겨? 아이고 독자님들, 이거 참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려. 가만? 아니지?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 이야긴데 굳이 샛길로 새어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하잖어? 고럼! 고럼! 아무튼, 우리 승주는 그런 대단한 여자인데 말입니다요. 언감생심 나 같은 무명의 고삐리 선수가 감히 그런 존재를 영원히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요. 그렇게 인기가 많고, 미모까지 출중하니, 남자 보는 눈은 또 얼마나 높아져 있겄냐 이겁니다요. 나 같은 고삐리 선수 따위, 아예 안중에도 없을 테지요? 후우우!

드르륵!

“응애!”

느닷없이 거실 창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애 울음소리까지도 크게 울려왔다.

“주미 너, 지금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애 안 보고 뭐 하냐고?”

놀고 있냐는 소리에 독이 많이 오르셨군. 그래도 이 사람아, 없는 얘기 지어낸 것도 아니잖어. 당신 학교에서 짤린 거 맞잖어? 그리고 놈팽이 짓 하고 있는 것도 맞잖어? 오죽 놈팽이 짓이 지긋지긋했으면 애 엄마가 저럴 겨?

“알았어요. 들어갈게요.”

“안녕 하십니까 아저씨. 지난번에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

드르륵! 탁!

상대하기도 싫다? 그려, 나도 바라는 바여. 이제부터 시작인데 뭐.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드라고!

“그럼 난 들어 가 볼 게요 학생. 애기 아빠가 저러는 건 학생을 다 용서했다는 뜻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직장 문제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학생이 좀 이해를 해 줘요. 그럼 또 봐요 학생! 안녕!”

그러며 은밀한 눈길까지 던져주는 애기엄마. 하! 미치겄다. 들어가거나 말거나 그냥 저 뽀얀 목덜미를 덥석 깨물고 말아?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아주머니! 안녕!”

일단 포기하고 후퇴하기로 한다. 여기서 잠깐, 애기엄마가 마지막에 들려 준 안녕소리와 내가 들려 준 안녕소리만큼은 서로에게 눈을 찡긋 해 주며 입만 벙긋거린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람. 놈팽이가 눈치라도 챌까봐 말이지. 그나저나 그냥 이대로 애기엄마를 놈팽이에게 보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도 아쉽고, 또 께름칙하다. 열 받는다고 애기엄마를 또 막 패 버리지 않을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인데.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 해 본다. 천지신명이시여! 놈팽이 녀석의 폭력으로부터 애기엄마를 잘 보호 해 주소서! 딱! 파!

 

도시의 서쪽 하늘이 붉은 낙조의 기운으로 한가득 덧칠되어 있다. 그리고 인적 고요한 동명중학교 운동장. 이 단골 공간에서 고삐리 녀석은 오늘 있었던 애기 엄마와의 그 짜릿한 조우장면을 흐뭇하게 회상하면서 열심히 호정무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한참 그러고 있노라니 벌써 어둠이 내려와 덮이기 시작한다. 도시는 그렇게 시나브로 밤의 장막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는 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정말 그 어느 때 보다도 절묘하고도 짜릿한 밀회였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발한 착상이었다. 본래 내가 살고 있는 이 이층 양옥집의 구조가 본래는 아래층과 위층으로 실내 복도계단을 통해서 서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복층 구조로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층에 세를 들어 살지 않았을 경우, 집주인이 아래 위층을 다 자신의 가족들의 거주공간으로 이용했을 때, 같은 가족들이 그 복도계단을 통해서 서로 위 아래층으로 왕복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굳이 실외 정원 쪽에 붙어있는 회사물(콘크리트)계단을 통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위층 거주공간에 세입자로 들어오면서부터 그 실내 복도계단 통로가 일시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그때부터는 서로가 다른 가족일 수밖에 없으니, 굳이 실내 복도계단 통로를 이용할 일이 없는 것이다. 친지라든가 친구집안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라면 또 몰라도 말이지. 그렇지 않은 이상에는 서로에게 볼 일이 있을 때도 일부러 바깥 회사물 계단을 이용 해 주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실내 복도계단 통로를 잡동사니 짐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굳이 막아놓지도 않았다. 그쪽으로 서로가 왕래만 하지 않으면 됐지, 굳이 막아놓을 이유까지는 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집주인이 새 세입자에게 세를 주고 이사를 나가버린 지금 이 시점까지도 이 실내 복도계단 통로가 가리개로 막혀져있지 않고 그대로 뚫어져 있게 된 것이다. 사내 역시도 미처 통로를 막아놓는다는 생각까지는 못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왜 이 실내 복도계단 통로에 대해서 지나치다고 할 만큼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그건 바로 이 실내 복도계단 통로가 오늘 우리의 아주 기발한 밀회 장소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우리 집과 아래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정확히 절반쯤 구부러져 돌아가는 바로 그 사각(死角)지점 말이다.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위쪽에서도 아래쪽에서도 전혀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한 뼘 밀회의 절묘한 공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 공간이야말로 나의 엄니에게도 사내에게도 전혀 들켜버릴 일이 없는 아주 절묘한 밀회장소일 수밖에 없다. 왜? 그야 뻔하지 않은가. 엄니든, 사내든, 누가 되었든 서로가 이곳으로 내려와 보고 올라와 볼 일이 전혀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균형적 배제의 절묘함이 우리의 위험한(?) 밀회 놀음을 굳건하고도 안전하게 지켜준 이유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흐흐흐! 앞으로도 자주 이용하게 될 겨. 기대들 하시라고. 딱! 파!

사각지점에서의 애기엄마와의 아슬아슬한 밀회 놀음이 몇 차례 더 이어지고 난 어느 일요일의 오후, 마침내 그녀와 내가 느긋하고 편안하게 밀회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낮잠을 즐기고 있는 엄니 몰래 바깥 회사물 계단을 이용해서 아래층으로 살금살금 기어 내려온 내게 들려준 애기엄마의 코맹맹이 말씀 왈,

“애 아빠가 오늘 아침에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 버렸어. 그것도 아주 먼 곳으로, 속이 답답해서 며칠쯤 바닷물냄새를 맡고 오겠다나 뭐래나.”

“정말?”

“정말.”

이게 웬 일이여? 이젠 스스로 알아서 멍석까지 깔아 주시다니. 혹시, 내 덜미를 채 보려는 수작 아닐까? 한참 천도복숭아를 깨물어 먹고 있을 때, 똥파리를 대동하고 느닷없이 덮쳐들겠다는 뭐 그런 거? 에이 뭐 할 테면 해 보라고 하지 뭐.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이 몸을 칭칭 휘감은들 어떠하리. 그까이꺼! 그까이꺼! 하나도 안 무섭지! 하나도 안 두렵지! 어차피 자네랑 애기 엄마랑은 진작 파토가 나 버린 마당. 한마디로 종쳤다 이거여 이 사람아. 아무튼 고맙소 고결하고도 숭고하신 전직 꼰대 나으리. 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겄소. 그런 의미에서 귀양 보내드릴 때만큼은 내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보내 드릴 것을 약조(約條)하겄소. 이건 정말 사나이간의 맹세요. 딱! 파!

드디어 애기 엄마의 성을 알았다. 저번에 그 사각장소에서 말이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혜씨가 아닌 공씨였다. 하기야, 사랑하는 두 여자가 다 혜씨라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지. 혜은이, 혜주미......

"주미씨, 남편 따라 바닷가로 가고 싶지 않아요?"

"아이 개구쟁이! 어서 안아주기나 해요!"

“알았어요.”

거머리처럼 매달려오는 여체를 그대로 번쩍 들어 안고는 그녀의 집안으로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 해 들어간다. 그나저나 무슨 애기엄마 몸무게가 이리도 가벼운 겨? 깃털보다도 더 가볍네. 한 손으로 잡고서 공깃돌 놀이를 해도 되겄어. 장담 컨데 45킬로그램이 채 안 될 거 같다. 이거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이팔청춘 어린 소녀의 몸뚱이도 아닌 애 엄마의 몸무게가 이리도 가벼울 수가. 하기야 우리 승주도 열아홉 소녀시절에는 몸무게가 불과 39킬로그램 밖에 안 나갔다고 하니.

“주미씨, 몸 관리 따로 하고 있는 거 있어요?”

“몸 관리요?”

“그래요. 어린 소녀도 아니고, 애 엄마의 몸무게가 너무 가볍잖아요.”

“그런 거 안 하는데?”

“정말요?”

“그래요. 나 몸 관리 따로 하고 그러는 거 없어요.”

“운동도 안 하고요?”

“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 준 완벽한 자연미인이네. 주미씨는 아무래도 옥황상제를 모시고 살다가 죄를 짓고 쫓겨 내려 온 하늘나라 선녀임이 분명 해요.”

이런 말은 사실 승주 만나면 그녀한테 처음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딱! 파!

“갑자기 무슨 선녀타령? 근데 내가 왜 죄를 짓고 쫓겨 내려 와요?”

“그야, 옥황상제 몰래 그 아들네미하고 놀아나다가 직방으로 걸려든 거지요 뭐.”

“깔깔깔!”

“와, 주미씨 그렇게 웃으니까 정말 개구장이 소녀 같다.”

“나 원래 개구장인데 뭐. 어릴 때도 그랬어요. 그나저나 나 이제 좀 그만 내려주면 안 될까요?”

“왜요?”

“자기, 팔 아플 것 같아서.”

“아니에요. 깃털처럼 가볍다니까 그러네요. 그런데 정말 주미씨 몸무게하고 키는 어떻게 돼요?”

“뭘 그런 걸 다 물어보고 그래요? 하지만 일단 물어왔으니까 대답 해 주지요 뭐. 사십삼에 백 육십 오.”

“정말? 애까지 낳은 애기 엄마가?”

“정말이에요. 그런데 자기야, 그 애기 엄마 소리는 그만 둘 수 없어요? 차라리 나를 애기라고 불러 줘요.”

흐억!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는 우리 애기라고 불러왔잖아? 혹시 텔레파시, 아니 기(氣)라도 서로 통한 걸까?

“애기? 애기는 저기 있는데요?”

“저건 작은 애기, 나는 큰 애기.”

꼬르륵!

“알았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큰 애기. 그나저나 애기 엄마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은 거에요?”
“당연하지요. 남자들도 애기 아빠 소리 듣기 싫어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뭐. 아참, 자기는 아직 어리니까 그런 소리는 안 들어봤겠다. 왜 그런지는 자기도 좀 더 나이를 먹어보면 알게 돼요.”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이 여자야. 그나저나 다 마찬가지다 뭐? 하아! 미치겠다. 깨물어 먹고 싶어 우리 애기! 딱! 파!

“알았어요. 앞으로는 무조건 애기라고 불러줄게요. 그리고 내가 왜 어려요? 나 이래 뵈도 낼 모레 스무 살 청년인데요.”

“쿡! 알았어요 낼 모레 스무 살 청년! 그런데 애기라고 불러주기 뭣하면, 공주님이라고 불러줘도 좋아요. 내 이름 공주미잖아.”

꺼억!

속이 약간 느글거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 무슨 조화여? 와 이리 기분은 야리까리한 겨? 왜 당연히 그렇게 불러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오는 겨? 이 여자의 끊임없는 닭살 행각에 나 역시 급격히 동화 되어버리고 만 겨? 아니면, 뜨겁게 안겨드는 사랑스런 이 몸뚱이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불러 주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다는 심리기제가 작동하고 만 겨? 그럴 겨. 십중팔구는 말이여.

“알았어요.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요. 그런데 우리 애기는 몸무게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키도 그렇고 어떻게 이렇게 골고루 다 완벽할 수가 있는 거에요?”

미안 하오 독자여러분. 특히, 식사 중이신 분들께. 하지만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정부(情婦)와의 밀회시간이라는 점을 감안 해 주셨으면 하오. 하지만, 주미 그대에게만큼은 미안한 게 하나 있구려. 내게 있어서 또 하나의 완벽한 우리 애기이자 공주님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 말이오. 바로 혜은이, 아니 김승주라오.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신보다도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 존재라오. 이 생명을 다 바쳐도 턱 없이 모자랄 만큼 그렇게.

“큭큭! 고마워요!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지만 키만큼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왜?”

“백 칠십 정도는 돼야지 이게 뭐야.”

꺼억!

이 여자가 증말! 그럼 키 백 오십육의 김승주는 대체 어쩌라는 거여?

“아니에요. 백 육십오가 딱이에요. 백 육십도 괜찮고, 그러나 백 칠십은 여자 키로 해서 너무 커요. 여자 키가 너무 크면 남자가 부담스럽다니까요. 백 오십오에서 백 육십오 사이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키보다 신체의 비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멀때 같이 키만 커서는 오히려 볼품이 없는 거 에요. 가수 혜은이를 한번 보라지요. 그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가 이 말이에요. 신체의 비율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는 거지요.”

그나저나 이 여자 설마 눈치 챈 것은 아니겄지? 내가 승주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딱! 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이라니까요.”

“알았어요. 그럼 나도 그냥 이대로 만족해야겠네. 그런데 자기 키는 정확히 얼마야? 대충 한 백 팔십?”

“쪽 집게군요. 에누리 없는 백 팔십. 마음에 들어요?”

“당연하지요. 키 큰 남자 싫어하는 여자도 있나 뭐. 자기도 정말 모든 것이 다 완벽한 것 같애. 나이 젊지. 키 크지, 얼굴 잘 생겼지, 목소리 좋지. 내가 괜히 자기한테 반한 게 아니라니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지. 자기 앞으로는 날 잘 지켜줘야 해요? 공주님을 모시는 백마 탄 기사처럼 말이야. 좀 닭살인가?”

“알긴 아네요. 그나저나 앞으로는 꼭 대패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이놈의 닭살 어쩔 겨? 알았어요. 내가 우리 공주님만큼은 란슬로트처럼 완벽하게 지켜 줄 겨. 그 어떤 놈팽이라도 감히 접근을 못하도록 24시간 동안 철저히 지켜 줄 겨!”

제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라고. 당신 지금 실수 한 겨. 흐흐흐!

“24시간? 그건 심했다.”

심하긴 뭘 심해 이 여자야. 나 안 볼 때 다른 놈한테 꼬리를 치겠다는 거여 뭐여?

“심하긴. 그게 당연한 거지요.”

“알았어요 알았어. 24시간 내내 지켜 줘요. 그건 그렇고 자기도 사투리 써요? 사투리 쓰니까 되게 웃긴다.”

“그게 왜 사투리에요? 충청도 표준어지.”

“순 엉터리! 그나저나 자기 학교공부는 어때? 벌써부터 이렇게 여자만 밝혀대니, 혹시 반에서도 꼴등 하는 거 아닐까? 쿡!”

“이 여자가 정말! 낭군님을 가지고 논단 말이지. 그래, 당신 입으로 스스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앞으로 다른 남자한테 절대 꼬리치면 안돼? 그러면 내가 가차 없이 맴매 해 줄 테니까. 우리 애기 뽀얀 방둥이 살을 손바닥으로 이렇게 찰싹! 찰싹!”

에고, 나 이러냐. 왜 자꾸 들판 쪽으로 달려가는 겨.

“깔깔깔! 알았어. 뽀얀 방둥이 살! 쿡쿡쿡!”

“공부는 잘 해요. 지난 시험 때도 전교 10등 했는걸.”

“정말? 거짓말! 자기가 무슨? 정말 그렇다면, 서울 대학교는 따논 당상이겠다 뭐.”

“속고만 살았어요? 못 믿겠으면 다음에 직접 성적표 보여 줘 봐요?”

“와, 표정이 싹 달라지는 거 보니까 진짠가 보네? 그러고 보면 내가 정말 능력 있는 남자 보는 눈은 있는 것 같애.”

“에고, 그건 아니네요 공주님. 그렇게 눈이 좋아서 저리도 능력 없는 놈팽이를 남편감으로 택했는감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나저나 무슨 애기가 저리도 순둥이처럼 잘 자지?”

“원래 그래요. 한번 잠들면 세상모르고 잘 잔다니까. 그래서 싫어?”

“싫을 리가 있나요. 나는 너무 좋지요. 그나저나 우리 이러고 있는 거 누가 보면 참 꼴갑들 많이 떤다고 하겠지요?”

“뭐 어때 우리끼린데? 그리고 우리는 꼴갑 떨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 걸? 누가 뭐래도 자기는 천하제일미남자고, 그리고 또 나는...... ”

“나는?”

“천하제일미녀......고.”

미안합니다. 독자 여러분. 애기 엄마를 대신해서 정중하게 사과 올리겄습니다.

“천하제일미녀라. 그리고 천하제일미남이라.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어디 천하제일미남과 천하제일미녀가 함께 뒤얽혀서 지상최고의 열락으로 빠져 볼까요?”

“또?”

“천하제일미녀답지 않게 웬 내숭? 천하제일미남과 천하제일미녀가 뱀처럼 뒤얽히는 거야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지. 오늘은 내가 우리 천하제일미녀를 완벽하게 울려놓고야 말겠어!”

“정말? 무서워!”

“무섭기는 좋으면서!”

“응애! 응애!”

“어머 자기야! 진짜 우리 애기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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