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잎새의떨림45

2025. 11. 7. 15:53ㆍ허세창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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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그리운 아빠

 

아빠하고 나는 언제나

따로 살아요.

아빠는 먼 곳에, 나는 이곳에.

언제나 그렇게 따로 살아요.

깊어 가는 가을밤,

가만히 고개 들어 별들을 보면,

또다시 떠오르는 아빠의 얼굴

또다시 생각나는 아빠의 얼굴

(국교 1년 허수창 어린이의 낡은 공책에서 본 동시 한 토막)

 

“아, 아빠가 여길 어떻게?”

그야말로 경악할 일이었다. 이런 장소, 이런 자리에 어떻게 희정이 아빠, 아니 장인 어르신(?)께서 느닷없이 현신을 하셔서는 우리를 저렇게 째려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하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요지경 속 그 자체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서도. 요즘 들어 내 주변에서 발생한 일들만 해도 그렇다. 외계의 비행물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학하리 파나 도끼 자식의 비상식적인 사고방식 내지는 행동 방식 하며, 희의 느닷없는 자진(自盡) 사건에, 공주미라고 하는 희대의 색골유부녀(?)와 허수창이라고 하는 희대의 색골고삐리(?)의 엽색 행각 역시도 마찬가지다. 자, 그러니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희정이 부친, 아니 장인 어르신께서 느닷없이 현신을 하셨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게 놀랄 일이라 할 것인가. 그렇지. 생각 해 보니 정말 그러네. 아니 오히려 잘 된 일이여. 어차피 한번은 찾아뵈었어야 할 분 아닌가. 딱! 파!  

“희정이 니 아빠시니?”

“응!”

“그런데 어떻게 니 아빠가 여기를 찾아오신 거야? 니가 오시라고 말씀 드렸어?”

“아냐 오빠. 나 말 안했어.”

“너 이눔 지지배! 당장 그 자리에서 못 일어나? 그리고 너 이눔 자식! 너 도대체 뭐하는 눔이여? 뭐하는 눔인 디 내 딸을 함부로 꼬여내서 이런데서 이 지랄하고 자빠진 겨? 너, 에비도 없는 후레자식 눔 아녀?”

헉! 장인 어르신, 초면에 너무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위에게 어떻게 그런 막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요? 사위는 언제나 백년손님이란 말도 있는뎁쇼. 이 못난 사위가 떡장수 홀 엄니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지요. 우리 엄니가 그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십니까요? 팔다 남은 떡이 있으면, 가끔가다 한 번씩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심도 베풀 줄 아시는 그런 분이란 말입니다요. 저 먹을 떡도 없는데 말입니다요.

“어르신, 초면부터 이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저 보고 에비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랬다 이눔아! 그럼 니가 에비 있는 후레자식이여? 에비도 없는 후레자식 눔이니 이렇게 남의 딸자식이나 후려내서 집에도 못 들어오게 만드는 게지?”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기분이 짭조름한 겨. 사위 녀석이 잠시 답변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딸네미가 잽싸게 앙탈을 하고 나섰다. 

“그만 해 아빠! 술 따라지 주제에 오빠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내가 가출한 건 이 오빠 때문이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또 여기 있는 건 아빠가 어떻게 알았어?”

얘가 왜 이래? 아참, 그렇지. 얘는 불량 청소녀, 아니 가출 소녀였지. 그 이름도 거룩하신 가출 소녀. 에고 에고! 장인어르신, 이 못난 사위가 대신 따님의 잘못을 사과 올리겄습니다요 네네!

“이 년이 미쳤나?”

“나 안 미쳤어. 미친 건 오히려 아빠란 말이야!”

희정이 너 그만!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느니. 그것도 너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아빤데. 아무리 술 따라지 아빠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겨. 나 정말, 너한테 실망...... 했다고 그럴 줄 알았지? 미안하다. 안 실망해서. 그러나 제가 한 번 길은 들여 보겄습니다요 장인 어르신! 아니, 가르쳐는 보겄습니다요 장인 어르신! 이제부터 이 철딱서니 따님을 제가 아주 훌륭한 현모양처로 키워 보겄습니다요 장인 어르신! 그러니, 제발 노여움을 푸시지요.

  뒤늦게 야간비행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남의 영업장에서 들어 오셔서 이게 뭐 하는 거냐고요? 당장 나가 주세요. 빨리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겁니다!”

책임자의 강력한 항의에 장인어르신, 순식간에 태도를 일변 하신다. 와, 대단하시다. 변검(서토 오랑캐들의 전통 탈극 중의 하나- 글쓴이 주)을 하셔도 될 것 같은디요 장인 어르신. 헤헤헤!

“이거 실례했소. 지금 내가 가출한 여식을 십년 만에 다시 찾고 보니, 본의 아니게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됐소!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를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뜨어억! 진정한 잔머리의 대왕은 이 사위가 아니라 우리 장인 어르신이었던 겨. 딱! 파!

아닌 게 아니라 책임자 역시 그런 말까지 들어 놓으니, 차마 더 이상은 추궁(?)을 못하고, 급히 우리 쪽으로 각진 눈을 돌려 세운다.

“지금 이 분 하신 말씀이 전부 맞나요?”

하나도 안 맞는 뎁쇼? 그러나 저러나 아저씨, 어디로 봐서 우리 희정이가 십년 전에 가출한 소녀로 보입니까? 물론, 가출 소녀가 맞긴 하지만, 십년까지는 아니라고요. 가출한지 보름 쬐끔 넘었다는 디.

그 순간, 장인 어르신의 갈쿠리 같은 두 손아귀가 가출소녀의 머리채든 멱살이든 뭐든지 확 낚아챌 요량으로 급격히 뻗쳐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르르! 꼬르륵!

느닷없이 웬 의태어(擬態語) 등장이냐굽쇼? 그랬다. 장인 어르신의 신형이 느닷없이 중심을 잃고는 바닥 쪽으로 스르르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딱! 파! 왜 임마? 화상, 니 짓이지? 하, 고 자식. 새삼스럽게 묻긴 뭘 물어? 지송한 일이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단 말이여. 아무리 그래도 니 장인 어르신인디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들을라고? 막말로 싹 바가지가 없다고 내 딸 너한테 절대 못 주겠다고 하시면 어쩔 거여? 그게 그런가?

“아빠! 아빠아!”

“장인 어르신! 정신 차리세요! 장인 어르신!”

놀란 눈길로 나를 돌아보는 가출소녀. 미안 혀 희정아. 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건 디 새삼스럽게 뭘 그리 놀라고 그려. 책임자와 가출소녀의 황당해 하는 시선을 등 뒤로 둔 채, 묵묵히 제 할일을 수행 해 나가기 시작하는 사위 녀석. 미동도 못하고 있는 장인어르신의 곁에 바짝 쪼그리고 앉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기문 혈을 역으로 짚어 드렸다. 정으로 짚으면 혈을 차단하여 일시적으로 시간차 신경마비에 놓이게 할 수 있으나, 역으로 되짚어 놓으면 누르는 세기나 강도, 시간에 따라 깨어나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인어르신이 십 분 쯤 있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적절히 조치를 해서 푹신 의자 위에다 편안하게 뉘여 드린 다음, 책임자를 돌아보며 부탁을 했다.

“한 십 분쯤 있으면, 저절로 깨어나실 겁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그냥 이대로 놔두세요. 그리고 우리는 그냥 먼저 나가겠습니다. 희정아, 가자.”

“아빠는 어떡하고?”

“다시 깨어나면, 또 방방 뜨실 테니 그냥 먼저 나가자.”

“그건 안 됩니다. 영업에 방해가 되니, 이 분도 함께 모시고 나가 주세요.”

각진 눈을 더 크게 치켜세우는 책임자. 제기랄!

“돈 여기 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 아니 이봐요! 이봐요!”

책임자의 다급한 외침소리를 뒤로 한 채, 희정이를 휙 낚아 채 들고는 번개처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몇 십 미터의 거리를 더 날쌔게 도망(?)쳐 갔을 때,

“오빠 잠깐만! 우리 아빠 저렇게 그냥 놔두고 가면 어떡해? 아무래도 병원에 모시고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내가 잠시 장난을 쳐 놓은 거니까. 내 말대로 십 분만 있으면 다시 깨어나실 거야.”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어?”

“이 바보야. 너 지리산에서 있었던 일 잊었어?”

“무슨?”

“오빠가 그 두 녀석을 어떻게 잠재웠는지 벌써 잊었냐고?”

“그게?”

“그래, 오빠가 그 녀석들처럼 네 아빠한테도 잠시 장난을 쳐 놓은 거야.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아, 그 혈자린가 뭔가 하는 그거?”

“이제 알았니?”

“휴! 다행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우리 아빠가 어떻게 된 줄 알았네.”

“그러고 보면, 희정이 너도 꽤나 효녀네?”

“효녀는 무슨.....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나저나 나 이제 어떡해? 정말로 이제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게 생겼으니. 화가 이빠이 난 아빠한테 맞아 죽을 텐데?”

“이빠이? 어허! 공부하는 학생이 이빠이가 뭐냐? 아니, 가출하는 학생인가? 아무튼, 그건 왜놈 말이야. 매우나 아주, 무척이란 우리말을 써야지. 외래어를 남용하면 나쁜 사람이에요.”

“이그 알았어. 이 와중에도 외래어 타령이야?”

“그나저나 집에는 왜 못 들어가니? 무조건 들어가서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그리고 내 얘기 물으시면, 그 오빠 불량 청소년 아니고, 무조건 모범 청소년이라고 그래. 게다가 운동 잘 하고, 외래어 남용 싫어하는 애국자에다가, 학교에서는 전교 십 등 안에 드는 공부벌레이기도 하다 그러고.”

“쿡!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왜 안 믿겨?”

“아니, 안 믿긴다기 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뭐.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도대체 오빠는 못하는 게 뭐야?”

“그렇다고 그렇게 비행기를 태울 것 까지는 없는데.”

“그건 그렇고 오빠, 아까 전에 뭐라고 했어? 뭐 장인 어르신?”

요것아! 그걸 뭘 여태껏 기억하고 그러는 겨? 사실, 맞는 말이긴 하잖어. 내 아내의 아버지 되는 분이면 장인어르신 맞지 뭐. 이럴 땐, 재빨리 화제를 돌려주어야 하는 법. 단순한 이 가출소녀에게는 그게 바로 특효약일 겨. 흐흐!

“그냥 장난으로 해 본 소리야. 그건 그렇고 희정이 너, 아까 보니까 정말 대단하더라?”

“뭐가? 아! 아빠한테 화낸 거? 그거야 아빠가 오빠한테 너무 심하게 구니까 갑자기 화가 나서 그랬지 뭐. 왜 실망했어?”

흐흐흐! 역시......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아주 신선하던데?”

“정말?”

“그래, 요것아!”

“큭!”

“그건 그렇고 우리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장인 어르신께서 다시 깨어나 금방 우리 뒤를 쫓아오면 안 되니까.”

“호호호! 알았어. 얼른 도망가!”

희정이를 데리고 골목을 벗어나 시장 통 입구의 깔끔해 보이는 중국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희정이가 중국 음식을 꽤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기는 나 역시 중국 음식을 무지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얼큰한 짬뽕 국물을 가장 좋아한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기운을 차리듯, 나 역시 얼큰한 짬뽕 국물을 먹고 기운을 차릴 정도다. 언젠가 도보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들린 중국 음식점에서 짬뽕 국물을 훌훌 마시는데, 담배꽁초 하나가 그 속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악착같이 그 국물을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주인에게 항의도 않은 채 말이다. 그만큼이나 짬뽕 국물을 애호하는 나인 것이다.

(그 시절엔, 중국음식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와도 별 생각 없이 대충 손이나 젓가락으로 건져내고 먹는 사람들이 많았음. - 글쓴이 주)

짬뽕 국물로 기운을 차리고서 우리가 다시 들린 곳은 야간비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아카데미 극장이었다. 에고! 용돈 금방 다 거덜 나겄네. 그랬다. 여자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던 녀석이라고, 문병 온 사람들이 저마다 한 푼 두 푼 용돈을 손에 쥐어주곤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남은 용돈 죄다 사라지기 전에 하루 빨리 학하리 파를 손에 넣어야겄다. 그래야 금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여자들에게 팍팍 쓸 수가 있지. 딱! 파!

영화의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고, 두 시간 내내 엉뚱한 생각만 하고 앉아 있었다. 음침한 이곳에서 가출소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몰래 내 입술을 포개어 볼까 하는 생각, 승주를 여하히 잘 내 여자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죽은 희에 대한 서럽고 원통한 생각, 별님과의 재상봉 생각, 주미 품어 볼 생각, 옥자 생각, 진숙이와 소희 잘 구해 낼 생각 등등. 반면에 가출 소녀는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인지, 단순해서 그런 것인지 오로지 영화 내용에만 함몰 되어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자기 아빠도, 이 오빠도 모두 그녀의 의식 밖으로 밀려나 있는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주미를 품어 본 것도 꽤나 오래전 일인 것 같다. 지금쯤 아마도 나를 많이 원망하며 꽤나 몸 달아 있겄지? 하지만 주미. 조금만 참아 주길. 나 지금은 이 가출 소녀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까. 그리고 진숙씨, 그 때 지리산에서 당신을 그냥 버리고 와서 정말 미안했다. 내가 이 애한테 미쳐서 니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만 깜빡했었지. 어쨌거나 너도 조금만 기다려 다오. 학하리 녀석들을 접수 하는 즉시로 너 역시도 완전히 자유로운 갈매기가 되게 해 줄 테니까. 그리고 완전히 나만 바라보고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기어코 기사 란슬롯트와 왕비(아더 왕의 처)가 나체로 합궁하는 장면이 펼쳐지자, 젊은 여자 관객들의 탄성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가출 소녀 역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미성년자 관람 가 영화에도 나체 합궁 장면이 나오나? 희한하네. 하기야, 아더 왕 전설을 소재로 한 동화 같은 이야기니, 저런 장면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성인영화로 취급 해 버릴 수도 없었을 터. 게다가 서양인들이야 성의 개방성이 아주 높은 족속들이니.

영화 관람 후 밖으로 나오니, 벌써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그러나 우리 같은 불량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각 따위가 무슨 대수랴. 당당하게 장인 어르신까지 물리치고(?) 도망을 친 위대한 전사들인디 말이여. 내친김에 희정이를 끌고서 대사동 보문산 공원 쪽으로 슬슬 신형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은행동에서 대사동까지 좀 걸어서 그런지, 다리가 아프다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가출 소녀. 에그, 짠돌이 녀석! 택시비 절약 하자고, 여자 친구를 억지로 걸리고 있다. 화상은 왕 짠돌이! 너무 그러지 마라 짜샤! 학하리 녀석들만 접수하고 나면, 하지 말래도 날마다 삐까뻔쩍한 고급 승용차에다 태우고 다닐 거니께. 그나저나 희정이 너, 불량 청소녀, 아니 가출 소녀 맞냐? 무슨 가출 소녀가 이리도 약해 빠진 겨? 이래 가지고 어떻게 전라도 남원까지 갔던 겨?

“다리 아파? 내 등에 업힐래?”

“아니, 괜찮아.”

“그러지 말고 업히라니까.”

“오빠는 툭하면 업으려고 그러더라? 나 업어주는 게 그렇게도 좋아?”

“그래 이것아.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업고 해 주는 것은 세상 모든 남자들의 큰 기쁨이니까.”

“풋! 그럼 오빠, 지리산에서처럼 나 업지 말고 그냥 안아주면 안 될까?”

“여기서? 안 돼. 그냥, 업혀!”

“뭐 어때서?”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잖아.”

“치! 알았어.”

착하지 귀여운 우리 가출 공주님. 사람들 안 보는데서 안아 주마. 그런데 오늘도 역시 이상한 점이 하나있다. 희정이를 이렇게 업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병원 퇴원 할 때부터 그랬는데, 다른 물건을 들거나 옮길 때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지금의 이 가출소녀 역시도 마치, 종이 인형을 등에 걸쳐놓은 것만 같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자살미수 후에 내가 갑자기 금강역사(金剛力士)라도 된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소녀라서 특별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 참!

고개를 들어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지없이 저 멀리 높은 곳 밤하늘 가운데서 파랗게 가물거리고 있는 빛 덩어리 하나. 별님, 나는 말이에요. 별님도 이렇게 한번 업어드리고 싶어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수창 군.’

헉!

‘벼 별님, 진짜로 별님인가요?’

고오오!

아무리 귀 기울여 봐도 더 이상은 들려오지 않는 별님 목소리. 내 그럴 줄 알았지.

“오빠! 저기 좀 봐 봐! 저 사람들이 어떻게 또 여기를?”

갑자기 터져 나온 희정이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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