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3. 16:18ㆍ허세창수필
가출 이야기
저는 청소년 시절에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어 부모님을 속이고 무작정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차비 몇 푼만을 손에 쥐고 대전역을 떠나 서울역에 내리니 반겨주는 이가 하나도 없더군요. 바로 그 날 이후로 서울거리에서의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좀도둑으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어울리게 되어 몰래 남의 집 담장을 엿 보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서 그냥 돌아 나왔던 일. 지나가는 중 고등학생 아이에게 돈을 좀 달라고 했다가 되려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았던 일. 또,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서 몰래 빠져 나오려다 주인에게 들켜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일. 말 그대로 철부지 어린 소년의 어설픈 가출 행각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었지요.
그러나 가출 열흘째가 지나가면서부터는 더 이상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더군요. 할 수 없이 고향인 대전으로 다시 내려오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차비가 없으니 이를 어쩌겠습니까. 물론,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돈을 좀 부쳐달라고 하면 되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말 그러고 싶지가 않더군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돈을 빌려달라고 할 주제 역시도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어느 한적한 길가에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던 고물 자전거 한 대를 몰래 집어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번 국도를 따라 훔친 고물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굴려서 마침내 충남 유구읍이라는 곳까지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만 타이어가 펑크 나더군요. 물론, 펑크를 때울 돈이 수중에 들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돈이 없어 끼니도 굶고 있는 주제였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별 수 없이 자전거를 팔아 집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만들어 볼 수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자전거포 주인에게 슬쩍 그런 의사를 내 비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던 자전거포 주인이 낯선 두 남자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알고 보니 그 동네 파출소의 순경들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 저는 세상물정에 깜깜한 철부지 소년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유구 파출소 유치장에 잠시 대기하고 있던 저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조치원 경찰서로 넘겨졌다가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의 탄원으로 간신히 풀려날 수가 있었습니다. 초범에다가 학생 신분이라는 점,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의 제반 사정이 모두 참작되어 고맙게도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 해 보아도 그 시절의 그런 철없던 행동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늘 들곤 합니다. 그리고 유구 파출소에서 근무하시던 젊은 그 순경의 말씀 한마디 역시도 제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지요.
“이 철없는 놈아, 너는 그래도 행복한 놈인 줄 알아. 우리 사회에 천애고아에 소년소녀 가장으로 지내는 애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가출할 생각을 해? 복에 지지리 겨운 놈이 아니고서야. 너 앞으로는 절대 가출할 생각 마라. 또 그러면 내가 그냥 안 둘 꺼야. 그리고 힘이 들면 항상 다른 소년소녀 가장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 해 보란 말이야. 그러면 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 나가야 할지 스스로 판단이 서게 될 테니까. ”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때 그 순경의 훈계를 늘 명심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비록, 지금의 제 나이가 그때의 그 순경 나이보다도 배는 더 먹어 있을지라도 그 순경의 훈계는 영원히 언제까지나 제 삶의 한 지표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소년소녀 가장 뿐만 아니라 제 주변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의 처지까지도 늘 함께 염두에 둘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006.08. 허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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