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5. 09:26ㆍ허세창여행
남도기행01-변산반도
8월의 어느 여름날 아침, 저는 일찌감치 부모님 집을 나서서 대전의 서남 방향으로 뚫려있는 있는 4번 국도로 천천히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여행 목적지는 바로 변산반도가 위치한 전북 부안지역입니다.
그렇게 계룡을 지나고 논산을 지나 부안까지 이어져있는 23번 국도로 접어들고 보니, 도로는 이제 차량의 소통이 많이 뜸해져 있었습니다. 대전 시내를 빠져 나올 때만해도 그토록 붐비던 차량들이 갑자기 이렇게 줄어든 것을 보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더 생기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도로에 차량들이 제 아무리 많이 넘쳐난다고 해도 이렇게 대도시의 교외로 조금만 벗어나게 되면, 교통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여름 휴가철이라고는 하나 오늘은 주말이 아닌 평일이기도 해서 더 더욱 그런 것도 같더군요.
제 차는 이제 강경을 지나 용안을 거쳐 함열, 익산, 김제를 차례대로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23번 국도의 상태가 예전과는 다르게 4차선으로 시원하게 확장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더 더욱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쉬며 가며 여유 있게 차를 몰아가도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제차는 이미 ‘매창 시비’가 있는 곳을 멀리 두고 변산반도 입구의 30번국도로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매창은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 기생입니다. 외모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나, 그 재기가 대단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은 여인이라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교산 허균 선생까지도 매창을 매우 흠모하여 이 곳에 머물며 홍길동전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마음 같아서는 한번 쯤, 매창 시비와 묘소에도 들려 그녀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느껴봐야 할 것이겠으나, 부득불 매창과의 조우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기로 했습니다. 여행 일정상, 미처 그 곳까지 둘러 볼 시간의 여유가 없는 까닭입니다. 사실, 이번의 남도 기행은 부안의 변산반도뿐만 아니라 고창 선운산 지역, 전남 월출산, 전남 강진 다산초당,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숨 가쁜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달리고 있는 이 30번 국도는 변산반도를 둥글게 감싸며 지나가는 길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30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기만 해도 변산반도의 중요한 문화유적지나 명승지 경승지등을 대부분 거쳐 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변산반도를 둘러 싼 이 30번 국도의 대부분 구간이 4차선이 아닌 2차선 구간이란 점입니다. 도로상태가 4차선이 아니고 2차선 구간이라고 한다면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주변 경치를 완상하며 운전할 수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2차선 구간을 경치를 감상 하기위해 여유로운 속도로 운행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뒤에서 따라 붙는 차량들에게 불편을 안겨주게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이제 변산반도 안으로 접어들었으니만큼, 본격적으로 문화유적지나 명승지 경승지 등을 차례대로 둘러보면서 풍광 소개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 있어서도 당연히 30번 국도를 따라가며 순서대로 그 주변지역들을 둘러보게 될 것입니다.
우선, 30번 국도를 계속 달려 하서란 곳을 지나 백련이란 곳을 지나고 보면, 처음 나타나게 되는 곳이 바로 새만금 방조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새만금 방조제 위로 나 있는 77번 국도와의 갈림길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 77번 국도를 달리면서 새만금 방조제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모두가 알다시피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기까지는 그동안에도 온갖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환경관련단체의 건설 반대운동이 있었고, 심지어는 같은 부안군민들 간에도 찬반 운동이 지속적으로 엇갈리기도 했었지요. 아무튼 그런 모든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방조제는 결국 완성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새만금 방조제의 건설 자체를 두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것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 역시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히 좋지 않은 문제가 있을 것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또 다른 견해도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냉엄한 현실은 기왕에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애당초 갯벌을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 시도 자체가 이루어지 않았다면 또 모르되, 결국에는 이렇게 완성을 보고야 말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 와서 기 파괴된 갯벌을 다시 되살린다고 기 축조된 새만금 방조제를 본래대로 환원시킨다는 것 역시 대단히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 되고야 말았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 축조 된 새만금 방조제 자체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더 이상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없게 하고, 또 이 곳 주변 지역의 환경을 더 맑고 깨끗하게 가꾸고 유지시켜 가는 일이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저는 이 새만금 방조제 역시도 구경을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볼만한 구경거리임에는 분명하나 여행 일정상 새만금 방조제 역시 차분하게 둘러 볼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 차는 77번국도로 들어서질 않고, 가던 길 그대로 30번 국도를 그냥 내쳐 달려 곧바로 변산 해수욕장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동안의 제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요. 한마디로 저는 생전 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변산 해수욕장에 대하여 정말 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상 외로 해수욕장이 매우 협소하고 추레하게 느껴졌으니까요. 30번 국도를 바로 끼고서 비좁게 붙어있는 모습하며, 마치 예전의 동해안 쪽 7번국도 도보여행 당시 목격했었던 볼품사나운 군소 해수욕장중의 여느 한 곳을 다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해수욕장 앞의 간이 주차장은 죄다 가게의 장사꾼들이 독차지 해 버려, 정작 일반 해수욕객들이 몰고 온 자동차들은 어디 하나 주차를 해 둘 공간조차 보이지 않더군요.
저 역시도 잠시 차를 주차 시켜놓고 사진이라도 찍어 보려 했으나, 어디 한 곳 차를 주차 할 공간이 없어 그냥 차 안에 눌러 앉은 채로 해수욕장 풍경을 잠시 차창 밖으로 휘둘러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억지 춘향 식으로 주차를 해 놓으려고 한다면야, 변산 해수욕장 한 참 못 미친 거리의 30번국도상 옆에 위치한 대형 무료 주차장에다 주차를 해 놓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곳에 차를 주차 시켜놓고 변산 해수욕장까지 30번 국도를 따라서 다시 걸어와야 한다는 것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오다보니, 그 대형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의 차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의도 광장만큼이나 널찍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피서객들의 차량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 그 커다란 공간이 아깝더군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곳에다 활용도가 거의 전무한 그런 공간을 마련 해 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어떤 곳에 해수욕객을 위한 별도의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오랫동안 변산 해수욕장을 동경 해 온 그동안의 제 마음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 셈입니다. 한마디로 변산 해수욕장은 마음 편히 해수욕을 즐길만한 공간까지는 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제 솔직한 의견입니다.
그렇게 변산 해수욕장에 대한 큰 실망감을 안고 제 차는 다시 30번 국도를 내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이유였을까요. 저는 고사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곳 팻말이 곧바로 눈에 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그곳마저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볼 것도 없이 변산 해수욕장 시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지요.
그 대신으로 저는 지금 그 명성도 자자한 적벽강(赤壁江)에 막 도착해서 해안가를 조용히 서성대고 있는 중입니다. 채석강(彩石江)과 더불어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명승지가 바로 이 곳이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름이 적벽강이라서 그랬던 것일까요. 이 곳은 예상외로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젊은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적벽강의 물가로 내려가서 호젓하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이더군요. 사실, 태양빛이 뜨겁게 내려 쪼이고 있는 이른 오후 시간인 탓도 있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저는 오히려 호젓하게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가 있었지요.
사실, 이 적벽강은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는 해안가에서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 자락을 돌아 펼쳐진 2km의 해안가를 그렇게 일러 부른다고 합니다.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가 노닐던 적벽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 하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그 이름만큼이나 붉은 색을 띤 바위절벽들이 해안가를 따라 둥근 모습으로 도열 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가까이로 건너다보이는 바닷물 속의 작은 바위들 위에는 이름모를 물새들이 날개를 접은 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더군요. 덕분에 저는 녀석들을 노리고 부지런히 사진기의 단추를 눌러 댈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제 느낌에 적벽강의 경치를 제대로 감상 해 보려한다면, 지금처럼 이른 오후시간이 아닌 석양 무렵을 택해서 찾아오는 편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적벽강을 둘러보고 난 뒤, 다음으로 제가 찾은 곳이 바로 채석강 이었습니다. 사실, 이 채석강이 위치한 격포라고 하는 동네는 본래 과거 조선시대에 있어서의 전라우수영 산하 격포진이 위치하고 있던 곳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주소지가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로 되어 있는 이 채석강은 변산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격포항과 그 우측의 닭의봉 일대 1.5km 층암절벽을 포괄하는 해안 일대를 그렇게 일컫는다고 하지요. 바닷가의 단애는 수성암이 단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수없이 많은 책을 겹쳐 쌓아 둔 모양새인지라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감탄성을 연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곳 채석강 역시도 본래는 채석강으로 불려지게 된 사연이 따로 있다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좀 전에 둘러보고 온 적벽강처럼 이 곳 역시도 애초에 중국의 고사에서 그 이름을 취 해 온 것이라 하니 말이지요. 중국 당나라 시절에 이태백이라고 하는 시성이 있었는데, 그가 술에 취해 뱃놀이를 즐기던 중, 강물에 어린 달그림자를 보고 잡아 올리려다, 그만 실수로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바로 그 중국의 채석강과 풍광이 거의 흡사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채석강에는 적벽강과는 달리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채석강과 바로 연해 있는 격포 해수욕장 때문인 것 같더군요. 특히, 채석강 바위절벽 바로 아래 쪽 해안가에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주로 어린 여학생들이 많이 눈에 뜨였는데 그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먼 바다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학생들은 입은 옷을 짧게 걷어 올린 채, 바닷물 속에다 종아리를 깊게 담그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지금은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오후의 시간대였으니까요. 저 역시도 그들처럼 채석강 바위절벽 그늘 아래에 붙어 앉아 먼 바다를 응시하며 가만히 상념에 잠겨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어떤 청년에게 부탁해서 덤으로 기념사진까지도 두어 장 찍어올 수 있었지요.
다음으로 격포 해수욕장에 대한 소감을 언급 해 본다면, 변산 해수욕장과는 달리 약간 더 큰 규모이기도 하면서, 또 변산 해수욕장과는 달리 주차 시설이며 다른 여러 가지 부대시설들까지 제법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 바로 황해 바다에 속해 있는 해수욕장이니 만큼, 동해안 쪽이나 제주해안 쪽에 위치한 해수욕장들에 비하여 볼 때는, 그 물빛이 많이 흐려 보이는 것을 정말 어찌 해 볼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빛이 그렇게 맑지가 않다 보니, 적벽강 이라든지 채석강 같은 명승지까지도 덩달아서 그 명성에 작은 흠결사항으로 작용할 듯도 싶더군요. 아름다운 바위절벽 풍광에 곁들인 맑고 푸른 바다가 아닌 누런색의 바다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본래부터 바다의 물빛이 그런 것이니 이제 와서 그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황해로 흘러드는 중국의 황하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나 아닌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황해는 그래서 황해인 것으로 치부 할 밖에요.
이렇게 해서 오늘의 변산반도 여행은 채석강 방문을 끝으로 간단히 끝맺음 해 보려 합니다. 물론, 변산반도의 이 곳 저곳엔 제가 오늘 둘러 본 곳 말고도 좀 더 많은 볼거리가 산재 해 있습니다. ‘부안영상테마파크’도 그런 곳이고 방송극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한 장소 역시도 그런 곳이라 할 수 있지요. 또한, 내륙 쪽에 위치한 낙조대나 와룡소 직소폭포 등을 좀 더 시간을 두고 둘러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의 이번 남도기행은 한 지역에 오래 머물도록 계획된 여행이 아니니만큼, 이번만큼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이 곳 변산반도를 출발해서 두 번째로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곰소만을 돌아서 만나게 될 고창군 지역입니다. 그 곳에서도 바닷가 쪽으로 좀 더 면해있는 선운산 쪽이 저의 진짜 목적지가 되는 셈이지요.
2009.04.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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