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3. 09:14ㆍ허세창장편소설

46
“저것들은?”
“오빠......”
가출소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다. 내 등에 업혀 있으면서도 놈들에게 납치당했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라온 때문이리라.
“뭘 떨고 그래? 그 때 일 때문에 그래?”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니,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바짝 더 내 등짝에다 새가슴을 밀착 시켜 오는 가출소녀. 알다가도 모를 것이 여자의 속성이요 심리가 아닐 수 없다. 씩씩할 때는 한없이 씩씩하다가도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또 끝도 없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런 현상들. 그건 비단, 이 가출소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미 역시도 그렇고, 희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특히, 희에 대해서는 더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희 때문에 또 가슴 속이 쓰려오는 것을 억지로 눌러 보려고,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가출소녀를 위안하고 들었다.
“저것들을 이번엔 어떤 식으로 잠 재워 줄까?”
“오빠, 우리 그냥 가자.”
트램블린처럼 가늘게 떨려 나오는 가출소녀의 목소리.
“저것들이 도대체 뭐가 무서운데? 그 이유나 한번 속 시원히 들어보자.”
정말 그렇다. 알 수 없는 일이다. 한용운 시인의 ‘알 수 없어요’가 아니라 허수창 시인의 ‘알 수 없어요.’다. 딱! 파!
“오빠......”
그러고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었지. 아주 어렸을 때 아무 애들한테나 줘 터지고 살던 시절, 다른 아이들은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는 아이한테까지도 나 혼자만 벌벌 떨어대던 때가 있었지. 그 아이에게 호박 통을 한 번 쥐어 박혔던 그 쓰라린 기억 탓으로. 희정이의 현 심리상태가 아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제 3자가 볼 때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녀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별 볼일 없는 녀석들에게 직접 납치를 당하고 협박까지 당했던 그 무서운 기억 때문에 말이지.
“희정아, 내가 볼 때는 너 지나치게 저 녀석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저 자식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오죽 못난 놈들이면, 오빠 손가락 하나의 장난질에도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널부러졌겠냐? 그러니 이젠 더 이상 두려워 할 게 없는 거야. 내가 볼 때는 저런 녀석들이 오히려 여자한테도 꼼짝 못하는 등신들일 거야. 나중에 결혼하면, 공처가 신세를 못 면하는 족속이란 거지. 특히, 희정이 너 같이 씩씩한 애한테는 더 꼼짝 못하는 녀석들일 거야. 내가 알아. 겉으로만 씩씩한 체 하지. 알고 보면 저런 애들 별 거 아니라니까.”
“알어 오빠. 하지만, 알면서도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 나도 이런 내 내 자신이 정말 싫어!”
여전히 트램블린 같은 목소리. 에고, 정답 없다.
“희정이 너, 니네 학교에도 싸움 잘하는 여자애들 있니?”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뜸을 두는 가출소녀.
“그건 왜?”
“그야, 너도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나 해서.”
“있긴 하지만...... 면도칼 가지고 다니는 애들.”
“면도칼?”
어린 소녀들에게 왜 그런 물건이 필요할까? 혹시, 겨드랑이 털이나 종아리 털, 아니면 거시기 털(?)을 밀어주기 위해서? 딱! 파!
“걔네들. 무서운 애들이야. 남자애들하고 싸울 때도 면도칼을 북 긋는단 말이야. 그래서 걔네들한테 됩다 당한 남자애들도 많대.”
그래?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지? 하기야 누가 일부러 들려주지 않는 이상에는 알 도리가 없는 일이긴 하지. 반 녀석들 역시, 내가 먼저 뭘 묻지 않았으니, 굳이 들려 줄 리도 만무하고.
“그럼 너도 그런 애들하고 어울린다는 거니?”
“......”
“왜 대답이 없어? 그럼 너도 면도칼 소녀란 말이야?”
그제야 마지못해 입을 여는 가출소녀.
“아니야. 나는 아니야. 면도칼 소녀가 아니고, 그냥 가출소녀일 뿐이야.”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는데 왜 이래? 나는 정말, 아니야. 나는 그딴 거, 무서워서 가지고 다니지도 못해.”
믿어주마. 내가 너를 안 믿고 누구를 믿을 겨. 학하리 녀석들을 믿을 겨? 박성철(공주미 법적인 남편)을 믿을 겨? 그래, 나는 희정이 너 만큼은 무조건 믿을 겨.
“나, 피곤 해 오빠, 우리 어디 가서 좀 쉬면 안 될까?”
그럴 것이다. 왜 안 그럴 것인가.
“어디 가서 쉬고 싶은데?”
“저기 보이는 여관 방......”
히익! 그래, 놀라지 말자. 우리 희정이는 이제 막 시골에서 오빠를 찾아 올라온 친 여동생인데 뭐. 그 이름도 허희정인데 뭐. 딱! 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쬐그만 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그게 아니고 오빠. 나는......”
괜찮아 희정아. 오빠는 충분히 이해한단다.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급해도 먼저 해결을 지어 놓아야 일이 있잖니.
희정이를 그대로 업은 채, 다짜고짜 나무들이 빽빽한 어두운 숲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녀석들이 다급해 하는 몸동작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저 녀석들도 참 가련한 인생이란 말이지. 악귀야차와도 같이 무서운 고삐리 녀석을 마지못해 저렇게 쫓아다녀야만 하는 신세라니.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다오. 빠른 시일 내에 네 녀석들도 죄다 내 밑으로 고이 접어 줄 테니. 가출소녀가 자신의 작은 새가슴을 더 강하게 내 등짝에다 밀착시켜 온다.
“저 녀석들이 그리도 무서운 거야?”
“그게 아니고, 이런 숲 속보다 여관방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떽!”
“왜에? 졸려서 여관방에 잠자러 가고 싶다는 건데.”
“나는 다 알지. 졸려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저 녀석들이 무서워서 그런다는 거. 하지만 희정아, 우리 잠깐만 저 녀석들 골탕 좀 먹이고 가자. 이렇게 한번 해 봐. 사람 살려요! 하고 크게 한번 외쳐 봐.”
“왜에?”
“오빠가 너를 납치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며보잔 말이야. 저 자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풋! 하여튼 짓굳은 건 알아줘야 해. 알았어.”
지리산 때처럼 들입다 뛰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아아악! 사람 살려 주세욧!”
흐흐흐!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다.
가출소녀의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몹시 황당해 하는 모습을 보이는 녀석들. 에고 재밌어!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지 않니?”
“뭐가?”
“너를 이렇게 아무리 업고 걸치고 해도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으니 말이다.”
“거짓말!”
“진짜라니까.”
에고, 답답 혀. 그래서 이번에는 희정이를 내려놓고는 손바닥을 쫙 펴서 그 앞으로 쑥 내밀어 보였다.
“이 손바닥 위로 올라와 봐. 실험 좀 해 보게.”
“장난 좀 그만 쳐! 저치들 또 다가오고 있단 말이야!”
“다가오거나 말거나 저깟 놈들 무슨 대수니. 걱정 말고 그냥 한번 올라 서 보라니까. 확인 좀 해 보고 싶어서 그래.”
“오빠는 지금, 내가 무슨 엄지공준 줄 알아?”
“엄지공주? 그래, 너 엄지공주 맞아. 나만의 사랑스러운 엄지공주. 그러니 어서 올라 서 봐!”
“싫단 말이야. 어차피 안 될 건데.”
그러면서도 가출소녀는 가만가만 신발을 벗어들고는 두 발을 차례대로 내 한 손바닥위에다 올려놓아 보는 것이었다.
역시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빈 손바닥을 하늘 쪽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 무게감이 하나도 안 느껴지네? 이게 왜 이렇지?”
“정말? 거짓말 하고 있는 거 아냐? 내 몸무게가 35킬로가 넘는데? 오빠 혹시 차력사 아니야?”
그런 것 같다. 마치 내가 차력사라도 된 기분이다. 우째 이런 일이? 그런 순간에도 두 녀석은 멈칫 멈칫 우리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자식들, 명색이 깡패 똘마니라는 녀석들이 저리도 겁이 많아서야.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반지 낀 손가락을 들어 녀석들 신형 쪽으로 쭉 내 뻗어 보았다. 녀석들이 갑자기 기력을 잃고, 그냥 그 자리에 철푸덕 철푸덕 주저앉기를 기대 해 보면서.
철푸덕! 철푸덕!
허걱! 지 진짜네? 저 정말로 요 요술반지였어? 그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요잇!
희정이를 품에 안고서, 그 자리에서 폴짝 폴짝 뜀뛰기를 시도 해 보았다.
폴짝! 포올짝! 포오올짝! 포오오올짝! 포오오오올짝! 포오오오오올짝!
허거걱! 지 진짜네? 이 이게 도대체?
“꺄아악!”
솟아오르고 있다! 높이! 높이! 희정이의 비명소리와 더불어 내 몸뚱이가 하늘 쪽으로 마구 마구 솟구쳐 오르고 있다. 마음먹은 대로 일 미터, 이 미터, 십 미터 쑥 쑥 솟아오른다. 자, 좀 더 높이! 높이! 솟구쳐 보자. 하지만, 십 미터 이상은 잘되지 않는다. 십 미터 정도가 한계인 듯싶다.
“꺄아악! 꺄아악!”
가출소녀의 비명 소리가 밤하늘 가득이로 넓게, 넓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허세창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8 (0) | 2025.11.27 |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7 (7) | 2025.11.20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5 (2) | 2025.11.07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4 (3) | 2025.10.31 |
| [장편소설]잎새의떨림43 (1) | 2025.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